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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85화 (285/1,270)

프랜차이즈 갓 285화

69장 청담에 지으리랏다 (1)

박성후는 사회초년생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류대학을 졸업했고, 졸업 전에 괜찮은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이 가난한 덕분에 대학 졸업은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을 고스란히 남겼다.

5,000만 원이라는 거대한 빚.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고, 등록금 대출은 차곡차곡 쌓였다.

부모님은 직장이 청담이라며 좋아하셨지만, 덕분에 직장 근처에 자취방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직장을 갓 구했을 당시에는 겸사겸사 근처 자취방을 알아보기도 했다.

"보증금? 에이, 보증금은 없어도 돼요. 2, 3천이면 거뜬합니다."

"2, 3천이 없는 수준이야?"

"월세는 180 정도? 거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됩니다."

"네? 180이라고요?"

박성후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기, 저는 아파트를 구하려는 게 아닌데요……."

"응? 아파트가 무슨 180밖에 안해요. 아니에요, 아니야."

"그, 그럼 쓰리룸인가요?"

"원룸 가격인데요."

"……."

"아, 여기 시세를 전혀 모르시는구나. 그럴 수 있지. 있어요. 혹시 직장이 이 근처?"

"네."

"아아, 종종 있어요. 타지 청년들이 직장 때문에 청담 시세 잘 모르고 집 구하러 오는 경우. 이왕 온 김에 내가 간단하게 지역 시세 알려줄게 우형신 중개사는 쫙 펴진 지도를 레이저 포인트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는 시세가 원룸 하나 최소 보증금 2천에 월 170이고…… 또 여기는……."

청담, 압구정, 신사동 등 강남 주요. 지역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설명을 해줬고, 박성후는 시세를 들을 때마다 혼백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답 없어. 집이 인천 쪽이랬지?"

"네."

"돈 아끼려면 저기 사당 넘어가서 구해야 돼. 여기 살면서는 절대 돈 못 모아. 그냥 개같이 일해서 집주인한테 임대료로 다 갖다 바치는 거야."

돈 없는 세입자라서 무시할 줄 알았지만, 중개사는 친절하게 시세를 설명해 주었다.

참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본인 입으로는 '요새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라는 이유란다.

아무튼 박성후는 결국 인천 고시원에서 청담까지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

'빚만 오천인데 무슨 강남 자취방이야.'

고된 출근길이 이어졌다.

피곤한 몸을 한 채 지하철의 흔들림을 느낄 때면 왜 하필 직장이 청담에 있어서, 라고 잠깐 원망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직장을 못 잡고 있은 건축학과 동기들 푸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마음을 바로 집어넣었다.

초봉 3,600을 주는 건축사무실이라니.

어디 가서 이런 직장을 구하겠나.

부지런히 직장을 다니면서 반년 동안 500만 원의 빚을 탕감했다.

본가에 생활비, 병원비 송금을 하지 않았다면 그보다 두세 배는 더 탕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성후는 자기 생활비는 30만 원이내로 제한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학자금 대출을 갚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구의원 한 명이 빚에 허덕이는 청담동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채무변제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프리덤의 설명에 그는 긴가민가하면서 반응했다.

"정말 빚을 변제해 주는 거야?"

-네, 제가 문의를 해본 결과 신청하면 주인님이 현재 가진 채무가 100% 변제됩니다.

"조건은? 조건이 뭔데?"

박성후는 당연히 심사 통과를 위해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쟁률도 수백 대 일, 막 이렇게 치열할 테니까.

-조건은 없습니다. 그냥 신청만 하면 됩니다. 신청하시겠습니까?

"알았어. 신청하게 해야지, 얼른."

-그럼 신청하겠습니다. ……전액변제되었습니다. 채무 상환 내역을 보여드립니다.

"버, 벌써?"

프리덤이 띄워준 대출계좌 정보를 확인한 박성후는 눈앞이 흐려질 뻔했다.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던 빚이다.

일 년에 500씩 갚고 있으니 10년은 걸리겠지.

