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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41화 (241/1,270)

프랜차이즈 갓 241화

59장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3)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철현은 힘들게 눈을 떴다. 맥박과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한결이 물었다.

"선생님, 정신이 드십니까? 제 얼굴이 보이세요?"

오철현은 아주 힘들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동공의 초점을 확인한 이한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 소방관만 비번 주지 말고 응급상황에도 좀 비번을 줘야 공평한 게 아니냐?"

"그러게 말이다. 신은 대체 뭐 하는 건지."

두 사람은 그제야 웃으면서 농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 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구호장비를 들고 서둘러 내린 구급 대원이 이한결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 한결 씨? 한결 씨가 여기는 웬일이에요?"

"어쩌다 보니 환자분 근처에 있게 돼서요. 심폐소생술 했고 호흡과 맥박, 의식 돌아온 거 확인했습니다."

"우와, 이분은 정말 천운이 따르네요. 하필 심정지로 쓰러졌는데 옆에 전문 구급대원이 딱 하고 대기 중이었다니."

"옆에 대기 중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뭐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랐던 이한결은 그렇게 둘러댔다.

비번인 동료가 그제야 탄성을 내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운전자분은 어디 가셨지?"

"운전자분?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운전자분은 정작 한 번도 못 봤네."

그제야 운전자에 생각에 미친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운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안 내리신 건가?"

"그럴 리가. 동료가 쓰러졌는데 당연히 내려서 확인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환자 내리는 거 보고 자기는 급히 제세동기 같은 거 찾으러간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제세동기는 애초에 뒷좌석에 실려 있었는데."

"가만…… 그러고 보니 아까 조수 석에서 환자 끌어내릴 때 운전석에 누가 있는 걸 못 본 거 같은데"

둘은 사색이 되어 눈이 마주쳤다가, 얼른 운전석을 확인했다.

차량에는 차키가 꽂힌 채 여전히 시동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운전석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너 봤어? 기억 나?"

"아니, 못 봤어. 누가 내리지도 않았던 거 같아."

"이미 신고는 됐을 거고, 제세동기도 여기 있고, 그럼 쓰러진 일행 놔두고 여기를 뜨는 게 말이 안 되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운전석에 누가 앉아 있는 걸 본 기억도 없지?"

이한결이 가까스로 숨을 참듯이 내뱉었다.

"이 차,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서 온 거지?"

바로 그때 동료가 손뼉을 짝하고 쳤다.

"아! 알았다! 알았어!"

"뭘 알아?"

"이 차 말이야! 이거 자율주행기능있는 차잖아!"

"아, 그럼?"

"운전자가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목적지를 설정한 게 아닐까? 자율주행기능 차인데 당연히 음성으로 명령하는 기능 정도야 있겠지!"

"그렇네, 그렇네."

이한결과 동료는 납득했다는 듯이 감탄했다.

사실 자율주행기능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현재 자율주행기능은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없이, 차량이 혼자 알아서 100% 운행하지 못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 등을 대비해서 운전자가 항상 주행시스템을 감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요, 고생하세요."

"네, 쉬십시오."

이한결과 동료는 구급대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구급차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으, 으악! 저게 뭐야!"

"우, 움직여? 갑자기?"

놀랍게도 오철현을 태우고 온 차량이 갑자기 움직이며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운전석에 아무도 없잖아?"

"누구 명령 내린 사람도 없는데 왜 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저거,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는 거 아니야? 고장 난 거 아니냐고."

"어? 차가 똑바로 가는데? 차선도 잘 지키고 거리 간격도 잘 유지하는거 같아."

그 말대로, 운전자가 없는 빈 차량은 교통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착실하게 주행하고 있었다.

신호 대기가 끝나자 차량은 적절한 속도로 가속해서 방향을 꺾으며,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저거, 저대로 둬도 돼? 신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일단 신고는 해야 할 거 같다. 운전자 없는 차량이 혼자 움직인 거잖아."

이한결은 일단 112에 전화를 걸어서 해당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자율주행기능이 있는 차량이 조수석에 심정지 환자를 싣고 와서 내려놓은 다음, 환자가 구급차에 이송된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자리를 떴다는 건가요?

"그렇다니까요."

-운전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없었던 게 확실하고요?

"네, 그렇다고요."

-…어, 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현재 장소와 그 차량의 번호, 사라진 방향을 일단 먼저…….

"일단 여기가 어디냐면요. 서울 강남구……."

통화원은 대단히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군말 없이 상황을 캐묻고 신고를 접수했다.

오철현은 큰 탈 없이 회복했다.

특실로 옮겨진 오철현은 정신을 차리자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애인, 최승희였다.

"바보. 그러니까 자고 가라고 그랬잖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승… 희… 야."

"무조건 안정 취하래요. 안 되겠어.

언제 또 이런 일 벌어질지 모르니 당장 짐 싸서 우리 집에 들어와요.

새벽에 잘 자다가 또 이런 일 생기면 어떡해요?"

이윽고 의료진이 들어왔다.

주치의를 맡은 중년의 교수가 점잖게 말했다.

"급성 심정지가 왔지만 초기에 매우 잘 조치를 한 덕분에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래플워치를 차고 계셨죠?"

"…네."

"덕분에 프리덤이 119에 즉시 신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래플워치와 스마트폰 단말기가 연동된 덕분에 심정지 징후를 바로 포착할 수 있었거든요. 앞으로도 항상 차고 다니시기를 권합니다."

"…알겠습니…… 다.

