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77화 (377/1,270)

프랜차이즈 갓 377화

93장 이사장과 마음의 편지 (1)

"근데 무슨 비리?"

"교수한테 맞은 모양입니다. 전공의 하나가 병가 내고 다른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가 냈다고 교수한테 맞은 게 되는 건가?"

"투서에는 일단 그렇게만 적혀 있습니다. 익명으로 고발한 걸 보니 자기 신원을 감추고 싶은가 봐요. 한번 보시죠."

전성렬은 하수영이 보여준 투서 내용을 확인했다.

[외과 모 교수가 구타와 폭언을 사용한다.]

[전공의 한 명이 그 때문에 다쳐서 병가까지 내야 했다. 병원에는 실족해서 일어난 사고라 둘러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심지어 고발자 본인에 대한 정보도 일절 없었다.

"이거, 자네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제보만 한 거 같은데. 어쩌면 피해자는 투서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고."

"네, 그렇죠. 자세한 건 확인을 해봐야겠어요."

하수영은 전성렬이 듣지 못하게 한쪽으로 물러나서 프리덤을 호출했다.

"프리덤."

-예, 마스터.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넌 알지? 요약해서 설명해 봐."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장난하지 말고 어서."

-마스터가 직접 설정한 규칙입니다. 최고 관리자라 해도 고객의 개인정보는 함부로 열람할 수 없습니다. 법원의 영장 또는 정당한 사유가 필요합니다.

"비리 사건을 해결하려는 거 아니냐."

-개인정보의 사적 오용 없이도 충분히 시간과 절차를 지켜가면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오철현사장의 심정지, 박선주의 자살 방지 때와는 달리 긴급성이 전혀 없습니다.

"……."

-왜 이러세요? 마스터가 이렇게 설정하셨습니다. 그러니…….

"됐다. 너 권한 잠금 풀어달라고 지금 떠보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네 말대로 내가 너 그렇게 설정했고 긴급성도 없으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천천히 알아보면 그만이야."

하수영은 대수롭지 않게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청담동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 누가 감히 나의 예쁜 병원 이름에 먹칠을 했을까?"

***

청담수영병원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국내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가장 많은 의료진 수를 보유한 병원.

가장 많은 급여를 주는 병원.

환자가 가장 선호하는 병원.

가장 비싼 닥터헬기를 운용하는 병원,가장 돈이 많은 병원, 그리고…….

"가장 적자가 많은 병원이기도 하죠."

취재를 나온 기자는 병원 홍보과장의 안내를 받아가며 이런저런 안내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 병원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환자를 대합니다. 이사장님 마인드가 딱 그거죠. 돈은 내가 벌 테니, 너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 생각해라. 이번 분기 예상 적자가 수백억 원 이상이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심평원에서 삭감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적자가 납니까?"

"가장 큰 건 인건비입니다. 의사 한 명이 보는 환자 수가 다른 병원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어요. 간호사도 마찬가지고요. 덕분에 근로 환경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의료진이고 일반 직원이고 무조건 주 40시간입니다."

"특히 간호사 인력을 엄청나게 흡수했다고 들었습니다."

"간호사 면허를 따고 놀면 뭐하냐고, 이사장님이 무차별 채용을 하셨죠. 덕분에 지금 간호사들은 주 4일 제로 돌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환자를 더 받는다는 선택은 없는 건가요?"

"병상, 수술실을 더 늘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요. 이미 병원시설은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입원하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줄을 서 있지만, 병실은 제한돼 있으니까요."

"다른 대형병원 경영진들이 그래서 수영병원을 원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교 대상으로 자기들이 환자들한테서 욕을 먹는다고요."

"어쩔 수 없죠. 그 병원에는 우리 하수영 이사장님이 안 계신 걸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홍보과장의 얼굴에는 하수영을 향한 자부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취재기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의사고 직원이고, 병원 근로자들 전부가 한결같이 이사장 광신도 같네.'

"가장 적자 폭이 큰 병원이라는 게 자랑거리라는 점이 매우 특이합니다."

