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79화
93장 이사장과 마음의 편지(3)
한편, 맨 뒤에서 행사 진행을 보조하는 문화센터 직원들은 충격적인 등장에 얼이 빠져 있었다.
위로 솟구치는 삼각형 단상과 그 위에 자리 잡은 황금색 왕좌.
그리고 이사장이 입고 나타난 황금갑옷까지.
"혹시 지금 드라마나 영화 촬영 중인 건 아니지?"
"아닐걸, 청담수영병원 집단 워크샵이라고 했어."
"이게 어딜 봐서 워크샵인데? 아무리 봐도 영화 찍는 거잖아."
"근데 이 영화 장르가 대체 뭐야? 배경은 현대 한국인 거 같은데 황금색 갑옷은 대체 뭔데? 왜 이사장이 저런 걸 입고 나타나는 거야?"
"사이버 펑크 같은 장르 아닐까?"
"찍어야겠어! 일단 찍고 봐야지!"
몇몇 문화센터 직원들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하수영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 버튼을 눌러댔다.
하지만 촬영된 사진을 확인한 그들은 기겁해야 했다.
"이게 뭐야? 사진이 제대로 안 찍히는데?"
사진의 영상은 캔버스 위에 먹칠을 한 것처럼 난잡하게 변해 있었다.
몇 번을 다시 찍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폰 오류인 줄 알았는데, 다른 직원들도 전부 동일한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동영상 녹화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왜 이러는 거야?"
***
강기문 교수는 줄곧 강릉 분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래는 2주 근무 후에 6주 이상 청담 본원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강기문 교수는 이미 강릉분원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밑에 거느린 분원 의료진은 주기적으로 순환 근무를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강릉 분원에 머물렀다.
의료 인프라가 빈약한 이곳이 자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수님, 오늘 오전부터 워크샵 있는 거 아시죠? 우리 분원도 참석해야 합니다. 세미나실에 세팅 다 해놨어요."
"이사장님이 정말 사려심이 깊으시다니까. 분원도 전부 참석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원격 참석이라니."
"근데 이사장님이 화가 단단히 나신 거 같던데요. 청담 본원 이야기 들어보니 분위기가 영 안 좋더라고요."
"쯧…… 조영태 교수한테 맞아서 입원한 전공의 때문이라며? 아니, 청담에 들어왔으면 청담 스타일을 따라야지, 그 친구는 왜 아직도 다혈질 기질을 못 버렸대?"
강기문 교수는 당직 한 명을 남겨 둔 채 세미나실로 향했다.
커다란 스크린 화면에는 워크샵이 열리는 장소를 비추는 영상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고화질 영상이다.
이쪽에도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하수영은 분원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이게 지금 우리 분원 닥터헬기가 통신 신호를 받아서 중개해 주는 거라고 했지?"
"네, 화상회의도 헬기 미군들이 구축해 줬어요. 참 고맙죠."
"아, 이사장님 들어오십… 저게 무슨 복장이죠?"
"…… 금색 갑옷?"
영화 캐릭터 코스프레 같은 충격적인 복장에, 분원 직원들은 모두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
문화센터 상공에는 청담수영병원소속 퀸 스델리온 1기가 호버링 중이었다.
극단적인 저소음 기술 덕분에, 시민들은 하늘 위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헬기가 호버링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 기체의 임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워크샵 화상회의진행을 위해 지방의 4개 분원과 통신을 중개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개시를 앞두고 있었다.
주한미군 소속 퀸 스텔리온 파일럿제임스 리 중위는 통신 내용에 집중했다.
-VIP 등장까지 앞으로 10초. 카운트다운 개시. 10, 9, 8…….
카운트다운을 3초 남기고 제임스리 파일럿은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붉은 작동 버튼을 눌렀다.
"지향성 재밍을 실시한다."
"재밍 완료, 발컨 소위는 작전현장재밍 현황을 보고하라."
-여기는 발컨 소위. 작전현장. 안티재머 없는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촬영 시도 중. 촬영에 대량의 노이 즈 간섭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
"현장 원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인가?"
-노이즈 극심. 무엇을 촬영했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상태다. 촬영을 시도한 문화센터 직원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지향성 재밍은 완벽하다.
"좋다. 분원 영상 전송은 문제없나?"
