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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08화 (108/1,270)

프랜차이즈 갓 108화

24장 라면과 기름 사이(1)

하수영의 정유 사업 진출 승낙을 얻은 후, 정서희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일단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오너, 안살린의 개인비서 지하크에게 연락을 취했다.

"왕자님께서 이미 지시를 하셨습니다. 하수영 님이 한국 정유 시장을 차지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하셨죠."

지하크가 본격적으로 나서자 모든 일이 지체 없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지하크는 100% 하수영의 명의로 된 정유회사를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정서희가 반대하고 나섰다.

"국제자원투자회사가 적당히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다른 대기업들의 견제를 피할 수 있어요. 100% 하수영 사장님 명의로 되어 있다면 대기업들이 어떤 수를 써서 귀찮게 만들지 몰라요."

"꼭 그래야 합니까?"

"미스터 지하크는 국내 사정을 잘 모르시겠지만, 여기서는 재벌들이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 매장해서 회사 뺏는 건 일도 아니에요."

"국제자원투자회사가 뒤에 버티고 있는데도 감히 달려든단 말입니까?"

"국자투가 단 1%의 지분도 갖고 있지 않은데, 뒤에 버티고 있다고 생각할 대기업은 없을 거예요. 그게 바로 여기 대기업의 상식이에요."

"흠…… 그러니까 우리 국제자원투자회사가 하수영 사장님을 커버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길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

"네, 그래야 귀찮은 벌레들이 날아 들지 않아요."

정서희는 자기가 말을 해놓고 얼른 정정했다.

"아니, 최소화할 수 있어요. 그래도 달려드는 벌레들은 끝까지 달려들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수영이 80%, 국제자원투자회사가 20%의 지분을 각각 결론이 났다. 정작 하수영은 아직 상황을 모르고 있지만,

"20%의 지분은 회사가 안정되면 그때 넘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부분에 관한 계약서를 만들죠."

"배려해 주신다면 따르겠지만,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자투가 전면적으로 돕는다면 회사가 안정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정서희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리 회사가 안정되게 굴러가더라도 국자투가 지분을 넘기는 순간 다시 불안정해질 거예요.

국자투가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철수하는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한국 대기업들의 생리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워낙 좁은 시장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어서 그래요. 그게 전부는 또 아니지만."

아무튼 정유회사가 만들어지고, 하수영과 국제자원투자회사가 각각 8:2로 지분을 나눠 갖게 되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는 거느리고 있는 석유회사 중 질 좋고 가격이 합리적인 원유를 최소한의 가격만 받고 팔기로 했다.

여기서 최소한의 가격이란 생산원가에 보관, 운송 등의 비용만 덧붙인 가격이었다.

즉 국제자원투자회사는 '프라임오일컴퍼니'에 아무리 많은 원유를 팔아도 단 1달러도 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손해 또한 보지 않는다.

노 마진 공급 지원.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국내 다른 정유회사들로서는 시장도태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아직 유조선이 출발하지도 않았지만, 전성렬은 벌써부터 국내 정유시장을 집어삼킨 듯한 희열을 느꼈다.

"부사장, 그런데 정제는 어떻게 하죠? 아예 정제한 기름을 들여오는 겁니까?"

"그렇게 하면 운송비가 너무 비싸지죠. 원유를 들어와서 정제하려면 관련 시설이 필요해요."

"그 시설은 어디서 구합니까? 이제부터 짓는 건가요?"

"그럼 너무 늦어요. 그래서 에스크오일을 인수할까 생각 중이에요."

"에스크오일?"

"이번에 매물로 나온 작은 정유회사예요. 자금난을 못 이기고 부도 맞아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거든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설비는 모두 갖추고 있어요. 그 회사를 인수하면 유조선이 들어오는 대로 즉시 정유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인수 비용이 얼마나 되죠?"

"지금 대형 정유회사들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저렴한 가격에 사올 수 있을 거예요."

저렴한 가격이라는 말에 전성렬은 희색이 돌았으나, 곧 이어진 말에 표정이 와장창 깨졌다.

"한 6,000억 원 정도? 그 정도면 충분히 인수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무슨 회사가 6,000억 원이나 합니까? 그게 저렴한 거라고요?"

"SC이노베이션 같은 경우는 시가 총액이 15조 원이나 되는 걸요? 그에 비하면 엄청 싼 거죠."

지금까지 라면을 팔아서 올린 매출이 한 3, 4천억 정도 되려나?

4천억 원어치를 팔았다 치고, 영업이익으로 잡히는 마진은 240억 원정도다.

라면 4억 개를 팔아서 번 돈이 계우 240억 원.

하지만 부도 맞아서 저렴하게 나왔다는 작은 정유회사의 인수 가격은 6,000억 원.

전성렬은 정유 사업이라는 글자가 가지는 스케일을 새삼 인지할 수 있었다.

'진짜 장난 아니네…….'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죠? 안살린 구단주가 국내 정유 시장을 가지게 해준다고 했지, 그런 돈까지 다 챙겨주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잖아요."

회사 설립을 도와주고, 질 좋은 정유를 파격적인 가격으로 무제한 공급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도움이다.

그 이상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정서희는 자신만만했다.

"아랍 왕족의 씀씀이를 너무 작게 보시면 안 돼요. 안살린 구단주님은 우리가 정제 설비가 없어서 원유를 가만히 놀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하실 걸요?"

