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91화
71장 시작은 500이지만……(1)
-그래, 그럼 진국이 네가 닭장 한번 준비해 보거라.
"삼촌,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하면 될까요?"
-네 욕심껏. 생닭만 제때제때 잘공급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게 어느 정도인가요? 아까는 분명 닭 농장 100개 정도 모으고 싶다고 하셨는데."
-말 그대로 욕심껏. 네가 농가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하든 상관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최진국은 고개를 흘끔 돌렸다.
우리 안에서 나란히 사료를 먹고 있는 소들이 보인다.
수십 마리가 넘어가는 암탉들이 여물칸에 올라서서 소와 머리를 맞대고 사료를 쪼고 있다. 알록달록한 깃털들로 뒤덮인 병아리들도 함께 사료를 쪼고 있다.
"막 한 달에 1만 마리씩 출하해도 그거 전부 사주는 거 맞습니까?"
-으허허허.
"삼촌? 왜 웃으세요?"
-한 달에 1만 마리? 이놈아, 하루에 10만 마리씩 내놔도 다 사주고도 남으니까 그런 건 걱정하덜 말어.
"네? 하루에 10만 마리까지도요?"
-그래, 그러니까 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봐. 주변에 하겠다는 사람들 있으면 끌어들이고,
"한 번 알아볼게요. 그럼 삼촌만 믿고 진행하겠습니다. 근데 생닭 사업은 누가 하는 겁니까?"
중간중간 삼촌이 통화 중에서 옆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들렸다.
최진국은 아마 그 사람이 생닭 사업을 진행하는 지인이라고 생각되었다.
누구인지는 지금으로써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내 친구.
"혹시 박항진 선생님인가요? 그분이 이전부터 귀농하고 싶어하셨잖아요. 농사보다는 소나 돼지 치고 싶으시다고."
-아니야. 네가 모르는 친구다. 작년에 새로 사귀었거든.
"네? 작년에 새로요?"
최진국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우석은 여든이 넘은 나이다. 이제 슬슬 깜빡깜빡할 때가 된 것이다. 게다가 돈은 또 엄청나게 많다.
누가 그 틈을 노려서 뭔가를 얻으려고 접근한 것은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당장 서울 올라올 준비나 해. 이 친구가 바로 계약하잔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올라 갈게요."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최진국은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일어났다.
소를 돌보던 농장 직원들이 지나가다가 바빠 보이는 그를 보고 물었다.
"사장님, 뭐 급한 일 있으세요?"
"지금 서울 바로 올라가려고."
"네? 서울 가신다구요?"
"그래. 아, 그리고 전에 말한 닭치기 제대로 한 번 준비해서 밀어붙여 보자."
"아니, 이제는 닭까지 치시게요?
지금 심심풀이로 키우는 것으로는 부족하십니까?"
사실 키우는 닭이 500마리인지 700마리인지는 잘 모른다.
대충 닭들이 잘 만한 공간 큼지막하게 만들어놓고, 소 농장에 풀어서 키우고 있으니까.
이른바 마당 닭들이다.
어디 팔려고 키우는 것은 아니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삼계탕이나 해먹으려고 소일거리로 키운 것들이다.
직원들도 닭고기가 당길 때마다 한 마리씩 잡아서 먹는다. 최진국한테 특별히 허락을 구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자유롭게 먹으라고 키우는 것들이니까.
"재작년에 소 전염병 돌아서 크게 손해 본 거 기억 안 나냐."
"그거야 보상금 받아서 손해는 안봤잖아요."
"소 마릿수 복구 못 해서 그다음해 남겨 먹은 게 3년 전에 비해서 매우 적었잖냐. 그게 손해 본 거지."
본래 봐야 할 이득에 한참 미치지 못한 것.
사업적으로는 분명한 손실이다.
"한 종목만 매달려서는 안 돼. 이제는 닭도 치고 돼지도 치고 그래야겠다."
"닭 농장은 그럼 울하리 쪽으로 만듭니까? 거기 빈터요."
"그래야지. 최 씨한테는 내가 일러놓을 테니까 일단 오늘부터 터 잡고 있어 봐."
"오늘부터 바로 시작합니까?"
