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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47화 (247/1,270)

프랜차이즈 갓 247화

60장 현질은 거들 뿐(4)

홍윤주.

지금 수영레스토랑 본점이 들어서 있는 3호기 빌딩의 지하 1층 전체를 텐프로 유흥술집으로 운영하던 여자다.

지금은 30대가 넘었지만 여전히 미모는 건재하며, 대형 연예기획사오너 백호열의 애인이기도 했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홍윤주도 하수영을 바로 알아보고는 살가운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그렇게 불편하게 퇴거했으니 안 좋은 감정을 내비칠 만도 하련만, 그런 기색은 조금도 없다.

"둘이 아는 사이야?"

황대호 차장검사가 술잔을 입에 대었다 떼며 물었다.

"그럼요. 전에 있던 가게 건물주세요."

"아, 강훈 빌딩?"

황대호도 3호기 빌딩을 아는 눈치였다.

아마 하수영이 매입하기 전, 홍윤주의 텐프로를 자주 들락거렸던 모양이다.

"그 빌딩 한 200억은 넘지 않아?"

"어머, 차장님. 청담 시세를 너무 작게 보신다. 그거 500억은 넘어요."

"그래?"

하수영을 바라보는 황대호의 눈빛이 묘한 기색을 띠었다.

그냥 박덕준 회장과 인연이 있어 중재를 맡은 줄 알았는데, 그런 알짜배기 빌딩을 갖고 있다고?

"이런 아가씨 나오는 술집은 안 좋아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청담이 정말 좁긴 좁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건물주님 염려 덕분에 장사도 아주 잘돼요. 근데 이제 우리 좋은 손님들까지 데려와 주시고, 우리 앞으로 자주 보는 건가요?"

"저도 그러고 쉽지만, 아쉽게도 제 할 일은 오늘로 다 끝나서요."

"할 일?"

"선남선녀 인연 맺어주기요."

하수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검찰과 실비아 양쪽을 눈짓하자, 홍윤주도 비로소 알아차리고 탄성을 냈다.

황대호도 으스대듯이 끼어들었다.

"홍 마담, 여기 이분들이 누구신지 알아? 대한민국에서 이분들 이름 듣고 모르면 간첩일걸?"

"아이, 얼른 알려주세요."

"실비아컴퍼니 창업자분들이야. 실톡 만든 그분들."

"어머, 정말이요?"

그제야 홍윤주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박덕준과 오철현을 번갈아 살폈다.

"자자, 우리끼리 이야기하려니 삭막하네. 얼른 애들 좀 불러와 봐."

"알겠어요."

홍윤주가 직원에게 호출했고, 잠시 후 여자들이 들어왔다.

황대호는 지갑에서 보지도 않고 대충 수표 뭉치 중 한 장을 빼서 팁으로 주기도 했다.

홍윤주 입장에선 조금 놀랐다.

'짠돌이 양반이 웬일이래?'

황대호는 돈 없는 단골손님이다.

검사가 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아무리 물 쓰듯이 돈을 써도 그게 전부 자기 돈은 아니다.

'이 양반…… 요즘 돈 좀 만지나 보네?'

홍윤주의 시선은 파트너 없이 자기 들끼리 앉아 있는 세 남자를 향했다.

박덕준과 오철현, 실비아컴퍼니의 창업자라는 이들.

그리고 여기에 끼어 있는 하수영.

전에 장사했던 건물의 새 주인.

'셋이 무슨 사이지?'

분명 황대호의 새 물주인 것은 확실한데, 어떻게 엮이게 되었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남자들은 비싼 양주와 술을 마다하지 않고 팍팍 시켜가며 웃고 떠들었다.

황대호는 어느덧 홍윤주와 자기 파트너하고만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박덕준과 오철현한테는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수영 포함 셋은 자기들끼리 조용히 술잔을 나누며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에 계산은 해야 하니까.

"형, 그래도 대기업 회장인데 이런 데서 술 상무나 해도 되는 거요? 나 좀 분한데."

