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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62화 (362/1,270)

프랜차이즈 갓 362화

87장 애들 싸움 어른 싸움(3)

국세청 직원 박중식은 민원인의 항의에 황당했지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세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항의를 하는 게 어디 한두번인가.

상세히 설명해 주면 결국은 깨갱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진상을 부린다면 법의 지엄함을 보여주면 그만이고,

'검찰보다 무서운 게 국세청이라는 걸 실감하기 싫으면 적당히 하슈."

"하아…… 선생님, 그러니까 지금 말씀은 농기계용으로 9,200억 원어 치의 물품을 구매하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중고 슈퍼컴퓨터에, 100만 원이 넘는 CPU를 17만 개나 구매하셨고, 메모리와 GPU도 엄청나게 구매하셨네요. 4테라바이트 HDD도 25,000개나 구매하셨고요."

-아, 그건 그때 돈이 없어서 일단 500페타플롭스짜리로 1차 업그레이드를…….

"그리고 한국대 로봇연구소에서 발행한 세금계산서만 4,200억 원이구요. 여기서 구매한 물건들은 이름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로봇 모듈들이에요.

"그러니까요. 이런 걸 농기계로 쓴다고 하면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증빙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을 거라 믿고 허위로 작성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큰데 설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윗선에서 어쩐지 갑자기 지시를 내리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이렇게 큰 탈세가 숨어 있었어.'

농업회사법인은 여러 가지 세제 혜택이 많기에, 가짜 농업법인을 설립하거나, 혹은 농업법인을 거쳐 탈세를 시도하는 세력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큰 건을 노릴 줄이야.

'혹시 너무 큰 건이라서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건가? 바보들이 네, 완전히.'

"아무튼 이것들은 농기계로 볼 수 없으니 면세받으신 부가세에 가산금을 얹어서 납부하셔야 합니다. 기간 내에 납부하지 않으시면 압류 절차가 들어갑니다. 또한 별도로 탈세혐의로 고발 조치가 진행될 겁니다."

-이거 누구 선에서 나온 지시죠?

"누구 선이라니요. 그게 무슨……. 당연히 국세청이 해야 할 업무입니다."

-관할세무서도 아니고, 관할지방청도 아니고, 국세청 본부에서 직접 통기 한다고요? 이상하잖아요. 뭔가 음모가 있어요.

"그거야 당연히 저의 업무이니만큼……."

박중식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원래 관할세무서나 혹은 관할지방청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였다.

금액이 하도 크니 국세청 본부에서 직접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심쩍은 게 없지는 않았다.

'김두팔 조사기획과장님 지시로 알아낸 건수이긴 한데…… 그럼 민재욱 차장님 선에서 내려온 건가?'

-혹시 김두팔 과장님 지시였습니까?

'헉!'

박중식은 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하필이면 그 이름을 떠올리고 있을 때 정확하게 콕 집어서 묻다니.

아니, 그나저나 청장이나 차장도 아니고, 일개 조사기획과장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말씀이 없는 걸 보니 제가 정곡을 찔렀나 보네요.

"그, 그런 것은 말씀드릴 수 없는 사안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정당한 납세 내역 조사를 통해 선생님이 부가세 탈세 사실을 알아냈고, 이에 따라 납세명령을 고지했습니다."

-제가 구매한 물품들, 전부 농기계로 쓰는 거 맞습니다.

"하아, 선생님, 그런 고급 전자기기로 농기계를 만든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농기계를 제조유통하기 위해서 부품을 구매한 거라면 당연히 부가세 면제대상이 아닙니다."

-판매유통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 쓰려고 샀다니까요. 실제로 전부 다 제가 쓰고 있고요..

"무슨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9,200억 원짜리 농기계를 만들어 씁니까!"

-혹시 제가 누군지 모르세요?

"당연히 알죠. 하수영 선생님, 주소지는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살짝 기세가 올라서 읊어대던 박중 식은 순간 멈칫했다.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혹시 강남구의회 하수영 의원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자 박중식의 표정이 대번에 썩어들어갔다.

그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는 법.