"아, 병아리는 나중에 들여오더라도 닭장은 미리미리 지어놔야 할 거 아니냐."
"감옥식으로 합니까, 울타리식으로 합니까?"
감옥식은 케이지에 가둬서 키우는 방식을 직원이 임의로 빗대어 말한 것이다.
"요새 계란 팔려면 어미 닭을 어떤 환경에서 키웠는지까지도 알껍데기에 다 적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러니 기왕이면 울타리식으로 키우는 게 낫겠지?"
"그럼 족제비들이 와서 닭들 물어갈 텐데요."
"콜리들한테 지키라고 해야지. 그놈들 밥만 축내게 할 순 없잖아."
"설마 콜리들이 닭 잡아먹지는 않겠죠?"
"원래 양 치던 놈들인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원체 머리가 똑똑한 놈들이라 주인 몰래 닭 한두 마리 숨어서 잡아먹을 수도 있어요."
"그럼 누가 머리 위에 있는지 보여줘야지, 걸릴 때마다 사정없이 혼쭐내. CCTV 보면 다 나올 거 아냐."
지시를 마친 최진국은 부랴부랴 작업복을 벗고, 목장 외곽에 있는 간이샤워실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워하면서 온몸에 묻은 소똥 냄새를 지워냈다.
하루 중일 목장에 있다 보면 5분 정도의 샤워로는 냄새가 안 가신다.
한참을 씻어야 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그가 반드시 거르지 않고 하는 짓이다.
바로 50이 다 된 나이에 뒤늦게 얻은 늦둥이, 7살 난 딸을 위해서다.
***
"아빠!"
그의 집은 목장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바람 방향을 고려해서 목장 냄새가 날아오지 않는 한적한 곳에 지은 집이다.
3,000평에 달하는 넓은 정원(시골이라 땅값이 무지하게 싸다) 위에 조용히 서 있는, 방 20개짜리 3층전원저택.
수십 마리의 보더콜리와 놀고 있던 어린 딸이 최진국을 알아보고 우다다다 달려와서 안겼다.
보더콜리들도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몰려들었다.
"아이구, 우리 딸, 잘 놀았어?"
"아빠, 왜케 일찍 왔어? 나랑 놀아?"
"미안미안, 아빠 일 있어서 어디 가야 해."
"출장?"
"응, 출장."
"어디? 어디?"
"저기 남쪽 산골짜기. 아주 멀고 험난해."
최진국은 일부러 그렇게 거짓말을 하다가, 딸의 옷차림을 보고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단정한 나들이용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왔어요? 우리도 준비 다 했어요."
어느새 불쑥 나타난 젊은 아내가 한껏 화사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참고로 아내의 나이는 이제 29세, 늦장가로 얻은 딸 같은 아내다. 당연히 마음껏 도둑놈이라고 비난해도 된다.
아내의 화려한 옷차림을 본 최진국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보, 준비라니? 무슨 준비?"
"서울 간다면서요? 들었어요. 우리도 준비 다 했으니 빨리 가요."
"형태 그놈 입이 참……."
"빨리 가요. 우희도 지금 신났단 말이에요."
서울 출장만 간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내서 따라붙는 처자식.
'오늘도 당일로 돌아오기는 틀렸네.'
가족들과 서울 나들이하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당일치기 출장 일정이 꼬여 버리는 게 난감할 뿐이다.
처자식과 함께 가면 적어도 3박 4일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또 백화점,놀이공원, 빌딩숲 탐험도 일정에 넣어야 한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에, 최진국은 몸을 떨었다.
***
서울에 도착한 최진국은 청담동 호텔에 먼저 객실부터 잡았다.
가족 조합을 보고 미약하게 당황한 프런트 직원의 눈빛을 알아차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아늑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아내가 감탄을 터트렸다.
"와, 청담동 호텔은 달라도 뭔가 다르네요."
"호텔이 다 거기서 거기지. 일단 여보는 우희랑 같이 바람 좀 쐬고 있어. 나는 일 좀 하고 올 테니까."
"알았어요."
아내와 딸을 호텔에 두고, 최진국은 곧바로 최우석을 만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비록 하루 종일 소똥 묻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지만, 소 수백 마리를 사육하는 목장주답게, 그의 차는 은색 신형 벤틀리였다.
