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1화
24장 라면과 기름 사이(4)
마케미야는 그동안 꾸준히 주변인들을 상대로 송이버섯을 제공했다.
다른 이들한테 일어나는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이거 몸에 아주 좋은 한국산 송이야. 한 번 먹어 봐."
"면역력을 키워주고 피를 맑게 해준다고,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버섯이야. 나도 힘들게 낙찰받았어."
그 결과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수 있었다.
송이버섯을 꾸준히 섭취한 이들이 전부 묵은 지병이 완쾌되거나, 상당한 호전을 보였던 것이다.
한두 명이 그랬다면 모를까, 50여 명이 넘어가는 이들이 동시에 차도를 보였으니.
'이 송이에 틀림없이 탁월한 치유효능이 있다.'
마케미야 자신도 원인불명의 요도 통이 사실상 완치된 바가 있지 않은가.
'송이를 끊으면 치유 효능은 사라진다.'
지인들은 송이를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본래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었고, 몸에 좋은 것을 먹으니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서 호전된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받은 치료가 이제야 효과를 본다고 생각하지, 송이 때문에 나았다고 여기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마케미야처럼 극적인 경험을 하지도 못했다. 자신 외에도 많은 이들이 호전되었다는 것도 몰랐다.
때문에 송이의 치유 효능을 진지하게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활력 증진에는 크게 도움이 되네. 그 덕분에 치료 효과가 득을 보는 거 같아."
그렇게 50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송이를 먹인 결과, 마케미야는 송이의 효능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현대의학으로 좀처럼 해결이 안 되는 지병 해소에 탁월하다는 것을.
특히 꾸준히 먹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신이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방간이 많이 완화되었군요.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셨나 니다."
주치의의 말에 마케미야는 그저 웃기만 했다.
생활 습관을 개선한 것은 없었다.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치도 거의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혈압도 조금 높았는데 완전히 정상화 되었고요. 체지방도 많이 감소하셨네요."
"아무튼 건강해졌다는 거지요?"
"네, 엄청 건강해지셨습니다. 이 정도면 동년배 중에서는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운동 열심히 하십시오."
"그래야죠. 열심히 먹어야죠."
건강지표가 여러 면에서 획기적인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그저 송이버섯을 꾸준히 먹은 것, 그게 전부인데.
'이건 진짜다.'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다.
다만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암 같은 난치병 환자를 상대로도 효능이 있을지 알아보지 못한 점이다.
무턱대고 중환자를 찾아가서 이걸 한 번 먹어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주변에 그런 중환자가 있다면 보양식을 이유로 챙겨줄 수도 있겠지만, 마케미야 주변에 그 정도로 심한 병을 앓는 이는 전혀 없었다.
그 점이 아쉬웠지만, 세상에 송이의 비밀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한 마케미야는 중병 환자들에게 먹이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는 정서희에게 연락했다.
-아,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너도 진석이하고 좋은 시간 보내고 있니?"
-진석이가 이제 그만하자고 했는데요?
"뭐, 뭐야?"
-걔도 깨달은 거죠. 더 해봤자 안된다는 걸. 그래서 깔끔하게 남은 횟수 포기하고 접더라고요. 다시 봤어요. 그런 쿨한 면이 있었네.
사실과는 약간 다르지만.
아무튼 마케미야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럴 수가…… 난 서희 널 꼭 닮은 쌍둥이 손녀를 보고 싶었는 데……."
-뭘 그런 걸 걱정하세요. 나중에 낳으면 보여드릴게요. 쌍둥이 딸을 낳을지는 자신 없지만요.
마케미야는 반색해서 물었다.
"낳을 생각이냐?"
-물론 애 아빠가 진석이는 아닐 거예요. 저도 누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서희야!"
-아무튼 진석이가 그만하자고 했으니까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정서희의 냉담한 반응에 마케미야는 살짝 가슴이 아팠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사업은 잘 되고 있니?"
-그럼요.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풀려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인 걸요. 아저씨한테는 정말 크게 감사하고 있어요. 덕분에 저희 회사가 이번에 기름 사업까지 확장하게 됐어요.
"기름 사업? 식용 기름 공정 같은 걸 손대려는 거냐? 하긴 라면 면발튀기는 데는 기름이 필요하니……."
-먹는 기름이 아닌데요.
"그럼 무슨 기름인데?"
-엔진 돌리는 기름이요. 휘발유나 등유, 경유 같은 거요.
"지금 통신 상태가 별로 안 좋은가 보다. 다시 말해주련? 무슨 기름이라고?"
-아주 깔끔하기만 한데요? 휘발유, 등유 같은 기름이요. 저희 회사가 이번에 정유 사업을 하기로 했어요.
마케미야는 황당함에 빠졌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아니, 라면 만드는 회사에서 무슨 갑자기 정유 사업이야? 문어발 확장도 단계가 있는 건데, 무슨 중간 단계 다 건너뛰고, 뭐? 정유 사업을 한다고? 그게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위험이 따르는 건지 알기나 하는 거냐?"
-에스크오일이라고 이번에 부도 맞고 법정관리 들어간 작은 정유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설비를 인수하기로 했어요. 2,000억 원 밑으로 필요한 정유설비는 모두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들을수록 기가 막힌다.
마케미야는 원래 정서희한테 전화를 한 목적도 순간 잊어버리고 열불을 냈다.
"아니, 정유설비 들여놓는다고 뭐가 달라져? 주유소 인프라는 어느세월에 깔고 또 원유는 어디서 사오려고? 기름쟁이들 성깔 보통 아니다. 자기들 카르텔에 신생업체 뛰어드는 거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아. 식품회사들하고는 체급 자체가 달라요."
