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54화
85장 국방부의 러브콜(5)
"국방안보설명회? 이거 작년에도 하던 거 아니었어요? 근데 왜 올해는 장소가 구의회본관이 아닌 거죠?"
"삼성동 호텔 빌려서 한다던데. 뭐하러 이렇게 크게 하지?"
"혹시 하수영 의원님이 이번에도 한 턱 내시려나?"
"알아봤는데 그건 아니던데. 하수영 의원님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시더라고요."
강남구의회 행정직원들은 갑작스러운 행사일정 변경에 조금 의아했다.
매년 반복되던 민방위 훈련 수준의 설명회가 왜 갑자기 사이즈가 커졌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튼 행사가 커졌다 보니, 평소에는 참여하지 않는 구의원들도 결석 없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러니저러니 떠나서, 삼성동 특급 호텔 뷔페를 먹을 수 있는 자리였으니.
그리고 국방안보설명회 날이 다가왔다.
근무시간에 그랜드볼룸에 모인 구의회 직원들은 단상 위에 오르는 사람의 신분을 듣고 의아했다.
"안녕하십니까, 강남구의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직원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국병호입니다."
"구, 국방부 장관이 왜 여기에?"
"민방위 수준 강연 행사에 국방부 장관이 직접 행차한다고?"
"크…… 우리 강남구의회의 위상이 이렇게나 높아진 거구나."
매년 민방위 훈련처럼 해오던 행사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갑자기 직접 참가할 줄이야.
그제야 직원들은 왜 행사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는지 이유를 깨닫고 감격했다.
"차관급 이상이 나올 거라는 말은 들었는데 설마하니 장관이 직접 나올 줄은 몰랐네요."
"그래 봤자 일개 구의회 연례행사인데, 국방부에서 이렇게 깊이 신경을 쓴다고요?"
"이번에는 변수가 있잖아요."
그 말에 구의원들의 시선은 한쪽에서 지루해하는 하수영을 향했다.
3선 여성 의원이 목소리를 낮춰 조곤조곤 말했다.
"틀림없어요. 하수영 의원 때문에 국방부에서 이번에는 엄청 신경을 쓴 거라고요."
"하수영 의원이 왜요?"
"어머, 설마 여태 모르는 건 아니겠죠? 청담수영병원이 도입한 닥터헬기 말이에요."
"그거 미군이 쓰던 헬기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이만한 일을 벌일 이유가 되나요?"
"대당 1,400억 원이나 하고 해외에는 절대 수출하지 않는 전략수송헬기래요. 그러니 국방부 입장에서는 얼마나 탐이 나고 신경이 쓰이겠어요?"
"아하."
초선의원들까지도 행사 규모가 커진 이유를 납득했다.
3선 여성 의원은 계속해서 잡담을 떨었다.
"하수영 의원이 이번에 황비버섯국방부에 일괄 납품하기로 했다잖아요."
"그래요?"
"네, 그것도 국방부가 아마 하수영의원한테 잘 보이려고 빼낸 카드일거예요. 황비버섯은 사실 비싸서 군 전체 식단으로 내기에는 좀 예산이 빠듯할 거거든요."
"가격 많이 내렸다고 하던데."
"아이구, 많이 내려서 그나마 사먹을 만해진 거지, 여전히 비싼 식재료는 맞아요. 그마저도 청담수영마트 말고는 파는 데도 없어요."
일반인들이 황비버섯을 먹으려면 청담수영마트를 방문하거나, 혹은 황비버섯라면을 사서 안에 든 버섯만 빼서 써야 한다.
"하수영 의원님이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같은 기초의원이지만 우리 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 같아."
"개인 재산은 아마 서해그룹 총수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요."
"다음 총선에는 아마 여의도로 나가시겠죠?"
"당연하죠. 하수영 의원님 같은 분이 국회의원을 안 하면 누가 합니까."
"당당히 여의도 입성하셔서 우리들을 이끌어 주셔야 할 텐데."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 정치판에서는 호족 대우를 받는다.
