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59화
63장 백호열 게이트(2)
면회 시간 동안 한참 동안 신세한탄을 하던 백호열은 다시금 정동준의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
"회사 잘 부탁한다, 동준아. 그래도 네가 회사 실무 경영책임자라서 내가 안심하고 큰집 다녀오겠구나."
"시간 금방 갑니다. 잘하면 내년특사로 나오실 수도 있을 테고요."
"그래, 길어봐야 3년이니 참아봐야지."
모범수 석방을 고려하면 최대 3년.
더 이르면 내년 특사로 출소.
다소 고생하겠지만 백호열은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교도소에 들어가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리고…… 윤주 잘 지켜보고 돌봐줘라."
"네,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뭘 걱정하는지 알지?"
"물론입니다. 이상한 놈팡이 꼬이지 않도록 단단히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윤주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걔도 내 성격 알아서 몸가짐주의하겠지만 그래도 여자는 조심, 또 조심해서 관리해야지."
백호열은 아직도 몰랐다.
왜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그 진짜 이유를.
그저 성진우 같은 잘못된 끈을 믿고 친하게 지내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수영레스토랑 가맹점 업무정지 처분.
그것이 이 모든 사태를 불러온 날 갯짓이지만, 최초의 나비는 아마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 * *
"5년 형이라고요?"
"네, 아마 큰 변동 없이 그렇게 정리될 겁니다."
"그럼 5년 동안은 이제 조용하겠네요."
"본인은 모범수 석방이나 특사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 어려울 겁니다. 뒤에서 힘을 써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5년 살고 나오면 저에 대해서도 완전히 까먹겠네요."
"다행이지요."
"다행은 아니죠. 또 한 번 덤벼주면 은근히 재미있잖아요? 근데 이걸로 백호열과 제 인연은 완전히 정리 될 거 같아서, 그게 조금 아쉬워요."
"……."
박호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백호열 씨는 자기가 왜 그런 지경에 처했는지 진짜 원인을 아직도 모릅니다."
"일단 그대로 놔두죠. 그것도 재미있을 거 같네요. 그러다가 나중에 출소해서 나오면…… 그때 알려주는 게 더 극적일 거 같지 않아요?"
"네, 그럼 그건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아참, 5년 뒤 출소하더라도 백호열은 평범한 야인으로 살아야 할 겁니다."
"회사도 뺏기나 보죠?"
"네, 형이 집행되면 회사 이사회에서 백호열을 고소·고발할 예정입니다. 횡령, 배임, 사기, 폭력, 협박, 죄목은 셀 수도 없이 많죠."
"그럼 5년 뒤에 나오기도 글렀겠네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수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방 빼달라고 할 때 조용히 방 뺐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안 생겼잖아요. 왜 그렇게 사람이 마음을 악하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
"아니다. 생각해 보니 정확한 원인은 방 빼놓고 그 원한을 못 잊어서 악감정을 계속 품고 있었던 거였네. 그러게 사람이 쓸데없이 원한을 품으면 안 된다니까. 자기가 잘못해 놓고 왜 되레 자기가 원한을 품는지 몰라."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이번에 젊은 검사 한 명이 큰 도움이 되어줬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도 비리 검사이기는 한데… 제가 원래 그런 친구들이랑은 어울리기 싫어하는데……."
하수영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박호 진이 얼른 말했다.
"검찰에 끈을 만들어놔서 나쁠 건 전혀 없습니다. 나중에 어떻게든 도움이 됩니다. 정 뭐하시면 적당한 선에서 친분 유지만 하시죠."
"그래도 큰 도움이 되어줬으니, 입을 씻는 것은 도리가 아니죠. 한 번 자리 만들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 친구에 관해서 따로 조사한 내용입니다. 한 번 훑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박호진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하수영은 조성만 검사에 관한 조사 내용을 살폈다.
집안 형편, 재산 내역 등등.
그에게 줘야 할 적당한 선물을 고르기 위한 사전 데이터였다.
박호진이 신경 써서 조사한 것이지만, 사실 하수영에게는 별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조성만 검사 역시 프리덤 사용자였고, 그가 현재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고, 또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프리덤, 우형신 중개사님 연결해."
-네, 알겠습니다.
신호음이 울리고, 잠시 후 우형신 중개사가 연결되었다.
-네, 사장님. 우형신입니다.
"20호기 구매는 어떻게 됐나요? 아직인가요?"
-참,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는지 모르겠네요. 안 그래도 지금 집주인이 팔겠다고 말해서 막 연락드리려던 참입니다. 가격은 처음 그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네. 그리고 부탁드릴 게 있는 데……."
하수영이 자세히 설명하자 우형신은 흔쾌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집주인이 더 좋아할 겁니다.
* * *
여당 선거자금 스캔들.
세간에는 '주곽렬 게이트'로 알려진 희대의 부정부패 사건이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이제는 조금씩 잦아드는 중이었다.
'주곽렬 게이트'는 정말 많은 제물을 탄생시켰다.
성진우 서울지검장은 옷을 벗었고, 박병석 부장검사 등을 비롯해 성진우 라인은 줄줄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
몇몇 국회의원 중진들은 치명적인 비판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각 고위공직자 중 십여 명에 달하는 숫자가 사표를 내고 야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바로 최원후와 하진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목숨까지 잃었으니까.
조성만은 다행히도 징계 처분에서 빗나갔다.
박병석 부장검사를 따르는 편이지만, 그는 성진우 검사라인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햇병아리였기 때문이었다.
서울지검 소속 모든 검사들은 혹시 눈먼 돌에 맞을까 봐 숨을 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조성만은 내심 가슴 속에 기대를 품고 있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기다리게.