"그, 그래요?"

과연 정서희의 자신감은 곧 증명되었다.

지하크가 미팅 자리에서 정제시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원유를 정제해서 팔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설비가 있어야겠죠. 하지만 프라임오일컴퍼니는 현재 사옥은커녕 사무용 사무실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 부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말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원하는 것을 빨리 말하라는 재촉이었다.

하지만 정서희는 곧바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일부러 난처한 듯이 말끝을 흐렸다.

"글쎄요. 저희도 그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하수영 사장님은 별말씀 없으셨나요?"

"자기는 정유 사업은 잘 모르니까 저희더러 알아서 하라고 모든 업무를 위임하셨어요. 프라임오일컴퍼니도 실질적으로는 저희가 경영을 하게 될 거예요."

"그렇군요."

"하수영 사장님은 농장 관리하는 것 외에는 일체의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하시거든요."

농장이라는 말에 지하크의 눈빛이 대번에 진지해졌다.

그는 안살린으로부터 단단히 주의를 들은 말이 있었다.

-지하크, 난 꼭 그 골든 트러플이 자라나는 농장의 비밀을 파헤치고 말 거야. 틀림없이 내가 보지 못했던 아주 특별한 토양으로 되어 있을 거라고.

-알겠습니다, 왕자님. 절대로 그 농장주가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주인과의 대화를 상기한 지하크는 즉시 의견을 꺼냈다.

"해외에서 설비를 들여와서 세팅부터 조율, 인력 지원까지 완벽하게 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건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립니다. 차선으로 일본에 있는 우리 자회사 정제시설을 이용해서 가공한 기름을 부산항에 입항해서 유통할 수도 있습니다.'

전성렬은 귀를 쫑긋 세운 채 지하크의 말을 경청했다.

"이건 번거로움이 크고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세 번째 방법으로……."

지하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한국에 있는 적당한 정유회사를 인수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그 인수대금은 왕자님이 무상으로 지급하실 겁니다."

"정말요? 하지만 인수대금이 한두푼이 아닐 텐데."

정서희가 깜짝 놀란 듯이 연기했고, 전성렬은 참 대단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쩜 저렇게 자연스럽지? 진짜 여배우를 해도 되겠어.'

배우 뺨치는 미모에 완벽한 연기 실력까지.

전성렬은 그녀가 정말이지 왜 연기자의 길을 걷지 않는지, 그 재능이 아까울 정도였다.

"왕자님께는 한두 푼 정도밖에 안되는 돈입니다."

지하크가 여유 있게 웃으면서 말했고, 전성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까마득한 격차를 느꼈다.

지상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의 막막함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아무리 걷고 뛰고 날아도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머나먼 하늘에서 홀로 세상을 밝히는 고고한 별.

"아무튼 저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걸 대충 알려드렸습니다. 선택은 여러분들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방법을 가장 추천합니다."

"알겠어요. 충분히 검토를 하고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해서 알려드릴게요."

미팅은 그렇게 끝났고, 지하크와 헤어진 뒤 전성렬이 물었다.

"부사장, 왜 에스크오일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꺼내면 우리가 미리 생각을 해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요. 좀 없이 느껴지잖아요."

"그건 이해하지만, 내 생각에 지하크 그 사람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은데…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정유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이던데."

"이틀 정도 뒤에 이야기를 꺼내면 될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정서희는 이틀 뒤에 지하크에게 연락을 해서 에스크오일 인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하크는 흔쾌히 긍정의 뜻을 나타냈다.

-6,000억 원에서 6,500억 정도면 인수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그런 말이 선뜻 나오는 걸 보면, 지하크는 이미 국내 시장 조사가 어느 정도 끝난 모양이었다.

"실은 에스크오일을 완전히 인수하는 것보다는, 정제시설 설비만 인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려 해요."

-음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죠. 에스크오일은 부실자산이 너무 많아요. 필요 없는 대리점도 너무 많고요. 회사 전체를 인수하는 것보다는 정제시설만 인수하는 쪽으로 가는 게 효율적일 거 같아요."

-한국 정부에서 그런 식의 인수는 승인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국제자원투자회사에서 정유업계를 조금만 압박하면 될 것 같아요. 정유회사로서는 국자투 눈치를 안 볼수가 없잖아요."

국제자원투자회사를 통해 들여오는 원유가 상당하다 보니, 자연히 국내정유회사들은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넌지시 암시만 줘도 다들 알아서 입찰을 포기할 거고, 그럼 에스크오일은 허공에 붕 뜨게 되죠. 그때 우리가 나서서 부분 인수를 제시하면 될 거 같아요."

-확실히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군살까지 안고 갈필요는 없죠.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눈총을 살 수도 있어요.

"국제자원투자회사가 눈치를 보나요?"

정서희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반문했고, 지하크는 기분 좋은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 방 맞은 기분입니다. 그렇죠.

우리 국자투가 누구 눈치를 보거나 그럴 회사는 아니죠.

"저희를 염려해서 하신 말씀인 건 알고 있어요."

정서희는 지하크를 가볍게 추켜 세워주는 미덕까지 보였다.

-사실 6,000억 원 정도는 왕자님께 별거 아닌 돈인데…… 그분이한 해에 연구비로 지출하는 예산을 아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은인께 최대한 폐를 덜 끼치려는 마음으로 알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사장님의 제안대로 진행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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