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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43화 (143/1,270)

프랜차이즈 갓 143화

32장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2)

오철현은 국내 최대 메시지톡, '실톡'의 개발자였다.

또한 실톡의 소유주이자 상장 기업인 '주식회사 실비아의 창업 멤버이자, 그룹 대표이사이기도 했다. 그룹 총수하고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대표이사이지만 그가 하는 주업무는 앱 개발, 앱 관리 같은 기술직이다. 경영에는 영 젬병이라 그냥 최고기술이사 자리가 낫지 않을까 싶지만, 그룹 총수는 '서열을 무시할 순 없다'라는 이유로 그를 대표이사자리로 앉혀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경영 업무 자체는 공동 대표이사가 처리하기에, 그는 앱개발 및 관리에만 치중하면 되었다.

밤낮으로 코딩에 파묻혀 살던 중, 그는 모처럼 소개팅이 있어서 청담동으로 나오게 되었다.

소개팅 상대는 여배우였는데, 오철현도 주말드라마에서 주연으로 본적이 있는 여자였다.

"최승희라고 해요. 반가워요."

"오철현입니다."

최승희의 나이는 28, 여배우로서는 아직 한창 젊을 때였다.

소개팅에 나오기 전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소개팅 이야기는 물론 뺐다),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봤다.

그 결과 그녀는 톱 랭킹은 아니지만 A급 여배우로서, 아직 한창 잘나간다는 사실도 알았다.

한창 잘나가는 28살의 여배우가 왜 소개팅 자리에 나왔는지, 오철현은 그 점이 궁금했다.

"근데 최승희 씨는 아직 연애를 하기에는 커리어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요?"

"배우 활동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서요?"

"네, 아무래도 여자 연예인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인기에 좋을 수가 없잖습니까."

"그거 감안하고 나온 거예요. 오현 씨 조건이 너무 좋아서요."

대뜸 그런 말부터 듣자 오철현은 조금 당황했다. 순간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다.

"말이 소개팅이지, 선 자리잖아요. 이거. 혹시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트,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제가 연예인이긴 하지만 빨리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러면 연기 활동에도 더 도움이 될 거 같고요. 그렇다고 같은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사업가한테 팔리듯이 시집가기는 싫고, 같은 남자 연예인도 별로예요. 서로 너무 빠꼼이라서 결혼 생활이 힘들 거 같거든요. 물론 연예인끼리 결혼해서 잘사는 경우도 있지만요."

"……."

"저는 오철현 씨 조건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오철현 씨는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뭔가 페이스에 휘말린 기분이라, 오철현은 제대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같은 연극 무대에 투입되었는데 자신은 대사를 다 까먹고, 상대 방은 대본까지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만약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스킨 십이나 노출씬 있는 배역은 일절 거절할게요. 아이는 충분히 신혼을 즐기고 난 다음에 가졌으면 하고요, 숫자는 오철현 씨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전 하나만 가져도 되고 셋 이상을 가져도 상관없는데, 낳지 않는 것은 사양이에요."

느닷없이 결혼 이야기가 나왔어?

이래도 돼?

"전 오철현 씨가 개발자라는 게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저희 오빠도 개발자인데, 정말 새언니 하나만 바라보면서 살더라고요. 집, 컴퓨터, 집, 컴퓨터, 딱 동선이 정해져 있으니까 언니도 마음조일 일 없고요. 저도 그런 아내가 되고 싶어요."

호감 있던 여배우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소개팅이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저한테 뭐 궁금한 것은 없으세요?"

최승희는 한참 동안이나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난 뒤 비로소 물었다.

"아니면 저에 대한 소감이라도요. 너무 저 혼자만 떠드니까 민망하세요."

"아…… 되게 솔직하신 분 같습니다. 굉장히 활발하시고요. 첫인상하고 너무 달라서 의외였어요."

"제가 좀 인상이 사납긴 하죠? 어렸을 땐 쌈닭 같은 이미지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아니, 아닙니다. 전 그런 인상 좋아합니다."

