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30화
29장 교수님? 회장님? 왕자님? (3)
환희 가득한 안살린의 목소리에 하수영은 조금 당황했다.
'아니, 웬 기적의 흙? 깜빡이도 안켜고 이러기 있다고?'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수영 CEO의 농장을 조성한 흙들은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요! 너무 놀라워요! 수영 CEO, 혹시 이 농장을 내게 팔 생각은 없습니까?」
마케미야도 그렇고 안살린도 그렇고, 왜 이렇게 다들 농장을 사지 못해서 안달인 것인가.
"조금 이해가 안 됩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수영 CEO, 저는 이 농장을 조성한 토양 재질에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가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비교대차 실험을 했어요.」
안살린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송이버섯과 트러플을 채취한 다음 그 자리에 준비해 온 몇 가지 종묘를 심었습니다. 놀랍게도 일반적인 속도보다 훨씬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습니다. 토양에 종묘의 성장을 촉진하는 특별한 성질이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흙에다가 엘릭서를 직접 뿌리지는 않았는데. 설마 엘릭서 효능 일부가 흙에 배어는 건가?'
엘릭서를 흙에 직접 뿌리면 잡다한 풀, 미생물 등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하수영은 생육하는 버섯을 직접 엘릭서에 적신 뒤에 땅에 살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쉽게도 그 효능이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빠른 생장 효능이 금방 사라져 버렸죠. 아마 그 비밀이 골든 트러플이 자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살린은 농장을 샅샅이 뒤졌지만 골든 트러플은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블랙 트러플, 화이트트러플만 발견했을 따름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수영이 그렇게 조치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토양 성분 조사장비로 조사를 해도 흙에서 특별한 타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기적의 흙이라고 할 수밖에요.」
"……."
「이 흙에는 특별한 효능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리고 낱낱이 밝혀내고 싶습니다.
수영 CEO, 부디 이 농장을 저에게 파십시오. 얼마면 되겠습니까?」
"아니, 교수님. 농장을 팔면 저는 더 이상 버섯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는……."
「100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파십시오.」
100억 달러라니!
그 돈이면 아트락 부지를 진작 삼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돈에 살 거였으면 진작 좀 오지,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뒷북이야.'
하수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100억 달러. 10조 원.
이게 무슨 강남구 한국전력부지도 아니고, 그러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다니.
추정 개인 자산이 10조 달러가 넘는다는 사람이니 100억 달러 정도야 충분히 내놓을 만한 수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땅을 팔 수는 없다.
엘릭서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런 현상이 나타난 게 뻔한데, 그 돈 받고 팔았다가는 이번 생은 두고두고 꼬일 것이다.
안살린이 온화한 학자 타입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보좌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사기를 당했다는 판단이 들면 그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보복할 것이다.
한가롭게 농사나 짓고, 직접 기른 농작물로 만든 음식을 팔면서 청담동 건물주로 살겠다는, 이번 생의 목표에서 저만치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수영은 정중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만, 교수님. 그 땅은 100억 달러가 아니라 100경 달러를 줘도 팔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영원히 간직하라고 남겨주신, 소중한 추억이 담긴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유산.」
"가슴에 새겨진 추억은 돈으로 팔수도, 살 수도 없는 법이죠. 저라고 100억 달러가 어찌 탐이 나지 않겠습니까? 제가 얼마나 돈을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산을 팔 수는 없습니다."
「수영 CEO, 부디 다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수님, 저는 교수님이 정유사업에서 저에게 큰 배려를 베풀어주신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수영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안살린은 조용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 배려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교수님이 원하시는 만큼 얼마든지 농장에서 연구·조사를 하십시오. 그럼 굳이 그 산을 사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진심입니까?」
"네, 진심입니다. 그 산은 아버지가 남기진 소중한 유산이니만큼 제가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이며, 나중에 제가 죽으면 그 산에 묻어달라고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길 겁니다. 그래서 차마 팔 수는 없지만, 대신 얼마든지 연구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거 제가 또다시 수영 CEO에게 신세를 지게 됐군요. 먼저번에 진 신세도 미처 다 갚지 못했는데.」
먼저 진 신세란, 골든 트러플을 선물로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부디 제 보답을 거절하지 말아주 십시오."
「알겠습니다. 그 배려,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농장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락되었다.
통화를 끊고 나니 막상 눈앞에서 날아간 100억 달러가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돈이면 아트락 부지를 가로챌수도 있을 것이다.
배상금을 대신 물어주고 매도인이 뉴월드그룹과 맺은 매매계약을 파기하게 만들면 되니까.
"아깝지만 함부로 먹을 떡은 아니야."
급하다고 남의 돈을 함부로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난다.
"어차피 100억 달러 정도야, 나중에 알아서 벌리겠지."
안살린은 아예 뒷산에 눌러앉은 채, 본격적인 토양 연구에 매달렸다.
이제는 하수영이 더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아무리 성분 조사를 해봐도 엘릭서의 흔적이 나올 리가 없다.
안살린이 답 없는 연구·조사에 지쳐서 철수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하수영은 그렇게 뒷산에서 신경을 끈 채, 3호기 빌딩 음식점 오픈 준비에 열중했다.
가게 내부 공사와 인테리어는 완전히 끝났고, 이제 직원 면접을 볼 차례였다.
