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05화 (305/1,270)

프랜차이즈 갓 305화

74장 바다의 왕자(3)

두 남자가 굉음에 놀라서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

하수영이 모르는 얼굴, 아마 주변을 거닐던 행인이나 여행객인 모양이었다.

"엄청 큰 소리가 들렸는데?"

"와, 저길 봐! 차가 뒤집어져 있어!"

그들은 나뒹그러진 람보르기니 레플리카(강조)를 보고 호들갑을 떨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대리기사가 그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사람들 아주 운이 좋았네요. 사장님 아니었으면 아마 내년 오늘이 제삿날이 됐을 텐데요."

"오늘 죽을 팔자는 아니었던 거죠."

"근데 캠핑카가 원래 이렇게 다 튼튼합니까? 언뜻 봐도 시속 250은 넘어 보이던데,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3.5세대 탱크 타고 있는데 자전거가 와서 박았어요. 어떨 거 같으세요?"

"……."

"저래 봬도 차체가 통째로 티타늄합금으로 되어 있어서요. 그리고 무게가 몇 톤인데요. 저런 가벼운 스포츠카 따위를 겁내면 창피하죠."

"그, 그렇군요."

"고속도로에서 화물차가 뒤에서 들이박아도 탑승자는 모두 무사할 겁니다. 제가 안전을 가장 중요시하는 성격이라서요. 일단 내려서 상황을 봐야겠어요."

하수영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안전 벨트를 풀었다.

"나는야 바다의 왕자, 당신은 음주운전범, 하지만 내 덕에 넌 살인 피했어. 기적이 일어난 거죠, 노예들 안 죽었어요. 만세삼창 올여름은 음주범 검거."

하수영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차에서 내렸고, 따라 내리던 대리기사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노래도 있었습니까?"

"그냥 개사한 겁니다."

"노예들이 안 죽었다는 건………."

"앗, 그건 실수예요. 설마 제가 저를 위해 일하는 소중한 직원분들을 노예로 생각할 리가 있겠어요?"

"……."

"아무튼 저 친구는 오늘 제 덕분에 살았네요. 하마터면 얄짤 없이 살인자 될 뻔한 거 구제해 줬잖아요."

간이 화장실에는 이도공 건축사를 포함한 6명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만약 프리덤이 캠핑카 퍼포먼스를 강제로 운전해서 가로막지 않았으면,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술 마시고 시속 270km 이상으로 밟다니,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네요."

람보르기니 레플리카 (강조)는 저만치 뒤집어져 있었다.

앞부분은 제대로 박살이 났고, 뒷바퀴는 휠이 휘어진 채 볼썽사납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운전석 가까이 다가간 하수영은 코를 찡그렸다.

"아우, 여기까지 술 냄새가 나네요. 이 정도면 혈중 알콜 농도가 0.2%는 되겠는데요?"

"면허취소 수준의 두 배네요. 근데 그걸 냄새만 맡아보고 아십니까?"

"짐작이 그렇다는 거죠."

대리기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그나저나 제가 사정이 있는지라……."

상황을 보아하니 서울까지 대리운전을 하는 건 글렀다.

그렇다고 교통사고가 크게 난 상황에서 발을 빼는 것도 민망했기에, 그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일단 저와 함께 얼마간이라도 여기 있어 주실래요? 대신 시간당 10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아이구,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근데 굳이 그러시는 이유가……."

"경찰 오면 증언 좀 도와주십사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대리기사는 그렇게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감을 보였다.

화장실에서 막 나온 이도공 건축사와 직원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하수영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회장님, 이게 무슨 일… 차가 왜 여기까지 들어와 있…… 흐에엑!! 저게 뭡니까! 스포츠카가 뒤집어져 있어요!"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까 일단 캠핑카 안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고 있어요."

곧 경찰 오는데 만취한 사람들이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된다.

어차피 블랙박스에 자세한 영상이 담겨 있으니, 직원들은 일단 캠핑카안에 들어가 있게 했다.

하수영은 뒤집어진 람보르기니 차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도 숨은 붙어 있네요."

"피가 많이 나는 거 같은데…… 꺼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급요원이 아닌 일반인이 잘못 꺼내다가 오히려 부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때를 대비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지만, 굳이 저런 놈을 위해서 착한 사마리 아인 법을 준수하고 싶진 않네요."

