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34화
30장 신장개업(4)
정서희는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제대로 홍보 해드릴게요.
저와 제 친구들 팔로워 다 합치면 300만 명은 넘거든요.
"어, 그거밖에 안 돼요?"
-……그거밖에라니요.
정서희는 살짝 서운한 목소리를 내비쳤다.
본인은 정작 팔로워가 100명도 안되면서,300만 명을 우습게 보니 뭔가 서운했다.
"전 한 명당 300만 명은 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합쳐서 300만 명이라니. 친구들 몇 분이나 데리고 오시는데요?"
-저까지 해서 네 명이요.
"그럼 평균적으로 한 명당 80만 명도 채 안 된다는 건데,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
-죄송한데요, 사장님. 사장님은 지금 100명도 안 되시잖아요. 두 자릿수밖에 안 되시면서 80만 명을 너무 쉽게 보시는 것은 아니에요? 팔로워 늘리는 거 진짜 죽도록 힘들어요.
"저야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홍보도 제대로 안 해서 그렇죠. 얼마 안 가서 팔로워 1억 넘기고 10억도 찍고 그럴 겁니다."
-……하여튼 포부는 정말 크시다니까.
딱히 싫은 목소리는 아닌, 많이 누그러진 음색이었다.
-근데 메뉴가 뭐 뭐 있어요?
"일단 기본 메뉴는 모두 9가지예요. 송이안심구이, 꽃게해물전골, 황비버섯찜, 그리고 또……."
9가지 기본 메뉴를 전부 듣고 난 정서희가 대답했다.
-이름만 들어도 엄청 맛있을 거 같아요. 근데 메뉴 가짓수가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
"개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맛이 중요한 거죠. 천천히 늘려 나가긴 할 건데, 무리해서 늘려나갈 생각은 없어요. 아, 스페셜 메뉴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거 한 번 드셔 보세요."
-뭔데요?
"라면이요. 메뉴명은 제 이름을 붙여서 수영라면이라고 했어요."
-겨우 라면이요? 아, 잠깐만요!
잠시 실망한 듯했다가 무언가 생각 난 듯이 정서희는 별안간 목청을 높였다.
하수영은 그녀가 바로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씩 웃었다.
"그냥 라면이 아닙니다. 한 개에 35,000원이나 하는, 황비버섯으로 우려낸 꽃게 육수에 수제면발과 JM 식품 쿠라면의 분말스프를 넣고, 대파와 양파, 콩나물, 계란으로 포인트를 준 다음 송이버섯으로 향을 정리한 고급 라면이죠."
-그게 전부일 리가 없어요. 그렇죠?
"맞습니다. 정서희 부사장님도 아는 그 특제 고춧가루로 마무리를 장식했죠."
-꼭 그거 먹을게요. 꼭이요, 꼭.
우리 네 명 다 전부 그거만 두 그릇씩 먹을 거예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도 먹어 봤는데 이 세상 라면 맛이 아닙니다."
정서희는 이미 엘릭서 고춧가루 맛을 본 적이 있다.
화려한 재료를 아낌없이 듬뿍 써서 요리하고, 거기에 엘릭서 고춧가루까지 뿌려서 마무리했다.
이 세상 라면 맛이 아니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이해했으리라.
다음 날, 마침내 퓨전 레스토랑 '수영 레스토랑' 1호점이 오픈했다.
원래 업무 프로세스상 셰프 3인이 동시에 출근하는 일은 없다.
번갈아가면서 두 명이 출근해서 일하고, 그동안 한 명은 쉬는 시스템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픈 첫날이니만큼, 셰프 3명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오픈 준비에 임했다.
오픈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3인 모두 쉬지 않고 출근을 하면서 손님들 반응을 살피기로 한 것이다.
점심에 가게를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손님들 대부분은 이 빌딩에 세들어 있는 상가나 회사, 병원에 출근하는 직원들이었다. 쉽게 말해 두고두고 얼굴을 보게 되는 한 식구들이었다.
