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51화
61장 점검, 그리고 점검(4)
검사의 취조는 보통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검찰의 높은 권위를 보여줌으로써 두려움을 심고, 나아가 수사와 심문자체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검찰이 수십 년 동안 공고히 축적해 온 권위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조성만 검사는 다른 선배들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자신도 그래왔듯이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온통 황금색으로 휘감은 청년 앞에서 왠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일 매출이 기백 억대인 수영 레스토랑 오너에, 시가 550억짜리 빌딩까지 자가로 갖고 있으면…….'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돈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자칭 청담동 주식고수 사기꾼들처럼 남의 돈을 끌어모아 행세하는 게 아닌, 정말이지 알짜배기 자산.
다른 일반 용의자들과는 달리 조금 부담스럽다.
"조성만 검사입니다. 조사 시작하죠. 이름?"
"하수영입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xx번지……."
조성만 검사는 조서를 입력하면서 노트북으로 슬쩍 주소지를 검색해 보았다.
포털 로드뷰에 나오는 집 사진을 확인한 그는 당황한 표정을 필사적으로 감췄다.
'무슨 집이 이렇게 커? 재벌이라도 돼?'
궁금한 마음에 그는 인터넷등기소에 들어가서 해당 저택 등기부도 열람해 보았다.
'1,450억?'
놀랍게도 불과 몇 달 전에 1,450억 원에 매매가 된 내역이 있었다.
등기부상 소유자 이름은 당연히 하수영이었고,
'미친, 스무 살에 1,450억짜리 집을 샀다고? 대출 일절 없이 순 현금으로?'
갑자기 배가 엄청나게 아파온다.
자신은 그 당시 대한민국 최고 명문 대학인 한국대 법학과에 들어갔다고 세상 전부를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있었는데…….
'졸부 집안인가? 하루아침에 금 벼락이라도 맞았나?'
옷 입은 행태를 보면 왠지 유서 깊은 부자 집안은 아닌 듯하다.
"무슨 혐의로 조사를 받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부가가치세 탈세와 건물안전관리 위반 혐의라고 출석요구서에서 봤습니다."
"그에 관해서 소명할 말은?"
"저는 납세와 건물관리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습니다."
"변호사 없이 섣부른 발언을 하면 추후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습니까?"
"네."
"변호사는 왜 대동하지 않았죠? 돈은 좀 있으신 거 같은데, 변호사 구할 돈이 없진 않으셨을 테고."
"돈 버는 족족 사업장에 재투자되기 때문에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1,450억짜리 집을 사……."
조성만 검사는 무심코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지금 수사 대상 앞에서 무슨 말을!'
"경기도에서 청담까지 왔다 갔다하면서 장사하려니 워낙 번거로워서 큰마음 먹고 장만한 겁니다."
하수영은 미동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성만은 민망한 기색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심문을 이어 나갔다.
"여기 혐의 내용을 보면……."
30분이 넘는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갔다.
하수영은 생각보다 얌전한 검사의 취조에 지루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뭐야? 요즘 검사들은 왜 이렇게 공손하게 물어보지? 멱살 한 번 잡아주고, 정강이도 걷어차고 그러던 문화는 이제 없어졌나?'
하다못해 고압적인 말투로 다그치는 것조차 없다.
마치 민원서비스를 받으러 주민센터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역시 내 패션 덕분인가. 이래서 사람은 스타일이 중요해.'
하수영은 괜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시간이 조금 못 되는 심문이 마침내 끝났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보강할 게 있으면 차후에 연락을 드릴 겁니다. 출석 요구에는 지금처럼 성실히 임해주시고요."
"설렁탕은 안 주나요?"
"설렁탕이요?"
"네, 배고파서요. 너무 설레, 아니 긴장돼서 오늘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저런……."
조성만 검사는 시간을 확인하고, 검찰 직원을 불렀다.
"여기 설렁탕 두 개만 갖다 줘."
"네, 검사님. 알겠습니다."
"잠깐, 왜 두 개인 거죠?"
"나도 마침 배고파서 먹을 겁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전 다섯 그릇은 먹어야 되는데요."
"……여섯 개 갖다 줘."
"네, 검사님."
얼마 후 배달된 설렁탕이 들어왔고, 조성만 검사는 희미한 의문을 품은 채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다섯 그릇이나 되는 설렁탕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겨우 한 그릇 먹는 자신보다 더 빨리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식성이 보통이 아니잖아?'
저런 놀라운 식성을 타고 난 덕분에 젊은 나이에 그런 큰 부를 거머쥔 것일까?
"잘 먹었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검사님도 오늘 하루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공무를 했을 뿐입니다."
상대가 손을 내밀자 조성만은 엉겁결에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하수영을 중앙 건물 입구까지 배웅한 조성만은 멍한 기분을 안은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박 수사관, 나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네, 솔직하게."
"좀 많이 이상하셨습니다. 전혀 심문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 하수영이란 친구도 검사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은 태도였고요. 오히려 검사님이 기세에서 밀리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
전혀 반박할 생각이 들지 않는 지적이었다. 조성만 본인도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수영 그 친구, 만약 그걸 노리고 옷을 그렇게 입은 거면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건데요. 한두 번 검찰을 들락거리지 않고서야 그렇게 태연하기 어렵습니다. 진짜 무슨 전과 12범 사기꾼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맞아! 전과 12범 사기꾼!"
그제야 조성만은 깨달았다는 듯이 크게 외쳤고, 수사관은 당황해서 반문했다.
"예? 정말 사기 전과가 있었나요?"