"선생님, 아니, 의원님. 혹시라도 제 언사가 불친절하게 느껴지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불친절하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원님, 9,200억 원을 농기계용 장비에 투입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설마 농기계 제조판매 목적으로 부품들을 구매하신 거라면 부가세를 내셔야 합니다. 의원님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혹시 고발 조치도 들어갔나요?

"예, 이미."

-하아…… 고발한다고 좀 미리 통지라도 해주지, 이렇게 갑자기 일벌이는 게 어딨습니까?

"죄송합니다."

탈세는 상대가 했는데 돈 많은 구의원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하다니.

'에이, 더러운 세상.'

-아니, 전자노예들 기왕 보여줄 거면 근사하게 닦고 광택도 좀 내고 멋있게 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갑자기 조사 들어오면 흙투성이 모습 그대로 보여줘야 되잖아요.

"……예?"

박중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상대는 검찰 조사가 나온다는 것 자체보다는, 다른 것 때문에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일단 끊을게요. 빨리 가서 청소도 좀 하고 줄도 예쁘게 잡아놓고 그래야겠어요.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성만 검사는 주변에서 달라졌다는 말을 부쩍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가 넘쳐나다 보니 그게 자신감으로 묻어나오는 모양이다.

실제로 상사들은 더 이상 그를 터치하지 않는다.

그가 큰 스폰서를 잡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검사들 사이에서 돌았기 때문이다.

한강이 보이는 462제곱미터짜리 복층 펜트하우스 아파트(도합 924제곱미터)에 살다 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래서 사람은 거주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군.'

좁은 셋방살이를 하던 시절에 비해,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가 달라진 것을 하루하루 느끼는 중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출세를 해야 되는구나, 싶기도 하고,

"조 검, 오늘 자네 집에서 술 한 잔 하지?"

"오늘?"

"응, 동기들이 지금 벼르고 있어.

아니, 이사했으면서 대체 왜 집들이를 안 하는 건가?"

"집들이하기에는 내가 좀 바쁜데."

"윤 검도 온다고 했어."

"윤지혜 검사가?"

"그래."

윤지혜 검사,

조성만과 동기이지만 나이는 몇 살 어린 여검사로, 서울지검의 꽃이라는 평가가 파다한 인물이다.

저 미모로 연예인이나 하지, 왜 검사를 해서 고생을 하느냐는 말도 자주 들을 만큼 예쁘다.

조성만도 은근히 마음이 있는 상대였고,

"알았어. 그럼 오늘 집들이하는 걸로 하지."

"오케이, 술하고 먹을 것은 걱정마. 우리가 다 사갈 테니까."

"됐어. 집에 술 많아. 먹을 것도 많고, 다들 그냥 빈손으로 오면 돼."

"어, 진심이야?"

"그냥 휴지나 하나씩 들고 오라 그래."

서울지방검찰청 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기라고 해봐야 다섯 명밖에 안 된다.

조성만은 윤지혜 검사가 자신의 집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진짜 내 집은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무상으로 거주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심지어 보증금, 월세, 관리비, 심지어 종부세나 집안수리비용도 부담하지 않아도 되니.

그렇게 집들이 일정을 잡은 조성만은 윤지혜 검사의 반응을 상상하며 즐겁게 업무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그는 고발접수사건 조회에서 눈에 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피고발인 이름이 하수영? 체납총액이 1,065억 원?"

하수영이란 이름은 흔하지만, 천억이 넘는 사건에 휘말린 하수영이라고 하면 그 대상은 급격히 줄어든다.

급히 사건을 조회한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역시 우리 하수영 회장님이 맞네. 근데 탈세라고?"

그럴 리가 없다.

하수영이 얼마나 철저하게 세금을 납부하는지는 이미 저번에 확인했다. 심지어 손쉬운 절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세금을 다 내가면서 그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다.

그저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에 합법을 고수한다는 태도에는 그도 감명받았었다.

"우리 회장님이 이럴 리가 없어!"

조성만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황대호 차장검사를 찾았다.

황대호는 실비아컴퍼니를 스폰서로 두고 있다. 즉 실비아컴퍼니를 통해 하수영과 연결된, 자신과는 운명공동체 같은 존재다.

"차장님, 이거 좀 보십시오."

