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71화
42장 위기는 곧 기회다(2)
한 봉지에 1,000원.
아주 싼 가격은 아니지만, 황비버섯라면의 가치에 비하면 또 너무 저렴한 느낌이다.
라면 시장에 막 뛰어든 때에는 적절한 수준에서 결정된 가격이었다.
이쪽은 신생업체였으니, 황비버섯과 장효주 CF, 합리적인 가격 등 쓸 수 있는 무기는 모조리 끌어다가 썼다.
하지만 그때는 신생업체였고, 이제는 라면 시장을 한 손에 움켜쥔 거물급 회사로 성장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솔직히 300원에서 500원 정도는 더 올려도 괜찮을 것 같은 욕심이 있었는데, 갑자기 가격을 올리면 아무리 충성고객이라고 해도 반발심이 생길 거 아니겠어요?
"그래도 한 번에 500원은 너무 올린 거 아닌가요?"
-그건 맥스치고요, 적절한 수준에서 올릴 거예요. 아무튼 품귀 현상을 적당한 명분으로 활용해야겠어요.
"경영의 영역이니 두 분이 어련히 잘하시겠지요. 믿고 있겠습니다."
하수영은 캠핑트레일러를 이끌고 청담동 햇살부동산을 방문했다.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지는 우형신 중개사가 문 앞까지 나와서 반갑게 맞이했다.
"본가 정리는 잘 하고 오셨습니까?"
"네, 어느 정도 마쳤습니다. 이사 한 번 한다는 게 참 보통 쉬운 일이 아니네요."
"이번에는 서울에 며칠이나 머무르실 예정이시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달 이상? 아마 중간에 가끔 내려갈 수도 있지만 청담에 쭉 있을 거 같아요."
"매번 캠핑트레일러에서만 지내시기 불편하시지 않으세요? 이참에 사택 하나 장만하시죠."
"혹시 좋은 매물 나온 거 있나요?"
하수영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청담동에 거주하는 부자들은 이사갈 일이 없기에, 단독주택 매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매물이 나오더라도 매수희망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옆집에서 가로채 가기도 한다.
졸부 따위가 내 옆집으로 이사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대충 이런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오, 거주용으로 하나 장만하시려는 겁니까?"
"아뇨, 일단 사뒀다가 세주려고 그러는데요."
"……."
우형신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게 세가 얼만데 아까워서 제가 머무릅니까. 장사할 음식 재료들 가지고 밥 먹는 자영업자는 없잖아요. 저도 장사할 것들을 제 입에 넣지는 않아요. 하나라도 더 팔아야 돈도 벌고 빚도 갚죠."
"그래도 서울 오실 때마다 캠핑트레일러에서 주무시면 너무 불편하실 거 같아서……."
"괜찮습니다. 활화산 기슭 맨땅에 등 대고 자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거든요."
"에이, 게임하고 현실은 다르잖습니까."
하수영이 온라인 게임 이야기를 자주 하는 터라, 우형신은 그걸 가지고 농담하는 거라고 여겼다.
"매물 한 번 보시겠어요?"
"주소를 말해주세요."
"번지수가 그러니까 청담동……."
주소를 듣고 난 하수영이 손뼉을 쳤다.
"와, 그 주택이 매물로 나왔다고요?"
"역시 아실 줄 알았습니다. 대지면 적만 1만 제곱미터인 3층짜리 대저택입니다. 정원에는 야외 수영장도 있고, 차량 20대 이상 수용 가능한 지하주차장에 지하실도 따로 있습니다."
"거기 되게 좋은 집인데 왜 매물로 나온 거죠?"
하수영은 청담동 부동산은 샅샅이 꿰고 있지만, 소유주의 개인 인적사항까지 완벽히 알지는 못한다.
법인 소유주의 경우에는 회사 조사가 쉽지만, 유명하지 않은 개인 소유주의 경우에는 등기부에 나와 있는 정도가 한계다.
"소유주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네요."
"저런."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보실 건 없습니다. 90 넘으신 나이에 노환으로 병실에서 임종까지 자손들이 지켜보셨죠."
"아, 그래도 천수를 누리셨네요."
"원래 아들 가족하고 같이 살았는 데, 아들 일가가 이참에 집을 정리하려나 봅니다. 그런 게 아니면 시중에 나올 매물이 아니에요."
그래도 사망을 원인으로 시중에 나온 집이다 보니 우형신은 하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하수영은 쾌활하게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은 정해진 섭리죠. 살인이나 자살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그 집 살게요."
"네, 그럼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일단 매물로 나온 가격은 1,250억 원입니다. 평당, 그러니까 3.3제곱미터당 4,000만 원 정도 됩니다. 평당가는 그리 비싼 건 아니죠."
"지금 딱 그거 하나 살 정도 여유있네요."
14호기 휴민트타워를 8,000억 원에 사고 나서, 대충 1,650억 원의 여유 자금이 남아 있었다.
주택치고는 무척 비싼 편이지만, 대지 면적이 1만 제곱미터나 돼서 그런 것이다.
상속인들도 상가라면 모를까, 일반주택이기에 그냥 팔아버리기로 결정을 한 것이리라. 거주 목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초호화 저택이니까.
"청담에서 일반 주택은 상가보다 몇 배로 구하기 힘든데, 그래도 용케 좋은 매물을 하나 더 얻었네요."
"아무래도 청담 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집을 굳이 팔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우형신은 하수영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이 집은 세를 주기에도 마땅치 않은데요. 집도 너무 크고 세를 얼마를 받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어떻게 활용하실 겁니까?"
"다 허물고 고급 빌라 올려서 세놓으려고요. 1만 제곱미터나 되니까 공간은 넉넉하네요."
"다 허무신다고요?"
