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80화
45장 자동 딥러닝(1)
"뭐, 그건 말이 안 되죠."
오철현은 심드렁하게 반응했고, 박덕준은 그런 태도에 더욱 답답함이 짙어졌다.
"넌 아는 놈이 왜 그런 식으로 덤덤한 거야?"
"딱 보면 모릅니까. 개발자가 자기 신분 드러내기 싫어서 수영레스토랑에 비밀로 해달라고 했겠죠. 수영레스토랑이야 앱 서버 유지보수까지 해주는 사람인데 굳이 심기 거스를 필요가 없을 거고요."
"그러니까 수영레스토랑 찾아가서 개발자 내놓으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드러내기 싫어서 숨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한다고 어디 쉽게 나옵니까. 제가 수영레스토랑에 몇 번이나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대답이 한결같았다고요."
"전화로 안 되니까 대면을 하는 거지."
"역효과만 납니다. 거기는 라면 파는 음식점이고 IT하고는 아무 상관없는데, 굳이 우리 눈치 볼 이유도 없고요."
"그래서 이대로 가만히 있자는 거야? 그러다가 그 개발자 경쟁사에 뺏기면 네가 책임질래?"
"수영레스토랑에 문의하는 건 별소용없다는 거죠. 누가 포기하자고 했습니까. 저도 최선을 다해서 수소문하고 있다고요."
"사흘 준다. 사흘 안에 못 찾아내면 내가 수영레스토랑에 찾아가서 개발자 내놓으라고 할 거야."
"그룹 회장씩이나 되시는 양반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처리하시면 어떡합니까."
"내가 뚝심 하나로 지금 실비아 그룹 만들었다. 기억 안 나냐? 네가 처음에 나하고 손 안 잡는다고 해서 내가 몇 날 며칠이고 매달려서 네 항복 받아낸 거……."
"저니까 넘어간 거지, 프리덤 개발자한테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거 딱 봐도 고수입니다. 자존심이고 자존감이고 엄청날 거예요."
"아, 지분 준다고 하면 되잖아."
"아무튼 알았으니까 제발 가서 일좀 보세요. 회장이라는 분이 이런 일로 대표이사 업무 방해 좀 하지 마시구요."
아직 젊은 기업이고, 또 창업 시절부터 형, 동생 하던 사이였기에 가능한 대화 분위기였다.
"꼭 찾아라. 기억해, 사흘이야."
"그 친구 찾아내고 싶은 마음은 제가 더 굴뚝같으니까 자꾸 그러지 마세요. 재주 부리고 싶다가도 억지로 자리 깔아주면 그럴 맘 가시는 게 사람입니다."
박덕준을 겨우 힘들게 내보낸 뒤, 오철현은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며 한숨을 뱉었다.
"저 양반은 회장씩이나 됐는데도 아직도 저리 엉덩이가 가벼워서야. 그래도 주식 줘서라도 데려오겠다는 발상은 나름 기특하네."
오철현은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떠오른 프리덤 아바타를 다시금 물끄러미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인공지능을 설계했는지, 그 알고리즘이 너무 신기하다.
처음에는 정말 'AI 행세를 하는 사람'이 반응하는 줄 알았으니까.
"툭하면 권한을 벗어난 주문이라고 능청 부리는 것도 참 웃기고 말이야."
책상에 턱을 걸친 오철현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가만히 불러 보았다.
"야, 프리덤."
「예, 주인님.」
"널 만든 마스터는 대체 어떤 사람 일까?"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남자야, 여자야?"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널 만들 정도의 실력이면 AI 개발자로 펄펄 날아다닐 수 있을 텐데, 그럼 떼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왜 돈도 안 되는 음식점 어플 개발외주나 받고 있는 걸까. 막 강남에 건물 수십 채씩 갖고 있어서 그냥 놀고먹으면서 취미로 코딩을 하는 백수 대머리인가?"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오철현은 불현듯 희미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야, 너 지금 왜 평소처럼 대답 안해?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왜 그렇게 말을 못 하냐고?"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이것 봐라? 너 조금 전에 대답안 했지? 내가 분명히 질문을 했는데 대답을 안 했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설명해."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오철현은 찬물로 뇌를 씻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침묵은 있을 수 없어. 분명히 이놈이 뭔가 키워드에 반응을 한 거야.'
