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81화
94장 이사장의 설레임(2)
수영청담병원은 국내 최고의 병원이다.
병원 입지, 시설, 예산, 의료진의 양질 규모, 직원 복지, 환자 복지 등 모든 면에서 최고를 달린다.
서울 수도권에 연고를 둔 의대들은 어떻게든 산학협력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수영정담병원에 취직하고 싶어 하며, 환자들은 이곳에서 치료받기를 원한다.
그런 청담수영병원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것은, 병원장등 경영진이 아니라 사회복지부였다.
-모든 환자는 가처분 생활비의 19%가 넘는 의료비를 부담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 병원은 그래야만 한다. 왜냐? 우리 병원은 수영병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자나 가족의 수입에서 이것저것 필수로 나가는 지출을 제외하고,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이 매월 100만 원이라고 치자.
그럼 사회복지부는 매월 그중 19만 원이 초과하는 금액은 자체적으로 부담한다.
원무과에서 100만 원을 결제했어도 81만 원을 차감해 주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약값 역시 마찬가지다.
수영병원 처방전으로 구입한 약제영수증을 가져오면, 차액을 지원해 준다.
그 모든 예산은 하수영의료재단에서부터 나오고, 재단은 프라임오일에서 기부 형식으로 지원을 받는다.
아무튼 이런 파격적인 지원정책 때문에 수영병원은 치료받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끝없이 대기를 타고 있다.
문제는 의료진은 충분하지만, 병상이나 수술실 등 병원 시설은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
또 의료진은 세심한 진료를 위해, 외래진료 시 1시간에 볼 수 있는 환자 수가 3명으로 정해져 있다. 아예 병원 내규 지침으로 정해놓은 사항이다.
"돈 많은 병원 오너가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병원의 명예만을 추구할 때 무슨 기적이 벌어지는지 볼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우리 청담수영병원이지."
경영진, 의료진, 일반 직원, 환자 모두가 만족하는 병원.
만족을 못 하는 이는 아직 입원을 못 하고 예약 대기순번을 기다리는 환자뿐일 것이다.
"쓸 수 있는 예산이 무한대나 마찬가지다 보니, 병원 시설이고 약품이고 그냥 닥치는 대로 돈을 쓰는 거야."
효과는 좋은데 비싼 약이 있다?
그럼 수영병원은 거리낌 없이 사다가 쓴다. 심평원이 삭감을 하는 거품을 물든 개의치 않는다. 그냥 재단 부담으로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그렇다 보니 환자의 만족도 올라가고, 고가의약품 처방 및 사용 경험도 증가했다.
청담수영병원이 의약품 구매에 지출하는 돈은 2위 병원의 몇 배가 넘는다.
제약회사들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특급 바이어였다.
"요즘 제약회사들 다른 병원에서 영업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 이거 청담동에서도 쓰는 약이에요. 이 한 마디면 다 끝나. 의사가 안 쓸 수가 없어요. 환자들이 이걸 써달라고 요구하는데 의사가 어떻게 배겨?"
정서희는 지인 약사 우희준의 말에 기가 막힌 얼굴로 듣기만 했다.
"이제는 환자들이 더 잘 알아. 수영병원에서 쓰는 약제들을 실시간으로 리스트해서 정리해 놓은 사이트도 있어. 수영병원이 그 약제 사용 때문에 얼마나 적자를 봤는지도 다 엑셀로 정리를 해놨어."
"왜?"
"그렇잖아. 적자를 가장 많이 본 약일수록 좋은 약이다, 이거지. 좋은 약이니까 수영병원이 이렇게 적자를 크게 보면서까지 환자들에게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있는 거지."
"논리적으로 틀린 건 아니네."
"그렇지. 실제로 적자 폭이 큰 약제 품목일수록 고가의 신약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우리 수영병원에 의료계뿐만 아니라 제약계의 셀럽이 되었다. 이거네?"
"바로 그거지. 제약회사들도 오매불망 수영병원만 바라보고 있다. 수영병원에서 새로 도입한 약이다? 그날부로 바로 제약회사 약품생산 라인 자체가 바뀌는 거야."