대리기사는 그 말에 혀를 차며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저놈이 언제고 운전으로 사람 죽일 줄 알았는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었군요. 근데 용케 그 액운을 피해갔어요."

대리기사는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고 있는 두 남자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들은 아직 모르는 거 같았다.

만약 하수영이 오늘 여기 없었다면, 꼼짝없이 저 람보르기니 짝퉁카(강조)가 간이 화장실을 덮쳤을 것이고, 저들도 죽거나 불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잠깐만, 저 버스 한번 봐봐. 뭔가 부딪힌 자국이 있어! 옆쪽에 좀 찌그러져 있는데?"

"아, 저 람보르기니가 와서 부딪친거 같…… 뭐야? 저기 안 부딪쳤으면 화장실 덮쳤을 각인데?"

"헉! 그럼 우리도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겠네? 아까 부딪치는 소리 났을 때 우리 화장실 안에 있었잖아?"

"그렇네!"

상황을 파악한 두 남자는 호들갑을 더욱 크게 떨다가, 그제야 하수영을 발견했다.

하수영은 눈웃음으로 작게 인사했다.

"피탄 차주입니다. 근데 버스 아니에요. 자가용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꼭 버스처럼 크게 생겨서……."

"저렇게 둥글고 예쁘게 생긴 버스보셨나요? 여행용 캠핑카예요. 버스아니라구요."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신고했으니 곧 경찰이 올 겁니다. 기다리죠."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와 경찰차량이 나타났다.

구급대원들은 조심스럽게 전복된 차량에서 혼절한 운전자를 꺼냈고, 역하게 풍기는 술 냄새에 경찰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부상 정도를 확인한 구급대원들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거 부상이 너무 심한데……."

"척추뼈가 부러진 거 같아. 이 정도면……."

의사는 아니지만, 구급대원의 눈으로도 치명적인 척추신경 손상이 한눈에 보였다.

경찰들은 들것에 싣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음주 정도를 측정했고,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10.23%? 이거 완전히 만취잖아? 이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고? 죽으려고 작정을 했네, 했어."

"맞습니다. 그 정도면 자기든 남이든 누군가를 죽이려고 작정한 거죠."

하수영이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자 경찰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신고하신 분이신가요?"

"네, 저 람보르기니 레플리카와 부딪친 차주가 바로 저입니다. 저기 보이시죠?"

하수영은 정차된 캠핑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경찰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캠핑카를 도로에 잠시 정차 상태하고 안에서 저 람보르기니 레플리카를 멀리서부터 보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음주운전인 걸 알겠더라고요. 그렇죠, 대리기사님?"

"네, 그렇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아, 대리기사를 부르셨었군요."

"네, 직원들과 회식을 하고 대리기사님을 불러서 해운대 서해호텔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직원들이 저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보니까 저 람보르기니 레플리카가 화장실을 향해서 시속 270km 이상의 속도로 질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혹시 입증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4k 블랙박스에 생생하게 녹화 중이었거든요. 스피드 측정기능도 있어서 실시간으로 속도 확인도 가능합니다. 전부 중앙서버에 기록돼 있습니다."

"주, 중앙서버요?"

경찰은 살짝 머뭇거렸고, 하수영은 설명을 계속했다.

"아무튼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제 차로 화장실을 가로막았습니다. 제 차가 튼튼하니까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호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아이구, 희생정신이 투철하십니다. 아무리 차가 튼튼해 보인다지만 직원들을 살리려고 굳이 갖다 막으시다니……."

"별로 희생정신 같은 건 아닙니다. 그런 거라면 여기 대리기사님한데, 죄송한 일이잖아요. 제가 이분을 희생시킬 권리는 없는 걸요."

대리기사도 눈에 힘을 주어서 말했다.

"맞습니다. 시속 200이 넘는 속도로 박았는데도 차 안에서는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형사님, 탱크에 자전거가 와서 들이박는다고 탱크병이 뭐 다칩니까? 안 그래요?"

"이야, 그걸 또 이렇게 응용하시네. 마음에 들어요. 기사님."

"하하, 제가 원래 한 응용력 합니다."

대리기사는 가볍게 웃고는 정색을 한 뒤 말했다.

"형사님, 음주운전한 그놈 여기 해운대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마린시티 펜트하우스인가 사는 놈인데 밤이면 밤마다 스포츠카 끌고 폭주해서 사람들 공포에 떨게 하는 놈이에요."

