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0화
31장 하늘을 뚫는 매출(4)
"……그렇게 됐어요."
-어쩔 수 없구나. 아쉽네.
"아버지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산이라서 백억 달러에도 안 파신다는데, 어쩌겠어요?"
-때론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지. 하수영 사장의 그릇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하긴 그런 사람이니까 그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크게 성공한 거겠지.
정서희는 송이 농장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케미야에게 설명했고, 마케미야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송이 농장이 곧 트러플 농장이며, 안살린이 100억 달러를 불렀는데도 팔지 않는다고 했으니.
-솔직히 난 산 하나 사자고 100억달러나 부를 능력은 안 돼서 말이다. 안살린 그 친구하고 달리 매우 가난하거든. 그러니 조용히 물러나야지.
"에이, 아저씨가 가난하면 아시아에서 안 가난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전 세계를 기준으로 말할 줄 알았는데.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안살린 구단주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안 돼요."
잠시 웃음을 교환한 뒤,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 안살린 교수 그 친구는 산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거니?
"네, 뭔가 토양에서 실마리를 찾았나 봐요. 이동형 연구센터 차려놓은 거 보니까 아예 눌러앉을 기세이시던데요? 아 참, 심지어 주변 토지도 매입해서 공사까지 들어가는 중이에요."
-아무래도 몇 년 이상 머무를 모양이구나. 그 친구가 천상 학자파라서 한 번 꽂히면 끝을 볼 때까지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지.
"아저씨께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덕분에 정말 귀한 인맥을 얻었어요."
-참, 서진이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
친오빠, 정서진 이야기가 나오자 정서희의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그녀의 표정 변화를 알 리 없는 마케미야가 계속 말했다.
-네 아빠가 지금 속 엄청 썩는 모양이던데. 서진이가 느닷없이 관두고 유학을 간다고 해서 앓아누웠다더라.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매일 회사 꼬박꼬박 출근하세요."
-몸은 출근하지만 마음은 집에 드러누운 거나 다름없지.
"……."
-내가 그러게 서진이 진로 막지 말라고 그렇게 누누이 말렸건만, 반도체 연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걸 기어이 식품회사로 끌고 들어와서 이 사단을 만들어.
"아빠 탓이라는 말씀이세요?"
-그럼 아빠 탓이지 누구 탓이겠니? 걱정 마라. 난 네 아빠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욕한다. 네가 자식 앞길 가로막은 거라고,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이려고 하면 안 돼요.
마케미야는 진심 반, 안타까움 반을 담아서 말했다.
-조혈모세포 하나까지 공돌이 유전자를 타고 난 아이를 식품회사 경영이사로 끌어들이니, 버티고 배겨?
"……."
-모름지기 몰라도, 지금 서진이는 네가 치고 올라온 걸 은연중에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자기 갈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이다.
"……그건 너무 치사하잖아요. 제가 어떻게 해서 겨우 따라잡았는데, 오빠한테는 처음부터 원치 않은 길이었다니."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법이다.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JM식품은 요즘 정서진의 태업 때문에 내부적으로 혼란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모든 임직원이 당연히 정서진이 회사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유학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유학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반도체 연구자를 다시하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덕분에 장남을 다시 설득하려는 오너와 노력과 자기 길을 찾아가려는 장남의 갈등이 회사를 드리우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나한테도 좋은 일일까?'
아버지가 오빠를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면, 과연 JM식품은 자신에게 돌아올까?
오히려 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물려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지는 않을까?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려고만 생각했던 딸의 뜻을 끝내 꺾지 못했고, 그 딸은 이제 외부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잘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유사업은 잘 되어 가니?
"네, 오늘 에스크오일 채권단 측을 만나서 최종 협의를 하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정유설비만 인수하고, 나머지는 채권단 측이 알아서 처분하기로 결정이 날 거 같아요."
-그렇게 덩치 큰 회사는 보통 그게 힘든데, 잘됐구나. 쪼개서 팔지 않으려 할 줄 알았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우리 말고 전혀 없으니 어쩔 수 없죠."
-국제자원투자회사가 침 발라놓은 걸 감히 대놓고 건드릴 만한 정유업체가 어디 있겠냐.
프라임오일컴퍼니는 국제자원투자 회사의 자회사 탈을 쓰고 국내 시장에 진출한다.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영향력을 등에 업기 위함이다.
국내 정유회사는 해외 원유를 수입함에 있어서,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서 원유를 사오든 간에 국제자 원투자회사가 무조건 한 발 걸치고 있다.
게다가 국제자원투자회사는 국내증시에 상장된 회사들 대부분에 직, 간접 투자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기업들의 대주주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 회사가 국내 정유시장에 진출하겠다면, 그저 눈물을 머금고 자비를 바라면서 구경만 해야 하는 처지였다.
"만약 국제자원투자회사 이름 없이 우리가 직접 들어갔더라면 무조건 견제가 들어왔을 거예요. SC이노베이션 같은 곳에서 웃돈 주고 에스크오일을 사버렸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들이 생존과 이익에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안다면, 절대로 웃을 수 없을 거다.
"알아요. 방심 같은 건 전혀 안 해요."
정서희가 야무진 목소리로 말하자 마케미야는 조금 안심했다.
-협상 잘 하고 오거라.
* * *
에스크오일.
자금난을 못 이겨 부도를 맞아 법정관리하에 시중에 매물로 나온 작은 정유회사였다.
