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87화
96장 나비가 일으킨 바람에 날려간(1)
최아람 환자와 가족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꼼짝없이 죽는 줄만 알았던 최아람환자는 얼굴이 온통 눈물에 젖은 채 삶에 대한 감격을 드러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뭘요. 그저 약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렇네요. 정말 좋은 약이네요."
"한 방에 6억씩이나 하는 약으로도 못 잡은 병을, 이렇게 두 달 만에 잡아내다니…… 선생님, 약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트리단입니다. 제조사는 다이엘이고요, 우리 병원 재단에서 국내 사업권을 갖고 있어요."
"아아, 역시!"
"이 사장님께서 일찍이 그 약의 가치를 알아보시고 권리를 구매해 두셨죠. 유벤스틱보다 치료 기간이 좀 더 걸리긴 하지만, 대신 약값이 매우 저렴합니다."
"그렇네요. 두 달 동안 약값 나온게 267만 원밖에 안 됐으니까요."
심지어 최아람 가족이 두 달간 부담한 비용은 입원비, 검사비, 약값을 모두 포함해서 76만 원이다.
환자의 매달 가처분 생활비의 19%를 초과하는 의료비는 병원 복지사업부에서 부담을 해주는 덕분이다.
"아무튼 트리단의 효능이 매우 좋아서 병원 측에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그제야 죄아람 친모는 왜 교수가 이런 중요한 날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보통 이런 역사적인 완지 소식은 교수가 직접 알려주지 않던가?
"교수님은 처음부터 당연히 완치될 거라 생각하셨거든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소한 통보쯤은 교수가 직접 나서지 않고, 전공의를 시킨다. 그게 청담수영병원 스타일이다.
***
최아람을 시작으로 속속들이 환자들이 트리단의 효능을 보기 시작했다.
초중말기를 가리지 않고 환자들은 두 달 정도면 눈에 띄게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환자라도, 두 달이 지나면 확실하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아니, 희망이라기보다는 확신이었다.
원래 수영병원은 유난히 환자들의 회복세가 빠르고 좋은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유벤스틱도 한 달 만에 전부 완치 돼서 나가지 않았었나?"
"그랬지. 그런데 서해병원에서 투약하기 시작하니까 언제 그랬다는듯이 딱 85%로 돌아섰고."
"이번에 최아람 환자도 나머지 15%에 들었잖아. 그래서 목숨 간당간당하다가 우리 병원에 와서 트리단 처방 맞고 두 달 만에 완치 판정받았고."
"만약 최아람 환자가 서해병원에서 트리단을 처방받았어도 두 달 만에 나았을까?"
"……."
"……."
수영병원 관계자들은 의사고 간호사고 행정직원이고 간에, 모이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해댔다.
"유벤스틱이나 트리단 덕분이 아니라, 진짜 우리 수영병원 터가 좋아서 그런 거 같은데?"
"난 엘릭서드링크에 뭐가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 병원 환자들은 병원 식단에 엘릭서드링크가 포함된다는 공통점이 있지."
"그런데 엘릭서드링크는 일개 건강보조식품일 뿐이잖아. 물론 말기 암환자가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하고 탈없는 식품이긴 하지만……."
***
암환자 카페에 트리단 효능을 크게 봤다는 게시물이 들끓기 시작했다.
-트리단 짱 좋음, 진짜 짱짱 좋아요.
-트리단 먹고 두 달 만에 말기 폐암이 나았습니다. 이제 추적 관찰만 하면 된대요. 청담수영병원 하수영이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사장님이 다이에 본사와 직접 담판 지어서 트리단 국내 사업권을 가져온 거라던데.
-하수영 이사장님은 다른 재벌들처럼 돈 벌려고 메디컬 사업하는 게 아니다. 진짜 서민들을 위한 인술을 펼치기 위해 병원을 인수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병원에 쌓인 적자, 그리고 운영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지.
-무엇보다 트리단은 유벤스틱과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해.
-왜 안 트리단요? 왜 유벤스틱이요?
-유벤스틱 아웃. 서해생명보험 아웃.
-한 달 최저 보험료가 월 100만 원이라고? 진짜 가진 자들만 쓸어 담아서 자기들 헬스리그 만들겠다 이거네.
청담수영병원은 유벤스틱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트리단 처방을 시전했다.
유벤스틱으로 완치된 환자보다 트리단으로 완치된 환자 수가 수십 배가 넘어섰다.
유벤스틱의 장점이라고는 완치 기간이 한 달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청담수영병원 외에서는 완치율이 100%가 아닌 85%에 지나지 않았다.
-초중기 환자들 상대로 85% 치료율이라는 게 큰 의미가 있나? 말기 환자들은 파격적인 효용이 없다던데.
