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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05화 (105/1,270)

프랜차이즈 갓 105화

23장 삼켜야 하나, 뱉어야 하나(2)

하수영은 중개사의 표정을 자세히 확인했다.

희미하고 간헐적으로 떨리는 속눈썹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인도 난감한 상황에 처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낯빛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저게 거짓말 연기면 오스카상 감이지, 이 변방에서 중개사를 하고 있진 않겠네.'

"일단 먼저 돌아가세요."

"저, 사장님.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설명도 듣지 못했고요. 만약 알았더라면 미리 말씀드렸을 겁니다."

"제가 뭐 아직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매물도 오늘 막 나온 거라면 서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보고 자세히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매물이 급하게 싸게 나와서 일단 그것부터 알려드리려는 마음이 다급해서 그만."

"잘하신 겁니다. 매물 나온 것도 모르고 있다가 놓치는 것보단 낫잖아요. 저 이 빌딩, 꼭 갖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거든요."

"감사합니다. 근데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들 목록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제 버킷리스트에는 죽기 전에 꼭 갖고 싶은 청담동 건물들 소재지들만 적혀 있거든요."

"……."

중개사는 잠시 얼이 빠져서 말을 잇지 못했고, 하수영은 지하 계단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먼저 돌아가세요."

"뭘 하시려고 그러세요?"

"제 세입자가 될지도 모를 사람들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인지 슬쩍 알아봐야죠. 도저히 감당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를 하든 말든 결정을 해야 하니까요."

매수를 포기한다는 뜻인가?

중개사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하수영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자신 같아도 소유 건물에 여자들 나오는 유흥 술집이 입주한다면 거부할 것이다. 아무리 임대료를 많이 준다고 해도 사양이다.

그런 걸 개의치 않는 건물주들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 * *

하수영은 1층 상가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면서 지하 술집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빌딩에 입주한 상인들은 당연히 지하 술집에 관해서 모두 알고 있었다.

"거기 가게? 여기 동네에서는 나름 유명하죠. 그래도 근방에서는 알아주는 곳인데."

"텐프로는 아닌 거 같고, 쩜오? 잘 모르겠네. 내가 그런 술집을 다닐 돈이 없어서."

"임차인 중 모르는 사람이 없죠. 이 건물 지어질 때부터 입주해 있었대요."

"근데 신기하게도 경찰 온 건 한번도 못 본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 말 들어봐도 경찰은 본 적이 없대."

하수영은 친화력을 한껏 발휘해서 상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는 정보를 술술 불게 만들었다.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건 왜 알아보시는 거죠?"

하수영은 그의 경계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그 술집 가신 적 있으시구나?"

"헉! 그, 그걸 어떻게!"

"걱정 마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요. 저 술집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는데, 내가 일해도 될 만한 곳인가 싶어서 몰래 알아보는 거예요.

사전 탐색이죠."

"스카우트 제의라고요?"

상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하수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무슨 유흥 술집에서 남자를 스카우트한다고?

하수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가 비주얼 괜찮은 아가씨들 좀 데리고 있거든요. 저를 가족처럼 따르는 친구들이죠."

"……아."

그제야 상대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다소 묘하게 변했다.

"괜찮으시면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저기 어때요? 일하기 좋은 분위기인가요? 우리 친구들은 2차는 절대로, 절대로 안 나가는 친구들이라서 그거 엄청 중요합니다."

하수영은 그리 말하면서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슬쩍 꺼내서 내밀었다.

적당히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대는 얼른 돈을 받아 챙기고는 낮게 말했다.

"가지 마요. 절대로."

"왜죠? 2차 나가나요?"

"그건 모르겠고, 거기 실소유주가 좀 무서운 사람 같아요. 언뜻 듣기로는 강남 밤문화 큰손이라는데, 여기 말고도 정통 텐프로하고 대형 클럽도 몇 개 갖고 있대요. 재산이 수천억이 넘는대요."

"흐응."

"거기 술집 사실 규모는 생각보다 작은데, 아가씨들 사이즈가 의외로 괜찮아요. 중년 여자가 운영하는 거 같던데, 소유주 첩이라는 말이 있어요."

"예쁜가 보죠?"

"40대인데 절대 그 나이로 안 보여요. 저도 처음에는 30 정도 된 줄 알았다니까요. 가드들이 그 여자 앞에서 아주 그냥 개구리처럼 껌벅 죽더라고요. 보통이 아니에요."

"이 건물, 유명 가수 거라는 말이 있던데."

"그 사람도 된통 당했죠. 모르고 샀으니까요. 자기 이미지 실추할까봐 안절부절못한다고 하던데요."

"흐응…"

하수영은 빌딩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빌딩 근처에 자리를 잡고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한결같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만 드나들고 있었다.

출입 손님들은 빌딩 뒤쪽에 있는 출입구를 통해, 남들의 눈을 피해서 드나들었다. 덕분에 얼굴을 관찰하는 것은 힘들었다.

"손님들 타고 오는 게 최소 포르쉐네. 외부 간판 같은 것도 없고, 입소문만으로 장사하는 데구나. 그럼 방문객 수는 적어도 한 사람당 쓰는 돈이 상당하다는 소리겠고."

하수영은 불현듯 아까 출근하던 여자들이 떠드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아가씨가 하루에 이백오십 이상은 가져간다라…… 확실히 보통 유흥술집은 아니네."

그는 청담동 최고의 건물주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으면서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내 빌딩에서 술은 오로지 편의점, 음식점, 펍, 주류판매전문점에서만 팔 수 있다. 그 외는 안 돼."

