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54화
62장 쏘아 올린 작은 공(3)
대검 출석요구를 받았을 때, 백호열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인인 홍윤주가 자기 일처럼 걱정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아, 서울지검장이 내 빽으로 있는데 무서울 게 뭐 있어?"
"그래도 대검이랑 지검은 다르지 않아요?"
"걱정 마, 걱정 마. 우리 성진우검사장님 머지않아 총장 다실 분이야."
그는 태평하게 검찰에 출두했다.
심문실에 들어서자 햇병아리 검사 한 명이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이 재생 중이었다.
"앉으시죠. 차는 뭐로 드시겠습니까?"
"그럼 커피로 부탁합니다."
"예. 갖다 드리죠."
처음 보는 햇병아리 검사 앞이지만 백호열은 태연하게 행동했다.
비록 여기가 대검이지만, 서울지검장이라는 인맥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심문은 그의 예상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일어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이름, 주소 정도는 물어봐야 되지 않나요?"
"이미 제가 다 적었습니다. 굳이 힘들게 진술하실 것 없습니다."
"알겠어요."
한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햇병아리 검사가 다시 말했다.
"대충 이 정도면 구색은 갖춘 거 같습니다.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래요, 검사님도 고생했습니다."
소환 출석은 딱 백호열의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검찰은 전혀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고, 정중하고 깍듯하게 대우했다.
말이 소환조사지, 그냥 불러다 놓고 조사하는 척 시간만 끄는 것이다.
검사장급 인물을 옆에 두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성진우 검사한테 갖다 바친 돈이며, 무명 여배우며,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해서 홍윤주와 노닥거리고 있을 때, 성진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 검사장님. 오늘은 검사장님 덕을 많이 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 대표, 지금 비꼬는 건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자네한테 그리 부담이 되었나? 그렇다면 진작 내 앞에서 말을 하지, 이렇게 결정적일 때 뒤통수를 치는 건가?
백호열은 당황했다.
"검사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백 대표 자네, 오늘 대검에서 내 이름을 댔다면서? 나한테 돈 좀 쥐여 줬다고 대검 햇병아리 검사놈들한테 나불나불댔다는 거 다 들었네.
"검사장님? 오해이십니다. 저는 그런 적이 전혀 없습니다."
-실망일세. 자네가 뭘 믿고 등을 돌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지검장이야. 자네가 상상도 못 할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검사장님? 검사장님?"
* * *
성진우는 울분을 토해낸 뒤 전화를 끊었다.
검찰총장은 백호열을 잘 달래라고 했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일개 기획사 사장 따위가 어디서 감히, 대한민국 검사한테…….'
총장이 살살 기는 거야 이해가 된다.
그는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남은 길은 국회의원 진출뿐이다.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당연히 백호열 같은 자금줄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직은 새파랗게 살아 있는 권력을 쥐고 있으니.
'어디 보자. 디스코드 잡지가 폭로를 했다고 했지?'
쓸 만한 아이템이 있는지 캐비닛을 한 번 뒤적이기로 했다.
* * *
하수영은 경기도 무인화 농장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장효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뭐하세요?
"농장 살피고 있습니다."
-저도 농장 구경해 봐도 돼요?
"물론이죠. 근데 여기가 서울에서 거리가 좀 있는데…"
-괜찮아요. 오늘 한가해요. 주소나 찍어주세요.
"알겠습니다."
1시간이 조금 못 돼서 장효주가 매니저를 대동한 채 농장에 도착했다.
"전화하실 때 이미 외출 준비 다하셨나 보네요. 벌써 도착하신 걸 보면."
"누굴 좀 만나기로 했는데 무산됐어요. 남는 시간 뭐하고 보낼까 하다가 사장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 농장 구경해 봐도 되죠?"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무인 농장 내부로 들어선 장효주와 매니저는 내부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특히 버섯을 채취하는 로봇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미래 농장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아요."
"지금 당장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을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저 로봇들도 상당히 비싸겠죠?"
"몇억은 가볍게 넘죠."
"우와……."
"두 분, 식사 안 하셨으면 가볍게 뭐라도 드실래요?"
"네, 좋아요."
하수영은 테이블로 안내한 뒤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윽고 그는 금방 뜯은 버섯과 나물, 그리고 여러 식재료를 가지고 나타났다.
"여기 산채 나물들은 제가 농장 조그만 텃밭에서 따로 키우는 것들입니다."
"이 나물들도 파시는 거예요?"
"아뇨, 팔지는 않고 제가 따로 밥해먹거나 지인들 조금 나눠주곤 합니다. 황비버섯, 송이버섯, 고추, 밀, 이 정도만 상품으로 키우는 거죠."
하수영이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준 산채비빔밥은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비빔밥은 처음 먹어봐요."
"하하, 영험한 비료만 먹고 자란 놈들이라서 그래요."
뭐라고 할까. 하수영이 내놓은 산 채 나물은 지금까지 먹었던 평범한 나물과는 뭔가 달랐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맛과 싱싱함의 우월한 격차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영화 내일 개봉해요."
"드디어 개봉하는군요."
"그래서 좀 떨려요. 잘될 거라고 격려 좀 해주세요."
"제 돈이 30억이나 들어갔으니까 잘될 겁니다."
"이천만 관객 이상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죠?"
