프랜차이즈 갓 100화
22장 이게 왜 대박이야? (1)
전성렬은 안살린의 안색을 확인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니 절대 농담이 아니다.
'유류 24만 톤? 농사짓는 데 쓰라고?'
하수영이 농사짓는 데 그렇게 유류를 무지막지하게 소비했나?
"지금 SC이노베이션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SC이노베이션은 국내에서 으뜸가는 에너지, 화학 대기업이다.
거기에 요청만 하면 언제든 필요한만큼 유류를 받을 수 있을 거라니.
말하는 게 마치 자기 회사라도 되는 것처럼…
"맞아요, 그러고 보니 국제자원투자회사가 SC이노베이션 지분 15%를 갖고 있었죠?"
옆에서 정서희가 얼른 끼어들었고, 전성렬은 그제야 아, 하고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유류 24만 톤을 주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약소하지만 농장주께 유익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농사짓는 데 그렇게 많은 기름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24만 톤이면 우리나라 전체 하루 소비량……."
"감사합니다. 하수영 사장님도 고마워하실 거예요."
정서희가 재빨리 전성렬의 말을 자르고 나서며, 안살린에게 감사의 표시를 나타냈다.
말을 가로채인 전성렬은 정서희의 눈짓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되죠. 주신다는 데 감사히 받아야죠.'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에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유류 24만 톤이라는 숫자에 놀란 나머지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멘트였는데.
요리는 거듭해서 나왔다.
안살린의 전속 쉐프 제퍼드는 골든 트러플 10㎏을 아낌없이 듬뿍 써서 요리를 만들었다.
최고급 식재료와 최고의 요리사, 그리고 최고의 장소가 한 곳에 모이니, 마치 천상에서 노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 딸은 끝없이 나오는 훌륭한 요리에 이미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성렬은 세계 최고의 부자와 대면한 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행운에 만족했다.
"구단주님이 사업 수완이 없으시다니, 세상사람 모두가 기가 막혀 할말씀이십니다."
"정말입니다. 전 사업 감각은 별로 없습니다. 회사는 측근들이 맡아서 관리하고 있어요."
정서희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구단주님께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시지 않는 건 맞아요. 하지만 실제로 회사를 운영하시면 아주 잘하실 것 같은데요."
"글쎄요, 저는 회사 운영보다는 연구에 몰두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대지는 참으로 신비해요. 알면 알수록 자연과 지구의 위대함에 경외심을 느끼게 되죠."
안살린은 사업이나 회사 이야기는 조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국제정세 같은 주제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대지가 얼마나 위대한지,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런 주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전성렬 부부와 정서희, 공장장은 조금도 지루함도 느끼지 못했다.
안살린이 워낙에 말을 잘하는 데다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험에 빗대어 지질학 지식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실은 하수영 농장주가 가진 골든 트러플 농장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하수영 사장님한테 빨리 연락해야겠어요. 한 번 땅 깊이 파보라고요. 막 석유 같은 거 나오는 거 아닌지 몰라요."
"에이,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오겠어요? 나오더라도 채산성이 거의 없을 텐데."
"안살린 구단주님이 관심 갖는 지역은 파보면 최소 석유 이상은 나온 단 말이에요."
"……저는 단 한 번도 석유나 금광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땅을 지목한 적이 없습다."
안살린은 뭔가 억울한 듯했지만, 그의 화려한 행적을 아는 정서희는 반쯤 진지했다.
그가 지목한 땅에서 대박이 터진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단 한 번의 빗나가도 없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이다.
"한반도는 골든 트러플이 자생하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기후, 토양, 주변 환경 등 모든 게 맞지 않아요. 그런데 그 많은 골든 트러플이나온다는 게 대단한 겁니다."
"혹시 트러플 농장을 한 번 방문하고 싶으신 건가요?"
"기회가 된다면 좋겠군요."
"사실은 저희도 트러플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하수영 사장님 혼자만 알고 있죠. 송이가 나오는 산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나중에 한 번 하수영 사장님 의사를 물어볼게요."
안살린이 트러플 농장에 갖는 호기심은 순수한 학자로서였다.
그 많은 재산을 가진 과학자가 트러플 농장이 탐이 나서 욕심을 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가 학문에 가지는 열정과 열의가 엄청나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고,
"만약 트러플 농장을 저에게 매각…… 아니, 연구와 조사만 배려해 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구단주님이 합당한 사례라고 하시면 뭔가 무서운 기분이 듭니다.
전성렬은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24만 톤의 유류를 가지고 '약소한 선물'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국제자원투자회사는 석유 같은 에너지 산업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는 편입니다."
'제법이 아니라 절대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한국에는 직접 진출하지 않고 지분 소유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아무래도 한국시장이 너무 협소하다 보니…… 하지만 제가 트러플 농장 토양 연구를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다면 한국시장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정서희와 전성렬은 입을 벌리지도 못할 만큼 크게 놀랐다.
한국 정유 시장쯤이야 언제든지 꺼내줄 수 있는 주머니 속 동전처럼 말하고 있으니.
* * *
「에릭, 오늘은 어디로 데려가줄 거예요?」
기대를 한가득 품은 갈색 눈동자라 빤히 바라본다.
흰 뺨 옆으로 길게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시선을 당긴다. 긴 속눈썹사이로 사랑의 감정을 가득 머금은 동공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만졌다.