초유명 연예인이 착용하고 인스타에 올린 신발이 그날 바로 매장에서 동이 나는 것처럼.
"그리고 제우약국은 수영병원 방문환자들 99%가 처방전을 들고 찾아가는 약국이고."
"보통은 처방전 들고 바로 앞에 있는 약국을 가니까. 서로 긴밀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지."
"여우가 호랑이 기세 업고 등등해지는 거지. 물론 하수영 이사장은 제우약국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를 테지만, 아예 관심도 없지 않나?"
"그럴 거야, 아마. 이제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하수영 이사장 스타일은 어때?"
조심스러운 질문에 정서희는 잠시 생각했다가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유하고 너그러운 편이지만, 자기를 등쳐먹는 것을 매우 싫어해."
"제약회사들이 병원 공략이 안 되니까 대신 우회해서 제우약국에 엄성 정성을 들였어. 제우약국이 중간에 끼어서 챙긴 리베이트 금액이 아마 상당할걸?"
"얼마나 될까?"
"못해도 수백억 원 이상."
"……."
"제약회사들은 그 이상으로 챙겼으니까 손해는 없어. 수영병원 덕분에 제약회사가 얼마나 매출이 늘었는데."
"그렇다고 제우약국에 수백억 원을 리베이트로 줘?"
"브로커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브로커?"
"제우약국이 리베이트에서 자기 몫 챙기고, 나머지 금액은 수영병원 의사들한테 전달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네들 입장에서는 이상한 게 아니야. 어쨌거나 병원에서 제약회사 접근 자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니까."
병원장 이하 교수들도 모르는 본인 리베이트 전달금의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그럼 서해바이오메디컬은?"
"유벤스틱 항암제 신약을 청담수영병원에서 써보도록 판을 짜고 싶은 거지. 그래서 공단 급여품목으로 선정이 되면 그때부터 공장 풀로 돌려서 전국 병원과 약국에 쫙 뿌리는 거고, 서해바이오메디컬은 돈방석에 앉겠네."
"그 약은 얼마인데?"
"놀라지 마, 1회 투약에 6억이야."
"설마 짐바브웨 달러는 아니지?"
"원화로 6억 원, 맞춤형 항암제라 비싸. 대신에 효과는 확실해. 85%이상의 환자들이 1회 투약만으로 완치됐거든. 위암 항암제인데 대장암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딱 우리나라를 위한 항암제네."
"그렇지. 우리나라 1, 2위가 위암과 대장암이니까."
건강보험공단이 왜 급여 항목 지정을 반대하는지 이해가 갔다.
1회 투약값이 6억 원이나 되는데, 그걸 급여로 지정해 줬다가는 재정이 파탄이 날지도 모른다.
반대로 급여 항목으로 지정되기만 하면 국내 라이선스를 가진 서해바이오메디컬 매출은 날아오를 테고.
***
병원 경영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일단 문제점을 인식한 이후, 미칠 듯한 조사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몰랐던 실체에 어느 정도 접근했다.
"제우약국이 과장급 교수들 각자 개인 몫으로 떼어놓은 리베이트 금액이 30억 원이랍니다."
"……30억 원."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한둘에게 주고 마는 돈이 아니라 과장급 교수들 전원에게 돌리는 돈이니까. 수백억 원은 거뜬히 넘을 것이다.
"그럼 황철은?"
"조영태 교수가 좋아할 거라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추진을 한 거죠. 약국 사장이 자기 삼촌이니까 부담도 없었을 테고, 황철이가 주로 노티한 약제들 대부분이 제우약국에 리베이트를 전달한 제약회사들 제품이었습니다."
"그 친구, 정말 간이 크네."
"병원장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
제우약국이 수작을 부린 것은 사실이지만, 병원이 직접 피해를 본 것은 없다.
제우약국을 통해 리베이트를 챙긴 것도 아니고, 병원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거해서 처방을 한 것이니.
황철이 소소한 개입을 하긴 했지만, 어차피 원래 쓰던 약이니만큼 조영태 교수도 굳이 바꾸지 않은 것이다.
"일단 황철은 자르자고."
