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46화
84장 병원과 갑옷의 공통점(2)
"영리병원이요? 에이, 돈 벌 거면 애초에 병원 안 샀어요. 병원을 상대로 장사를 했겠죠."
"아, 그러시군요."
하수영이 딱 잘라서 말하자 허준혁은 그 부분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내 앞에서 대놓고 말을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허준혁은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언젠가 영리병원 허용을 대비해서 미리 포석을 깔아놓을 것이라고 여겼다.
'결국 언젠가는 이 나라에 영리병원이 전면 허용된다. 이미 제주도가 출발선을 끊었고.'
한국은 오래전부터 서해그룹을 중심으로 영리병원 법안 통과 로비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자본가들이 병원 사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환자의 목숨이 사고파는 물건처럼 전락하고 말기에, 정부가 계속 이리저리 틀어 막아왔다.
그래서 지금 재벌들은 설비, 약제판매 등 병원을 상대로 한 장사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 그쳤다.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제주도에 한정해서 영리병원이 딱 한 곳만 허용되어 있습니다. 매우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지만요."
"건강보험 완전 열외, 환자는 외국인만 가능, 뭐 그렇다고 들었어요. 도민들에 대한 역차별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허가취소 행정소송 때문에 병원오픈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영리병원 이슈는 항상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게 될 겁니다."
"돈이 얽히면 다 그렇죠."
"청담수영병원이 여기에 기름을 끼얹으셨죠. 아니, 기름 정도가 아니라 50만 톤급 유조선을 갖다 박은 셈입니다."
프라임오일이 '하수영의료재단'을 설립하면서 1차로 출연한 기금만 10조 원이다.
당연히 의료업계는 술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병원, 의사들 눈에는 이사장님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크게 투자하는 것으로 보일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보는 관심 없습니다. 저는 제 유권자들의 눈만 바라봅니다."
"허어, 청담에 사는 분들만 유권자인 게 아닙니다. 언제까지 기초의원만 하실 게 아니잖습니까."
"네? 기초의원만 할 건데요?"
"……."
하수영의 주저 없는 반문에 허준혁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시의원만 돼도 지금 제가 하는 사업체에서 상당수 손을 떼어야 하는 데, 그러면서 하는 일은 늘어나고 책임만 커지는데, 제가 뭐하러 구의원 이상으로 올라갑니까?"
"……아, 그러시군요. 몰랐습니다."
허준혁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 정치에 몸을 담은 이상,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저 말 역시 블러핑일 것이다.
"정책실장님이 그거 하나 묻자고 이유 없이 먼 길을 오셨을 리는 없을 테고, 얼른 용건을 말씀해 주시죠."
하수영이 재촉하자 허준혁은 잠시 머리를 가다듬었다.
"혹시 서울지역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실 계획이 없으십니까?"
권역외상센터.
요단강 건너기 직전의 중증외상환자를 살려보기 위해 만든 외상센터를 일컫는 말이다.
정부로부터 지정을 받은 병원은 외상센터를 설립해서 운영하는 대신 운영자금을 지원받는다.
"서울 외상센터가 개소하려면 아직 몇 년 남았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만 없는 상황이죠. 국립중앙의료원에서 3년 후 개소할 예정이긴 합니다만, 그것도 아마 지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민간병원에 맡기고 싶으시겠다는 건가요."
"얼마 전 대대적으로 의료진을 모집하셨잖습니까. 지금 청담수영병원은 서울권 외상센터를 운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수영병원이 워낙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덕분에, 갈 곳이 없던 우수한 기피과 의사들이 지금 병원에 가득 모인 상황이다.
"내부적으로 서울 외상센터장을 맡아주시기로 했던 반정후 교수님이 얼마 전 거절 의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분, 우리 병원 외상외과장을 맡아주시기로 하셨으니까요."
"아, 기억하시는군요."