"네, 변함없습니다. 무조건 이천만 찍습니다."
"격려받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네요."
장효주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요즘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프라임오일컴퍼니가 프라임 그룹 계열사라면서요?"
하수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룹이라니요. 당치도 않아요. 그냥 자회사 하나 데리고 있는 수준입니다."
"정유사업도 되게 멋있는 일인데, 왜 직접 하지 않으시고 농사만 하시는 거예요?"
"음, 갑자기 왜 이런 주제가 나오는 거죠?"
"이번에 주말 드라마 하나 찍기로 했는데, 거기 여주인공이 상속을 마다하고 농장으로 내려가요. 재벌 딸인데도요."
"아, 캐릭터 해석을 위한 인터뷰입니까?"
"수영 씨는 실존하는 인물이시니까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부동산업을 하시는 걸 보면 속세적인 이익을 싫어하시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정작 가장 큰돈이 되는 기름사업은 남의 손에 맡겨두는 게 궁금하네요."
"기름사업이 가장 큰돈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적어도 농사보다는 규모가 더 크잖아요."
그 말에 하수영은 피식 웃었다.
"효주 씨, 사람은 말이에요. 석유가 없어도 살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석유 없이 어떻게 살아요? 자동차나 비행기, 배를 타려고 해도 무조건 기름이 필요한데."
"차는 전기로 돌릴 수 있어요. 비행기는 해외여행 조금 안 가면 되고요."
"……."
"근데 사람은 매일 밥을 먹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아. 그런 의미였나요?"
"네, 기름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밥없이는 못 삽니다. 농사는 말이죠, 인류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존재하게 될 일입니다."
"하지만 식량은 넘쳐나지 않아요? 보통 다들 국제유가가 얼마인지를 신경 쓰지, 밀가루값이 얼마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아무튼 전 이번 생은 먹는 걸 가장 중요하게 대하기로 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 보니까 언젠가 식량파동 올지도 몰라요. 요즘 들어 계속 관절이 쑤신 걸 보니 조만간 소빙하기 한 번 와서 전 세계 농부들 곡소리 한 번 날 거 같은데……."
"에이, 설마요."
그 뒤로도 장효주는 하수영에게 이것저것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자신이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에 관한 직접, 간접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하수영은 그녀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었고,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아, 맞다. 원스타 백호열 대표님이 요즘 추문에 휩싸여서 정신이 없나 봐요."
"그래요?"
"네, 권력 쪽이랑 안 좋게 얽힌 거 같은데……. 그래도 워낙 인맥이 넓은 사람이니까 금방 해결하겠죠. 전 이참에 좀 크게 걸려서 이 바닥에서 쫓겨났으면 좋겠는데요."
"그런 사람이 돈 긁어모으고 큰소리 떵떵 치며 사는 걸 보니, 연예계 정화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수영 씨처럼 마음 편히 농사짓고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인 거 같아요."
조형물처럼 조용히 흐뭇하게 지켜보던 매니저는 별안간 스마트폰이 연달아 요란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뭐지?'
알림 울리는 걸 보아하니, 뭔가 하나 터진 모양이다.
보통 여기저기서 '이거 들었어? 이거 진짜야? 이거 사실이에요?'라고 온갖 톡이 쏟아질 때, 딱 이런 느낌으로 폰이 난리법석을 떨곤 한다.
폰을 확인한 매니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리가 난 단톡방들 모든 내용을 낱낱이 확인한 후, 기사까지 체크한 매니저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효주야, 아무래도 이거 봐야 할 거 같은데…… 지금 밖에 난리가 났어."
"무슨 일 터졌어요?"
"이번엔 좀 크고 심각하다."
"……뭔데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원스타엔터테인먼트 말인데."
"그 회사는 정말 바람 잘 날 없네. 또 뭐예요? 마약은 저번에 터졌고, 성상납은 그 저번에 터졌으니까, 그럼 이번엔 음주운전인가요?"
"아냐."
"그럼 폭력? 어디 피디 멱살이라도 잡고 내동댕이쳤대요?"
"선주가 원정도박 하다가 걸렸어."
"박선주 선배님?"
원스타엔터테인먼트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남배우의 이름에 장효주는 흠칫했다.
박선주는 국민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톱 레벨 남배우였다.
"그 선배님 도박벽 있는 거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니까…… 근데 그게 이렇게 매니저 오빠가 얼굴 하얘질 정도로 심각한 일인가요?"
"금액이 좀 크다."
"얼만데?"
"300억."
"……."
장효주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박선주가 고액의 출연료를 자랑하는 톱 배우이긴 하지만,300억이나 되는 현금을 도박에 쿨하게 박아 넣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거 혹시…… 도박 이상의 뭔가 있는 거예요?"
"백 퍼센트, 아니, 막말로 박선주가 무슨 돈이 있어서 해외에서 300억이나 되는 돈을 도박으로 날려? 그럴 돈도 없거니와 있어도 걔, 그런 큰돈 해외에 반출하는 법도 몰라."
듣고 있던 하수영이 별거 아니라는듯이 말했다.
"도박이 아니라고 치면, 뇌물 전달이나 마약유통대금 전달, 뭐 그런 것 중 하나겠네요. 300억씩이나 되면 그 질 나쁜 기획사 대표도 끼어 있을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