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23화
55장 증식하는 테라리움(3)
도우야 히데키는 도우야초밥 오너의 조카이자, 본사 임원이었다.
일본은 세계에서 참치 양식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자연산 참치보다 저렴한 참치를 어디에서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급 일식집에서 양식 참치는 기피 대상이다.
주머니가 두둑한 고급 손님들을 상대하는 가게들은 값비싼 자연산 참다랑어를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양식 참치? 그딴 건 서민 가게에 서나 쓰는 거야."
"진정한 참치회의 맛은 수백㎏짜리 자연산 참다랑어 성어에서 나오는 법이지."
"기껏해야 수십㎏짜리 어린 양식 참치가 맛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어?"
"좁은 만에서 가두리에 가둬 기른 참치 따위를 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 그건 고급 손님들에 대한 모독이야!"
도우야초밥은 엄밀히 말해서 최고급 가게는 아니다.
일본 전역에서 가장 많은 가맹점을 거느린, 최대의 프랜차이즈 초밥 브랜드일 뿐이다.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찾는 최고급 초밥집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일본에서 손꼽히는 초밥 프랜차이즈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도우야초밥은 일본의 모든 가맹점에서 자연산 참다랑어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른 생선의 경우에는 타협이 있을 수 있지만, 참다랑어만큼은 양식을 철저히 외면한다.
일본 양식 참치도 그렇게 외면하는 판에, 한국의 양식 참치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도우야 히데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중금속 제로 참치? 그게 한국에서 양식된다고? 그게 사실인가?"
"정확히 말해서 완전히 제로는 아닙니다. 하지만 쌀보다 안정적인 수준이라 양에 제한 없이 평생 먹어도 될 정도 수준입니다. 수은 같은 경우는 아예 0입니다."
"말도 안 돼. 그런 참치가 있을 수가 없어."
그래서 도우야 히데키는 수영오세안에서 참치를 주문해서 챙긴 뒤, 따로 일본에 가져와서 분석을 했다.
몇 조각의 참치 살점을 나르기 위해 값비싼 이동식 냉동함과 항공편을 이용했다.
내로라하는 연구소에서 면밀이 성분검사를 했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중금속 수치가 가능할 리가 없어."
하지만 수치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도우야 히데키는 직접 한국을 찾았다.
마침 서해호텔에서 무공해 참치를 공급받는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한참이었다.
첫날, 하수영의 참치해체쇼를 직관한 도우야 히데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저 사람, 혹시 전생에 사무라이?'
하수영이 보인 칼질은 그저 생선을 다듬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무예이자, 예술이었다.
마치 검술의 극한에 다른 것처럼 아름다웠고, 눈을 현혹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 같았다.
'이 맛은!'
그리고 도우야 히데키는 프리미엄참치의 맛에서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그 역시 온갖 고급 생선을 다 먹어봐 왔지만, 이렇게 깊이 있는 참치 맛은 처음이었다.
'양식 참치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최고급 자연산 참다랑어에서도 이런 깊이 있는 맛은 나지 않을 것인데.'
히데키는 결심했다.
수영참치를 도우야초밥에 반드시 들여야겠다고.
[귀하를 프리미엄 참치 경매에 정중히 초청합니다.]
귀빈들에게 돌린 초대장의 문구를 확인하던 히데키는 가벼운 마음으로 경매 장소로 향했다.
경매는 해보나 마나일 것이다.
그는 이 일에 관해서 전권을 부여 받았으니까.
삼촌이자 회장인 도우야 코지마는 프리미엄 참치의 맛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히데키가 눈에서 불꽃을 튀겨가면서 설명한 덕분에 경매에서 낙찰을 받을 수 있도록 전권을 허락했다.
어차피 무공해 참치를 공급받기로한 이상, 이제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할 때였다.
도우야초밥에서 왜 신년 행사로 참치 한 마리 구입에 1억 엔이 넘는 돈을 쏟아붓는가.
그 참치를 팔아서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게 다 홍보가 되는 것이다.
1억 엔이 넘는 참치를 파는 초밥집이라는 브랜드를 사기 위해 그런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후후, 한국 횟집들이 그런 이치를 알 리가 없지. 그런 돈이 있을 리도 없고.'
과연 한국 낙찰 희망자들이 킬로당 수백만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참치를 낙찰받으려고 할까.