"압니다. 제 건너건너 지인의 아들도 저놈 차에 치여서 한쪽 다리 신경마비 됐습니다."

아까부터 경찰 한 명의 안색이 굳어 있는 걸 보니, 그런 사연이있었던 모양이다.

대리기사가 맞장구를 쳤다.

"오늘 저놈이 제대로 임자 만난 거죠. 하마터면 사람 여럿 죽일 뻔했잖습니까. 형사님, 나중에 증언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연락 주십쇼.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럼 필요한일 생기면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십쇼."

경찰들은 사고현장을 촬영하는 등 여러 가지 증거를 남기고 있었다.

캠핑카 측면에 난 흠집도 사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난 경찰이 감탄했다.

"와…… 시속 270m로 박았는데도 이 정도 흠집으로 끝인가요? 캠핑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튼튼한 겁니까?"

"군용 잠수함 선체에 쓰이는 티타늄 합금 통짜로 만들어서 그래요. 다른 캠핑카는 어림도 없죠."

"잠수함이라고요?"

경찰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됐다.

"이거는 수리도 안 돼요. 수리비가 아예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이 들거든요. 차량 바꿔야 합니다."

물론 주문한 신차가 오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타고 다녀도 된다.

차의 안전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니까. 다만 미관상 보기 싫은 홈집이 생겼을 뿐이다.

"차 물어주는 건 걱정 없을 겁니다. 그 친구, 있는 집 자식이라고 나름 이쪽에서 유명하거든요. 듣자니 모 재벌가 손주라는 소문도 있고, 아무튼 그래요."

"에이, 재벌가 손주는 아닐 겁니다. 그런 친구가 뭐하러 람보르기니 짝퉁카를 타고 다녀요? 그냥 적당히 있는 집 자식이겠죠."

경찰은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나저나 그 친구도 안됐네요. 보아하니 너무 심하게 다쳐서 살아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할 거 같던데……."

"앞으로 그 친구 때문에 평생 누워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미리 구제받은 셈 치죠. 음주운전 그거는 못 고쳐요. 자기가 죽든가 손이 잘리든가 해야 고쳐집니다."

하수영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캠핑카를 타고 서해호텔로 돌아갔다.

야외 주차장에 정차 후, 하수영은 곯아떨어져 있는 사무소 직원들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기사님, 죄송한데 오늘 서울까지는 못 갈 거 같네요. 이분들 이대로 재워야 할 거 같거든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저와 20분 정도 함께 계셨죠? 대리비 포함해서 10만 원 드리겠습니다. 대리운전 어플은 서해호텔까지만 운행한 걸로 처리했고, 이건 따로 현금으로 드릴게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서울행은 무산됐지만, 소요한 시간을 보면 대리기사 입장에서는 전혀 아쉬울 게 없는 돈이었다.

다음 날, 직원들이 눈을 부스스 떴고 하수영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이도공은 놀랐다가, 안도했다가, 마지막에는 우려를 보였다.

"회장님께 폐가 되지는 않을까요? 그 음주운전자 입장에서는 회장님께 시비를 걸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그놈하고 부딪친 것도 아니고 여러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화장실 앞을 가로막은 건데, 제 잘못은 전혀 없죠."

"그야 그렇지만, 운전자 가족 입장에서는 회장님이 가로막지만 않았으면 그 운전자가 덜 다쳤을 거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요. 제가 돈과 인성이 반비례하는 사람들을 워낙 많이 겪어 봤다 보니까 그런 생각부터 드네요."

"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돈 없어서 람보르기니 레플리카 타고 다니는 놈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요?"

이도공과 직원들이 호텔 객실로 올라가고, 하수영은 캠핑카를 끌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익숙했다.

-여기 해운대경찰서 이재진 계장입니다. 어제 현장에서 봤었는데 기억 나십니까?

"아, 기억납니다."

-저기…… 가해자는 입원했고 법무대리인이라는 변호사가 경찰서로 찾아왔는데, 일이 좀 커진 거 같습니다.

"일이 커지다뇨?"

-그 음주운전자가 5대 재벌, 그러니까 라테그룹 재벌 3세더라고요.

"아니, 근데 왜 짝퉁카를 타고 다녀요?"

-그거 짝퉁카 아니고 진품카랍니다.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하여튼 아우디 관리 밑에 들어가고부터 계속 하향세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