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34화
58장 청출어람 주객전도 (1)
수영라면은 전미 지역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200개에 달하는 매장은 비어 있는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현재 매장 200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 연 매출은 35억 달러 이상.
매장을 늘리는 족족 예상 최대 매출은 쭉쭉 증가한다.
"2년 안으로 전미에 2만 개 이상의 매장을 내야 한다!"
발머 스틴은 패기 넘치는 경영 방식을 추구했다.
"윈드밀 매출을 우리 수영라면으로 뛰어넘는 거다! 1조 달러를 넘어서는 게 겨우 꿈은 아니다!"
월가에서는 앞을 다투어 투자를 문의하고 있었지만, 나노소프트는 한 마디로 모든 제안을 일축했다.
"우리도 지금 쌓아둔 돈이 3,000억불이 넘소."
나노소프트는 마땅히 투자할 만한 아이템이 없어서 그간 모이는 현금을 회사 계좌에 묵혀두기만 하고 있었다.
이제 그것을 대방출할 때가 되었다.
나노소프트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수영라면에 대한 투자 확대를 결의 했다.
하지만…….
"1차로 받은 50억 달러만 해도 차고 넘칩니다. 아직 그거 반의반도 못 썼어요."
"투자 확대를 받아서 전미 지역을 단숨에 점령하시죠. 그럼 매출이 더 오를 겁니다."
"현재 레스토랑 자체적으로 영업이 익을 재투자해서 매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돈이 쌓이는 속도를 우리가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사회는 그 말에 익숙한 기시감을 느껴야 했다.
지금 본사도 몇 년째 돈이 쌓이기만 하고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는 상황인데 사내벤처도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번 달에만 1,000개의 신규 매장이 추가로 오픈합니다. 지금도 공격적으로 매장을 내고 있습니다."
"200개에서 1,200개로? 그럼 매출도 6배로 증가하겠군요."
"이러다가 다음 분기 매출은 정말로 윈드밀을 뛰어넘는 거 아닙니까?"
이사회에서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다.
"이번 분기 결산입니다. 윈드밀 매출이 45억 달러, 수영레스토랑 매출이 52억 달러입니다."
"수영레스토랑이 마침내 윈드밀을 제치고 우리 나노소프트 최대 힛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나노소프트의 연간 총매출은 1,200억 달러 정도다.
그런데 올해 영업을 시작한 사내벤처 하나가 분기에 52억 달러를 찍어버렸다.
사티아 아델은 이 결과에 잔뜩 고무되었다.
비록 개발자 출신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나노소프트 최고경영자다.
매출과 이익에 민감해야만 하는 지위인 것이다.
"발머, 수영레스토랑을 더욱 공격적으로 경영해야겠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세요. 혹시 윈드밀이 수영레스토랑을 견인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견인이라니, 윈드밀을 미끼로 내세워서 수영레스토랑 매출을 늘려보겠다고?"
"네. 어때요?"
"차라리 그 반대가 나을 거 같은데. 수영레스토랑에서 얼마 이상 먹을 때마다 윈드밀 인증키를 뿌리는 방식은 어때?"
"아!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군요!"
두 전현직 CEO의 대화에 임원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사티아! 우리는 IT회사입니다! 윈드밀은 우리 회사의 정체성 그 자체구요! 그런데 윈드밀을 라면 매출을 올리려고 사은품처럼 끼워 팔겠다니요!"
오래전에 개발자에서 은퇴한 발머스틴은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IT회사? 두고 보게나. 앞으로 몇 년 후에도 전 세계 소비자들이 과연 우리 나노소프트를 IT 회사로 기억할지, 아니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를 넘어서는 프랜차이즈 요식 업체로 기억할지."
하수영은 밥차를 끌고 촬영장을 들렀다.
장효주가 주연으로 영화를 한창 촬영하는 현장이었다.
그 역시 정태오 감독의 영화에 30억 원을 투자했으니, 밥차를 끌고 찾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현장을 통제하는 조감독이 반쯤 경계심과 의아함을 담은 눈빛으로 맞이했다.
"촬영 스태프들 간식 타임을 위해서 밥차를 끌고 왔는데요."
"제가 정태오 감독님과 10년 넘게 일했지만 처음 뵙는 분이시라…… 혹시 정 감독님께 뭐라고 전달해 드리면 될까요?"
하수영이 자기를 소개할 말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는 그중 가장 효과가 좋을 명함을 골랐다.
"저도 이 영화에 30억 정도 투자 했습니다."
"헉! 투자자셨군요! 어서 오십시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감독은 얼른 하수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는 촬영 동선 검토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정태오 감독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건넸다.
"아, 투자자님! 어서 오십시오."
정태오는 벌떡 일어나서 하수영에게 다가갔다.
"돈만 넣어놓고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서 나름 민망하더라고요. 그래도 투자자인데 밥차 한 번 정도는 끌고 오는 게 도리일 거 같아서요."
"아닙니다. 도리라니요. 그런 거 없습니다. 투자해 주신 것만 해도 저희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지요."
스태프들의 시선은 하수영이 아닌 밥차를 향해 있었다.
너무 젊은 투자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밥차에 뭐가 실려 있느냐, 그 메뉴가 관건이었지.
하수영은 밥차에 실린 메뉴를 공개했고, 스태프들은 놀라워하며 환호했다.
"와, 이거 수영라면이잖아? 한 그릇에 35,000원이라고 들었는데?"
"여기 참치회도 있는데?"
"이게 간식이라고?"
"보급형은 몇 번 배달시켜서 먹어 봤는데 오리지널은 먹어볼 엄두도 못 냈어. 너무 비싸서 못 먹었는데."
"잘 먹겠습니다!"