아니, 늙어가시는 부모님 소득은 출고 지출은 늘 테니 그보다는 더 걸리겠지.

결국 빚을 다 갚고 나면 모아놓은 돈은 없고, 결국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해보고 일만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나이만 먹어 있겠지.

족쇄처럼 자신의 발목에서 떨어져 나갈 생각을 않던 학자금 대출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프리덤, 로또가 당첨되면 이런 기분이겠지?"

-로또 당첨자들 대부분이 처음 번호를 맞춰본 순간 현실을 부정당한다고 합니다. 지금 주인님의 상태도 그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고마운 일을 해준 분이 누구시라고?"

-강남구의회 하수영 구의원입니다.

"하수영, 하수영, 하수영 의원님……."

절대 그 이름을 잊지 않으리라.

그날 저녁, 박성후는 친한 직장 선배들과 함께 회식을 했다. 비싼 소고깃집이었지만 기꺼이 자신이 샀다.

"우리 박 주임이 웬일이야? 무슨 좋은 일 있어? 로또 2등이라도 된 거야?"

"오늘 학자금 대출 전액 상환했어요."

"뭐? 아니, 아직도 4,500인가 남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한 큐에?"

"청담동 기초의원 한 분이 빚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변제를 대신 해주셨어요. 저 포함해서 혜택받은 사람들이 1만 명이나 된대요."

"이야, 진짜 좋은 일 하셨네."

그렇게 다 같이 축하하며 기분 좋게 술과 고기를 뜯고 있을 때, 회사 대표가 들어왔다.

"뭐야, 너네 법카로 지금 소고기 먹고 있었냐?"

"아니, 그게 말입니다. 대표님. 성후가 좋은 일이 있어서 사비로 우리한테 쏜다고 했습니다."

"야, 신임 삥 뜯을 차라리 법카 삥을 뜯어. 이것들이 양심이 없어 가지고."

"성후가 자기 좋은 일 있다고 먼저 이 가게로 가자고 했단 말입니다."

"됐고, 이따가 이거로 긁어라. 성후는 정 사고 싶으면 다음에 다시 사던가 해."

이도공 대표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자기 법카를 아무렇지 않게 내밀었고, 직원 한 명이 재빨리 받아들었다.

박성후가 나서려고 했지만 옆에 앉은 선배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야, 대표님 말대로 해. 지금 대표님 기분 좋으시다.'

'하지만 제가 산다고…….'

'넌 다음에 삼겹살이나 사. 우리도 사양 않고 마음껏 처먹을 수 있게.'

'그래도…….'

'대표님 이렇게 기분 좋으신 거 별로 없다. 가만있어.'

"대표님, 오늘 미팅 결과가 좋으신 거 같습니다?"

"육천짜리 하나 잡았다."

이도공 대표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다들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오, 우리 사무실에 떨어지는 게 육천입니까? 그 금액 갖고 기분이 좋으신 거 보면 한 달짜리인가 봅니다?"

가볍게 처리해 주고 올리는 매출이 육천만 원.

기분이 적당히 좋아지기에 적합한 아이템이다.

"육선은 육천인데, 6,000만 원이 아니고 6,000억 원."

"……네?"

"6,000억짜리 공사 설계와 감리 맡았다."

"우, 우와! 대박! 6,000억짜리라고요?"

수천억대 공사, 중소건축사사무소로서는 터무니없이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그런 큰 공사를 왜 우리 같은 구멍가게 업체에 맡긴답니까? 건축주가 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대표님, 그 정도 사이즈면 건물도 여럿 될 테고 신경 써야 할 게 한 둘이 아닐 텐데, 우리 사무소 인력 가지고 되겠습니까?"

"건물 하나짜리 공사야. 규모가 크긴 해도 우리 사무소 인력풀로 충분해. 야, 이 정도면 소고기 누가 사야 되냐? 신입이냐, 대표냐?"

"당연히 대표님이시죠!"

다들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6,000억짜리 공사라고 해서 자신들이 그 돈을 다 받고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은 건설회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큰 사이즈 공사의 설계와 감리를 문제없이 완수한다면, 돈 주고도 못 사는 훌륭한 타이틀 하나를 얻게 된다.