구의원 같은 기초의원들 입장에서는 당을 떠나서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한테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 국회의원이 해당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산가라면 더더욱.
"조덕선 의장님은 요즘 하수영 의원만 보이면 굽실굽실하시는 게, 꼭 상사 대하듯이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까 조덕선 의장님도 휴민트타워에 의원사무실 옮기고 싶어 하시는 눈치던데……."
"거기 월세가 얼마인데."
"그 월세 감수하면서까지 하수영의원님하고 연을 쌓고 싶은 거죠."
"그나저나 하수영 의원님이 여당과 야당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무소속인 하수영이 어느 당을 택할지는,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관심거리였다.
지루한 안보설명회가 끝나고 자유로운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의원 직원들은 특급호텔의 값비싼 뷔페를 마음껏 즐기며 행복한 미각의 시간을 보냈다.
국병호 장관은 눈치를 봐서 의원들 사이로 슬쩍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들."
"아,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강연 정말 잘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유익하고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의원들은 앞을 다투어 장관에게 인사했다.
국방부 장관이라면 기초의원들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치적 체급을 갖고 있다. 성체 수탉과 갓 태어난 병아리 정도로 비교할 수 있을까.
국병호는 의원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하수영 의원'
입은 즐겁게 웃고 떠들지만, 그의 눈은 하수영의 뒤통수에 꽂혀 있었다.
하수영은 지금 의원들 무리에서 떨어져서 의회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는 중이었다.
'동료 의원들과의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히는 동료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편이지만,
의정 활동도 능숙히 해내고 의회에서 비싼 밥도 잘 사준다. 돈도 많다.
싫어할래야 싫어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국병호 장관은 언제쯤 하수영에게 다가갈지, 속으로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때 하수영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고, 국병호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국병호는 가슴을 단단히 가다듬었다.
마지막으로 하수영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바로 황비버섯 군납 제안건이었다.
서해식품그룹 태양심 이정훈 사장의 주도로 진행되었다가 보기 좋게 무너진 프로젝트.
황비버섯 납품으로 인한 차익을 중간에서 챙기기 위한 계략이었지만, 이제는 묻어야 할 흑역사다.
다행히 하수영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국방부)는 것에 안도할 뿐이다.
그때 국병호는 하수영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편안한 하게체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태도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하수영 의원님. 잠시 못 쓴 사이에 이런 거물이 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 저도 제가 정치에 뜻을 두게 될 줄은 몰랐네요. 최우석 부의장님께서 워낙에 권유하셔서 시작했지만 막상 적성에 맞고 보람도 느낄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수영 의원님의 행보를 가만 보면 공익에 정말 많은 애정을 쏟으시는 거 같습니다. 군 장병들 가정에 황비버섯을 매달 보내시는 것도 그렇고, 병원 운영하시는 것도 그렇고요."
"제가 그래도 남들 가진 만큼의 선함은 있어서요. 그냥 조금 남는 여유를 베풀 뿐입니다."
다행히 첫 물꼬는 순조롭게 트였다.
국병호는 하수영의 태도에서 자신에 대한 적개심이나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에 안심했다.
"저 내년부터 예비군 가야 하는데, 정치인이라고 너무 FM으로 굴리지 말아주세요. 전 괜찮지만 같이 훈련받는 동료 예비군들이 고생하잖아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일러놓겠습니다."
"그런데 안보설명회가 원래 이렇게 크게 진행되는 행사였나요? 제가 올해 처음이라 잘 모르겠네요."
"올해에는 특별히 안보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 작년보다 규모를 조금 늘렸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직접 참석하게 됐고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육군 항작사 파일럿 둘이 우리 청담수영병원에 이송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장관님도 들으셨나요?"
국병호는 속으로 옳다구나 싶었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던 이야기를 이렇게 먼저 꺼내주다니.
"물론입니다. 조금이라도 처치가 늦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닥터헬기를 타고 운송 도중에 전문 교수가 직접 응급처치까지 했다고요."