"오늘 우리 도우야초밥은 한국 일식 경영자들에게 매너 입찰이라는 게 뭔지 보여줄 것이다."
히데키는 자신만만하게 경매에 참가했다.
경매 장소는 도쿄 시내의 한 고급 호텔로 준비했다.
도우야초밥의 재정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철저한 준비를 했다.
초청장은 이미 전부 돌렸다.
도우야초밥의 인맥이 닿는 정·재계의 고위 인사들 모두에게 남김없이 초청장을 돌렸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서해호텔 오너인 이선주가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온다고 했다.
덕분에 도우야초밥의 위상은 한껏 올라 있는 상태였다.
정계에서도 무려 두 명이나 되는 대신이 참석했고, 재계에서도 일본에서 10위 안에 드는 그룹의 실세임원이 참여했다.
"경매 참가 업체는 총 몇 곳이지?"
"15곳에서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그중 일본 매장은 13곳입니다."
"다른 한 곳은 서해호텔이고, 그럼 나머지 한 곳은 어딘가?"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입니다. 무슨 외국계 회사 같은데, 아마도 유통업 쪽 종사자 같습니다. 참, 마케미야트러스트에서도 경매에 참여했습니다."
"음…… 마케미야라."
히데키는 조금 자신감이 떨어졌다.
도우야초밥이 아무리 잘나간다 해도 마케미야트러스트 앞에서는 구멍가게일 뿐이다.
그리고 마케미야는 재계에서도 알아주는 미식가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마케미야 회장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밥 한 끼 먹자고 천문학적인 돈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우리가 부를 금액이 얼만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그랜드볼룸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하수영이 큼지막한 참다랑어를 직접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경매 겸 파티 참석자들은 하수영을 보고 박수를 쳤다.
"놀랍습니다. 저런 큰 생선을 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들 수 있는 거죠?"
"50㎏짜리 참치라고 해서 되게 작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크다니……. 참치가 정말 대형 어종이긴 하군요."
"해체하지 않은 참치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정말 큰 생선이군요."
해체쇼는 하지 않았다.
낙찰을 받은 다음 곧바로 참치해체 쇼를 펼치고, 이 자리를 빛내준 귀빈들에게 조금씩 대접할 것이다.
물론 절반 이상의 고기는 홍보를 목적으로 도우야초밥 본점과 2호점에서 손님께 내놓는다.
하수영은 참치해체쇼를 흔쾌히 수락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낙찰자가 해체를 부탁한다면 말이죠.
-하하, 우리 도우야초밥이 낙찰받아서 부탁을 드릴 테니 그런 생각은 안 하셔도 됩니다.
마침내 경매가 시작되었다.
"50만 엔!"
"60만 엔!"
"70만 엔!"
초반에는 자잘한 일식업체들이 앙증맞게 찔끔찔끔 호가를 올리는 레이스를 펼쳤다.
히데키는 귀엽다는 표정을 한껏 지은 채, 중소 일식업체들이 땀을 흘리며 경쟁을 펼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회장, 도우야 코지마가 조용히 물었다.
"히데키, 얼마를 부를 생각이라고?"
"1억 엔입니다."
"우리가 올해 신년 경매행사 때 230㎏짜리 참치를 1억 9,000만 엔정도에 낙찰받았었나?"
"네, 킬로당 82만 엔입니다."
"저 참치는 50킬로그램짜리니까 킬로당 200만 엔짜리 참치가 되는 셈이군."
도우야 코지마는 혀를 내둘렀다.
아마 참치 경매 역사상 이런 가격에 낙찰되는 참치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맛도 환상적이거니와, 우리 도우야 초밥이 단숨에 일본 최고의 초밥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마케팅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지, 암."
귀염둥이 중소업체들의 경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어느덧 호가는 300만 엔을 훌쩍넘어섰다.
히데키는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기다렸다.
경매가 시작하자마자 당장 1억 엔을 불러서 종결시키는 것도 자극적일 것이다.
하지만 도우야초밥은 홍보를 위해 많은 돈과 큰 정성을 들여 오늘의 행사를 준비했다.
주인 된 입장에서 잔치 분위기에 물을 끼얹는 짓은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1천만 엔."
마케미야트러스트가 마침내 나섰다.