스태프들은 수영라면 오리지널을 먹어보는 게 전부 처음이었다.
엘릭서로 재배한 고춧가루와 밀가 루 면이 자랑하는 쫄깃하면서도 중독적인 맛에, 몇몇 이들은 눈시울마저 붉어진 채 감격해 했다.
하수영이 특별히 준비한 프리미엄생동참치 회의 식감과 풍미 역시 스태프들의 혀뿌리에 지대한 감동을 심었다.
"맛있어!"
"감사합니다!"
하수영이 데리고 온 매장 직원들은 정신없이 스태프들에게 그릇과 접시를 돌렸다.
남루한 촬영 의상을 입은 장효주가 팔짱을 낀 채 다가왔다.
"오셨어요."
"네, 듣자니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라면서요?"
"네. 촬영 중에 결국 한 번도 안오시는구나 싶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오셨네요. 감사해요."
"그렇게 심하게 바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은 좀 널널한 편이죠."
장효주는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영레스토랑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윈드밀 매출도 껑충 뛰어넘었다면서요? 미국 진출 준비하시느라고 많이 바빴던 줄 알았는데."
"프랜차이즈 관리는 제가 아니라 밑의 사람이 관리하니까요. 전 지시만 내리면 되는 거라서 그렇게 바쁘지 않았습니다. 테라리움 3호기도 이제 완성됐구요."
정태오 감독도 어느새 수영라면 한 그릇과 참치회 한 접시를 들고 슬그머니 옆에 다가왔다.
"효주, 너는 안 먹어?"
"다이어트 중이에요."
"그 몸에서 뭐 더 뺄 살이 있다고 다이어트를 해?"
"쪘어요. 200g. 그래서 다시 되돌려야 해요."
"우리 수영라면은 살이 안 찝니다."
"그래요, 살은 제가 찌겠죠. 저도 알아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엘릭서로 키운 재료들이 잔뜩 들어간 수영라면은 세상 그 어느 음식보다도 건강식이다.
하지만 라면이라는 것 때문에, 염분과 칼로리가 높을 거라는 선입견은 어쩔 수가 없다.
하수영은 정태오에게 물었다.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라면서요?"
"네, 두 달 정도 후면 개봉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편집 작업은 거의 다 완료했고, 오늘 촬영도 아쉬운 점을 채우려고 연장 촬영을 하는 거라서요."
장효주가 대뜸 물었다.
"우리 하수영 투자자님은 얼마 예상하세요? 관객 수."
그 말에 정태오는 귀를 쫑긋 세웠고,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식사 중이던 조감독과 고참 스태프들도 손이 뚝 멈췄다.
하수영은 자신에게 집중된, 긴장된 시선 몇 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천만 예상합니다."
"헉, 이천만이라고요!"
정태오 감독은 깜짝 놀라워했다.
그래도 천만, 천백만 정도 부를 줄 알았는데 이천만이라니.
"이천만이면 우리나라 영화사 역사를 다시 쓰는 겁니다. 현재 최대 관객 수 1위가 1,700만인데요."
"정말 이천만 자신하시는 거예요?"
"물론이죠. 마음 같아서는 삼천만 부르고 싶은데, 그래놓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영화인들이 기록 깰 의욕자체가 사라져 버릴 테니 안 되겠더라고요."
장효주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꼭 수영 씨가 숫자를 고르면 그대로 재현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제가 원래 숫자와 친합니다. 큰 숫자일수록 궁합이 잘 맞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수영 씨가 그렇게 말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거 알아요?"
정태오는 정신없이 끄덕였다.
수영레스토랑이 한국과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쓸어 담고 있는지는 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제는 청담동에 그가 가진 부동산자산들이 별로 대단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정말 이천만에 거실 건가요?"
"이천만 돌파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출연진과 스태프들 전원을 위한 회식비를 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하수영은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서 보란 듯이 들어 보였다.
정태오는 수표에 적힌 숫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회식비로 1억을 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이천만 돌파를 바라는 제 마음입니다. 받아주세요."
장효주도 옆에서 얼른 눈짓을 했다.
"얼른 받으세요. 투자자님 팔 아프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태오는 고개를 넙죽 숙이며 수표를 받아들었다.
"그럼 기도 불어넣어드렸으니 건승하시고,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장태오는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촬영장 외부까지 하수영을 배웅하러 나갔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장효주앞에서 호들갑을 떨듯이 말했다.
"효주, 둘이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 거 확실해?"
"아니라니까요. 왜 그러세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 거면 우리 여동생이나 소개시켜 줄까 해서. 아참, 저분 여자친구는 없으신가?"
"지금은 헤어진 전 여자친구 이야기는 알아요."
"그래? 어떤 사람이었대?"
"사진은 못 봤는데, 저와 정말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황비버섯라면 런칭할 때 CF모델로 저를 쓴 거라고."
"에이, 그럼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닌가?"
장효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요. 하는 행동만 보면 새삼 친절하고 젠틀한데, 그게 묘하게 선을 딱 긋는 거 같은 느낌이 있다니까요?"
"위험하네. 저런 능력남이 밀당까지 그렇게 할 줄 안다고?"
"가끔 조금 자존심이 불붙을 때가 있는데, 뭐 저도 지금은 제 연기 커리어가 더 중요하니까요."
정태오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이야기 들어보니까 내 여동생은 포기해야겠네. 들이댈 엄두도 나지 않아."
"감독님 여동생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했던가요? 늦둥이라서 집안에서 애지중지한다고……."
"아니,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갔지."
"…"
"왜,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우리 투자자님 정도면 누구라도 매제감으로 탐낼 그릇 아니야? 심지어 나이 차이도 궁합도 안 본다는 4살차이라고."
장효주는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살짝 흘리다가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