본래 모 대기업 정유회사의 계열사였는데, 상속 승계 과정 중에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빚을 떠넘기고 강제로 계열 분리시킨 회사였다.
즉 부도는 이미 예정이 되어 있는 사실이었다.
기름을 생산해도 팔 곳이 없고, 또 기름을 사올 곳도 막막했으니까.
에스크오일은 모 회사를 고소하고 언론을 활용해 여론에 호소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생존을 꾀했다.
인수 예상가는 최대 6,500억 원이상.
하지만 정서희는 회사 전체가 아닌, 정유설비만 콕 집어서 인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본래라면 채권단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이지만, 지금 에스크오일을 사겠다는 정유회사는 없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가 프라임오일컴퍼니의 지분 20%를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국자투 심기를 거슬리면 원유 수입이 막힌다.'
'국제석유시장에서 국자투의 영향력을 벗어난 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스크오일 인수에 함부로 끼어들어선 안 된다.'
국내 정유시장에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정서희는 단독 협상자 자격으로 에스크오일 채권단과 순조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자, 그럼 이것으로 모든 협의를 마치고 최종 인수합의서에 서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거리 마라톤협상이 마침내 끝났다.
프라임오일컴퍼니는 에스크오일이 가진 정유생산설비를 3,000억 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하수영의 지분은 80%이지만 그는 단 한 푼도 출자하지 않았다.
회사 자체가 안살린이 골든 트러플농장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국제자원투자회사에서 차려준 것 이기에.
인수대금 3,000억 원을 비롯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국제자원투자회사에서 전액 감당하게 되어 있다.
국자투가 보유한 지분 20%도 언제든 하수영이 원하면 무상으로 넘겨준다.
'20%는 국자투 소유로 계속 남겨 둬야지. 그래야 국내 정유 시장에서 견제 없이 사업할 수 있어.'
그것이 정서희와 전성렬의 생각이었다.
"그럼 서명날인을 하겠습니다."
채권단측이 먼저 서명을 한 뒤, 정서희에게 내밀었다.
정서희가 서명을 하려고 막 펜을 드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부사장."
전성렬이 다급히 다가와 정서희의 손을 제지했다. 그녀는 물론이고 채 권단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협의가 다 끝났고 이제 정서희만 서명을 하면 되는 상황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왜 그러세요, 사장님?"
"서명 멈춰요. 지금 에스크오일에 불났답니다."
"네? 불이라고요? 설마……."
"인천정유공장에 불났어요. 꽤 큰 화재 같은데 피해가 어느 정도가 될 지 모릅니다."
정서희의 안색이 굳어졌고, 대화를 들은 채권단 측의 표정도 사색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에스크오일공장에 불이 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직 뉴스에는 안떴습니다. 현장에 나갔던 우리 직원한테서 급히 연락 온 거라서요."
"말도 안 돼!"
채권단 측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제 막 힘들게 협의를 마치고, 인수합의서에 서명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근데 거래의 목적물이 불이 났다니.
정서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정말 하늘이 도왔네요. 우리가 딱 계약하기 직전에 불이 나다니요."
"계약하고 난 다음에 불이 났으면 큰일 날 뻔했죠. 정말 간발의 차이였습니다."
화재보험을 들어뒀기에 물질적인 피해 보상은 어느 정도 갈음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에스크오일의 정유설비공장을 사려고 했던 이유가 뭔가.
다름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밑바닥에서부터 모든 걸 새로 쌓아 올리는 것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던 설비를 가져오는 게 바로 정유 사업을 시작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화재 때문에 당장 사업에 투입하지도 못하는 공장을 사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정서희는 채권단 측에 양해를 구했다.
"상황이 이러니, 일단 서명은 잠시 미뤄두죠. 협상 파기가 아닙니다. 거래 목적물에 문제가 생겼으니 자세한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작은 손실을 가지고 거래 자체를 0으로 되돌리는 것만큼은 부디 삼가주십시오. 이 거래에 많은 이들의 생활이 걸려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역시 사소한 문제를 물고 늘어질 마음은 없습니다. 저희도 시간이 급하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채권단 측은 끝내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서희도 마찬가지였다.
* * *
-여기는 인천 S정유공장 화재 현장입니다! 지금 거대한 불길이 공단을 뒤덮고 있는데요, S정유공장에서 시작된 불길은 공장을 전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근 공장까지 일파만 파로 퍼지고 있어…… 천문학적인 재산 손실이 예상…… 소방당국은 최선을 다해 진압에 나서고 있으나…
에스크오일 정유공장에서 시작된 불꽃은 공장 전체를 집어삼켰을 뿐만 아니라, 주변 공장들에까지도 번져나가며 천문학적인 재산 손실을 불러왔다.
거래 목적물이 완전히 불타 버렸으니, 계약 자체를 진행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서명을 하기 전이라서 그나마 법적인 해결이 깔끔해졌다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서명을 했더라면 그 결과는 모조리 프라임오일컴퍼니 측에서 뒤집어써야 했을 테니까.
크게 낙담한 정서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완전히 불타 버렸다고요?"
-네, 그리고 지금도 주변으로 퍼져 나가서 진압되지 않고 있어요. 최소사흘 이상은 화재가 지속될 거 같아요.
그녀는 침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정유사업 잘 해보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제대로 꼬이네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 이거 안 되는데. 큰일인데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를 부드럽게 달랜 후 전화를 끊은 하수영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야단났네. 시작부터 이렇게 화끈하게 불타 버리는 건 나중에 대박 난다는 조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