"그거 역시 이사장님 생각이십니다. 적자가 크다는 것은 돈을 많이 쓴다는 의미고, 그만큼 하는 게 많다는 의미라고 좋아하십니다."

"그, 그렇군요."

적자 1등을 자랑으로 여기다니.

기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종합병원을 본 적이 없었다.

"고용의사 중 가장 최저 연봉자가 받는 급여가 연 1억 원이라고 들었는데요.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1년 차 비인기과 인턴이 받는 급여가 연 1억 원이죠. 외과의 모 유명교수님 같은 경우는 실수령 5.5억 원을 받습니다. 수술수당, 교육 수당은 거기에 별도죠."

"너무 의사만 챙겨주면 간호사들 불만이 상당하겠어요."

기자는 함정을 노리고 교묘하게 파고들었지만, 홍보과장은 씩 웃으며 받아쳤다.

"제일 낮은 간호사 연봉이 1억 원입니다."

"네? 그게 정말인가요?"

기자는 깜짝 놀랐다.

관록이 넘치는 간호사도 억대 연봉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낮은 간호사 연봉이 1억 원이라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간호부원장님 같은 경우는 스타급 교수 못지않은 연봉과 수당을 받고 계시죠. 병원이 하수영의료재단에 인수된 이후, 간호사와 의사들 급여는 폭발적으로 뛰었습니다. 일반 행정직원들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다들 50% 이상 올랐고요."

"정말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네요."

나이 든 부자들이 의료사업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약 및 의료기술발달연구에 투자한다.

모 국내 재벌이 가족력 있는 희소질환 치료 연구에 매년 천억대 이상을 쏟아붓는 식으로, 하수영처럼 이런 식으로 병원 운영에 돈을 퍼붓는 경우는, 기자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혹시 또 다른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는 없습니까? 잘 알려지지 않는 청담수영병원만의 1등 기록 같은 거 말입니다."

홍보과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표정을 진지하게 잡고 말했다.

"이 사장님이 인수하고부터 돌아가신 환자분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 아까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는 그럼 웹니까?"

"병원 내 사망자가 아닙니다. 외부에서 이미 사망한 채로 실려 오신 분은 있어도, 병원 안에서 돌아가신 분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습니다."

그제야 이해한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니까 지금 과장님 말씀은 병원 내에서 돌아가신 분은 한 분도 없다는 거죠?"

"예, 일단 우리 병원에 들어오신 환자분은 아무리 위중해도 전부 살아서 나가셨습니다. 가망성이 없어서 퇴원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모두 '퇴원해도 될 정도'로 회복이 돼서 퇴원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말기 암 환자 같은 위중한 환자들 같은 경우에는……."

"아, 저희 병원에 말기 암 환자분은 없어요. 있긴 있었는데 지금은 단 한 분도 안 계십니다."

모두 죽었으니 한 명도 없다는 말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심지어 정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소아암 환자도 있었어요. 원래 다른 병원 환자였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전원한 거죠."

"……."

"처음에는 우리 병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보호자도 포기하고 퇴원을 준비했어요. 마지막까지 병원에서만 살다가 죽게 할 수는 없다면서요."

홍보과장은 신이 난 얼굴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호전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고요?"

"의료진도, 보호자도 희망을 가졌죠. 소아환자는 나날이 갈수록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어요."

"수영병원이 보유한 최고의 의료진 덕분입니까?"

"그런 거라면 기적이라고 안 했겠죠. 의료진은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정말 가망이 없었어요."

"정말 기적이군요."

"사실은 거기에 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해요."

홍보과장은 목소리를 낮춰서 소곤 소곤 말했다.

"엘릭서드링크 아시죠?"

"아, 네. 프라임그룹에서 판매하는 건강보조식품이라고 들었어요. 요즘공격적으로 마케팅하던데요."

"우리 병원 재단이 프라임그룹 계열이잖아요. 그래서 엘릭서드링크가 대량으로 들어오는데, 환자들 식단에도 포함돼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요?"