"그게 아닙니다. 지금 박 수사관 말 듣고 깨달았어요. 검찰 조사받으러 포토라인 서는 재벌 회장들 말이에요.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
수사관도 이해했다는 듯이 탄성을 냈고, 조성만은 천천히 흥분을 가라 앉혔다.
하수영한테서 느껴지던 태연함, 그것은 검찰을 수족쯤으로 여기는 재벌 총수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
자신이 평소와 다르게 대처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조성만은 자신에게 이 건을 맡으라고 지시한 상사를 떠올렸다.
'박병석 부장님이 성진우 검사장님 라인이었지?'
어쩌면 박병석이 아니라 성진우 검사장에서 재가가 떨어진 '기획 수사'인지도 모른다.
수영 레스토랑 오너에 1,450억짜리 대저택에 사는 거물이니, 부장 검사급에서 다루는 건 아닐 것이다.
자신은 거물들의 게임판에 체스 말역할을 맡고 뛰어들게 된 셈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성만은 바로 상사인 박병석 부장 검사를 찾았다.
"부장님, 지시하신 일 끝냈습니다."
"그래, 취조는 잘 했고?"
"네, 상대방도 성실히 임하더군요."
"한 번 정도 더 소환해서 취조해. 이번에는 10시간 이상하고, 마지막에 구속 영장 끊어서 집어넣어."
"알겠습니다."
조성만은 박병석 부장의 안색을 찬찬히 살폈다.
귀찮은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지루함이 박병석 부장의 표정에 떠올라 있었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저런 거물을 '기획' 하고 있는 입장인데 잡범을 다루듯이 저렇게 태연하다니.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 같은 3년 차 검사한테 맡긴 것도 의외였다.
'역시 우리 부장님도 보통이 아니시네. 큰일을 벌이더라도 초조한 모습은 절대 안 보인다 이거지.'
조성만은 성진우 검사장의 스폰서 들을 떠올리며, 그중 한 이름에 주목했다.
'주곽렬 회장이 식품 프랜차이즈사업 1인자였지, 아마?'
대번에 그림이 그려진다.
주곽렬 회장이 수영 레스토랑을 집어삼키거나 혹은 무너뜨리기 위해 성진우 검사장 연줄을 이용한 것이 리라.
'내가 어떡하는 게 맞으려나.'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움직이면 박병석의 신임은 조금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하수영 사장은 별거 아닌 조사로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는 거 같은데…'
상황을 보면 하수영이 검찰에 연줄이 있는 거 같진 않다.
그저 가진 게 워낙 많다 보니, 나중에 좋은 변호사를 쓰면 무난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직 어린 나이이다 보니 돈에서 나오는 자신감에 충만해져 있는 상태이리라.
'차라리 저쪽에 한번 붙어 봐?'
하수영한테 검찰 내부의 이런 사정을 은밀히 알려주고 친분을 쌓는 것은 어떨까.
이참에 자신도 젊고 든든한 스폰서 한 명을 만들면, 두고두고 편할 것 같다.
그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끌고 가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성만 검사입니다."
「나 박호진 변호사인데.」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점잖게 자신을 소개했다.
뜬금없는 전화에 조성만은 살짝 의아해서 반응했다.
"네, 그러시군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자네, 혹시 올해 임관했나?」
"아닙니다. 3년 차입니다."
「서울지검에서 3년 차인데 내 이름을 모르나? 요즘 검사들은 다들 왜 이렇게 기합이 빠져 있지?」
"네?"
당황한 조성만은 필사적으로 박호 진이란 이름을 생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펄쩍 뛰듯이 일어나며, 마치 박호진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법원장님. 제가 순간 존함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다른 분으로 오인했습니다."
「내가 법관으로 처음 임관했을 때 자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네, 물론입니다. 알아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됐고, 누구 선에서 내려온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자네가 취조한 분 말이야. 누구 지시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환장을 남발한 거냐고 내가 지금 물었네만.」
"하수영 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성만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분. 오늘 하는 꼬라지 보니까 다음번에 또 소환해서 철야 심문 하다가 구속 영장 칠 각인데. 아닌가?」
"그, 그걸 어떻게……."
「빨리 말해. 누구 기획이야, 이거? 철환이? 범진이? 병석이? 아니면 성진우 그 친구인가?」
중앙지검의 고인물 검사들의 이름이 마치 애송이 대하듯이 주르륵 나열되자 조성만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검찰에 인맥이 없던 게 아니었어…….'
「중앙지법장이 내 바로 5기수 아래인 거 알지?」
"무, 물론입니다."
사실 잘 몰랐지만 조성만은 무조건 알고 있는 것처럼 대답했다.
「영장 어디 한번 쳐보게. 족족 기각될 테니. 자네는 아무것도 모를게 뻔해서 내가 친히 경고해 주는 걸세.」
"네, 감사합니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데 괜한 고래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눈치나 잘 살피고 있어. 내 의뢰인한테 무례한짓 하지 말고, 자네가 설렁탕을 다섯 그릇이나 사줬다고 하도 칭찬하셔서 내가 직접 전화까지 한 걸세.」
이 순간 조성만은 자신이 갈 방향을 선택했다.
"성진우 검사장입니다."
「뭐가?」
"이거 그분 선에서 내려온 기획 같습니다. 박병석 부장의 지시로 시작된 건데 박 부장은 아무것도 모르는거 같고, 그럼 성진우 검사장 의중인 셈이 됩니다."
「…….」
박호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비워놓게. 나와 술 한 잔하지.」
"네! 법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