'6,000억짜리 빌딩 설계를 한 사무소'

바야흐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공사비 스타트 찍는 게 6,000억이고, 얼마가 추가되는 신경 안 쓴다고 했다. 그저 튼튼하고 멋있고 안전하게만 지어달래."

"대체 그 화끈한 건축주가 누굽니까?"

"프라임컴퍼니."

"헐, 대박. 프라임컴퍼니가 서울로 이사 온다 이사 온다 하더니 진짜 이사 오는 겁니까?"

"그래, 심지어 청담이다. 우리 사무소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 앞으로 오다가다 맨날 보게 될 건물이니까 더더욱 신경 써야 된다."

"알겠습니다!"

"아, 대표님, 오늘부터 우리 회사 간식은 무조건 황비버섯라면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프라임컴퍼니 임원들이 시공 제크한다고 뺀질나게 드나들 텐데요."

"당연하지. 한 6박스 이상 상시 쌓아둬라. 오다가다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비치해 놔."

"염려 마십시오."

***

"실력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사무소 규모가 너무 작지 않나? 설계는 좀 더 큰 회사에 맡기는 게 어때?"

"실력은 확신합니다. 제가 저 사람이 설계한 건물들을 전부 분석해 봤거든요. 시공사 대하는 것도 아주 깐깐하고요. 딱입니다."

"건물 설계도도 분석할 줄 알아?"

"설계도 할 순 있습니다. 자격증이 없어서 안 할 뿐이죠. 그거 따려면 또 시간 잡아먹는 게 많아서……."

"그나저나 이제 시공사를 선별해야 할 텐데."

"이제 슬슬 소문 돌았을 테니 여기저기서 귀찮게 연락 오지 않습니까?"

"연락이야 많이 오지. 전부 대기업이지만, 그래도 역시 10대 건설 회사 중에서 고르는 게 낫겠지?"

"염두에 둔 회사가 있으신 모양이 네요."

"JS건설."

프라임오일컴퍼니는 같은 그룹 계열사인 JS칼텍스와 정유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기왕이면 사업 파트너한테 큰 일감을 주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게 전성렬의 생각이었다.

"공사비 깎아달라는 말을 할 생각은 없는데, 섣불리 눈탱이 맞지는 말아야지."

JS그룹은 이미 정유사업 때문에 프라임컴퍼니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6,000억짜리 공사를 발주하면 받들어 모시듯이 일 처리를 할 것이다.

"근데 자네 건물이니까 공사비도 자네가 내야 해. 자네 돈 전부 법인에 묶여 있잖아. 배당 한 번 할까?"

프라임컴퍼니에 쌓여 있는 현금을 꺼내 가려면 당연히 배당을 해야 한다.

"저 현금 좀 있는데요. 얼마 전에 문화재 보상금 받았잖아요."

"아참, 내가 그걸 깜박했군."

"2조 8,673억 받아서 3,000억은 자선사업에 썼고 사옥에 1조 원 쓴다 치면 그래도 1조 5,673억 원은 남겠네요."

"6,000억이 아니고 웬 1조? 설마 초기 공사비하고 그렇게나 차이가 날까?"

"건물만 달랑 짓고 끝인가요? 안에 살림살이 이것저것 채워 넣어야죠."

"뭘 채워 넣으려고 4,000억이나 예비비를 빼놓는 건가?"

"프라임컴퍼니 사옥 겸, 저만의 전용 커맨드센터로도 활용할 겁니다. IT기기들이 얼마나 비싼데요."

"너무 과한 거 같은데."

"아닙니다. 하수영 농가가 최고로 거듭나려면 그만한 첨단설비를 갖춰야 해요. 언제까지나 송이, 황비버섯, 골든 트러플만 키울 순 없잖아요. 이제 슬슬 수산업이나 축산업진출도 고려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전성렬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농사도 참 아무나 짓는 게 아니군, 하긴, 미국에선 박사나 교수들이 농사 짓는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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