-영상 전송은 문제없다. 안티재머가 교란 전파의 방해값을 제대로 해독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방 분원에서는 깨끗한 화면으로 보일 것이다.
"알았다."
퀸 스텔리온에 장착된 지향성 재밍형성장치.
원하는 특정 지역에 전자파 교란을 일으켜서 통신이나 도청을 마비시키는 기능이다.
옵션 설정에 따라서 정지영상이나 동영상 촬영에 방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퀸 스텔리온을 목격한 민간인이 동체를 촬영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함이다.
"본부, 여기는 SCH-Q1. 임무 성공, 워크샵 보안은 완벽하다."
-임무 종료 때까지 소홀함이 없도록 긴장 상태 유지하라.
"알겠다."
SCH-Q1은 주한미군 공군사령부에서 관리하는 이 기체의 호출사인이다.
S(수영), C(청담), H(Hospital) 1번 기라는 의미였다.
***
"이사장은 실망했습니다."
"소중한 직원 여러분들에 대한 실망이 아닙니다."
"병원 내에 떠도는 불미스러운 일때문만도 아닙니다."
"폭력 같은 악습을 완전히 근절하지 못한 병원 경영진에 대한 실망도 아닙니다."
"악습을 손에서 떨쳐내지 못한 일부 권위적인 의사들에 대한 실망도 아닙니다."
"악습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라며 못 본 체 넘어간 침묵하는 다수에 대한 실망도 아닙니다."
"바로 내 발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전에 미리 파악하지 못한, 본 이사장의 무능함에 대한 실망입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뼈를 때리는 듯한 아픔을 준다.
저런 복장을 하고, 저런 높이에 앉아서, 저렇게 덤덤하게 말을 하니, 병원 고위직들은 특히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간접적으로 돌려서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최윤석 병원장님, 일어나세요."
"네, 이사장님."
최윤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교수들과 의사, 간호사, 직원들 사이의 분위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병원장이 이사장한테 갈굼을 당하려는 상황이다.
국군 전체가 집결한 상황에서 육군 참모총장이 대통령한테 갈굼당한다.
고 생각해 보라. 장성들이고 장교고 장병들이고 하나같이 얼어붙을 것이다.
"병원장님은 누구 겁니까?"
"……!"
최윤석은 언뜻 질문의 의도를 이해 하지 못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이 사람을 향해서 누구 것이냐고 묻다니, 평소 온화한 하수영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혼란에 빠졌다. 저런 말은 질 나쁜 갑질이 몸에 배어 있는 졸부들이나 할 법한 말이 아닌가.
'아!'
그 순간 최윤석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표정을 활짝편 채 대답했다.
"남편 최윤석은 제 와이프의 것입니다. 아빠 최윤석은 제 아이들의 것입니다. 아들 최윤석은 제 부모님의 것입니다. 인간 최윤석은 저 자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병원장 최윤석은 이사장님의 것입니다!"
그 순간 하수영의 표정에 만족스러움이 깃들었고, 교수들은 하마터면 감탄해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역시 이사장님!'
'부병원장으로 오래오래 살아남은 센스 어디 안 가지!'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대답을 즉석에서!'
'나도 저런 아부 감각을 배워야겠어. 역시 병원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병원장님의 대답이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사장은 아주 흡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대답하신 그대로입니다. 병원장 최윤석은 우리 청담수영병원의 자산입니다. 인간 황태수 님은 본인의 것이지만, 흉부외과 부과장 황태수는 우리 병원의 것입니다. 병원이 부여한 직급 내에서, 여러분 모두는 저의 것입니다."
하수영은 잠시 호흡을 짧게 쉰 후, 무겁게 말을 이었다.
"제가 곧 병원이니까요."
그 순간, 많은 이들은 유럽의 어느 국왕의 발언을 떠올렸다.
'짐이 곧 프랑스다.' 라고 말했던 그 발언을 들었을 때, 신하들의 기분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런 저의 자산에 흠집을 내는 것은, 저에 대한 소유권 침해 행위입니다. 저를 향한 범죄입니다."
차가운 발언에 의료진과 직원들의 안색이 다시 한번 굳어졌다.
그 말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는 없었다.
직위가 낮은 이들은 오히려 기분좋은 포용력을 느꼈고, 직위가 높은 이들은 분명한 경고라는 두려움을 맛보았다.