-원유는 사우디, 캐나다, 호주, 미국에서 수입을 하기로 결정이 났어요.
"뭐?"
그새 원유 수입처가 정해졌다고?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거야, 아니면 너희가 그렇게 잠정적으로 계획을 세웠다는 거야?"
-아직 계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확정이 됐어요.
"서희야, 이 아저씨는 지금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구나. 라면으로 식품사업 잘하고 있는 건 알았는데, 느닷없이 기름 사업에 진출한다니? 앞뒤 자르지 말고 온전히 설명해 주련?"
-안살린 구단주님이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뭐야, 다저스 그 친구가?"
안살린은 LA다저스 구단주이기 때문에, 마케미야는 종종 그를 다저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네, 아저씨가 구단주님을 소개해 주신 덕분에 정유 사업도 시행하게 됐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제야 마케미야는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되었다.
골든 트러플을 통해 맺은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왜?'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안살린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지질학 연구에 미친 사람이다.
물욕, 애욕, 식욕, 명예욕 등 모든 욕구를 다 합쳐도 그가 지닌 연구욕심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이가 아무 이유 없이 정유사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설 리가 없다.
기업 가치가 몇조 달러가 넘어서는 국제자원투자회사라는 거대한 기업의 경영에도 전혀 간섭하지 않는 사람인데.
지질학 연구를 하다 보니 어쩌다가 생긴 회사, 그리고 지금은 원활한 지질학 연구를 도와주는 도구, 그에게 국제자원투자회사는 겨우 그런 의미였다.
"다저스 그 친구가 뭐 때문에 너희 회사 기름 사업을 도와준다는 건데? 난 전혀 상상이 안 간다."
-골든 트러플 때문이에요.
"그 친구가 골든 트러플을 좋아하긴 하지만 돈 주고 사 먹으면 그만이지, 굳이 국자투까지 써가면서 기름 사업을 도와준다고?"
-골든 트러플 농장을 연구조사 하고 싶으시대요. 그래서 정유 사업진출을 전면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거예요.
"농장 조사?"
-네, 한반도에서는 골든 트러플이 절대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꼭 토양을 조사하고 싶다.
고 하셨어요.
마케미야는 그제야 납득이 갔다.
그래, 그 친구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땅을 파고 토양을 조사하고 암석을 분석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니.
한국 정유 시장이라고 해봐야, 국제 자원 시장을 주물럭거리는 안살린 입장에서는 주머니 속의 푼돈이나 다를 바 없고.
"잘됐구나. 좋은 인연을 얻었어."
-아저씨가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덕분이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전성렬 사장님도 감사하다고 전해 달래요.
"아니야, 나도 덕분에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세울 수 있었으니 서로가 이익이지.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한 끼 밥값으로 2억 달러 가까이 썼다고 추켜 세워주고 있어."
-혹시 조언해 주실 건 없으세요?
"조언이라…… 다저스 그 친구는 말이다, 다른 무엇보다 지식욕이 왕성한 친구야. 정작 물욕이나 명예욕같은 것은 없어. 먹는 거에 돈을 아끼지는 않는 주의지만."
-그건 저도 알아요.
"절대 뭔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하지 마. 그 친구가 갖고 싶어 하는 걸 보여 줘. 그럼 그 친구가 먼저 딜을 걸어올 거다."
-네.
"그리고 그 친구가 선의로 뭔가를 베풀려고 할 때, 그러니까 딜이 아니라 자기가 해주고 싶어서 베풀때, 그냥 군말 없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 한다. 괜히 체면 차린다고 예의상 거절이라도 하면……."
-엄청 분노하시나 봐요?
"아니, 삐져."
-……네?
"엄청 빠진다고, 그거 풀어주려면 골치 아프다."
-그, 그렇군요.
"명심해. 그 친구가 뭐 준다고 하면 공손히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겉으로는 안 내도 속으로는 엄청 좋아하고 뿌듯해하고 그럴 거다."
-네,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는 기분 좋아서 더 큰걸 줄 거야."
마케미야는 정유 사업에 관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직접 정유 회사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어 나름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 자회사 형식으로 설립하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다. 석유 업계만큼 이권 다툼이 치열한 곳은 없지. 문명을 견인하는 기초 자원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 말곤 안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다른 정유 회사들도 사활이 걸린 문제라서 필사적으로 방해하려고 할 거다. 에스크오일 설비 인수도 방심해선 안 돼."
-그 부분은 구단주님이 압박을 넣어주신다고 했는데.
"미친 척하고 들이박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국제자원투자회사 심기를 거슬리면 제대로 원유를 사올 수가 없게 되잖아요.
"내가 다른 정유 회사, 그러니까 SC이노베이션 같은 회사 오너라면 절대 방관 안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에스크오일이 인수되는 거 막는다. 무조건 시간은 벌어야지."
마케미야는 진지하게 조언을 이어 나갔다.
"국제자원투자회사와 사이 조금 틀어지는 게 무서워서 내 밥그릇을 깨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안 그래?"
-……살짝 방심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드네요. 명심할게요.
"그래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믿는다. 혹시 따로 필요한 건 없니?"
-진석이가 거래를 파기한 상황에서 제가 무슨 염치로 아저씨 지원을 더 받아요.
"아낌없이 주는 예비 시아버지니까 괜찮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라."
-근데 하실 말씀 있어서 전화한 거 아니셨어요?
"우리 예비 며느리, 말 돌리는 건 참 잘해요. 알았다. 사실 내가 전화한 건 말이야…… 흠! 흠!"
마케미야는 괜히 민망해서 몇 번 헛기침을 하다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하수영 사장 말인데, 혹시 송이 농장을 매각할 의사는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