"그럼요. 우리 병원에 있는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은 한 명 한 명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
"그분 말고도 외상외과의도 상당수계약을 했는데, 그래서 중앙의료원외상센터 개소가 차질이 생겼나 봅니다."
"차질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는 개소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수영병원에서 얼마나 현질을 해댔는지, 국내에서 놀고 있는 생명필수과 의사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지금 수영병원은 펠로우와 교수들만 득실거리고, 전공의는 백사장의 바늘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말까지 나왔다.
TO에 제한을 받는 전공의와 달리, 전문의 이상의 인력을 현질로 모조리 쓸어 담았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제시하셨기에 반정후 교수가 중앙의료원센터장 자리를 박차고 수영병원으로 들어갔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실수령 5억 5,000만 원 보장했습니다. 자녀 장학금과 차량 제공, 의료사고를 대비해서 보험이나 소송지원 같은 보호 정책도 약속했고요. 아, 우리 병원에서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금전적인 책임은 병원에서 집니다."
"의료사고를 병원에서 진다고요?"
"그럼요. 원래 음식점에서 서빙 직원이 손님한테 실수로 뜨거운 물을 부어도 가게 사장이 치료비 물어줍니다. 제가 본업이 음식점이라서 잘 알아요."
"환자한테 먼저 물어주고 그 다음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고의로 저지른 거면 범죄니까 당연히 구상권 행사하겠지만, 고의가 아니라면 가게 사장이 지는 게 맞죠."
"……."
허준혁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면 적자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권역외상센터 운영이라. 중앙의료원 센터 개소할 때까지 임시로 운영을 해달라는 겁니까?"
"네, 수영병원만큼 충분한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이 없어서요. 다른 곳은 여유가 빠듯합니다. 대신 센터 운영에 필요한 돈은 전액 국가에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지원해 주나요?"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건복지부는 하는 거 봐서 서울 권역외상센터를 아예 수영병원으로 지정한다는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
수영병원에서 잘해낸다면 굳이 중앙의료원에 다시 개소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아, 돈은 됐구요. 혹시 행정구역변경 가능할까요?"
"예? 행정구역이요?"
"네, 지금 수영병원 부지가 삼성동이거든요. 여기를 청담동으로 행정구역을 바꾸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수영병원은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청담동을 마주 보는 삼성동에 위치한다.
대로를 경계로 행정구역을 편성한 것이기에, 하수영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행정구역 편성이 지저분해진다.
일단 허준혁 정책실장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아니, 이건 보건복지부 장관이 와도 선뜻 발언을 못 한다.
"설마 못 해주나요?"
"그것은 제가 섣불리………."
"돈은 됐다고 했는데, 현금 지원같은 건 없어도 돼요. 행정구역만 살짝 바꿔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허준혁은 결국 이쯤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행정동 변경은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렵다.
특히 강남구처럼 사람이 밀집해서 살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곳이라면 더더욱.
"병원만 딱 빼내서 청담동으로 편입하면 가능할 거 같은데요. 다른 주민들 사는 땅을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요."
"삼성동 주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청담동 주민들은 좋아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 청담동 주민들이 더 격하게 관심을 갖고 바라볼 거고요."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행정구역을 바꾼다는 것은……."
"지원금 없이도 서울 외상센터를 운영한다고 하잖습니까. 지도 선 하나 바꿔 긋는 것만으로도 수십억, 수백억을 아낄 수 있는 일입니다."
"……."
돈 문제는 행정논의에서 언제나 프리패스 키워드가 된다.
겨우 주소지 이름만 바꿔주는 대가로 당장 수백억을 아낄 수 있다는 말에는, 다들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실무논의를 마치고 재가를 올렸지만…….
"행정동 구역 바꾸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행정 관할은 물론이고 선거 관할까지 두루두루복잡하게 얽혀 있어. 괜히 복잡한 일에 신경 쓸 생각하지 말아."
"장관님. 하지만……."
"그만, 어차피 이거 우리 보건복지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아니야."