"얼씨구. 네가 언제부터 날 그렇게 끔찍하게 여겼다고, 야, 그리고 미래검찰총장 되실 분이다. 술 상무 노릇 그렇게 기분 안 나쁘다."

"내가 꼭 우리 회사 덩치 더 불려서 다음부터 형이 이런 자리 안 나오게 할게요."

"이놈이 벌써 취했네. 야, 계산해야 하는 놈이 취하면 골치 아프다."

박덕준은 하수영을 보고 고마워했다.

"수영 씨, 고마워요. 이런 자리까지 참석해 주셔서. 우리끼리 왔으면 어버버만 하다가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끝났을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꼭 저는 왕년에 이런 데서 많이 놀아보고 회장님은 혼자만 고결한 것 같잖아요."

"아, 그런 의미는 아닌데."

"농담입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 재밌으니까 불편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가 재밌어요?"

"퇴폐한 놈들이 환락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꼴값 떠는 거……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있죠. 볼 기회도 자주 없고요."

박덕준은 지그시 가라앉은 하수영의 눈빛을 보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족관 안에서 열심히 흙을 파고 집을 짓는 벌레들의 생태계.

밖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과 닮았다는.

하수영은 프리덤에게 조용히 물었다.

"잘 기록하고 있지?"

단말기와 연동된 이어폰형 마이크를 통해 프리덤이 대답했다.

「예, 남김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접대받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습니다.」

"백업도 잘해 놔라."

「언제 사용하실 예정입니까?」

"글쎄…… 몇 달 안에 사용할 수도 있고, 평생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거야 저놈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기에 달렸지. 근데……."

하수영은 얼굴이 벌게진 채 파트너와 웃고 떠드는 황대호 차장검사를 지그시 주시했다.

"저 친구 건 평생 보관만 할 거 같다."

「이중에서 가장 실수를 하지 않을 사람이군요.」

"욕심 하나는 대단한 친구니까."

극과 극은 통한다.

황대호는 실비아컴퍼니와의 관계를 꺾어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비대한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영원히 이어나가는 게 현명하니까.

"영원히 보관만 하는 게 바람직한건 맞지."

약점이 될 증거를 몰래 수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이다.

그리고 무릇 보험이란, 보험금을 받는 상황이 영원히 발생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암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큼, 든든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그러면 나한텐 별로 재미없을 거고."

* * *

"뭐야, 기소 포기?"

"네, 검찰이 오철현 대표 음주운전관련 기소를 혐의없음으로 처리했습니다."

서해그룹 함석조 기획실장의 표정이 무너졌다.

"미친 거 아니야?"

"그런 거 같습니다."

"이놈들, 실비아 돈 처먹은 거 맞지?"

"그러지 않고서야 어디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감히 실비아 돈을 처먹으려고 우리 서해그룹에 등을 돌린단 말이야?"

"아주 제대로 미친 거죠."

"허허…… 대체 실비아 놈들이 얼마나 처먹인 거지?"

"적어도 서너 배 이상은 먹이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앞으로도 꾸준한 공급을 보장했을 테구요."

"완전히 배를 바꿔 탔다는 거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황대호 차장 라인만 그랬을 겁니다."

"황대호, 그놈이 감히 부회장님 은혜도 모르고……."

함석조는 가볍게 이를 갈았다.

아직까지 일어난 것은 구속 중지, 보석 석방, 그리고 오철현의 음주운전 혐의없음 처분뿐이다.

물론 실비아컴퍼니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 탈세 혐의는 아직도 수사중이다.

하지만 함석조를 비롯한 기획실은 이미 검찰이 변수를 선택했음을 알아차렸다.

척하면 딱인 상황 아닌가.

된장인지 아닌지를 꼭 찍어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들은?"

"검찰발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언론은 어디까지나 재벌의 편이다.

다만 지금은 한편인 줄 알았던 검찰의 배반 때문에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더 흔들리기 전에 분위기를 바로잡아야 했다.