"안 그래도 자네 부르려고 했어. 이 사건, 자네가 맡아."

"네, 문제없이 처리하겠습니다."

"행여나 무리한 증거인멸이나 정황조작은 하려고 하지 말아. 회장님이 그런 거 제일 싫어하시니까. 자네가 회장님 개인 변호사다, 라고 생각하고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잘 수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해."

"알겠습니다."

보통 스폰서들은 불법을 마다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

하지만 하수영과 실비아컴퍼니는 다르다.

특히 실비아컴퍼니는 황대호 검사에게 돈을 대주면서도 평소 요구하는 것은 없어, 황대호가 오히려 밥값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다.

조성만을 내보내고 황대호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박호진 법원장님, 저 황대호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상대는 하수영의 법률 소통 창구, 고등법원장 출신 박호진 변호사였다.

***

조성만 검사는 오랜만에 하수영한테 연락을 했다.

그동안은 연락을 하고 싶어도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못했다.

감히 회장님께 먼저 연락을 드린다는 결례를 저지를 수가 없어서, 간간이 정중한 장문의 안부 문자만 보낼 뿐이었다.

"네, 회장님, 저 조성만입니다."

-아, 조 검사님, 안녕하세요.

"혹시 국세청에서 고발이 들어온걸 알고 계십니까? 제가 그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소환 요구인가요? 언제 검찰청으로 가면 될까요?

"아직 그러실 필요는 없고요. 몇가지 사실관계만 확인하려고 제가 먼저 연락 드렸습니다."

대화 뉘앙스만 보면 피고발자와 담당 검사가 아니라, 의뢰인과 고용변호사 관계 같다.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 불리하게 작용될 게 전혀 없으니 안심하시고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제가 받은 은혜가 있는데 감히 회장님께 누를 끼치겠습니까."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근데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국세청에서 오해를 했어요.

"역시 그렇지요?"

-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제 말을 안 믿어요. 실사 한 번 나오면 모든게 끝날 건데.

"고발장에 보면 9,200억 원에 상당하는 고가 전자부품들을 농기계용으로 구매했다고 부가세를 내지 않기나 환급을 받으셨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걸로 농기계 만든 거 맞아요. 어디 판 것도 아니고 전부 제가 쓰고 있고요. 제가 농사짓는 거 검사님도 아시잖아요.

"물론 잘 알죠."

-그냥 지금 농장 한 번 와보실래요?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한 번 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국세청 직원들도 동행할까요?"

-네, 얼마든지 데리고 오세요.

하수영이 보이는 자신감에 조성만은 안도했다. 역시 불법 따위는 없는 것 같다.

마음이 놓이자 묘한 의문이 생겼다.

"근데 9,200억 원짜리 농기계를 만들었다고?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데?"

아무튼 조성만은 그 자리에서 국세청에 연락을 취해서 수영농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

경기도에 있는 수영농장에 도착하자 하수영이 그들을 마중 나왔다.

뭔가 설렘이 가득 찬 표정은, 마치 자랑거리를 잔뜩 준비해 놓은 수집가처럼 보였다.

"수영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 마음껏 보세요."

단단한 특수합금 자동문이 열렸다.

"이게 농장이라고요? 꼭 무슨 첨단 연구소 같은데……."

"으억! 저것들이 다 뭐야!"

국세청, 검찰청 직원들은 화들짝놀랐다.

새것 같은 광택을 자랑하는, 수백대는 되어 보이는 소형 로봇들이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다가 그들을 향해 동시에 팔을 흔들었던 것이다.

1㎜의 오차도 없는, 칼군무 같은 인사였다.

로봇 대열 사이에 끼어 있던 수많은 드론이 일제히 날아오르면서 허공에 글자를 만들었다.

[수영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드론들이 진형을 바꾸자 글자도 바뀌었다.

[여기 있는 우리들 몸값은 약 6,200억 원입니다.]

다시 글자가 바뀌었다.

[3,000억짜리 친구는 청담동에 있어요.]

[그 친구는 우리를 제어하는 브레인 컴퓨터입니다.]

[앞으로 친구들이 더 늘어날 예정이에요.]

[요즘 시대에 농사지으려면]

[이 정도 투자는 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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