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05화
51장 손이 큰 어부(1)
하수영은 태연히 대답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참치 양식하는 나라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양식 참치가 좀 더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위축된 시장에서는요."
"양식 참치는 크기가 너무 작지 않을까요? 참치 어장을 인수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좀 큰 거 같습니다."
이제 겨우 참치횟집 하나 있는 상황에서, 어장을 인수해서 직접 참치를 공급하겠다고?
유태준 입장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스케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가는 그대로 사업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결과가 될 텐데.
"양식 참치는 자연산처럼 얼려서 가져오지도 않고, 여러모로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 지금 참치회 시장이 줄어든 것은 냉동과 생동의 차이 때문이 아닌데요."
유태준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가게를 접은 것은 결국 중 금속 축적에 대중이 과도한 공포를 품었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최상위 그룹에 존재하는 참치는 섭식 활동을 통해 많은 중금속이 체내에 축적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제가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그러니 기존 도매처에서는 최소한으로만 공급받으세요. 언제든지 거래 중단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유태준은 다소 불안했지만, 건물주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신은 모든 걸 책임지는 사장이 아니라, 월급과 성과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다.
사장이 결정을 하면 따라야지, 별수 있나.
***
하수영이 향한 곳은 경상남도 통영이었다.
원래 국내에서 참치 양식을 하는 곳은 3곳이었는데, 최근 한 조합이 추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양식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안정화되어가는 조짐이 보이자, 눈치를 보고 있던 투자자들이 후발주자로 재빨리 뛰어든 것이다.
큰돈을 들여 통영 앞바다에 양식장을 건설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중금속 중독 유산 사건이 터졌다.
워낙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참치회 시장이 확 죽어버렸고, 큰돈을 투자한 이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신세가 되었다.
하수영이 찾은 것은 그 신생조합이었다.
미리 약속을 잡았기에 조합장이 기다리다가 마중을 나왔다.
그는 하수영이 타고 온, 캠핑트레일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 모델은 퍼포먼스 아닌가요?"
"아, 이 차를 아세요?"
"알다마다요! 저도 캠핑이 취미라서 캠핑카를 한 대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 퍼포먼스는 제가 알던 것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데요?"
"주문제작을 한 모델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역시. 안 그래도 비싼 캠핑카인데 주문제작까지 했다면 훨씬 비싸겠군요."
기본 모델이 15억 정도 하는 캠핑카.
주문제작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가격이 대체 어느 정도나 나갈까.
조합장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장 인수 의사를 가지신 분들이 몇 번 다녀갔습니다. 벤틀리, 마이바흐 같은 차량은 많이 봤는데 퍼포먼스를 타고 오신 분은 처음 봅니다."
"사고가 나도 승용차보다 안전하고 좋거든요."
"아, 그렇겠군요."
"그래서 일부러 차체를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달라고 주문까지 넣었죠."
조합장은 감탄하며 다시금 캠핑카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조합장님, 이 차가 그렇게 좋은 겁니까?"
"캠핑카 중에선 끝판왕이지. 그리고 기본 모델이 15억이 넘어."
"15억이라고요?"
"그래, 웬만한 슈퍼카들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어."
조합 직원은 질렸다는 듯이 하수영과 차를 번갈아 바라봤다.
캠핑카를 타고 온 소탈한 복장의 청년이라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의 재력가 아닌가.
하수영은 통영 앞바다에 설치된 부표와 대형 그물 가두리를 보며 물었다.
"저게 양식장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50kg 이하의 참다랑어 약 4천 마리가 자라고 있는 양식장입니다."
나이 차이가 한참 벌어져 있지만, 조합장은 깍듯하게 하수영을 대했다.
"일본에서 3㎏짜리 치어를 들여와서 지금까지 기른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중금속 폭탄을 맞으셨고요."
"……네. 운이라는 게 참 어디로 튈지 모르더군요."
이미 다 알고 온 사람이다.
조합장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상황을 이야기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품평용 참치를 출하할 때만 해도 양식업이 성공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터져 버렸죠. 그 뒤로 주문 문의가 뚝 끊어졌습니다."
"여태 몇 마리나 파셨나요?"
"한 마리도 못 팔았습니다. 품평용으로 출하된 것을 제외하고, 상업용으로 판매한 것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그 와중에 사룟값은 계속 나가시겠네요."
"4천 마리가 하루에 먹어치우는 고등어만 1.5톤입니다."
"조합원이 모두 몇 명이나 되죠?"
"저까지 모두 13명입니다."
"조합장님 지분은 어떻게 됩니까?"
"제 지분은 가장 적습니다. 사실 저는 돈보다는 경험을 투자한 거라서요."
박영식 조합장은 오랜 경험이 풍부한 어업인이다.
그는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며, 원양어업과 양식장 일에 두루두루 경험을 쌓았다.
또한 오래전부터 참치 양식에 꾸준한 관심을 쏟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사실 양식장 인수는 거의 결심을 굳힌 사항입니다."
"오, 그러십니까."
하수영이 시원스럽게 말하자 박영식은 좋아하는 감정을 한껏 드러냈다.
지금까지 몇 명의 투자자가 통영을 다녀갔지만, 죄다 간만 보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네, 한 가지 사항만 타협을 볼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바로 계약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가격이야 얼마든지 협상의 여지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영식은 바짝 긴장했다.
현재까지 조합이 참치 양식에 투자한 금액은 약 80억 원.