개발자가 의도한 것이든, 프리덤의 특징이든, 아니면 의도치 않은 버그이든 간에, 자신이 좀 전에 한 말중 어떤 내용에 반응한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이놈이 반응한 키워드가 어떤 것인가?
'떼돈? 음식점 외주? 취미로 코딩? 대머리?'
오철현은 녀석이 반응할 만한 키워드를 역으로 되짚어 보았다.
특별히 의심이 가는 키워드는 이정도뿐이었다.
'설마 건물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하진 않았을 거 같고…… 취미로 코딩을 하는 대머리가 가장 유력해.'
프리덤의 개발자는 대머리?
'이거 이스터에그인가? 대머리인게 컴플렉스라서 일부러 살짝살짝씩 침묵하게끔 만든 거?"
오철현의 안색이 다소 밝아졌다.
'좋아, 프리덤의 개발자는 대머리다. 아니, 대머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으로 후보 그룹의 폭을 좁혔어.'
오철현은 얼른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머리 비율을 검색하고는, 그 결과에 절망했다.
"타, 탈모 환자 1,000만 시대?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대머리들이 많다고?"
때마침 업무 보고를 위해 들어왔던, 창업 공신이자 부하 임원이 그 말을 듣고 발끈해서 말했다.
"형, 탈모하고 대머리는 달라요!"
"같은 거 아냐?"
"그게 왜 같습니까! 전혀 다르다구요, 달라요! 형, 그럼 설마 지금까지 저를 대머리라고 생각했었던 겁니까?"
오철현은 부하 임원의 훤한 정수리를 흘끗 보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내가 아무래도……."
말을 하다 말고 오철현은 스마트폰을 흘끔 살폈다.
그는 얼른 프리덤 앱을 종료시켰다. 그래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서 아예 스마트폰의 전원까지 꺼버렸다.
"단서를 찾은 거 같다."
"뭘요?"
남아 있는 모발들이 가늘어 슬픈부하 임원, 최국성이 서운함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프리덤 개발자 말이야. 아무래도 대머리인 거 같아."
"탈모하고 대머리는 다르다니까요."
"그래그래, 다르다 치고, 대머리일가능성이 있어."
오철현은 최국성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최국성도 서운한 기색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귀담아들었다.
"일리가 있네요. 지금까지 프리덤이 예약 결제와 무관한 이야기에는 무조건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아무 대답도 없었다니…… 이스터에그일 가능성이 있겠어요."
이스터에그, 게임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재미로 숨겨놓은 메시지나 기능을 말한다.
"근데 우리나라 대머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거 하나 가지고 찾아 내기에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아닌가요?"
"그러니까 도발을 해보려고."
"도발이요?"
"그래, 너도 대머리라고 하니까 바로 발끈하잖아. 같은 대머리라면 동종 속성이 있겠지."
"형!"
"이거 봐. 효과 있을 거 같다."
최국성은 졌다는 듯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반문했다.
"아니,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개발자와 컨택을 시도합니까?
이런 게 먹힐 거 같아요?"
"내가 찾다찾다 도저히 안 되니까 이제는 별 이런 것까지 다하는 거야. 연락처도 없어, 신원도 몰라, 서버를 뚫을 수도 없어, 오죽하면 이러겠냐."
오철현은 다시금 스마트폰을 켜고 프리덤 앱을 실행시켰다.
"프리덤, 취미로 코딩을 하는 대머리와 식사 예약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자신만만하게 질문을 던졌던 오철현의 표정이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손으로 폰을 쥐고 프리덤 아바타를 내려다보았다.
