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54화
37장 가맹점 1호기(1)
자리를 옮긴 하수영은 곧바로 자기 소개를 했다.
"실은 제가 가게 오너입니다."
"네? 저는 총지배인이라고 들었는 데……."
"그거야 대외적으로 그렇게 소개하는 거죠. 제가 사장이라고 하면 이리저리 귀찮은 일이 많아질 테니까요. 기부 좀 하라는 연락이 하루에 몇 번이나 오는지 아시나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장사가 잘되니 아무래도 날파리가 많이 꼬이겠죠. 이해됩니다. 저도 장사하는 입장이라서 잘 압니다."
남자의 이름은 길태수였다. 나이는 서른 중반.
그는 현재 강남역 번화가 먹자골목에서 개인 음식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는 편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줄 서서 수영라 면을 먹었을 때,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라면이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이건 대박이 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요."
재미있게도 길태수는 오픈 첫날 찾은 손님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그때 먹었던 영수증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수영레스토랑이 가맹점 신청을 받으면 곧바로 신청하려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말고도 꽤 많은 예비 자영업자들이 가맹점주가 되기 위해서 총알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건 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가맹점 신청을 받지 않으니……."
"예, 다들 지금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대체 가게 오너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느냐고 그런 말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수영은 길태수와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길태수는 자신의 예상 이상으로 가맹점주가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수영레스토랑 1호 가맹점으로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되실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하수영은 그가 보이는 열정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하기로 했다.
"길 사장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 수영라면 한 그릇에 들어가는 식재료 가격이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조리에 들어가는 가스비, 세척비, 이런 거 제외하고 순수한 재료값만 말입니다."
길태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통 재료비는 음식값의 1/3 정도라고 하지만…… 수영라면 같은 경우는 최소 1/2 정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육수를 우려내는 데 들어가는 재료, 꽃게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 재료, 결정적으로 황비버섯과 송이버섯때문입니다. 35,000원에서 17,500원이상은 재료비로 소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은 그보다는 조금 더 듭니다.
가문의 비법으로 만든 특제 조미료가 들어가는데, 그 조미료 하나가 맛을 완전히 뒤바꾸어놓거든요."
"아! 어쩐지 재료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비법이 있었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재료값을 제대로 따지면 한 그릇당 25,000원은 넘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비버섯과 송이버섯 등 주요 식재료를 하수영이 직접 키워서 조달해서 그렇지, 그걸 전부 외부업체에서 돈주고 사오려면 17,500원은 나온다.
오히려 길태수가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남은 7,500원은 하수영이 임의로 매긴 엘릭서 고춧가루 값이었다.
그릇 하나에 뿌려지는 고춧가루 가격을 7,500원 정도로 잡은 것이다.
'사실 이것도 싸게 잡은 건데 말이야.'
고귀한 신의 전유물을 아낌없이 써서 키운 고추를 빻아서 만든 가루인데, 한 그릇에 7,500원이면 무척 싼거다.
길태수의 안색이 굳었다.
"재료비가 그렇게나 많이 드는 건가요? 그럼 매출에 비해 남는 게 별로 없겠습니다."
"네, 재료비가 그 정도 듭니다. 월매출이 63억 정도인데, 재료비만 45억 원이에요. 여기에서 부가세 제하고 인건비, 매장 운영비 제하면……. 어휴."
"그래도 매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익률이 낮은 거지, 이익금 자체는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죠."
길태수가 고심에 빠진 눈치이자 하수영은 속으로 됐다 싶어서 슬쩍 떠보았다.
"사장님 가게에는 자리를 몇 개나 들여놓을 수 있나요? 밀집도를 우리 매장 기준으로 했을 때 말입니다."
"아마 40석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월 인건비는 얼마나 나가시죠?"
"1,000만 원 정도 나갑니다. 여기에 월세가 350정도 하고, 매장 운영비로 달에 50 정도……."
"40석이면 월 기대매출이 25억 정도, 여기에 부가세를 제외하면 약 22억 7,000만 원, 재료비를 제하면 4억 8, 428만 원, 인건비와 임대료, 매장 운영비를 다시 제하면 4억 7천 정도 남겠네요."
"4억 7천이나요?"
길태수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재료비가 생각보다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살짝 상심했는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한 달에 4억 7천 가까이나 남는다.
"물론 장사가 정말 잘 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잡은 겁니다."
"그야 장사가 잘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4억 7천을 어떤 비율로 나누면 좋을까요?"
"……."
통상 이 경우는 5:5로 나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업의 경우일 뿐이다.
수영라면 같은 경우는 흉내 내고 싶어도 불가능한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식자재를 사다가 몇 번이고 흉내를 내봤지만, 결국 비슷한 맛조차 안 나왔어.'
물론 꽃게, 황비버섯, 송이버섯 등 고급 식재료를 듬뿍 넣으니까 라면 맛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35,000원의 가격에 매번 먹을 만큼 중독적인 맛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그 비밀은 사장님이 말한 가문의 비법 조미료에 있는 게 틀림없어.'
음식 좀 한다는 자영업자들은 이미 수영라면의 맛을 복제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 라면이 아직까지 한번도 안 나온 걸 보면, 전부 보기 좋게 실패했으리라.