"두 분 다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마 우리 병원 분원이 없었더라면 큰 변을 당했을 거예요. 강릉에는 그만한 응급환자를 감당할 인프라가 안 되거든요."
"닥터헬기 기동력도 한몫했다고 들었습니다. 강릉에서 청담까지 고작 20분도 걸리지 않은 덕분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요."
"역시 헬기에도 제트추진 엔진을 달아야 한다니까요. 회전익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퀸 스텔리온에는 소형 제트 엔진이 달려 있어, 위급한 상황에서 시속 400 후반대의 한계속력(공식 제원)을 낼 수 있다.
'아무리 봐도 500이 넘는 거 같은데…….'
원래 군용무기의 실제 제원은 공식발표보다 살짝 부풀려서 생각해야 하니까.
동체의 크기와 형체, 그리고 수송능력을 생각하면, 그만한 한계속력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아무리 소형제트엔진으로 추가 추력을 낸다고 해도…….
"혹시 파일럿들이 왜 부상당했는지는 들으셨습니까?"
"훈련 중에 헬기가 추락했다고는 들었어요."
"높은 고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요. 그래도 신속한 응급처치 덕분에 죽은 사람이 없어서 기쁩니다. 육군 항작사에서도 의원님과 수영병원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병원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국방부에 한 번 초청을 해도 되겠습니까? 감사패를 직접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패는 제가 아니라 의료진이 받아야지요. 의료진을 초청해 주신다면 저는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은 하겠습니다."
일순 실망했던 국병호는 이어진 말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하수영과의 관계를 일단 회복한다는 첫 단추는 무사히 펜 것 같아 흡족했다.
"제가 의료계 쪽은 잘 모르지만, 청담수영병원이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거 같습니다."
"제가 원래 안 하면 안 했지, 한번 손대면 무조건 최고여야만 합니다. 닥터헬기도 그래서 가장 좋고 비싸고 최신형으로 샀지요."
"그런데 미국이 쉽게 팔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백악관과 의회의 승인을 얻어내신 겁니까?"
"당연히 닥터헬기로만 쓴다고 하니까 허락이 난 거지요."
그건 국병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조금 더 깊고 면밀한 영역.
과연 하수영은 어떤 식으로 로비해서 백악관과 의회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현지에서 나노소프트가 도왔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혹시 록히드마틴에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 건 아닌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나노소프트가 거들고, 여기에 록히드마틴까지 작정하고 나섰다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럴 리가요. 저는 이번 생에 태어나서 미국 땅 밟아본 적도 없습니다. 아, 맞다. 차기전투기 사업은 잘되어가시나요?"
"이제 겨우 F-35A 4기가 들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일본에서 F-35추락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난처한 입장입니다."
"그거 기체 문제는 아니고 일본에서 조립을 잘못해서 그렇다고 들었어요. 원래 일본이 꼼꼼한 척만 하지 실제로는 맹탕인 거 잘 아시잖아요. 얼마 전에는 컨테이너 대형화물선이 갑자기 두 동강 나서 가라앉기도 했고요."
하수영이 군사 쪽에 관심이 깊은듯이 보이자 국병호는 더욱 신이 났다.
이런저런 군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다른 의원들은 둘 사이에 흥미진진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을 보고 일부러 방해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FX사업(국군 전투기 도입사업)에 흥미가 있으시면 한 번 참관하시겠습니까?"
슬쩍 던진 미끼에, 하수영은 해맑은 웃음을 띤 채 대답했다.
"참관하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나요?"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죠."
국병호는 얼씨구나 하고 얼른 긍정의 뜻을 비쳤다.
"서해식품 말인데요."
국병호는 살짝 긴장했다.
혹시 서해식품을 군납에서 퇴출하고, 자신이 대신 3군 식재재료를 납품하겠다는 것일까?
그것은 국병호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
"서해식품이 청담동 사옥을 이번에 처분한다고 하는데, 국방부에서 다리 한 번 놔주시죠."
"사옥 처분이요?"
"아시다시피 서해식품이 저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대뜸 연락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