얼마 전 박호진이 넌지시 일러준 말 덕분이었다.
저번에 준 봉투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 있었다. 무려 3,000만 원이나 되었으니까.
하지만 박호진은 그저 차비, 술값이나 하라고 주는 거라며 분명히 말했었다.
그렇게 기대감에 부푼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드디어 박호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 검사, 오늘 저녁에 잠깐 시간 좀 만들어.
"알겠습니다. 저희 둘이 보는 겁니까?"
-한 분이 더 오실 거야. 복장 좀 단정히 신경 쓰게.
"알겠습니다……!"
조성만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저녁때가 되자 그는 이날을 위해서 미리 맞춰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정장을 꺼냈다.
언제 입을지 모르기에 항상 자동차 트렁크에 뒷좌석에 싣고 다니던 새정장이다.
"오, 조 검사. 오늘 선이라도 봐? 왜 이렇게 쫙 빼입었어?"
"네, 선봅니다. 아주 중요한 선자리예요."
"그래? 잘해봐. 조 검사도 그럼 이제 품절되는 건가?"
"두고 봐. 나중에 왜 그때 선자리 나가는 거 말리지 않았냐고 우리를 원망하게 될 테니까."
"그럴 일 절대 없습니다."
유부남 선배 검사들의 짓궂은 놀림을 뒤로한 채, 조성만은 서울지검을 나섰다.
정문 밖에는 박호진이 이미 차량을 대기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법원장님."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 조성만은 조수석에 오르려고 했지만, 박호 진이 만류했다.
"뒤에 타게. 자네는 오늘 중요한 손님이니까."
"……알겠습니다."
하늘 같은 법원장 출신 선배와 나란히 뒷좌석에 앉다니.
조성만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검은 세단은 부드럽게 강남대로를 달렸다.
승차감에 취해 있던 조성만은 문득 이런 차량은 얼마나 할까 생각해 보았다.
"조 검사."
"네, 선배님."
지금은 검찰청 앞이 아닌 차량 안이기에, 조성만은 전에 당부한 대로 선배라고 불렀다.
"주시는 거 감사히 받고, 큰 욕심부리지 말게. 오늘 그분이 주시는 것만 해도 이미 엄청난 거니까. 자네가 수고한 건 맞지만, 그보다 천배만배는 되어 보이더군."
"……알겠습니다."
대체 뭘 주려는 것일까.
조성만은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차량은 강남을 통과해서 어느덧 청담동으로 진입했다.
마침내 청담동 동쪽 끝에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여기에도 그분 집이 있나 보구나.'
1,450억짜리 청담동 저택이 있지만, 거긴 너무 눈에 띈다.
사람들 눈을 피하기에는 아무래도 고급 아파트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지하 주차장 입구에는 젊고 건장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은 30층까지 있었다.
박호진은 버튼을 누르는 대신, 카드를 꺼내어 인식기에 갖다 댔다.
그러자 최상층인 30층 버튼에 저 절로 불이 들어왔다.
'역시.'
조성만은 속으로 끄덕였다.
하수영은 아마도 이 아파트 최상층펜트하우스를 별장으로 쓰는 모양이다.
"이 아파트는 입주민이나 일반 방문객이 층수 버튼을 누를 수 없어. 오직 카드로만 출입할 수 있지. 입주민이라도 다른 층에는 들어갈 수 없네."
"역시 고급 아파트답게 보안이 철저하군요."
엘리베이터가 30층에 정지하며 문이 열리자, 아파트 출입문 1개가 나타났다.
박호진이 카드를 대자 다시 문이 열렸다.
그를 따라 들어서던 조성만은 집 내부 풍경에 그만 멈칫했다.
'이게…… 집이라고?'
말로만 듣던 펜트하우스의 위엄에 조성만은 전율하고 말았다.
이것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축구를 해도 될 것 같은 드넓은 거실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얕은 깊이의 실내 수영장, 우측에는 실내극장이 있었다.
극장 앞쪽에는 통유리 창가와 바로 붙어 있는 실내 바(bar)가 은은한 조명을 뿌리고 있었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베란다를 등진 채, 한 명의 청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조 검사가 왔습니다."
"음, 수고하셨습니다."
하수영이 천천히 등을 돌리며 시선을 마주치자, 조성만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처음 취조실에서 봤을 때처럼, 똑같이 온통 황금색으로 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몸 전체를 감싼 황금색 광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감이란.
검사 취임식을 했을 때, 검찰총장을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육중한 기운이 온몸을 휘어 감았다.
"조성만 검사님?"
조성만은 순간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검사 조성만!' 하고 관등성명을 댈 뻔했다.
"반가워요. 오랜만에 보네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한테 들었는데 저에게 작은 도움을 주셨더라고요. 저도 그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바쁘신 분을 불렀어요."
"아닙니다."
대체 준비했다는 작은 선물이 뭘까?
"이쪽으로 잠깐 와볼래요? 여기 야경이 참 좋아요."
"네."
조성만은 얼른 하수영 옆에 섰다.
과연 통유리 베란다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야경이 참으로 눈부셨다.
"저건 혹시 뚝섬유원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한강 건너편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건 처음입니다.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습니다."
"금방 지겨워질 겁니다. 원래 풍경이라는 게 그래요. 며칠도 안 돼서 질려 버리죠."
"하하, 이런 절경은 아무리 봐도 지겨워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만."
"제가 예언하죠. 금방 지겨워질 겁니다."
하수영은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오늘부터 이 방 쓰세요. 보증금, 월세는 필요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
"언제까지든 원하시는 만큼 거주하세요. 죽을 때까지 사셔도 됩니다. 그게 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