"넌 지금 바로 언론사 데스크에 전화 한 통씩 바로 돌려. 지금 당장."

"네, 실장님."

지시를 받은 직원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나갔고, 함석조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황 차장한테 조용히 연락해.내가 만나봐야겠어. 왜 이러는지라도 일단 알아야 할 거 아냐."

"다시 회유하실 생각이십니까?"

"부회장님 스타일 몰라? 한 번 문 개는 절대 안 받아준다. 그놈 라인은 이제 버리고 다른 라인 밀어줘야지. 고열태 검사장에 전화 돌려."

고열태 검사장.

그나마 황대호 라인을 견제할 만한 세력을 갖추고 있는 검찰 내 파벌중심인물이다. 물론 황대호 세력에 비하면 미약한 편이긴 하다.

"실장님이 직접 만나실 겁니까?"

"나보다는 이사급에서 나서는 게 모양이 낫겠지. 일단 부회장님에게도 보고해야 하고…… 야, 아무튼 이거 일단 나가리 된 게 맞겠지?"

"황 차장 라인에서 횡령배임을 혐의없음 처분하기 전에 고열태 검사장이 나서줘야 합니다. 한 번 혐의 없다고 처분한 내용을 다시 물고 흔들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난리 났다. 이거 부회장님 아시면 난 죽음인데."

검찰의 배신.

생각지도 못한 비수 공격은 그 어떤 것보다 아팠다.

"고열태 검사장이 황대호를 잘 견제할 수 있을까? 둘이 사이가 어떻게 되지?"

"고열태 검사장이 2기수 위일 겁니다. 나이 차이는 열 살 정도 납니다. 사석에서는 둘이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열태 검사장 말고 키워줄 만한 다른 검사장급 인물은 또 없나?"

"찾아봐야죠. 근데 대검에서는 황대호 차장이 워낙 알아주는 인물이라… 선후배 검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어서요. 최연소 총장으로 벌써부터 소문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부랴부랴 여러 개의 보험을 만들기 위해 검찰 인사 계보를 뒤지던 함석조는 길게 탄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찰에 좀 더 많이 투자를 해놓는 건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 * *

며칠 후.

황대호는 홍윤주가 운영하는 청담텐프로 술집 VIP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기다리던 약속 상대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들어섰다.

황대호는 앉은 자리에서 그를 맞이 했다.

"오셨습니까, 선배님."

"응, 황 차장. 내가 좀 늦었지?"

"아닙니다. 얼마든지 늦으셔도 되는데요."

"고마워."

상대는 바로 고열태 검사장이었다.

황대호는 조용히 술잔에 술을 부어 주며 입을 떼었다.

"오늘 서해그룹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황 차장이 예상했던 그대로, 실비아 횡령배임이 공명정대하게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알았다고 했지."

"제 욕도 좀 하셨고요?"

"적당적당히 흘렸어. 머리 좋고 잘나가는 후배한테 기생해 출세한 주제에 은근히 질투가 있는 것처럼. 내가 생각해도 소름 돋는 메소드 연기였다. 황 차장아, 내가 지금부터 연기자 하면 검찰총장 다는 것보다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받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에이, 우리 고 검사장님 그래도 총장은 한 번 달아보셔야죠. 제가 팍팍 밀어드리겠습니다."

"황 차장도 내일 서해그룹 인물 만나지?"

"예, 함 실장 그 친구와 술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고열태 검사장은 술잔을 들며 혀를 찼다.

"그 친구들도 참, 지금까지 법원만 내내 편애하다가 이제야 허둥지둥 챙겨주려는 꼬라지가 참 웃기단 말이야. 근데 황 차장, 어디까지 갈셈이야?"

"지금까지 둘째로서 늘 맏형한테 밀렸던 서러움이 있는데…… 너무 쉽게 풀어주면 안 되죠.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니 제가 탈 안 나는 선에서 적당히 줄타기하겠습니다."

"그럼 황 차장만 믿고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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