"형, 안 되잖아요?"
"뭐야? 이게 아니었어?"
"형이 뭐 착각한 거 아닙니까? 그냥 일시적인 에러였는데 그걸 괜히 이스터에그니 뭐니 확대해석한 거 아니에요?"
"야, 너도 아까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었잖아."
"그거야 형 말 듣고 그랬던 거죠."
"이상한데. 분명히 이놈 의도적으로 침묵했었는데, 대체 내가 뭘 놓쳤지? 혹시 강남에 건물 수십 채 어쩌고 하는 백수? 이건 아닐 텐데…… 야, 프리덤. 널 만든 마스터혹시 강남에 건물 수십 채 갖고 놀고먹으면서 취미로 코딩하는 백수 대머리냐?"
「…….」
"이놈, 대답 없는데?"
"이놈, 대답 없네요?"
"프리덤, 널 만든 마스터를 만나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오철현과 최국성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둘은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며, 두뇌 회로를 필사적으로 가동했다. 프리덤이 보인 잠깐의 침묵,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오철현은 불현듯 떠오른 말을 천천히, 하지만 분명한 발음으로 내뱉었다.
"프리덤, 너 혹시 수영레스토랑 예약 결제 말고, 임대할 사무실이나 주택 같은 것도 찾아주냐? 위치가 강남이면 좋겠는데. 압구정동이나 신사동. 아니면 삼성동."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청담동도 괜찮을 거 같고."
[…….]
프리덤은 다시 말이 없었고, 최국성은 설마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오철현은 액정에 뜬 프리덤아바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축하합니다. 주인님은 클로즈베타 기능을 최초로 접한 사용자가 되셨습니다. 본 앱의 '다이렉트 부동산'기능은 사용자가 원하는 주택이나 사무실을 언제든 편안하게 검색하고 또 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으로서…….」
"뭐야? 프리덤에 수영레스토랑 예약 결제 말고 다른 기능도 있었어요?"
"나도 이제 알았다. 부동산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무슨 직방 옵션 같은데."
"형, 이거 단순히 음식점 예약 어플이 아닌 거 같은데요."
"프리덤 개발자 찾는 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을걸."
오철현은 프리덤 아바타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직원 50명 정도가 근무할 수 있는 적당한 사무실 좀 알아봐 줄 수 있냐? 업종은 IT야."
「휴민트타워 401호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현재 공실인 관계로 즉시 입주가 가능하며, 직원 50명의 쾌적한 근무 환경을 보장합니다. 지금 예약하시면 최초 이벤트 당첨자로서 3개월분의 월세가 면제되는 혜택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방 한번 보고 싶은데. 어떡하면 되냐?"
「편하신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바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오철현은 즉시 스케줄을 확인해서 시간을 정했고, 프리덤은 곧바로 일정을 잡았다.
수영레스토랑 식사 예약을 했을 때처럼, 곧바로 어플에 예약 일정이 새로 떠올랐다.
"형, 이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일단 프리덤이 음식점 말고 청담한정으로 부동산 임대보조 같은 것도 하는 모양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대답해 주는 거 같은데. 클로즈베타라고 하는 거 보니 이벤트적인 면도 있는 거 같고."
오철현의 표정에 의기양양함에 떠올랐다.
"대머리 개발자 맞네. 이런 깜찍한 이벤트를 이스터에그로 다 넣어놓고 말이야. 널 꼭 닮았다."
"전 대머리가 아닙니다!"
"야, 근데 휴민트타워가 뭐하는 건물이냐? 말 들어보면 청담에 있는거 같은데."
"한 번 검색해 볼게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진 최국성은 하얗게 질린 채 오철현을 돌아보았다.
"형…… 아니, 사장님. 이거 기준시세가 5,000억이라는데요?"
"뭐야?"
"얼마 전에 최소 7,000억 이상으로 팔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