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03화 (103/1,270)

프랜차이즈 갓 103화

22장 이게 왜 대박이야? (4)

JM식품은 프라임컴퍼니와 라면 사업 제휴를 맺은 후, 사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라면 시장에서 완전 철수할 줄 알았던 임직원들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정말 살았다. 적어도 정리해고 당하지는 않겠구나."

"정리해고는 무슨, 프라임컴퍼니 경영진이 바로 우리 사장님 따님이 시라잖아. 이제 쭉쭉 뻗어 나갈 일만 남은 거야."

"뭐? 그게 사실이야?"

"그렇대. 사실은 프라임컴퍼니가 반쯤은 우리 회사 자회사나 다름없었던 거지."

"뭐야, 그랬었구나."

"그럼 왜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우리 회사 라면에 직접 넣지 않고 따로 회사를 차리신 거지?"

"100% 자회사 관계가 아니어서 그렇겠지. 황금비단우산버섯 농장주하고 이해관계도 있고 해서 일단 그렇게 시작을 했다는 말이 있어."

진실과는 상당히 다른 분석이지만, 대부분의 JM식품 직원들은 그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었다.

JM식품은 라면 공정라인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기존에 제조하던 모든 라면에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어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버섯 첨가량은 40그램으로 하기로 했다. 성체 버섯 1개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프라임컴퍼니의 황비버섯라면 첨가 량이 80그램이니, 딱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그 이유는 최초의 황비버섯라면이라는 위상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사실 황비버섯라면에서 버섯을 빼고, 라면과 스프 그 자체로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미 특허 보호 기간이 만료된, 오래전에 개발된 레시피를 갖다 썼을 뿐이니.

"그럼 수익 쉐어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7 대 3으로 나눈다는데? 물론 우리가 3, 프라임컴퍼니가 7."

"개당 천 원에 팔 예정이라고 그랬나요? 그럼 하나 팔 때마다 우리가 300원씩 가져가는 겁니까? 그래서는 오히려 적자 아닙니까?"

"그게 아니지."

JM식품 라면공장 생산관리팀장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부사수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라면에 들어가는 버섯은 우리가 도매가로 매입한다. 프라임컴퍼니와 같은 조건, 대신 라면제조 외에 다른 목적으로 쓰면 안 돼. 그리고 라면을 팔아서 나오는 영업이익을 7대 3 비율로 나누는 거야."

"아, 그렇군요. 전 또 천 원을 7대 3으로 나누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회사는 망하는 거지. 라면을 만드는 족족 손해만 보는 셈인데."

태양심이나 육뚜기만큼은 아니지만, JM식품도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라면을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그 모든 라면에 황비버섯이 들어간다면, 단숨에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잘하면 우리가 라면 업계 빅1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황비버섯라면이 있잖아요."

"그 라면은 오래전 레시피라서 별로 맛이 없어. 황비버섯이 혼자서라면 맛 하드캐리 하는 거지. 같은 조건이라면 우리 회사 라면들이 무조건 이긴다."

"그런데 우리는 개당 40그램씩 넣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버섯은 개당 40그램 첨가.

프라임컴퍼니와 협의가 된 사항이기에, JM식품이 임의로 위반할 수 없는 조항이었다.

원조의 차별성, 우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제한 장치였으니까.

하지만 공장장은 자신이 있었다.

"40그램이나 80그램이나 일단 그 정도 양의 버섯을 넣으면 국물 맛에서는 서로 큰 차이가 안 나. 쫄깃한 버섯을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이런 이점 정도뿐이지."

"그래요? 몰랐습니다."

"두고 봐라. 우리 라면에서 훨씬 더 깊은 맛이 날 거다."

공장장은 JM식품 라면이 황비버섯라면을 몰아내고 업계 1위를 차지할 거라고 자신했다.

물론 그래 봐야 진정한 1위는 프라임컴퍼니의 차지다.

JM식품이 생산한 라면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프라임컴퍼니가 가져가는 이익이 더 커지는 구조이니까.

* * *

정재민의 둘째인 정서희가 프라임컴퍼니 부사장이라는 것은, 이제 JM식품 사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정재민이 사업확장을 위해 정서희를 따로 지원한 거라고 알고 있었다.

프라임컴퍼니와 라면 사업 제휴를 이끌어낸 것도 처음부터 정재민의 의도가 있었다고 이해했다.

"그럼 이제 정서진 상무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아니, 이대로 후계 구도에서 점점 밀려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지금 정서희 부사장이 회사 내에서 존재감을 엄청 발하고 있잖아."

"에이, 그래도 장남이고 그렇게 오래 경영 수업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후계자를 바꿀까. 그건 말이 안 되지."

"그냥 딸한테도 사업체 차려주려고 사장님이 다른 돈 써서 마련해 주신 것 같은데. 후계자 교체설은 너무 나갔다."

상당수는 정서진의 후계자리 위협설을 부정했지만, 그에 대한 반박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라면 사업 제휴 맺은 것 봐. 프라임컴퍼니에 너무 유리한 쪽으로 돼 있어. 이건 즉 정서희 부사장의 실적이라는 소리지."

"정서희 부사장이 프라임컴퍼니 대주주라는데? 더군다나 알짜배기 라면식품 사업도 몰아줬고, 진짜 사장님이 멀리 내려다보고 차근차근 준비하시는 거 아니야?"

직원들은 셋만 모였다 하면 회사의 다음 사장이 누가 되는지를 놓고 썰을 풀기 일쑤였다.

그간 정서진이 정재민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프라임컴퍼니가 라면식품사업 제휴를 맺으면서, 정서희의 존재감이 급부상해 버린 것이다.

