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2화
32장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1)
국제자원투자회사의 국내 시장 진출.
SC이노베이션도 당연히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그룹 차원에서 대응전략을 세웠다.
사실 대응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수준이다. 석유 시장에서 국제자원투자회사는 절대적인 갑이었으니까.
국제자원투자회사가 국내 정유 시장을 접수한다고 하면, SC이노베이 션 입장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살려 달라고 자비만을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때문에 대응 전략은 국제자원투자 회사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어떡하면 자신들이 살아남아 최대한의 이익을 보전할 수 있는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SC이노베이션은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가 단독으로 시장 진출하는 게 아닌데요? 국내 신생업체에 투자하는 식으로 진출하는 거라고 합니다. 국자투가 가져가는 지분은 20% 정도라는데요?"
"그래서 그 신생업체가 어디야?"
"프라임오일컴퍼니라는 곳입니다. 프라임컴퍼니 계열사로 보입니다. 경영진이 같아요."
"프라임컴퍼니? 그건 또 뭐 하는 회사야?"
처음 보고를 들었을 때, SC이노베이션 최웅진 사장은 '프라임컴퍼니'라는 거창한 이름에 살짝 긴장했다.
"식품회사입니다. 요즘 황비버섯라면이라는 신제품으로 아주 핫한 회사입니다."
"황…… 뭐? 라면?"
라면 같은 서민들 식품은 잘 알지 못하는 최웅진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직원이 브리핑 화면에 튼 황비버섯라면 사진들을 보고 어처구니 가 없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국자투가 라면 만드는 회사와 공동으로 자회사 만들어서 국내 정유 시장에 진출한다는 말이야? 겨우 지분 20% 가지고?"
"네, 그리고 자본금과 사업 자금은 국자투가 전액 출자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사장은 또 누군데?"
"프라임컴퍼니 정서희 부사장이 사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JM식품 오너 딸입니다."
"JM식품? 그 인스턴트 불량식품만드는 회사?"
JM식품이 재벌층에 속하긴 하지만, 10대 재벌 안에 손꼽히는 SC그룹에 비하면 규모가 한참 딸린다.
직원은 얼른 정서희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고, 최웅진 사장은 오 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미인인데? 몇 살이지? 결혼은 했나?"
"23살이고 아직 미혼입니다."
"어리군. 어려."
"그리고 프라임컴퍼니는 일본의 마케미야투자에서 초기에 100억 원의자금을 출자해서 설립되었습니다.
마케미야 대표는 개인적으로 JM식품 오너와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JM식품은 잘 알지 못하지만, 마케미야라는 이름은 최웅진도 잘 알고 있었다.
"마케미야가 중간에 끼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최웅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국제자원투자회사가 어떻게 해서 국내 정유 시장에 진출하게 됐는지, 큰 그림이 대충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일단 국자투는 국내 시장에 별 관심은 없다. 그냥 친한 인맥한테 도움을 주려는 거야.'
그 도움의 대상은 아마도 마케미야가 아닐까?
마케미야가 국제자원투자회사와 친분이 깊은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으니까.
'마케미야가 근데 새삼 국내 정유시장에 진출을 한다고?'
이 부분은 좀 이해가 안 간다.
마케미야는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직접 손대고 있는 정유 사업은 없다. 주식이나 선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를 할 뿐이다.
그런데 그가 굳이 한국 정유 시장에 국자투를 끼고 직접 들어오려고 한다? 얻을 이익이 별로 없는데?
'프라임 컴퍼니, 거기가 문제로군.'
최웅진은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어지는 임원들의 설명도 그의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라임컴퍼니가 라면 잘 팔아서 돈 좀 만졌더니 문어발 욕심이 나는가 봅니다. 마케미야 대표가 국자투와 인맥이 있는 것을 알고 지원을 요청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거 말고는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되지."
"그러니 프라임컴퍼니를 직접 공략하는 게 좋겠습니다."
"맞아. 괜히 국자투 심기를 거슬릴 필요는 없어. 마케미야투자도 눈치 채지 못하게 은근히 진행해야 해.
다들 할 수 있겠어?"
"……."
"……."
"왜 대답이 없지? 조 상무."
"예, 사장님!"
"방법을 찾을 수 있겠나? 국자투모르게 프라임컴퍼니만 조져서 이 시장에 못 들어오게 할 그런 방법말이야."
"생각난 게 있습니다만, 나중에 결과로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아주 좋은 자세야. 다른 임원들도 우리 조기찬 상무를 본받도록 해."
오너가인 최웅진 사장이 대놓고 칭찬했지만, 다들 특별히 불편한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조기찬 상무가 최웅진이 총애하는 오른팔인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였으니까.
* * *
조기찬은 프라임컴퍼니가 에스크오일 정유공장만 따로 뚝 떼어 인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에스크오일 경영진과 비밀리에 접촉해서 설득했다.
"박 사장님, 공장에 몰래 불을 질러 태워 버리십시오. 어차피 화재보험 들었지 않습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프라임오일컴퍼니에 우리 공장이 인수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불을 지르라 이 말이오? 지금 우리 회사가 SC이노베이션과 소송중인 건 알고 하는 말인가?"
"정유공장이나 회사가 어디에 인수되든 사장님의 처우는 달라질 게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
틀린 말이 아니기에 에스크오일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인수를 방해한다면 우리 최웅진 사장님께서 사장님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실지도 모릅니다."
에스크오일은 SC이노베이션에서 버림받은 자식 같은 신세다.
때문에 SC이노베이션에 대해 증오와 애정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부실을 떼어내고 분리한 것에 대해 소송을 건 것도, 자신의 서운함을 알아달라는 발악이었다.