"……."
"쓸데없이 일 키우려고 하지 말아. 알겠나?"
"예, 장관님."
내각 재신임을 노리는 장관 입장에서는 괜히 쓸데없이 일을 키우는 걸 원치 않았다.
결국 청담수영병원의 서울 권역외상센터 지정은 흐지부지되었고, 허준혁 실장은 하수영한테 할 면목이 없었다.
다만 하수영한테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무산됐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아쉽네요. 행정동만 청담동으로 바꿔주면 됐는데.]
허준혁은 고민 끝에 죄송하다는 장문의 답문을 보냈다.
***
그날 저녁, 허준혁은 동료들과 함께 야근을 하던 중 포털사이트에 뜬 속보를 보았다.
[수영청담병원, 한국 최대 규모의 종합응급센터 짓는다!]
[다음은 본 기자가 최윤석 병원장과 면담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수영청담병원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지 않나요?
-중증외상 환자를 중심으로 출산이 긴급한 산부, 심근경색 환자, 위중한 소아 환자 등 1분을 다투는 모든 환자들을 치료하는 종합응급센터가 될 것입니다.
-응급처치부터 퇴원까지 풀코스, 전문적인 치료로 책임진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비용이 상당히 들겠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얼마나 있었나요?
-정부 지원은 없습니다. 운영비는 전액 병원재단에서 부담합니다. 아마 센터를 짓는 데에만 2, 3조 원은 넉넉하게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겁니까?
-서울 경기는 물론이고 경상도 남부까지 커버 가능한 종합응급센터이기 때문입니다.
-네? 한반도 남부 지방까지 말입니까?
-지방에는 제대로 된 전문시설을 갖춘 병원이 없어서 중대한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조치를 받지 못해 병원만 전전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도권, 아니, 서울에 집중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한계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분들은 청담동에 오기 전에 이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까요?
[본 기자는 한반도 남부지방까지 커버한다는 말을, 이때까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용 닥터헬기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닥터헬기요?
-네, CH-560 '퀸 스텔리온' 이라는 최신형 헬기라고 들었습니다. 한 반도 남쪽 해안가에서 청담까지 날아오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헬기들을 서울, 강원도, 세종, 전라도, 경상도, 이렇게 각각 상시 배치해서 응급상황을 대비할 겁니다.
-…….
-각 헬기 출발지점에는 종합응급 센터 분원을 설치해서 운영합니다. 1차적인 치료는 그곳에서 처리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청담수영병원으로 후송하는 방식입니다.
-차라리 가까운 권역외상센터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보세요, 기자님. 종합응급센터분원 설비가 웬만한 권역센터보다 좋을 겁니다. 심지어 교수급 의사가 교대로 파견 나가서 상주할 예정이 고요.
-……아, 그런가요.
-거기서 처리 못 하면 청담수영병원으로 후송해야 돼요. 그리고 의사가 헬기에 동승할 거고요. 헬기 내부는 날아다니는 중환자실 수준으로 설비를 갖출 겁니다.
[본 기자는 인터뷰 도중 헬기 이름을 구글링해보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해서 질문을 던졌다.]
-병원장님, 그런데 퀸 스텔리온이라는 말인데요. 지금 검색해 보니 록히드마틴이 제조한, 미군의 최신형 스텔스 무소음 수송헬기이고 전략헬기라서 수출 자체가 막힌 품목이라고 하는데요?
-네?
[병원장도 구체적으로 무슨 헬기인지는 아마 몰랐던 듯, 몹시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가격도 대당 1,400억 원이라는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1,400억 원이라고요? 헬기가요?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웬만한 전투기보다 비싼 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병원에서 닥터헬기로 이걸 도입한다는 겁니까?
-이, 이사장님이 이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소음이 덜 나니 병원 주변에서 민원이 덜 들어올 거라고, 닥터헬기로는 딱이라고…….
허준혁 실장은 뒷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