서해호텔과 함께 오늘 주요 경쟁자인 두 업체 중에서 한 곳이 드디어나선 것이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면서 호가 올리기에 열중이던 중소업체들은 한 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1천만 엔 나왔습니다. 1천만 엔. 다른 희망자는 없습니까? 그럼 셋을 세고 마케미야트러스트에 1천만 엔에 낙찰……."
"1,100만 엔."
서해호텔이 마침내 나섰다.
히데키는 턱을 쓰다듬으며, 서해호텔과 마케미야트러스트의 경매담당자들을 살폈다.
'귀여운 것들.'
"1,200만 엔."
"1,300만 엔."
"1,500만 엔."
"2,000만 엔."
어느덧 경매는 2,000만 엔을 넘어섰다. 겨우 50㎏짜리 참치에 2억 원이라는 돈이 붙은 것이다.
경매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던 초청객들도 액수가 커지자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2,000만 엔이라는 돈은 그들에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50kg짜리 생선 하나라면 이야기는 다르니.
"3,000만 엔."
"3,500만 엔."
금액은 거듭해서 커지고 있었다.
서해호텔과 마케미야트러스트는 서로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코지마가 물었다.
"어디까지 갈까?"
"아마 5천만, 6천만 엔 정도에서 멈출 겁니다."
"마케미야트러스트는 일본에서 가장 부유한 회사일 텐데."
"아무리 부유해도 겨우 생선 하나에 막 돈을 쓰지는 않죠. 거기는 부동산 회사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는 마케팅을 위해서 저 참치에 큰돈을 쏟아붓는 겁니다."
도우야초밥은 사업적 필요성이 있지만, 마케미야트러스트는 그런 게 없다.
그 차이가 낙찰의 여부를 가릴 것이다.
"서해호텔은? 거기도 한국 제일가는 재벌일 텐데. 우리 회사보다는 훨씬 커."
"거기는 호텔입니다. 귀빈을 대상으로 하는 만찬에 쓰려고 구매하려는 겁니다. 당연히 한계가 있죠. 회사 홍보가 아닌, 접대 목적으로 사려는 거니까요."
마케미야트러스트에서 5,000만 엔을 부르자, 서해호텔에서 잠시 주춤했다.
경매 담당자가 호텔 오너 이선주 쪽을 쳐다보는 게 보인다.
자신의 재량을 넘어선 금액이기에 아마 오너의 의사를 확인하려는 모양이리라.
'지금이다!'
히데키는 이선주의 체면을 구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부하 직원에게 경매속행 의사를 전달하기 전, 미리 준비한 호가 폭탄으로 이 경쟁을 점찍을 것이다.
승자는 바로 도우야초밥이 될 것이다!
"1억 엔."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설마 50㎏짜리 하나에 1억 엔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호가가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다들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심지어 마케미야트러스트 경매 담당자도 예상을 못 했는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후후, 이것이 바로 우리 도우야초밥의 자존심이다!'
1억 엔으로 일본 최고의 초밥집이라는 이미지 버프 효과를 살 수 있다면, 적자가 아닌 흑자다.
"1억 엔 나왔습니다, 1억 엔. 다른 희망자는 없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앞으로 3을 세고……."
"10억 엔."
"10억 엔! 10억 엔 나왔습니다! 10억 엔입니다! 정말 놀라운 가격입니다!"
경매 진행자는 상상을 넘어서는 금액에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히데키와 코지마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방금 10억 엔을 부른 이를 바라보았다.
"저건 또 누구야?"
"모르겠습니다. 외국계 회사이기는한데 요식업계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회장님, 그나저나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뭐?"
"우리도 따라가야죠! 이겨야 할 거 아닙니까?"
코지마는 펄쩍 뛰었다.
"미쳤어, 히데키? 지금 10억 엔이 나왔다고, 10억 엔!"
"그러니 우리는 더 크게 불러야죠! 이대로 프리미엄 참치를 뺏길 수는 없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무리 마케팅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지만, 한 번에 10억 엔을 지출하는 건 너무 타격이 커!"
"회장님!"
"포기해. 어쩔 수 없다."
절망한 히데키는 회장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이미 경매 진행자는 낙찰을 선언한 뒤였다.
"오늘의 상품인 한국산 중금속 무공해 양식 참다랑어 프리미엄 등급은 10억 엔에 낙찰되었습니다! 행운의 낙찰자는 바로 미스터 '지하크'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