"7대 3…… 아니, 8대 2로 하겠습니다."
"사장님이 8인가요?"
"그럴 리가요! 당연히 제가 2입니다!"
이 조건대로라면, 길태수는 한 달에 최대 9,400만 원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장사가 가장 잘 된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드셔 보셔서 알겠지만, 수영라면은 맛도 좋지만, 중독성이 강합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죠."
"알고 있습니다."
"제 가게 근처에 거주하시는 단골손님들은 거의 매일 오십니다. 하루한 끼는 반드시 수영 라면을 드시죠. 물론 청담에 거주할 만큼 여유가 있으신 분들이라서 그렇게 부담없이 식비를 지출하시는 거지만, 어쨌든 중독성이 강한 맛이라는 거죠. 아무도 흉내 낼 수 없고요."
하수영이 은근히 압박하듯이 말하자, 길태수는 눈을 질끈 감고 질렀다.
"9대 1로 하겠습니다."
식재료는 본사에서 제값을 받고 구매.
임대료, 인건비 및 매장 운영은 당연히 알아서.
그러고도 남은 이익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겨우 10%.
조건만 들으면 말도 안 되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폭리라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 10%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최대 4,700만 원을 가져갈 수 있어.'
지금 운영하는 가게 이익에 비하면 엄청난 돈이다.
"축하합니다. 제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예?"
"제 수영라면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분이라면, 가맹점을 맡기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거든요. 바로 얼마 전에도 라테백화점에서 입점 제안이 왔었는데, 조건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제가 거절했었지요."
길태수는 신중한 표정으로 귀 기울여 들었다.
"저는 가맹점주와 이익과 손실을 함께 나눕니다. 월 영업이익이 2,000만 원이 밑이라면 그달은 5:5로 나누겠습니다. 월 영업이익이 500만 원 밑이라면, 그달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길태수가 최소 500만 원 이상은 가져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는 뜻이다.
"만약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해드리겠습니다. 위약금 같은 건 당연히 없습니다. 그리고 반경 600m 이내에는 다른 가맹점을 허가하지 않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길태수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 프랜차이즈 본사도 저런 조건을 보장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저분이라면…….'
이렇게 확실한 아이템이 있는데, 가맹점 따위는 안 받고 무조건 직영점으로만 해결했을 것이다.
100% 이익 실현이 뻔한데 독식하지, 뭐 하러 남과 나누겠는가?
"그럼 모레쯤 가게를 직접 가게를 한 번 방문할게요. 필요한 서류도 그때 준비할 테니, 사장님도 준비하고 계세요."
"예, 알겠습니다."
얼추 큰 합의는 끝났다.
하수영은 길태수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사업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건물주는 좋은 사람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관리인하고만 이야기했지, 건물주 얼굴은 사실 한번도 본 적 없습니다. 여기 건물주는 괜찮은 사람인가요?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데, 가게 뺏으려고 수작같은 건 안 부립니까?"
하수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늘 해도 짜릿하고, 아무리 반복해도 새로운, 그 말을 할 때가 왔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심드렁하게, 별일 아닌 것처럼 표정을 꾸며야 한다. 그래야 더 느낌이 살아난다.
"아, 여기 빌딩이 제 거라서요."
"……네?"
"제가 빌딩주입니다. 얼마 전에 레스토랑이 하고 싶어서 하나 샀습니다."
길태수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휘둥그레진다.
언제 봐도 흐뭇하고 기분 좋은 모습에, 하수영은 속으로 혼자서만 조용히 웃었다.
***
길태수와 헤어진 하수영은 프리덤앱 코딩을 다시금 살폈다.
"이제 가맹점이 생기면 그것도 동기화해야 하니까……."
가맹점주가 장사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턴키 시스템을 전달해 줘야 한다. 그게 프랜차이즈 본사로서의 도리다.
결제 관련 동기화를 위해서 프로그램을 손보고 있을 때, 박호진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허위 사실을 퍼뜨려 장사에 방해를 끼친 파워블로거, 이수현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사장님, 저 박호진입니다.
"네, 재판은 잘 되시나요?"
-예, 오늘 1심 승소판결 받았습니다.
"네? 뭐라고요?"
하수영은 황당해서 눈을 치켜떴다.
아니, 민사소송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승소를 했단 말인가?
"변호사님, 제가 알기로 민사소송이라는 게 원래 엄청 오래 걸리고 지루하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근데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벌써 승소했다고요?"
-며칠 전에 2차 변론기일이었는데 피고가 '또'출석을 안 했어요. 그래서 재판장이 오늘 선고기일 열고 무변론승소 판결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상대가 계속 잠수 타니까 우리가 이긴 거라고 승소 판결을 내준 거고, 원래 그렇게 합니다.
"뭔가 허망하네요. 3심까지 갈 줄 알았더니."
-압류집행 들어가면 아마 항소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경우를 종종 봐서요. 일단 집행권원 얻었으니 집행은 들어갑니다만, 피고가 가진 재산이 별로 없네요.
수임료에 비해 거저먹은 사건이라 그런지, 박호진 변호사의 목소리에 멋쩍은 미안함이 묻어났다.
-대신 헌 양말 한 짝까지 남김없이 확실히 전부 탈탈 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