"저의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다 동료입니다. 업무수행 능력이나 업무 적응력이 자기 눈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한 탄압을 하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병원이 허락한 정당한 절차에 입각해서 해결하십시오."
"……."
"최근 전공의 한 명이 불미스러운 일로 다쳐서 입원했습니다. 신입 간호사들을 상대로 과도한 태움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반 행정직원들을 마치 자기 아래 비서처럼 업신여기는 분위기 또한 근절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하수영은 천천히 목을 꺾으며, 가늘게 뜬 시선으로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저는 좋은 조건으로 여러분들을 고용하고, 그 계약 내용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또한 계약 내용을 충실히 지켜주십시오. 이 사장의 영역을 침범하려 하지 마십시오."
발밑에 깔린 정적을 조용히 주시하며, 하수영은 마무리를 지었다.
"곧 조사 절차 결과를 발표할 겁니다."
***
"그럼 나는 이사장님 거야? 꺅, 어떡해."
"병원 직원으로서 네 지위가 이사장님 거라는 거지, 그 외 다른 의미는 없다고, 이상하게 해석하지 말자, 우리."
"아무튼 상급자가 나한테 함부로 하면 그건 곧 이사장님의 권리를 침범하는 거라는 거지?"
"그런 표현이 더 무섭다. 조영태교수 지금 완전히 엉덩이에 불붙은 심정일 거야."
"그냥 해라, 하지 마라가 아니라, 이사장님에 대한 공격이라고 못을 박으셨으니까. 어쩜 그런 생각을 품으실 수 있을까."
"수익 생각하지 말고 환자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을 때부터 난 이사장님 인품 알아봤다. 대한민국 장병들 고생한다고 매달 꼬박꼬박 그 비싼 황비버섯도 공짜로 주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시지."
"간호사들도 지금 바짝 얼었던데. 태움이고 갈굼이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근데 너무 안 조이면 의료사고 같은 거 날 수도 있지 않아?"
"적은 시간 일하면서 비싼 월급 받는데, 그런 거는 당연히 평소에 커버를 해야지. 그게 싫으면 다른 병원 가든가."
"우리 병원에서 일하다가 다른 병원에서 절대 일 못 할걸?"
병원 입지, 근무 시간, 급여 등에서 나는 압도적인 차이는, 다른 병원들은 1/10도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청담수영병원은 간호사들에게 더 큰 천국이었다.
"근데 조영태 교수님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중징계를 받을 거 같은데. 어쩌면 해고될지도 몰라. 어제 이사장님 분위기 장난 아니었어."
최윤석 병원장은 잔뜩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조영태 교수를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그러게 내가 입사 전에 누차 말하지 않았나? 다른 병원에서 하듯이 그러면 안 된다고."
"제가 다혈질이다 보니 아래 의사들이 제 생각대로 안 따라주면 거칠게 윽박지르는 스타일은 맞습니다. 맞는데, 이번에는 저도 진짜 억울합니다."
"억울해서 황철 전공의 그 친구가 입원할 정도로 두들겨 팼어?"
"열 받아서 한 대 건 맞는데, 그놈이 먼저 저를 골려 보내려고 했다니까요! 저도 그놈이 사고 친 거 한 대 패는 걸로 끝내고 뒷수습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사고? 뒷수습?"
최윤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래도 수면 아래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암초가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자세히 설명해, 어서!"
"병원장님, 혹시 모르셨습니까? 황철이 누구인지?"
"내가 전공의 한 명 한 명까지 일일이 꿰고 있을 군번은 아니잖나."
"그 친구, 제우약국 조카입니다."
"……제우약국? 우리 병원 바로 앞에서 수십 년 간 장사한 그 약국?"
"네, 우리 병원 내방 환자들 99%가 진료 끝나고 약 받으러 가는 그 '대형약국' 이요. 페이약사만 20명 이상 고용하는 그 약국이요."
최윤석은 하얗게 굳은 안색으로 억지로 웃어 보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냥 단순 구타 스캔들이 아니었어?"
"저는 우리 병원 이미지, 그리고 병원장님하고 다른 교수님들 입장생각해서 제 선에서 수습하려고 했는데, 저한테 진짜 이러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