건전한 건물 분위기를 지향하는 이상, 유흥 술집이나 클럽은 절대 임차인으로 받지 않는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매수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저 술집을 내보내든가.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네, 사장님. 접니다."

-아이고, 사장님. 그래, 건물은 잘살펴보셨나요?

"아무래도 그 술집은 내보내는 게 좋겠는데요. 혹시 임대차 계약이 어떻게 돼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주실 수 있습니까?"

-음…… 제가 이런 말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매수는 포기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동안 뭐 좀 알아보셨나 보군요?"

-네, 사무실 돌아오자마자 여기저기 전화 뿌리고 한바탕 야단법석 좀 떨었습니다. 하하.

중개사는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 가게,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겁니다.

"임대 계약 거의 끝날 때 되지 않았나요? 준공되고 나서 곧바로 들어왔다고 했으니 한 번 갱신했다 치고 이제 10년 다 되어가는 거 아닌가요?"

-계약 기간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그 건물은 포기하시는 게 좋겠어요.

"가게 차려준 남자가 강남 밤문화 큰손이라서 그래요?"

-다른 임차인들한테 들으셨군요.

-네, 그렇다고 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 마약 유통으로 크게 떠들썩했던 클럽 있죠? 거기 지분에도 닿아 있는 사람이 그 술집 뒤를 봐주고 있답니다. 정치권이든 법조계는 빽이 엄청날 겁니다.

"흐응."

-심기 건드려서 좋을 거 없습니다. 그 가게 마담은 자기가 접고 싶을 때나 접지, 누가 나가라고 해서 나갈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오죽하면 매도인이 80억이나 깎아서 급매로 내놓았을까요.

"악질 임차인이네요."

-악질 중에서도 초악질이죠. 양심적으로 그 정도면 자기가 건물 사서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매도인은 세입자한테 건물 사라고는 안 해봤대요? 그 정도면 건물 살 돈은 충분히 넘칠 거 같은데. 어차피 청담동 건물은 환금성도 좋고 가격도 계속 오르잖아요."

-그건 또 싫다고 거절당한 모양입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하수영은 건물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 국산 세단 한 대가 또다시 건물에 다가섰고, 가드들이 다가와서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어, 저 지금 국회의원 본 거 같아요. 그 술집 단골손님인가 봐요."

-사회적으로 힘깨나 쓰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인맥으로 오는 곳이랍니다. 그냥 손 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빌딩 자체는 너무 마음에 드는데."

-위험합니다, 사장님. 그런 술집이 본인 건물에 세 들어 있으면 언제든 골치 아픈 일에 연루될 수 있어요. 거기서 무슨 일이 터지면 나중에 공범 아니냐고 말도 안 되는 음해도 들어오고 그럴 수 있습니다.

중개사는 하수영이 유흥술집 임대를 감수하면서까지 빌딩을 매입하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월세 올려달란 요구도 군말 없이 잘 받아주고 세도 꼬박꼬박 내는데 80억이나 깎아서 급매로 내놨을까요. 아무리 연예인 이미지가 중요하다 해도, 가족이나 지인한테 팔아도 되는데요.

"괜히 도전 의식이 생기는데요?"

-아이고, 그 도전 의식 고이 넣어 두십시오. 큰일 납니다.

"그래서 급매로 금방 나갈 거 같아요?"

-앞뒤 사정 알면 이거 사겠다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청담동에 돈 좀 있으신 분들, 괜히 구린 곳과 얽히는 거 질색하세요. 잘못 얽혀서 세무조사라도 들어오면 본인도 골치 아프거든요. 사실 세금 100% 똑바로 내면서 부자 된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전 100원 한 장도 탈세한 적 없는데. 국제회계기준에 따라서 엄격하게 회계 처리를 하고 있죠."

-사장님 같은 분이 특별하신 거죠.

사실 하수영은 세금을 아직 안 냈다. 올해 막 개업을 했기 때문이다.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니 부가가치세는 면제고, 소득세는 내년에나 낸다.

-그래도 상황 모르고 싸다는 이유로 덥석 무는 사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건물 자체는 좋잖아요.

430억을 2주 만에 조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죠.

"현금 430억을 하루아침에 조달할만한 개인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렇다고 대기업 법인이 굳이 저런 상가 빌딩을 구매할 거 같지는 않고."

-당분간 안 나갈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또 어찌 될지 모르죠. 저처럼 도전 정신에 불타는 예비 매수인이 어딘가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을 지도요."

-일단 계속 알아보기는 하겠지만, 웬만해서는 포기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라면 살 떨려서 못 사겠어요. 물론 그럴 돈도 없지만요.

"네, 부탁드립니다."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얼마 전에 환전한 돈까지 포함해서 460억 원이 국내 계좌에 들어 있었다. 외화계좌에는 아직 환전하지 않은 4억 500만 달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단 실탄은 충분하고, 그 술집을 어떻게 내보낸다?"

하수영은 노트북을 켜고 관련 법령이나 판례들을 자세히 검색했다. 임차인 퇴거 문제로 비슷한 고민을 앓는 이들의 사례와 전문가의 답변도 꼼꼼히 확인했다.

"삼킬 것인가, 뱉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는 무슨 개뿔. 당연히 삼켜야지. 탈만 안 나게 잘 달래서 내보내면 되지."

조사를 마친 하수영은 중개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매도인하고 직접 상담해 보고 싶은데, 시간 한 번 잡아줄 수 있나요? 대면이든 전화든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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