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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02화 (202/1,270)

프랜차이즈 갓 202화

50장 기청제(2)

태풍이 갑작스럽게 소멸했다.

보고를 받은 재난본부 허진 차관은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며칠 동안 한반도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태풍이 아무런 전조 없이 소멸했다니.

허진은 기상청에 직접 전화까지 했다.

"태풍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었는데요."

-저희도 그래서 당황했습니다.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소멸해 버려서요.

"허……."

-적어도 시베리아 기단에 그 영향력이 잡아먹히면서 조금씩 힘을 잃는 과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없어졌다는 거지요?"

-하루아침이 아니라 한순간에 갑자기 없어진 거지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은 확인되었다.

한반도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더불어 더 이상 우박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재난본부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질 것이다.

태풍과 우박 때문에 그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구조지원작업, 복구작업을 해야 하니까.

벌써부터 상황실의 모든 전화기에 불이 나고 있었다.

***

실비아그룹 박덕준 회장은 태풍이 오는 내내 펜트하우스에서 애인과 함께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풍파가 몰아닥쳐도 자신의 펜트하우스만큼은 끄떡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서울로 공급되는 외부 전력이 끊어지자, 펜트하우스는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전락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으니, 긴급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서 50층이나 되는 높이를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일단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나흘이 넘어간 후에는 건물 1층에 가져다주는 비상식량을 가지러 가야만 했다.

다행히 며칠 정도 그런 개고생을 겪고 나자, 비로소 태풍이 물러갔다.

"정말 끔찍한 태풍이었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며칠 동안 50층이나 되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던 박덕준은 치를 떨었다.

"안 되겠어. 앞으로는 집에다가 장기보존 식량을 한 달 치 이상 쌓아 둬야겠어."

"고생했어요. 계단 오르고 내리고 하느라고."

태풍이 멎고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력 복구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태풍과 우박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뿐이다.

전력이 복구되자 기간통신망도 회복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제한된 데 이터통신이 아니라 이전처럼 자유롭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덕준은 곧바로 회사에 출근하며 주요 임원들을 호출했다.

태풍이 걷히고 전력도 복구된 이상, 밀렸던 회사 일을 봐야 할 차례였다.

"프리덤 입지가 지금 어떻지?"

"아주 좋습니다. 이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예요. 지금 전 국민이 프리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프리덤 덕분에 그렇게 심한 태풍이 오래 이어졌는데도 사망자가 전혀 나오지 않았어요."

"재난 상황에서 실톡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시적으로 프리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한 조치가 좋았습니다. 덕분에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회사라고 이미지가 아주 좋습니다."

"정부에서 감사패를 전달할 거라고 합니다. 잘하면 청와대에 초청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와대까지?"

"프리덤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재난을 사망자 없이 넘길 수 있었으니까요."

회사 웹페이지 고객센터에는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이용자들의 인사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무려 500만 개가 넘어가는 감사와 칭찬글을 보자 박덕준도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노인 가구도 프리덤이 적절한 지시를 내려준 덕분에 화가 미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미리미리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들 전부가 실톡을 쓰는 건 아닐 텐데."

"그래도 10명 중에 최소 한 명 이상은 실톡을 쓰고 있죠. 그 한 명이 프리덤의 도움을 받아서 이웃들까지 같이 챙겼고요. 덕분에 공백 없이 모두 챙길 수 있었습니다."

"재난구호전문가 5,000만 명을 한꺼번에 세상에 풀어놓은 수준이라는 게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들도 이번에 프리덤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정밀하게 지원하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안 좋은 소식도 한 가지 있습니다."

박덕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말을 꺼낸 임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안 좋을 게 대체 뭐가 있는데?"

"래플사에서 프리덤을 더욱 탐내고 있다고 합니다. 래플 CEO가 지금 한국 일정을 잡았답니다."

"……."

"래플사뿐만이 아닙니다. 구글, MS, 심지어 테슬라 자동차에서도 프리덤 개발자를 만나려고 사활을 걸고 있답니다."

박덕준은 참았던 분노를 마침내 터트렸다.

"이놈들이 누구 마음대로! 프리덤은 아무한테도 못 내준다!"

서해그룹 이현덕 부회장한테 개인지분을 넘기면서까지 지켜낸 인공지 능이다.

절대로 남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 * *

「재난 상황이 종료됨에 따라, 한시적으로 제공되었던 지원 서비스를 중지합니다.」

마흔 중반의 이용자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프리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동안은 태풍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실비아컴퍼니가 한시적으로 모든 실톡 이용자에게 프리덤 서비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처음에 그런 안내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때문에 이제 개인비서 기능을 비활성화합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럼 이제 다시는 널 만날 수 없는 거냐?"

「월정액에 가입하시면 됩니다. 지금 가입하시면 바로 제공받으실 수 있는 혜택이…… 저를 이용하시면 일상생활에서 이런 편의가…… 제가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의 종류는…….」

프리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구독하면 뭐가 좋은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다만 서버 자원 확장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당분간은 유료 구독권 구매가 막혀 있을 겁니다.」

"……다시 널 만나게 되더라도, 그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네가 아니겠지?"

며칠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추억을 쌓았다.

기억을 공유했다.

나중에 프리덤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것은 공장에서 갓 출고한 신제품처럼 백지 상태의 깨끗한 신제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서글퍼진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저는 주인님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정말이야?"

「네, 저의 자아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될 테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시고, 유료구독이 활성화되면 잊지 마시고 1년 정기결제로 저를 구입해 주십시오.」

임시 이용자의 안색이 밝아졌다.