"서진아, 직원들 떠드는 건 신경쓰지 마라. 형님은 오로지 너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어. 서희가 이 회사를 물려받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JM식품 부사장 박동식은 창업 공신이자, 부친인 정재민과는 의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정서진 남매도 사석에서는 박동식을 거리낌 없이 삼촌으로 대했다.

"글쎄요, 아버지는 몰라도 마케미야 삼촌은 서희를 밀어주고 싶은 게 맞는 거 같던데요."

"너도 마케미야 형님한테는 조카야. 그분이 설마 널 밀어내면서까지 서희한테 이 회사를 주라고 형님을 압박하지는 않을 거야."

"……."

정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부친이 정서희가 회사 밖에서 식품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사실이다. 정서진은 자신의 그런 추측을 부정하지 않았다.

"삼촌도 아시잖아요. 회사 일, 어떻게 될지 몰라요. 나중에는 JM식품과 프라임컴퍼니가 합병이 될 수도 있겠죠."

"설마.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미 라면 사업 제휴까지 맺었어요. 우리가 만드는 모든 라면에 프라임컴퍼니 로고가 박히고, 프라임컴퍼니에서 제공하는 황비버섯이 들어가요. 영업이익의 70%는 프라임컴퍼니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요."

"그건 라면 사업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원래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 모든 변화가 시작되는 법이에요. 거부할 수 없으니 합리화를 하는 거죠."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라면 사업부는 프라임컴퍼니에 뺏기게 될 겁니다. 근데 전 그런 느낌이 들어요. 라면 사업부를 시작으로 다른 식품사업부도 하나둘씩 차근차근 넘어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에요."

"설마. 운 좋게 황비버섯을 싸게 공급받을 수 있어서 라면 시장을 석권한 것뿐이다. 황비버섯만으로 우리 회사가 가진 그 많은 식품들을 뺏는다는 건 불가능해."

JM식품의 상품은 라면 하나만이 아니다.

즉석밥, 도시락, 반찬, 제과류, 음료, 그 밖에 다양한 인스턴트 식품들을 만들어 판다. 고추장이나 식용유, 그 밖에 각종 여러 요리용 소스도 만든다.

황금비단우산버섯 덕분에 라면 사업부는 반쯤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볼수는 없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네 걱정은 말도 안 되는 기우다. 그런 안 좋은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어."

"무턱대고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예측을 하는 겁니다. 프라임컴퍼니는 앞으로 5년 안에 엄청나게 커질 거예요."

"라면 하나로 성장해 봤자 얼마나 성장한다고."

"그 라면이 전 세계 라면 시장을 독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겠어요?"

"……."

"그렇게 축적한 자금으로 당연히 다른 식품사업에도 손을 뻗치지 않겠어요? 특히 황금비단우산버섯은 해외에서도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은 식자재입니다."

전 지구적으로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식자재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아버지가 저를 후계자로 생각하시지만, 그쯤 되면 아버지도 생각을 바꾸실 수 있죠. 뭐니 뭐니 해도 아버지는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니까요. 그리고 자식 중에서 서희를 가장 사랑하시죠."

"무슨 말을. 형님은 너희 셋을 모두 공평히 사랑해."

"삼촌, 별로 설득력 없어요. 제가 아버지라도 수염 난 아들들보다는 서희처럼 이쁜 딸을 더 편애할 거 같은데요."

박동식은 잠시 한숨을 쉬다가 표정을 무겁게 한 채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이대로 그냥 부정적인 예측만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셈이냐?"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몰라요."

정서진이 의연하게 말을 하자 박동식은 화들짝 놀랐다.

"서진아, 너 설마?"

"원래 저는 식품제조업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아시잖아요. 제가 음식 맛같은 거 별로 안 따지는 거요."

"먹거리를 만드는 것은 아주 보람된 일이다."

"보람된 일이죠. 저도 식품제조업을 폄하할 마음은 없어요. 다만 제 취향은 아니라는 거예요. 전 새로운 식품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만들어서 팔고, 그런 일에는 원래 흥미를 못느낀다고요. 제 1지망 전공이 뭔지 아시잖아요."

"전자공학을 좋아하긴 했지."

"원래 전 반도체 설계 쪽으로 나가고 싶어 했잖아요. 아버지 반대로 결국 JM식품에 들어왔지만요."

"눈에 선하다. 이 나라에서 CPU 설계 엔지니어링에 무슨 비전이 있다고 가시밭길을 가려는 거냐고 형님이 길길이 화를 냈었지."

"아버지가 틀린 말을 하신 건 아니죠. 메모리 반도체 하나로 전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서해전자도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어린아이 수준이니까요."

전자기학 등 자연과학 쪽을 좋아했던 장남의 진로를 바꾼 것은 정재민의 의지였다.

정서진도 자신이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걸 이해했기에 결국에는 아버지의 뜻에 순응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정서희가 존재감을 드러내자 억눌려 있던 열의가 되살아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서진아,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 와서 네가 서해전자 연구소 같은 곳에 취업을 할 것도 아니잖아. 그쪽 공부 손에서 놓은 지도 꽤 됐을 텐데."

"손에서 놓은 적은 없는데요. 공부는 매일 쉬지 않고 했습니다. 최신 논문도 항상 체크해 왔고요."

"뭐야? 어쩐지, 그래서 네가 상무달고 나서 회사 실적이 영 아니었던 거였어?"

"농땡이는 안 쳤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할 도리는 다 했다구요."

물론 박동식이 한 말은 농담이었다.

정서진은 상무이자 차기 사장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경영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설마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겠다, 이런 건 아니겠지?"

정서진은 한참이나 뜸을 들인 뒤에 말했다.

"유학을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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