"내부비리 같은 건 절대 아니에요. 병원에 공급하는 것은 전량이 무상이니까. 그런데 엘릭서드링크를 먹으면서부터 환자분들의 쾌차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설마요. 그냥 건강보조식품일 뿐이잖아요."

"그렇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사실 교수님들 중에서 호기심넘치는 분들이 엘릭서드링크에 의문을 품고, 성분 조사를 해보신 분들도 있어요."

"어떻게 됐나요?"

"허당 쳤죠. 그냥 송이버섯에서 추출한 엑기스가 주성분이었거든요. 의약 효과를 기대할 만한 어떤 성분도 없었어요."

하지만 홍보과장의 표정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근거는 전혀 없죠. 하지만 엘릭서 드링크가 환자들의 회복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 직원들이 은근있어요. 그런 식으로라도 우리 병원에서 벌어지는 기적에 근거를 부여 하고 싶은 거죠."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 이건 정말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되겠는데요."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겠다고 찾아 오시는 환자분들이 또 늘어나겠네요. 병실을 더 늘리든가 해야 그분들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이사장님께 병원 확장을 건의해 보시는 건 어때요?"

"지금도 적자 폭이 심각한데 병원장님 입장에서는 면목이 없는 거죠."

기자는 이해한다는 듯이 천천히 고덕였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지금이 좋긴 해요. 딱 편한 만큼만 환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

이런저런 설명을 하던 중 갑자기 로비 쪽이 시끌시끌해졌다.

흘끗 보니 피투성이가 된 환자가 닥터헬기에서 내린 채 응급실 입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색이 된 의료진 안색을 보니, 아무래도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한 것 같았다.

"버터요! 조금만 더 버터! 저 문만 넘어가면 살 수 있어!"

"힘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이미 환자의 의식은 없어 보였지만, 의료진은 쉴 새 없이 격려하며, 내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응급실 문을 돌파한 순간, 의료진은 얼른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바이탈 살아 있습니다!"

"오케이! 됐다. 살았어!"

"환자분! 지금 스틱스강 다시 넘으신 겁니다!"

의료진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갑자기 여유를 부린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들이다.

응급수술실 안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기자가 홍보과장에게 물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죠?"

"아, 우리 병원 사람들끼리 하는 말인데요, 응급실 문턱을 스틱스강이라고 불러요. 물론 안쪽이 이승이고, 바깥쪽이 저승이죠."

스틱스강

그리스 신화에서 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구분하는 강.

"아무리 중한 환자라고 해도 일단 저 문턱을 넘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서 나갔거든요."

"……."

"반대로 호송될 때에는 멀쩡해 보였는데 병원 근처까지 와서 갑자기 급사하신 환자분들도 여럿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응급실 문턱을 스틱스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일단 문턱을 넘기만 하면, 이승에 온 것이다……."

"네, 그런 의미에서 생긴 말입니다."

홍보과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언젠가는 깨질 미신이겠죠. 우리들도 다 압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기대고 싶은 겁니다."

조금 감동받은 눈으로 바라보던 기자가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폭력 문화의 잔재 같은 것은 없습니까? 아직도 상당수 병원에는 상하 간에 폭력이 오고 간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거 다 옛날얘기입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병원에서 폭력 문화가 근절되었습니다. 우리 수영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요."

홍보과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미소로 손사래를 쳤다.

"응? 근데 저건 뭐죠?"

그때 기자에 복도 벽에 걸린, 우편함처럼 생긴 철제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홍보과장도 처음 보는 물체에 놀라서 가까이 다가갔다.

"이게 뭐지? 어제만 해도 이런 건 없었는데?"

[마음의 편지]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 이사장에게 편지를 쓰십시오.]

[이사장은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결코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십시오.]

[이사장은 우리 병원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든 직원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이사장은 여러분에게 실망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게 만들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이사장은 여러분을 믿습니다.]

[절대 비밀보장.]

[el257 : [email protected]

[이사장 하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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