그 말에 최승희의 눈이 반달처럼 가늘게 휘며 웃었다.

"오늘 철현 씨한테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기분 좋네요."

정신없이 페이스에 휘말리다 보니 어느새 그녀에게 마음을 많이 열어버렸다.

시간 지나가는 줄 모르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배가 고파왔다.

"식사하셔야 하지 않나요?"

"라면 어떠세요?"

"라면이요?"

근사한 레스토랑 정도를 생각했던 오철현은 조금 당황해서 반문했고, 최승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근처에 끝내주는 라면 가게 하나 있어요. 저도 몇 번 종종 가서 먹었어요."

"사람들이 알아보고 다가오진 않던가요?"

"물론 변장을 잘했죠. 거기 가실래요? 한 번 드셔보시면 절대 후회안 하실 거예요."

"그래도 첫 소개팅인데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은 좀……."

최승희는 엄연히 A급 여배우다.

그리고 자신은 개발자로서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진 '주식회사 실비아'지분 가치만 해도 7,000억 원은 족히 넘는다. A급 여배우와 괜히 소개팅이 잡힌 게 아니란 뜻이다.

"싼 거 아니에요.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이에요."

"네?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이라고요?"

"네, 궁금하지 않으세요? 진짜 맛있는데. 자리가 100석인데도 사람들이 매일 줄 서서 먹어요."

호기심이 생긴 오철현은 얼른 알았다고 대답했다. 대체 뭐로 만들었기에 무슨 라면 한 그릇이 그렇게 비싸?

최승희가 스마트폰을 꺼내 말했다.

"프리덤, 라면 2개만 예약해 줘. 20분 안으로 도착할 거 같아."

-알겠습니다. 결제는 간편결제로 하겠습니다.

"응, 그렇게 해. 자, 가요."

최승희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철현은 신기해서 바라보다가 물었다.

"지금 폰이 말을 한 건가요?"

"네, 인공지능 앱이라서 음성으로 대화가 돼요."

"아, 쉬리 같은 건가 보네요."

요즘 스마트폰 모델 중에 그런 기능을 탑재한 모델이 워낙 많으니 그러려니 했다.

'프리덤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데?'

언제 저런 신모델이 나왔나 싶어 기종을 흘끗 확인하니, 자신과 동일한 기종이었다.

"어? 저와 같은 폰이네요?"

"이제 보셨어요? 전 한참 전에 봤는데."

"하지만 그건 쉬리 목소리가 아니었잖아요?"

"아, 이거 폰 내장 인공지능 비서가 아니라 지금 가는 라면 가게에서 출시한 앱이에요. 예약이나 주문결제 간편하게 하라고 만들었다나요?"

"네?"

오철현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무슨 라면 가게에서 음성 대화 기능까지 넣어서 주문결제용 앱을 만든단 말인가?

"가시죠. 제가 차 끌고 왔어요."

"저도 차 끌고 왔는데……."

"어머, 그럼 따로따로 가야겠단 말이에요?"

"……승희 씨 차를 타겠습니다."

그렇게 오철현은 주차장에 차를 놔둔 채 최승희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인근 교통상황을 고려해 볼 때, 도착 예정 시간이 약 8분 정도 늦어질 것으로 소요됩니다. 그에 맞춰서 조리 요청 시간을 수정하겠습니다.

"알았어."

-일행분은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 수영레스토랑 오늘이 처음 이래. 내 소개팅 남자야. 지금 분위기 좋아서 이따가 애프터 신청 받을 거 같아."

"네?"

"안 하실 거예요, 애프터?"

"해, 해야죠! 합니다, 할 겁니다. 저도 승희 씨가 정말 마음에 들거든요."

-그럼 앞으로 자주 뵐 거 같군요.

신승희 님의 소개팅 상대자분, 귀하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철현은 홀린 기분이 돼서 대답했다.

"오, 오철현인데……."

-성함 및 음성 인식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철현 님. 혹시 어떤 맛을 선호하십니까?