매니저와 서빙 직원은 어렵지 않게 뽑을 수 있었다. 괜찮은 페이를 약속했기에 좋은 경력을 지닌 성실한 매니저를 뽑을 수 있었다.
문제는 요리사였다.
어엿한 음식점이니만큼 요리사의 실력은 중요한 문제였다.
"면접 보러 오셨나요?"
3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통통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하수영이 반갑게 맞이했다.
"네, 이택진이라고 합니다."
"아, 방금 통화하신 분이군요. 여기 앉으세요."
이택진은 하수영이 권하는 대로, 테이블 앞에 앉은 채 가게 내부를 살폈다.
"아직 오픈하지 않은 가게인가 봅니다."
"네, 신규 오픈입니다."
"그럼 주방은 사장님이 직접 컨트롤하시는 겁니까?"
"아뇨, 주방장을 뽑아서 완전히 맡길 겁니다. 제가 요리를 못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잘하는 사람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게 좋겠죠."
이택진은 미심쩍은 눈으로 하수영을 살폈다.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가게 규모가 작은 편이다.
4인 테이블 기준으로 6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위치야 두 번 말하기 번거로울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비싼 임대료를 각오해야 한다.
'청담에서 이 정도 목이면 임대료가 엄청날 텐데…….'
그래도 인테리어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레스토랑식으로 잘 해놨다. 젊은 층이 좋아할만한 분위기다.
"합격입니다."
"네?"
이택진은 당황했다.
아니, 면접인데 뭐 물어보지도 않고 무슨 얼굴 보자마자 합격 통보야?
"한식, 양식, 중식 전문자격증도 있으시고, 5성급 호텔에서 오래 일하셨네요. 이런 분을 떨어뜨린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근데 호텔은 왜 그만 두신 건가요?"
"아직 그만둔 건 아닙니다. 면접에서 붙으면 바로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음, 특별한 이유라도?"
"제가 곧 결혼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월급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미래에 개업할 거 생각하면 호텔에서 계속 일하는 게 낫지만, 여기 페이가 높아서 마음이 갔습니다."
이택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연봉 7,200만 원을 맞춰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이택진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은 실력도 자신 있고, 5성 호텔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3,0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요리계가 워낙 박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원을 했던 것도 7,200만 원이라는 연봉에 혹해서 했던 것이다.
'이런 작은 가게가 어떻게 7,200만 원을 맞춰준다는 거지?'
설마 직원 한 명 없이 주방, 홀 관리, 서빙부터 모든 것을 자신이 전부 다 해야 하는 것인가?
"혹시 주 근무 시간이 80시간이 넘습니까?"
"가게 오픈 시간이 70시간 정도인데 그게 말이 되나요. 쉐프님 혼자 일하시는 것도 아니고요."
"저 말고 다른 직원이 있습니까?"
이택진은 반색을 하며 물었고, 하수영은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이미 서빙 직원 3명과 홀매니저 한 명은 다 뽑았습니다. 이제 요리사 3명하고 요리보조 3명만 더 뽑으면 인원 편제가 완성될 것 같네요."
"예?"
이택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지금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4인 테이블 6개밖에 없는 이 작은 가게에서 뭐?
홀 매니저 1명에 서빙 직원 3명, 그리고 요리사 3명에 주방보조 3명이라고?
그렇게 해서 무슨 장사를 한단 말인가?
재료 매입비나 운영관리비는 고사하고, 임대료와 인건비에서 이미 마이너스 대폭 찍고 시작할 것 같은데?
"저, 사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가게 테이블 규모를 생각하면 인원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그 정도 인원을 돌리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가게 규모가 두세 배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회전율이 높다 해도 테이블 수가 너무 적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영업시간이 주 70시간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단순히 계산해서 하루에 10시간씩 오픈한다는 이야기인데?
'11 to 9인가? 영업시간은 적당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장사가 안돼. 사장이 너무 젊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야. 말 들어보니 자영업도 해본 적 없는 거 같고.'
"요리사 셋이면 한 달 원급만 1,800만 원입니다. 서빙과 주방보조월급을 150으로 잡는다 치면 6명이니까 그것만 이미 월 900만 원……."
"250인데요? 홀 매니저는 500이고요."
"……그럼 인건비만 한 달에 3,800만 원이네요. 여기에 식자재 매입비와 운영관리비까지 더하면, 정말 라면 한 그릇에 2만 원은 받고 테이블을 종일 풀로 돌려야 손익분기점을 겨우 맞출, 물론 라면 같은 건 안 파시겠지만……."
"라면도 팝니다. 우리 가게 주력 상품이 될 건데요."
"……예?"
이택진은 당황했다.
젊은이들을 위한 퓨전 레스토랑을 추구하는 게 아니었어?
근데 라면도 판다고? 심지어 주력 상품?
"사장님, 혹시 여기 가게 정체성이……."
"일반 음식점이죠. 느긋하게 앉아서 이야기하기보다 빨리 먹고 일어나는, 천국김밥 같은 가게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 그런데 가게 규모에 비해 직원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연봉도 그렇고요. 임대료는 대체 어떻게 감당하실 건지……."
"임대료는 걱정 없어요. 이 빌딩이 제 거라서요."
이택진은 잠시 동안 호흡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말했다.
"……그 말씀을 가장 먼저 해주셨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