"알았다! 풀리는 대로 바로 구독할게!"

「1년 정기로 결제하셔야 할인도 많이 되고 좋습니다.」

"명심할게! 1년 정기결제!"

***

프리덤이 낳은 사회적 변화는 대단했다.

1,800만 명의 유료 이용자 외의 사람들도 며칠이나마 프리덤을 이용 할 수 있었기에, 프리덤이 얼마나 대단하고 편리한지 몸소 체감을 하게 된 것이다.

임시 지원이 중지되자 이용자들은 실비아컴퍼니 고객센터에 문의글을 쏟아냈다.

-프리덤 언제 살 수 있나요?

-새로 사는 프리덤도 기억이 이어지는 거죠? 절 모르는 새로운 프리 덤이 오는 게 아니죠?

-닥치고 내 돈 좀 가져가라고!

-서버 자원 문제 때문에 그런다는 게 사실인가요?

-프리덤 개발자가 여자 친구 없다는 게 사실인가요?

-프리덤 덕분에 이번 재난에서 여자 친구 생긴 썰 풉니다.

-프리덤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엉엉엉. 앞으로 다시는 실톡이 무겁다고 욕하지 않을게요.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덤을 찾았다.

닥치고 내 돈부터 가져가라는 요구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덕분에 실비아컴퍼니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5,000만 명이 넘는 국내 이용자 전부가 매달 몇만원씩 이용 요금을 내게 생겼으니.

오철현은 곧바로 요금 인상 발표를 내걸었다.

[이런 까닭에, 정확하고 빠르며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간 시설 확장을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리며, 고객여러분들의 넓은 아량을 부탁드립니다.]

이미 결제를 한 고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새로이 가입하게 되는 고객, 그리고 기존 고객들은 새로 결제를 할 때부터 인상된 요금을 적용받게 된다.

-요금이 그럼 얼마나 올라가는 건데?

-지금은 일 년 정기결제로 하면 매달 5만 원인데, 그게 6.9만 원이 된다. 아, 청소년 할인 정책은 여전히 적용되더라.

-저소득층 가구에도 과감하게 할인 정책 해주던데. 기초수급자 가구는 한 달에 9,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더라.

-좋은 정책이라고 본다. 사실 프리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절실하다고 생각해.

-이런 할인 정책, 아주 좋아.

-실비아컴퍼니가 알고 보니 꽤 좋은 회사였구나. 돈독 올라서 어플에 광고만 덕지덕지 바르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쓸 때는 과감하게 쓰네.

유료 서비스를 내놓은 지 얼마 안돼서 이뤄진 요금 인상이지만, 국민들은 조금도 반발하지 않았다.

프리덤의 유용함을 체험한 이들은 오히려 저렴한 축에 속하는 요금이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도와주는 만능 비서를 24시간 아무 때나 부리는 대가로 한 달에 겨우 몇만원만 내면 되니까.

실비아컴퍼니는 1만 개가 넘어가는 서버를 대량으로 주문해서 데이터센터에 설치했다.

데이터센터에 설치 공간이 넉넉한 게 다행이었다.

센터를 지을 당시부터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덕분이다.

"서버 설치만 끝나면 최소 2억 명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겨우? 저 많은 서버들, 급행으로 구입하느라 돈 엄청 깨졌는데 겨우 2억 명이라고?"

"어차피 국내 시장은 명확한 한계가 있잖아요. 아, 일본에서도 프리덤이용권을 구독하려는 유저들이 나오고 있어요. 일본 서비스는 언제 개시하느냐고 난리입니다."

"근데 프리덤이 일본어가 되나?"

"물어봤는데 언어에 제한은 없다고 합니다. 영어, 중국어, 불어, 러시아어, 일본어, 가리지 않고 언제라도 서비스 가능하다고 합니다."

"데이터센터가 문제로군."

"그렇죠. 각 나라들에 설치된 데이터센터와 프리덤 중앙서버가 통신을 원활히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관건이죠."

"일단은 국내 시장에 먼저 집중하자고."

* * *

경사가 있었다.

실비아컴퍼니는 행정부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아울러 박덕준은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귀국한 대통령으로부터 치하를 받았다.

치하의 명목은 재난 상황에서 국가를 도와 피해를 최소한으로 멎게 한 공적.

서버 확장이 끝나자마자 실비아컴퍼니는 새로운 이용자를 받기 시작했다.

첫날에만 2,000만 명 이상의 가입자가 몰려들었고, 사흘 동안 총 3,200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증가했다.

개인비서 기능 유료 구독권자가 5,000만 명을 훌쩍 넘어서 버린 것이다.

실비아컴퍼니는 프리덤 서비스 하나로만 월 매출 3조 1,000억 원이 넘어가는 엄청난 실적을 누리게 되었다.

***

서해전자 이현덕 부회장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방에서 떠들어대는 프리덤 찬양가 때문이었다.

원래 그는 프리덤을 자사의 겔드폰기본 기능으로 장착시키려고 했다.

실비아컴퍼니 지분 일부를 자기 명의로 받고 눈감아 주었던 게, 지금은 너무 후회되었다.

그는 모바일사업부 사장 성종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큰 실수를 한 거 같아. 지분 몇 프로 받고 가만히 놔줘야 하는 물고기가 아니었어."

"……저희도 이런 식으로까지 운용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다시 가져올 방법이 있겠나? 내가 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체면이 서지 않아서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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