"알겠습니다. 조금 가혹한 거 같아도 사이즈가 워낙 크니 그 정도는 해야겠죠."
"그래, 조용히 나가는 것을 조건으로 걸어. 이거 참, 우리가 누구를 고소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라서 난 감하군."
제우약국이 의사들한테 돈을 먹이거나 처방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으니. 제약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제우약국이 문제입니다."
"음……."
"사실 우리 입장에서 제우약국더러 리베이트를 챙기지 말라고 말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줄 뿐이고, 환자가 그걸 들고 어느 약국에 갈지는 자기들 마음이니까요."
약국은 엄연히 병원과 분리된 객체 이기에 그렇다.
물론 실생활에서는 정말 분리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반쯤 종속적 관계이지만.
"약국에 이래라 저래라는 할 수 없지만, 환자들에게 베풀던 혜택을 제한할 수는 있지. 사회복지부원장."
"네, 병원장님."
병원장을 넘어서는 실권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사회복지부원장 정복남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환자 복지대상에서 특정 약국을 제외하는 것이 가능한가?"
"재단에 문의하고 허락을 얻어야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불가능할 것은 없습니다. 이사장님도 이런 문제는 민감하시니까요. 오죽하면 이번에 단단히 군기까지 잡고 가셨습니까."
"……군기 한 번 제대로 잡으셨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교수들은 일제히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곧 병원이다.
선포하듯이 그 말을 떨어뜨렸을 때, 얼마나 전율했던가.
"약국 영수증 들고 오면 약값 지원해주는 거, 제우약국은 이제 안 된다고 환자들에게 공지해, 잘 모르고 넘어가는 환자들도 있을 테니 세 번네 번 숙지시켜. 이거 가지고 뒷말나오지 않게, 다들 알았어?"
"네, 병원장님."
원래는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약값이다. 병원의 의무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병원의 기부행위에 추가 조건을 달았을 뿐이니.
***
황제우 사장은 요즘 하루하루가 살맛이 났다.
윤병원이 수영병원으로 바뀐 후, 약국 월 수익은 수십억 원으로 늘어났다. 페이약사 월급, 매입비용, 기타 등등 뗄 거 다 떼고 자신의 몫만 수십억 원이다.
임대료는 안 빠진다. 약국이 입점한 건물 자체가 자신의 것이었으므로,여기에 수영병원에 출입이 불가능한 제약회사들이 우회해서 약국에 로비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짭짤한 부수익까지.
이대로 딱 10년만 지나면 부자에서 '준재벌'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머, 그 약국 나도 잘 아는데. 가게 출근할 때마다 오다가다 보이거든. 진짜 큰 약국이라서 기억하는데."
"오빠가 그 약국 사장님이었구나. 그럼 약사라는 거야?"
"와, 어쩐지 얼굴에 지적 매력이 줄줄 흐른다더니."
아가씨들의 애교를 흐뭇하게 즐기면서, 황제우는 가슴을 팡팡 쳤다.
"알았으면 나한테 잘 보여! 혹시 알아? 내가 너희들 들어 앉힐지?"
"오빠오빠, 한 잔 마셔."
"그럼 오빠는 하루에 얼마를 벌어?"
"하루에 1, 2억이야 우습지. 매출말고 내 수익."
"와, 하루에 1, 2억이라고?"
"진짜 대단하다."
"오빠, 한 번 보여줘. 응?"
"기다려 봐."
황제우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폰을 꺼냈다.
어플을 실행해서 제우약국 일일장부출납 내역을 조회했다.
이 앱은 당일 가수익 계산 기능을 제공하기에, 대략적인 오늘 하루 수익을 확인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와, 이거 오늘 일일이 매출 맞지? 오늘 하루 동안 이만큼이나 판 거야?"
"진짜 대단하다. 오빠."
억 단위로 찍힌 일일 매출을 보고 여자들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황제우는 술이 확 깬 채 눈빛이 굳어 있었다.
"뭐야, 매출이 왜 이거밖에 안돼?"
약국의 오늘 매출은 수영병원으로 바뀌기 이전, 윤병원 시절에 거의 근접하게 줄어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