목적지는 그도 이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최우석의 오랜 지기 저택이었다. 지금은 죽고 없는,
"삼촌 저 왔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주형신 어르신 사저를 삼촌이 매입하신 건가요?"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매입했어. 그 덕분에 나하고는 친구 사이가 된 거고."
그 말에 최진국은 안심했다.
천억이 넘는 저택을 매입할 만한 사람이라면, 돈을 보고 삼촌한테 접근한 사기꾼은 아니구나.
여전히 그대로인 한옥을 보고 최진국은 감탄했다.
"이야, 주형신 어르신 살아계실 때 그대로인 거 같습니다."
"고마운 친구지. 나한테는 자기 없을 때도 개의치 말고 여기 한옥 써도 된다고 했어."
"정말 좋은 인연이네요."
"그 친구가 곧 나올 거다."
"근데 생닭 사업을 하신다구요?"
"정확히는 생닭이 많이 필요해. 이번에 그 친구가 배달치킨 사업을 하려고 한다."
배달치킨 사업?
최진국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거기 시장 엄청 피바다일 텐데.'
"이미 가맹점 확보 다 끝났고, 보름 안으로 런칭할 모양이다."
"보름 안에 런칭을 하는데, 설마 이제서야 생닭 공급처를 알아보고 있단 말씀이세요?"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냐. 생닭 공급처는 이미 구해놨어. 서해식품에서 받기로 했다. 한 달에 최소 6,000만 마리 이상 의무 공급하는 걸로."
"한 달에 6,000만 마리요?"
최진국은 입이 쩍 벌어졌다.
이건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손이었다.
"근데 서해식품만 믿고 있으면 안될 거 같다는 게 이 친구 생각이라서. 자동차 회사도 부품 공급처는 두 군데 이상 뚫어놓고 서로 경쟁도 시키고, 위험도 줄이고, 그러잖냐?"
"그렇죠."
"의무 물량이 6,000만 마리라는 거지 실제로는 한 달에 1억 마리 이상 필요할 거야. 서해식품도 그걸 알고."
"삼촌, 이거 제가 하고 싶습니다. 삼촌이 그분께 잘 좀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네가 얼마나 잘 보이느냐에 달렸지. 아, 이제 오는군. 하 의원,여기 이 우직해 보이는 놈이 내가 말한 조카일세."
최우석이 저쪽을 보며 반갑게 인사하자 최진국도 얼른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젊은 청년을 보고 최진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너무 젊어서 놀랬드냐? 네 처보다 젊지?"
"처음 뵙겠습니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최, 최진국입니다."
최진국은 정신이 살짝 혼미해진 채로 악수를 나눴다.
젊어도 너무 젊다. 삼촌의 새 친구가 이런 사람이라니.
"이래 봬도 청담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재벌이야. 가진 땅으로 치면 나하고는 비교가 안 돼."
"정말 대단하십니다. 젊으신 나이에……."
"아닙니다. 그보다는 먼저 양계 이야기부터 할까요?"
하수영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닭은 기본적인 품질만 갖춘다면 출하량이 얼마든 간에 저희가 매입하겠습니다."
"그럼 독점 계약입니까?"
"저 말고 다른 판매처가 생긴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하지만 물량이 남아서 처치 곤란할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 드릴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하수영이란 사람에 대해 믿음이 생겼다.
"다만 부화장까지 함께 갖춰서 운영하셨으면 하네요. 매번 병아리를 일일이 사와서 양계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리스크가 높지 않겠습니까?"
"초기비용이 많이 들겠군요. 하지만 리스크 관리라는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최진국은 굴릴 수 있는 여유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부화장을 추가하는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용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투자를 하시려고요?"
최진국은 투자를 받는 것은 꺼려졌다. 결국 양계 수익까지 상대와 나눠야 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저야 생닭만 잘 받으면 그만인데 열심히 고생하시는 수익에 빨대를 꽂을 순 없죠. 구매보장으로 도와드리겠다는 겁니다."
"구매보장이요?"
"일단 1억 마리 구매 계약을 맺고, 구매대금 전액을 선금으로 드리지요. 그럼 양계장 구축 비용에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