거기에는 조합원의 출자금 50억원 외에, 금융기관에서 유치한 금액 30억 원도 있다.
투자 손실이야 조합원들이 나눠서 짊어진다지만, 금융기관이 출자한 30억 원은 원금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얼마나 할인을 해주느냐에 따라서 조합원들의 손해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가장 높은 금액은 29억 원.'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조합원들은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할뿐더러, 은행도 1억 원의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애초에 그런 인수 계약을 은행이 승낙할 리도 없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폭만 커지고 있었다.
'50억…… 아니, 40억만 돼도 받아 들일 수 있어.'
조합원들 내부에서 정한 마지노선은 40억 원.
은행 빚을 갚고 자기들끼리 차비정도는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한 푼도 건지지 못할 바에는 돈을 더 쏟아부어서라도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각오였다.
"가격? 제가 협상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예?"
"총금액이 80억이었죠?"
"아, 네. 은행 빚까지 하면 그렇습니다."
"80억에 인수하겠습니다. 대신 박영식 조합장님이 양식장을 계속 맡아서 운영해 주신다는 조건입니다."
"……!"
박영식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80억이라고?'
이쪽은 40억까지 깎아줄 의향이 있었는데, 투자원금을 모두 보전해주겠다고?
"사실 깎으려면 얼마든지 깎을 수 있겠죠. 지금 시장이 워낙 안 좋으니까요. 그렇지요?"
"아…… 네. 그, 그렇습니다."
"근데 제가 철칙이 있습니다. 파산직전에 몰린 영세업체를 인수할 때 최소 원금은 깎지 말자는 거죠."
박영식은 정신없이 듣기만 했다.
"가뜩이나 상대는 사업 망해서 힘든 상황인데, 원금이라도 보전해 줘야 마음 편하게 발 뺄 거 아닙니까."
"그, 그렇지요."
"그렇게 덕을 쌓아야 인수한 다음에도 사업이 잘 풀리고, 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호구라서가 아니라 사업 잘되라고 고사 한 번 지낸 셈치자, 이런 겁니다."
"정말 마음이 넉넉하신 것 같습니다."
"부정은 타지 말아야 하니까요. 그럼 제 조건을 받아들이시겠어요?"
"물론입니다!"
박영식은 곧바로 다른 조합원들을 호출해서, 양식장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참치 양식업에 관해 조합이 보유한 모든 자산을 80억 원에 매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영식은 인수자 상호를 보고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동성참치? 전국적으로 유명한 참치 프랜차이즈 아닙니까? 동성참치에서 오신 분이셨군요."
"아뇨, 프랜차이즈 본사가 아니라 가맹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풀네임이 '동성참치청담삼가점'라고 되어 있잖아요."
"아, 그렇군요."
조합원들은 이게 뭔가 싶어 헷갈렸다.
참치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양식장을 인수하는 게 아니라, 일개 가맹점에서 인수하는 거란 말인가?
"그리고 프랜차이즈 계약 해지했어요. 나중에 상호도 바꿀 겁니다. 아직 상호 변경 절차가 남아 있어서 예전 상호를 쓰는 겁니다."
"혹시 어떤 상호로 변경하실 겁니까?"
"수영참치로요. 제 이름이 하수영이거든요."
"……."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하수영은 양식장은 물론이고 기존에 일하던 직원들까지 전부 승계하게 되었다.
박영식을 제외한 조합원들은 원금을 건진 채 사업에서 완전히 발을 빼게 된 셈이다.
또한 박영식은 이제 투자자가 아니라 순수한 직원이자 월급 사장으로서 양식장을 관리하게 되었다.
인수가 완료되고 얼마 후, 하수영이 초대형 그물 가두리를 잔뜩 가지고 나타났다.
"지금 양식장 가두리를 전부 이걸로 교체하세요. 교체가 어렵다면 이 가두리로 주변을 한 번 더 감싸세요."
"네? 왜 그래야 합니까? 지금 그물 가두리도 수명이 많이 남았습니다."
"제가 영험한 분에게서 직접 축복까지 받아온 가두리입니다. 참다랑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또 사업도 번창하라는 의미에서요."
박영식은 하수영이 미신이나 운을 상당히 믿는구나 싶었다.
'하긴, 그럼 사람이니 충분히 깎을 수 있었는데 부정 탈까 봐 고스란히 다 주고 산 거겠지.'
나쁜 기운이 쌓여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봐 80억 원도 전부 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직접 축복받은 그물까지 가져왔는데, 그걸 안 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교체 가능한 곳은 모두 교체하고, 교체가 어려우면 바깥으로 한 번 더 감싸겠습니다."
"그물 양은 충분할 겁니다.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제가 가져온 그물만을 써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영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수영의 머릿속에 대고 통탄을 터뜨리는 고대 주신의 넋두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성역을 만들어서 주신으로서의 권능을 갈고닦으라고 했더니, 그걸 가지고 가두리 그물 따위나 만들다니…
'아버지, 권능 발현에 서투른 제가 섣불리 시도했다가 부작용이 나면 어떡합니까. 일단 참다랑어 가지고 한 번 시험을 해보는 거지요.'
그러고도 잔소리가 끊이지 않자, 하수영은 잠시 귀를 닫아버렸다.
정신 연결을 끊자 은하신목의 잔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내심 미안했지만, 하수영은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었다.
"고대 주신의 권능으로 만든 성역그물 안에서 양식한 참치니까……. 중금속 같은 건 충분히 해독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