하수영은 입구에서 활짝 미소를 띤채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단정한 올블랙 캐주얼 복장을 한 채 미소를 띠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상당히 능숙하다. 마치 어디서 이런 손님 접대를 많이 해본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하수영을 잘 모르는 여자 손님 그룹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여기 빌딩 주인이라고?"
"응, 맞아. 저번에 건물주 바뀌었다고 한 번 인사 왔었어. 나도 그때 슬쩍 봤지."
"와, 진짜 젊다. 이십 초반 같은데 어떻게 저 나이에 이런 빌딩을 갖게 됐을까?"
"물려받은 거겠지. 그게 아니면 답없잖아."
"그럼 금수저네? 근데 손님 대하는거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없어. 엄청 겸손하고 자기를 굽힐 줄 아는거 같아. 신기해."
"원래 제대로 된 금수저들은 가정교육 철저히 받아서 깍듯하고 예의바르고 인성도 좋대."
"뉴스에 나오는 금수저들은 그 반대던데? 저번에 무슨 클린푸드 만드는 회사 사장 딸은 마약 5㎏인가 밀반입하다가 걸렸잖아."
"그런 못된 금수저들이니까 뉴스에 나오지. 저런 좋은 금수저들은 뉴스같은 데 나오지도 않아요."
"꽤 훈훈하게 생겼다. 여자친구 있을까?"
"아서라. 저런 사람이 우리 같은 평범한 여자들이 눈에 들어오기나하겠니? 주변에 모델이나 아이돌 같은 애들이 자기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지겹게 들러붙을 텐데?"
손님 비율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무래도 10층 병원 직원들이 오픈 시간에 맞춰서 곧바로 식사권을 쓰기 위해 내려온 듯했다.
"뭘 시키지? 뭘 먹을까?"
"난 그냥 가장 비싼 거 먹을래."
"송이안심구이? 살짝 구운 송이를 곁들인 송아지 안심이구나. 맛있겠다. 나도 이걸로 먹어야지."
"그럼 나도 이걸로."
식사권을 가지고 들어온 손님들은 대체로 비싼 메뉴 중에서 선택했다.
아무래도 공짜밥이다 보니 비싼 메뉴 중에서 고르는 게 남는 것이라는 심리 덕분에.
간혹 수영라면에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건 뭐야? 무슨 라면 하나에 35,000원이나 해?"
"들어가는 재료 보면 그럴듯하긴하다. 황금비단우산버섯과 꽃게로 우려낸 국물에, 송이버섯 첨가까지. 이 정도면 킹라면이라고 불러도 할말 없는 수준인데?"
"에이, 그래 봐야 라면이지. 송이안심구이에는 못할 거야."
"맞아. 그래 봐야 라면이야."
라면에 호기심을 보이긴 했지만, 주문으로까지 이어지는 않았다. 손님들 대다수는 값이 비싼 고기류 메뉴를 주문했다.
주방은 전쟁터였다.
"여기 안심 좀 더 갖다 줘!"
"대파! 대파 썰어놓은 거 다 어디 갔어?"
"진영아! 빨리 여기 와서 감자 좀 다듬어라!"
"희주! 생강 껍질 벗기라고 했더니 왜 거기서 양파를 씻고 있어? 지금 양파 산더미처럼 있는 거 안 보여? 생강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누가 이리 와서 무 좀 갈아봐!"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친 터라, 주방은 전쟁터처럼 정신없이 돌아갔다.
의자 수가 24개밖에 되지 않는데도 정신없이 바빴다. 셰프 한 명당 8가지 요리를 동시에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손님이 한꺼번에 밀리니 어쩔 수 없었다.
"손님 좀 빠졌어?"
"네, 빠졌습니다! 그런데 빠지자마자 다시 들어왔어요!"
"무슨 소리야? 점심시간 벌써 지났잖아?"