"약속합니다. 어차피 인수가 성사되는 실패되는 사장님의 처지는 달라질 게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보장할 수 있나?"
"예, 제가 전권을 가지고 왔습니다.녹음을 하셔도 됩니다. 이미 하셨겠지만."
에스크오일 사장은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조기찬 상무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 후, 프라임오일컴퍼니 가 에스크오일 채권단과 최종계약을 맺는 그 날, 에스크오일 인천정유공장에 큰불이 나서 전소했다.
소방서는 방화가 아닌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발표할 테니, 누구도 SC 이노베이션의 방해 공작으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에스크오일 사장만 입을 다물면 영원한 미궁으로 묻히고, 프라임오일컴퍼니는 정유 사업에 난항을 겪게 된다.
정유공장 등 인프라 시설을 0에서부터 새로 만들려면 자연히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동안 SC이노베이션은 다양한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자원투자회사와 싸우는 게 아니다.
프라임오일컴퍼니라는 조그마한 신생업체와 싸우는 것이다.
물론 SC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은 아무도 모르도록 뒤에 빠져 있어야겠지만.
* * *
전성렬과 정서희는 근심을 떨치지 못했다.
하필이면 중요한 정유공장이 불타고 말았으니.
"그나마 서명 직전에 불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공장 인수하고 난 다음에 불탔다면 여러모로 골치 아팠을 테니."
"어쩔 수 없죠.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요."
"에스크오일 말고 우리가 인수할만한 작은 정유 회사가 또 있겠습니까?"
"아마 없을 거예요. 자잘한 회사들은 몇 개 있지만, 하나하나는 큰 도움이 안 되고, 여럿을 인수해서 묶는다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국내 메이저 정유 회사들하고 관계가 끈끈해서 회사를 넘길 리도 없고요."
넘긴다 해도 감당 못 할 프리이엄을 부를 것이다.
그리고 인수를 놓고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무산시킬 것이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에스크오일이 정말 좋은 매물이었는데,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는데, 진짜 아쉽게 됐어요."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 수영 사장은 뭐라고 하던가요?"
"사장님이야 안 됐다고 격려하시고 말더군요. 정유 사업이 잘되는 못되는 별 관심이 없으신 거 같아요."
"그래도 한 번 해보라고 판은 깔아줬으니 우리가 더 잘해야지요. 버섯품종, 재배 방법 개량하느라 바쁜 친구한테 다른 걸로 골치 아프게 해선 안 됩니다."
"맞아요. 사장님은 농업에 집중하셔야죠."
정서희는 국내 정유업계 현황을 다시 한번 샅샅이 조사해 보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지. 자본금하고 원유는 일단 갖고 시작하는 거잖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전성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사장, 이런 방법은 어때요? 너무 과격한 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어떤 건데요?"
"우리나라 메이저 정유회사들이 수입하는 원유 중 상당량이 국제자원투자회사 입김 하에 있잖습니까. 국제자원투자회사에 부탁해서 그걸 빌미로 압박을 한다면……."
"그건 안 돼요."
정서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후발업체예요. 저쪽은 견고한 성을 쌓은 기득권인 데다가 10대 재벌들 모두가 혼맥으로 얽혀 있고요. 그런데 그런 '발칙한 수단으로 레드 오션에 끼어들었다가는, 어떤 보복 조치를 당할지 몰라요."
"……그 정도인가요?"
"네, 당장 검찰과 국세청이 나서서 사장님하고 저부터 샅샅이 털어버릴 걸요? SC이노베이션 같은 곳은 충분히 그런 행사력을 갖고 있어요."
"……음."
"우리가 아무리 국제자원투자회사를 등에 업고 있다지만, 지킬 건 지켜가면서 조심스럽게 끼어들어야 해요. 사실 국제자원투자회사 없으면 우리는 그들 눈에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국제자원투자회사 눈치를 봐서 적당히 하청업체 같은 거라도 몇 개 떼어줄 줄 알았는데."
"눈치 보는 것도 살아남으려고 눈치 보는 거죠. 생존 그 자체가 위협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잖아요."
"그럼 할 수 없군요. 일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건 너무 시간이 걸려요. 일단 방법을 더 찾아볼게요."
"국내에서 우리가 생산할 방법이 없잖아요? 공장을 새로 짓지 않는 한은요."
인수할 만한 업체나 설비가 없으니, 결국 맨땅에 공장을 새로 지어야 정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몇 가지 생각한 방법이 있긴 해요. 아직 확실하진 않아서 말씀드리긴 좀 그렇고요, 일단 좀 더 알아볼게요."
"그럼 정유공장 새 부지 알아보는 건……."
"그건 그거대로 진행하세요. 아예 에스크오일 공장 있던 부지를 매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불도 났고 했으니 싸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어, 가만?"
정서희는 희색이 돼서 중얼거렸다.
"에스크오일 공장 부지를 싸게 사서 새로 짓는다면…… 이거 잘하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공사비 조금 아끼는 정도잖아요. 어차피 우리는 그동안 손 놓아야 하고요. 전화위복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요?"
"아뇨, 전 위탁정제를 생각했어요."
"위탁정제?"
"네, 업계 1위인 SC이노베이션 말고 2위나 3위 업체에 위탁정제해서 일정 이익을 나눠주는 거요. 이거면 바로 정유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그동안 싸게 매입한 인천부지에서 새 공장을 지어 올리고 나중에는 우리가 직접 생산하고요."
"오, 그거 괜찮은데요?"
암담했던 현재 상황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