우형신은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해당 주택을 몇 번 가봤기에,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초호화 저택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청담에서도 손꼽히는 부의 상징인 단독주택인데, 그것을 싹허물어버리겠다니.
"하 사장님도 이제 청담에서 알아주는 큰손이신데, 그에 어울리는 거점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주택을 사저로 활용했. 하는데요."
"천억짜리 집이나 25억짜리 캠핑트레일러나 거기서 거깁니다. 별반다르지 않아요. 그냥 고급 빌라로 재활용하는 게 나아요."
"……알겠습니다."
이미 물주의 뜻은 완강하다. 우형 신은 안타까워서 입맛을 다셨지만 더 이상의 설득은 포기했다.
자기 돈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니.
***
3호기 빌딩에 도착한 하수영은 수영레스토랑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일을 확인했다.
마스크를 여자 둘이서 각자 웬 커다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듯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 피켓에 써 있는 항의 문구를 보니 시위가 맞았다.
"저건 또 뭐야?"
[수영레스토랑은 악질적인 갑질 행위를 중단하라!]
[선량한 고객을 블랙컨슈머로 몰아 신용불량자로 전락시킨 수영레스토랑은 즉각 사죄하라!]
하수영은 그중 한 여자를 자세히 살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눈매가 낯이 익다.
'참칭 파워블로거 이수현?'
허위 사실 유포 및 영업방해죄로 1심에서 패소한 진상 손님, 이수현이었던 것이다.
1심 재판에 거듭 불출석한 결과로 패소한 그녀는 5,000만 원의 배상금및 변호사 비용을 물어줘야 하지만, 조회한 그녀의 재산은 2,000만 원남짓.
그래서 박호진 변호사는 모든 재산의 압류를 집행하고, 판결문을 근거로 그녀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항소를 했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찾아왔네.'
불현듯 그녀의 눈이 이쪽으로 향했다.
하수영을 알아본 듯이 눈이 파르르떨렸지만, 굳이 달려들지는 않는다.
하수영을 오너가 아닌 관리자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실제로도 재판은 박호진 변호사가 맡아서 진행했고, 가게로 들어온 하수영은 홀 매니저박지현에게 물었다.
"밖에 시위하는 두 사람, 언제부터 저랬죠?"
"두 시간쯤 전에 갑자기 들어와서 저러더라고요. 톡으로 연락드렸는데 못 보셨나 봐요."
"제가 확인을 못 했네요. 이택진 셰프님은요?"
"조치를 하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또 괜히 경찰을 불렀다가 상황이 더 나빠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서, 일단 사장님 의견을 듣자고 하셨어요."
"이런 건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죠."
하수영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연락처를 뒤지자 박지현이 의아해서 물었다.
"어디에 전화하시는 거예요?"
"제 변호사요."
"……아!"
박지현의 표정에 놀라운 감정이 스쳤다.
제 변호사한테 물어볼 겁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전화가 연결되었다.
"네, 변호사님. 지금 소송 상대 이 수현 씨가 제 가게 앞 찾아와서…… 네, 알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전화를 끊자 박지현이 호기심을 품고 물었다.
"변호사가 어떻게 하라고 하던가요?"
"자기 사무실 변호사 한 명 보내서 정리할 테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시하고 있으라고 하네요."
"와, 뭔가 멋있다."
"말도 붙이지 말고 없는 듯이 놔두래요."
지금 가서 정리할 테니까 그냥 신경 끄고 있어요.
이 얼마나 달콤한 대답이란 말인가.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면이 익은 젊은 변호사가 서둘러 빌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사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 둘과 동행한 상태였다.
변호사가 다가가서 뭐라고 말을 걸자 여자 둘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박지현과 홀 직원들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기자 매장에서 숨을 죽이고 구경했다. 시위하는 여자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손님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구경했다.
여자들이 피켓을 내려놓고, 싸움을 걸 듯이 변호사를 향해 턱을 들이댔다.
하지만 잠시 후, 변호사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 여자 둘이 기겁해서 주춤거렸다.
곧이어 여자들은 피켓을 주워들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버렸고, 변호사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가게로 들어왔다. 남자 둘은 곧바로 가버렸다.
"대표님, 해결했습니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같이 온 분들은 누구죠?"
"친분이 있는 형사들인데 겁을 주려고 데려왔습니다. 여차하면 영업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고 하니 곧바로 갔습니다. 이미 채증도 했다고 말했으니 아마 다시 매장으로 찾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무릎 꿇고 빌기라도 했으면 측은 한 마음에 제가 조금은 봐줬을지도 모르는데, 저 사람도 머리가 나쁘니 참 몸이 고생하네요."
"2심이 진행 중이긴 한데 아마 포기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계속 선처를 애원하고 있거든요. 하다하다. 안 되니까 매장까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의뢰인을 찾아가거나 연락을 시도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분명히 수차례 경고를 했는데도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네,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변호사는 깍듯하게 인사하고는 매장을 나섰고, 박지현은 신기한 듯이 뒷모습을 바라봤다.
"변호사가 가게까지 찾아와서 일처리해 주고 보고하고 그러는 건 처음 봐요.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보는 줄 알았는데."
"전부 수임료빨이죠, 뭐. 아무튼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여기로 연락하세요."
하수영은 박호진 사무실의 연락처를 카운터 구석에 잘 보이게끔 올려놓았다.
박지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연한 그의 모습에 설명하기 힘든 매력을 느꼈다. 자신보다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여유가 넘쳐흐르는 분위기가 신기했다.
그때 우형신 중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그 주택 말인데요. 우리 말고 중간에 가로채려는 사람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네? 아니, 누가 우리 15호기를 보고 입맛을 다신 거죠?"
-옆집 주민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