정신없이 요리를 만들다 보니 어느덧 2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보통 이 정도 시간대면 손님이 슬슬 빠지고 한가해지기 마련인데, 쌓여 있는 주문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그게 지금 밖에 손님들이 줄 서 있어요. 오픈 기념 50% 세일 행사소식 듣고 온 분들 같아요."
"뭐야? 50% 세일 행사라고?"
"못 보셨어요? 저 오늘 출근할 때 강남역 잠깐 들렀는데 지하철 입구에서 전단지 나눠주고 있더라고요. SNS에도 요란하게 올라와서 바이럴심하다고 이리저리 말이 많던데."
이택진은 하수영이 취미로 가게를 하는 거라고 조금 편하게 봤던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전단지에 SNS 홍보에 세일이라.
심지어 빌딩 임차인들한테는 무료로 식사하라고 식사권까지 어제 단체로 뿌렸었지?
'사장님은 그냥 낭만이 풀풀 날리는 비주얼 레스토랑에 만족할 마음이 없는 거다.'
그 왜, 흔히 있지 않은가?
돈 많은 건물주들이 소일거리로 자기 빌딩 1층에 카페 같은 거 차려서 느긋하게 하루의 일상을 즐기는 삶.
하수영도 그런 쪽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류 셰프의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이 가게를 선택했다.
연봉 7,200만 원이면 그 전에 받았던 급여의 2배인 수준이니까. 곧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에서 급여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였으니.
그런데 하수영은 소일거리로 가게를 운영할 마음이 조금도 없나 보다.
'잘됐어. 그렇다면 나도 돈독 오른 셰프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사장님에게 보여드려야겠군.'
이택진의 눈빛이 변했다. 칼을 쥔 손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고 정교해졌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안심 덩어리를 올리고 활활 타오르는 열기에 표면을 순간적으로 구워낸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빈 접시에 담은 뒤 살짝 구워진 송이를 보기 좋게 썰어서 올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송이안심구이 8개가 완성되었다.
"여기 송이안심 8개 가져가!"
"예, 셰프!"
하수영은 입구에서 열심히 손님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나갈 때면 부리나케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마치고, 눈웃음으로 인사를 보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네,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사장님. 여기 식사권인데……."
빌딩에 입주한 상가 직원인 모양이었다.
다소 우물쭈물해서 식사권을 내밀자 하수영은 더욱 환한 미소로 식사권을 받아들이고는, 할인권을 꺼내서 사람 수만큼 내밀었다.
"우리 빌딩 같은 식구셨군요. 그럼 더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여기 약소하지만 50% 할인권이에요. 사용기 한은 일주일이니까 잊지 마시고요."
"어머, 할인권까지 주시는 거예요? 너무 감사드려요."
여손님들은 좋아라 하면서 자기들끼리 할인권을 나눠 가졌고, 하수영은 웃는 낯으로 그들을 배웅했다.
손님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음식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지 않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고 있었다.
바로 하수영이 준비한 오픈 이벤트덕분에 너도나도 일단 사진부터 찍고 보는 것이다.
[수영 레스토랑 기간 한정 오픈 이벤트!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해시태그를 걸어주시고 보여주시면, 음식값 30%를 할인해드립니다!]
전단지, SNS 홍보, 바이럴 마케팅, 여기에 손님들의 자발적인 자랑까지 유도하는 할인 정책까지.
각종 이벤트를 한데 섞어서 쏟아부으니, 소식을 듣고 밥 한번 먹으러 온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나 됐는데도 아직 30명 이상이 밖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오픈빨이라고 해도 괜찮은 성적인데? 오늘 매출 제법 잘나오겠어."
하수영은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수영레스토랑에 와서 수영라면은 아무도 안 시키는 거야?"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에서 파는, 자신의 이름을 딴 유일한 메뉴.
당연히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까지 라면을 시키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였다.
"사장님, 손님이 정말 많네요."
"아, 부사장님?"
동성친구 셋을 데리고 들어선 정서희가 밝은 눈웃음으로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