"두뇌 기능에 악영향이 없는지는 나중에 회복되면 따로 검사를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교수님! 뇌 기능 손상이 전혀 없는지 간단하게라도 확인할 순 없습니까?"

언제 왔는지, 그제야 박덕준 회장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회장님, 환자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심장에 아무 이상 없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회사 주가가 달렸습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회사보다 주가가 더 중요할 수는……."

"이 친구도 주식으로 칠천억 갖고 있어요! 이 친구한테는 전 재산이 달린 문제입니다! 제가 이 친구였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오철현은 속으로만 조그맣게 맞아, 맞아'라고 중얼거렸다.

창립 멤버인 그는 전 재산의 대부 분이 실비아컴퍼니 주식이었고, 주가가 떨어지면 당연히 그도 망한다.

"야, 철현아. 이거 한 번 풀어봐라.

여기에서 몇 번째 코딩이 잘못된 건지 줄 번호만 불러."

주치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덕준은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수십 줄의 복잡한 코딩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훑어본 오철현은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누가 무슨 코딩을…… 이딴 식으로…… 더럽고 지저분하게… 짠거야?"

"두뇌 기능은 정상이네요, 주치의 교수님."

"……크흠."

"우리 오 대표 멀쩡한 걸 보니 안심입니다. 얼른 돌아가서 발표해야겠어요."

박덕준은 희색이 돼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철현은 그 뒷모습을 빤히 노려보았다.

침대 시트 위에는 박덕준이 던져놓은 코드 서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주치의 교수가 그걸 눈으로 읽어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이거 답은 몇 번인가요?"

잘못된 건 없습니다. 그냥 지저분하게 코딩한 것뿐이죠."

아무거나 답을 불렀다면 오히려 박덕준은 '우리 오 대표가 진짜 머리가 나빠졌네!'라고 크게 상심했을 것이다.

주치의 교수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무튼 프리덤 덕분에 목숨을 살리셨습니다. 저도 프리덤을 쓰고는 있지만 정말 대단한 인공지능 비서를 만드셨더군요. 개발자 출신으로 실비아컴퍼니 대표이사까지 올라가 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주치의 교수의 목소리가 조금씩 은근해졌다.

"혹시 프리덤을 의료업 지원에 쓸수는 없습니까? 만약 프리덤이 본격적으로 의사들을 도와준다면 더 많은 환자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 전체를 생각해서라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데……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교수님."

"예, 대표님."

"저 환자잖아요."

"……죄송합니다."

"이만 쉬고 싶습니다."

주치의 교수는 무척 난감해하다가 물러갔다.

아무래도 박덕준의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한 걸 보고 괜찮은가 싶어서 슬쩍 물어본 모양이다.

병실에는 이제 오철현과 최승희, 둘만 남았다.

"이제 면회는 문제없나 봐요."

"그래, 나도 괜찮아. 점점 의식이 선명해지고 있어."

"근데 교수님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번에도 프리덤이 철현 씨 목숨 살리는 거 도왔다면서요. 만약 우리나라 모든 병원에서 사용하면 좋을 거 같은데."

"그건 내가 결정 못 하는 거야."

"왜요? 철현 씨가 실비아컴퍼니 대표잖아요?"

"그것은…"

프리덤 개발자는 내가 아니고, 그런 걸 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그런 걸 설명하려다가 오철현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어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회사 기밀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중요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 게 낫다.

오철현이 빠른 시간 안에 심폐소생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도로 운전자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이었다.

당시 프리덤의 권고를 들은 운전자들은 차선을 빼주고, 또 녹색불임에도 일제히 움직이지 않는 협조를 보여줬다.

덕분에 오철현의 차는 교통통제 서비스를 받은 전직 대통령 차량처럼 방해 없이 대로를 질주할 수 있었다.

당시 프리덤의 권고를 따른 운전자들은 그 일을 무척이나 신기하게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에피소드를 SNS에 올리면서 당시 상황을 적극적으로 추억하기도 했다.

오철현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여의도 증권가에 알려지자 실비아컴퍼니 주식이 아주 잠깐, 그것도 짧은 폭으로 출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비아컴퍼니는 프리덤이라는 필살기 아이템을 갖고 있기에, 대표이사가 쓰러졌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굳건하게 유지되었다.

초동조치를 매우 잘해서 건강에는 아무 염려가 없다는 실비아컴퍼니의 정식 발표가 나오자, 안 그래도 고공행진이었던 주가가 한 번 더 상한 선을 찍기도 했다.

여의도에 프리덤의 활약에 관한 소문도 돌았다.

"오철현 대표 혼자 쓰러졌는데 프리덤이 심정지인 거 확인하고 신고도 다 하고 주변에도 연락해도 도움을 청했다는데?"

"나도 들었어. 근처에서 밥 먹던 비번 구급대원들이 프리덤 부탁받고 뛰어와서 심폐소생술 했다고."

"진짜 프리덤이 엄청나구나. 근데 왜 주식 매매 관련 조언은 안 해주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그건 절대 안 된다고 거절하는데."

"소문에 프리덤이 홈 버전과 프로 버전이 따로 있대. 근데 프로 버전은 전문적인 분야에서도 지원을 해주는가 봐."

"정말? 근데 왜 프로 버전은 판매안 하는 거지?"

"너무 비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니면 회사가 자기들만 독점하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고, 경쟁사들이 프로 버전 사용해서 앞서 나가면 곤란하잖아."

그럴듯한 추측에 주식 전문가들은 대부분 수긍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오철현은 드디어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수속을 마친 그가 특실을 막 나섰을 때, 사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 여럿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굽니까?"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오철현 씨, 당신을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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