손끝에 따뜻한 기운이 닿는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랜 세월 동안 혼자 그리워했던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차효주.」
「네, 에릭.」
「보고 싶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
「아침부터 갑자기 왜 그래요?」
「허수우주를 헤매며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 시간축의 너는 절대로 모를 거다.」
되살아난 그리움을 한껏 담아 속삭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동자를 본 순간, 조각조각 나 있던 기억의 파편이 하나로 뭉쳤다.
그 순간 밀려나 있던 기억들이 소급하듯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아직 떠나기 전이구나.'
이천 년 전 과거의 지구로 떨어지며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미개한 21세기 문명에서 그녀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추억, 그녀를 홀로 놔두고 다시 미래로 떠나야 했던 분기점 …….
160여 년의 머나먼 시간 여행 끝에 마침내 과거에서 다시 만난 그녀, 사랑스러운 아이들, 오래도록 행복했던 결혼 생활…….
그 모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덕분에 그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아직 이별을 겪지 않은 그녀의 눈빛이다.
「에릭, 뭐해요? 선 채로 꿈이라도 꾸는 거예요?」
「꿈…… 맞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순간 전부가 꿈이지.」
「그런 말 닭살 돋아요.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그녀가 수줍게 배시시 웃는다.
그는 처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꿈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무수히 이어져 온 삶의 윤회, 그 안에서 그녀는 아주 특별했던 인연 중 하나였다.
참 오랫동안 그녀의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꿈을 꾼 것을 보면…….
「좋다, 오늘은 명왕성을 보여주지.」
인스타에 올려도 되죠? 어차피 사람들은 안 믿을 텐데.」
「상관없다.」
「와, 좋아요. 얼른 준비할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 근데 거기서도 와이 파이 잡히나요?」
「물론이다. 지구 인터넷과 실시간 양방향 통신쯤이야, 프리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빨리 준비할게요.」
여전히, 아직도 그녀를 많이 그리워 하나 보다.
"사장님, 설마 밤새 여기서 주무신 건가요? 그러다가 입 돌아갑니다. 저녁에는 그래도 춥다고요."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하수영은 눈을 떴다.
어느덧 해가 중천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하수영은 시계부터 확인했다. 오전 10시가 살짝 넘어 있었다.
"에이, 깨우지 마시지."
"아, 죄송합니다. 좋은 꿈을 꾸고 계셨나 보네요."
"오랜만에 전 여친이 꿈에 나왔는데 그걸 중간에 자르시네. 다음부턴 제가 잘 때 절대로 중간에 깨우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하수영이 반복해서 뭐라고 말하는 경우가 도통 없기에, 직원은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잠을 깨워서 어지간히 화가 났구나 여긴 것이다.
겉보기에는 전혀 화난 표정이나 어투가 아니지만, 원래 티가 나지 않는 게 더 무섭지 않은가.
"괜찮아요. 그렇게 긴장할 거 없습니다. 다음부터 주의하시면 되죠."
"정말 죄송합니다. 엄청 좋은 꿈을 꾸고 계셨나 봐요."
"행복한 시절이죠.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 하수영의 눈빛이 어딘지 아련해 보였다.
직원은 큰 죄를 지은 듯한 자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버섯은 다 실었습니까?"
"이제 막 빈 박스 내려놓으려던 참입니다. 다 내려놓고 실어야지요."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어서 일시작합시다."
직원들이 일을 시작했다.
트레일러에 싣고 온 빈 박스를 농장 주변에 전부 내려놓은 뒤, 황금비단우산버섯이 포장된 박스를 차곡차곡 실었다.
로봇들이 밤새 부지런히 채취, 포장 작업을 해두었기에, 직원들은 그저 싣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인력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지만, 적재하는 작업만 해도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다.
아무래도 근 300톤이나 되는 물량이다 보니.
"저 큰 트레일러들이 산까지 올라 오려니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나요?"
"크게 불편하진 않습니다만, 차 돌릴 장소가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농장 주변에 차 돌릴 곳이 없다 보니, 트레일러들은 줄을 지어 후진으로 올라온다.
"조만간 산 아래에 대형 창고를 지을 생각이에요. 거기다가 포장박스를 쌓아두면 이제 좀 더 쉽게 실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럼 확실히 편해지겠군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테고요."
"일일이 사람 손으로 적재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 부분도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서 개선해야겠어요. 물론 사람 손을 아예 뺄 수는 없지만요."
"사장님 당장 신경 쓸 게 늘어날텐데 어째 표정은 즐거워 보이십니다?"
"왜 안 즐겁겠어요. 평생의 꿈이던 귀농 생활을 누리며 여생을 즐기고 있는데."
"그 나이에 여생을 즐긴다고 하시니까 뭔가 어감이 이상합니다."
"원래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남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너무 냉정한 생각 아닌가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냉정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만큼 매 순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어느덧 포장 박스가 다 실린 트레일러부터 차례대로 농장을 빠져나가 산을 내려갔다.
선두차가 빠져나간 자리를 다음 차가 메우며 적재 작업을 재개했다.
하품을 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수영은 노트북을 열어 부동산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어디 보자. 오늘은 새로 나온 매물이 없을까? 450억 환전한 거 빨리 계약금으로 써버리고 싶은데."
휘파람을 불면서 즐겁게 매물을 탐색하고 있는데, 전성렬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 사장님."
-하 사장, 어제 내가 보낸 톡 아직 안 읽었지? 읽음 표시가 없던데?
"아, 바빠서 확인 못 했어요. 지금 볼게요."
-기름이야, 기름! 기름 대박이 터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