"맛? 선호?"

"라면 얼큰한 게 좋은지 매운 게 좋은지, 계란은 반숙이 좋은지 완숙이 좋은지, 그런 거 물어보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어떤 맛을 선호하십니까?

오철현은 그냥 멍해진 채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계란은 반숙, 풀지 않은 게 좋고, 대파는 최대한 많이, 너무 매운 건 별로 안 좋고……."

-특별히 알러지가 있는 식품은 없으십니까?

"……딱히 없는데."

그 뒤로도 스마트폰은 오철현에게 세세하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물어보는 대로 대답을 하던 중 오철현은 불현듯 자신이 느낀 위화감을 깨달았다.

'이건 꼭 사람 같잖아?'

대화형 인공지능이라고 해봐야 미리 입력한 문장에 따라 정해진 알고리즘대로 질문과 대답을 뱉어내는 식이다. 오철현 본인이 개발자이기 때문에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프리덤이라는 이 인공지능은 마치 사람하고 대화를 하듯이 주고받는 말이 매끄럽다.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도 매우 정확하게 인식한다.

-주차장은 지하 3층을 이용하십시오. 현재 주차 공간이 가장 쾌적합니다.

"고마워."

대체 이 인공지능 앱은 뭐야?

아니, 아무리 고용량 스마트폰 시대라 해도 이런 인공지능을 깔 만한 충분한 여유 공간이 돼?

"프리덤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오철현 님.

"너 용량이 얼마나 되는 거냐? 너 혼자서 스마트폰 데이터 공간 다 잡아먹는 거 아니야?"

오철현은 당연히 프리덤이 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정확히 인지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장 구조였으니.

-단말기에 설치된 용량은 9.2메가 바이트입니다. 단말기는 어디까지나 단말기 오너와 제가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에 지나지 않으며, 저의 본체는 중앙서버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합니다.

"그럼 인터넷이 끊기면 대화도 끊긴다는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너 진짜 인공지능 맞아? 지금 사람이 나하고 대신 대화하고 있는 거 아니야?"

-유감스럽지만, 저는 수영레스토랑 주문 및 결제 도우미 인공지능이 맞습니다.

"무슨 결제앱 인공지능이 주차 공간까지 확인해서 먼저 알려주는데?"

-고객님께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조치입니다.

"프리덤, 엄청 똑똑하죠? 저도 처음에는 사람이 말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우리 말고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요."

"……."

아무튼 오철현과 최승희는 가게에 도착했다.

-41번, 42번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마침 정확히 빈 자리가 2개 있었고, 프리덤은 지체 없이 그 자리로 둘을 안내했다.

둘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 두 그릇이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서빙 직원은 결제 내역 같은 건 일절 확인도 하지 않고 라면을내려놓고 인사한 뒤 가버렸다. 오철현은 얼떨떨한 기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이 가게는 대체 뭐야?'

"와, 맛있겠다. 어서 드세요, 철현씨."

최승희는 어느새 짙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라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보이긴 하네.'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오철현도 젓가락을 쥐고 라면을 한입 물었다.

순간 그의 눈에 놀라운 감정이 어렸고, 최승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이 피식 웃었다.

"엄청 맛있죠? 오길 잘했죠?"

"저, 정말 맛있네요! 이 세상 맛이 아닌 것 같은 라면입니다!"

"다들 그렇게 말해요. 저 세상에서 가져온 라면 맛이라고요."

* * *

최승희에게 애프터를 신청한 후, 오철현은 헤어져서 돌아왔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플 스토어에 들어가서 '수영레스토랑 주문결제전용앱 프리덤'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사용자 등록을 하는 과정부터 모든게 그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만 했다.

어떤 버튼 터치도 없이, 그저 대화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가능하다니. 편의성의 극한을 추구한 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유능한 개인 비서처럼, 그저 말을 하기만 하면 알아서 다 처리하니 말이다.

오철현은 아까부터 확인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프리덤, 내일 날씨가 어떨 거 같아?"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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