-약값이 6억이나 하는데 그 정도는 나와 줘야 양심이 있는 거지.
-트리단은 말기 환자들도 예외 없이 전부 나았다구!
현재 트리단을 처방할 수 있는 병원은 청담수영병원만이 유일했기에, 트리단의 완치율은 100%에 달하고 있었다.
완치 사례 건수도 유벤스틱의 수십배 이상.
이미 비교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적이었다.
대중은 이제 서해바이오메디컬과 건강보험공단에 분노와 의심을 보내기 시작했다.
-효능으로 보나 실적으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트리단이 훨씬 우위인데, 왜 건보공단은 트리단은 급여 지정에서 제외하고 유벤스틱은 급여 약제로 지정했지?
-6억짜리 약과 일 년에 1,600만 원짜리 약이 있습니다. 전자는 85%, 후자는 100%입니다. 그나마 전자는 말기 환자한테는 훨씬 잘 안듣습니다. 그럼 어느 쪽에 혜택을 줘야 할까요?
-특검 설치해서 한 번 파봐야 한다. 뭔가 어마어마한 로비와 부정의 냄새가 난다.
-서해보험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고가 종합보험패키지 상품 출시한 것도 뭔가 수상하지 않음?
[검찰, 서해바이오메디컬 조사 착수!]
[김원약 전무 소환! 철야 조사 작업 개시!]
[건강보험공단이 서해바이오메디컬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주사 한 방 놓을 때마다 수억 원이 넘는 건강보험재정이 허공으로 증발해.]
항암제 스캔들이 국내 의료시장을 거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서해바이오메디컬 임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의 소환을 받았으며, 건강보험공단도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야 했다.
-서해그룹의 꿈, 서울 내에 영리병원 설립은 끝내 거품으로 사라지는가.
유벤스틱의 급여 약제 지정, 고소득자들을 위한 종합보험패키지 출시, 서해서울병원의 영리법인 전환.
차례차례 쌓아가던 서해그룹의 바이오산업 빌드업은 그렇게 붕괴의 위기 앞에 놓여 있었다.
환자들은 유벤스틱을 외면했다.
아무리 건강보험의 지원이 있어도, 본인 부담감이 6,000만 원이나 되는 약을 쓴다는 것은 부담이 컸다.
반면 청담수영병원에서 트리단을 처방받으면, 아무리 비싸 봤자 한 달에 수십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약값과 입원비등 일체의 비용을 포함해서다.
이에 다른 병원들이 다이엘코리아에 트리단 공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환자들이 그것을 반대했다.
-트리단은 청담수영병원에서 처방받아야 제대로 효능을 본다.
-유벤스틱의 사례를 잊지 마라. 수영병원에서는 100% 완치를 보였는데 서해병원이 그거 다 깎아 먹음.
-다른 병원에서는 백날 처방받아 봐야 소용없다. 죽음의 룰렛 돌려야 한다.
-일단 수영병원에 입원을 해. 그럼 완치돼서 나갈 수 있어. 이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흑우 있는가?
-기억해라. 청담수영병원에서 지금까지 죽은 환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수영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미 병실이 꽉 찼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환자들은 수영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하는 차선택을 택했다.
그마저도 환자들이 밀려 있는 까닭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수영병원은 시간이 얼마 없는 환자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다.
의료기록을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시간이 급한 환자들 전용 진료타임을 개방한 것이다.
***
"몇 명이라고?"
"지금까지 63,091명입니다."
다이엘코리아 지사장 마르코는 할말을 잃었다.
방금 들은 숫자가 너무 놀라워서였다.
"그 많은 환자들이 전부 완치됐다고?"
"네, 그렇습니다."
"허허…… 우리 트리단이 그렇게 파격적인 효능을 가진 것은 아닐 텐데?"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효능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좀 더 개선된 항암제일 뿐입니다. 효능이나 부작용이나 가격이나, 기존 항암제보다는 조금씩 더 나은 수준이죠."
"그런 약이 한국에서만큼은 6억짜리 약을 씹어 드시는 무적의 치료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정확히는 청담수영병원입니다."
"듣자니 엘릭서드링크가 뭔가 환자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는데, 그거 때문이라는 생각은 어떤가?"
"그렇지 않아도 암 환자들이 엘릭서드링크를 따로 구매해서 섭취하기 시작했고, 회복에서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역시!"
"하지만 수영병원 환자들이 보인 퍼포먼스에는 터무니없이 못 미칩니다."
엘릭서드링크가 암 치료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수영병원만큼 파격적 이지는 않다는 것.
"역시 수영병원에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지?"
"네, 병원에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획기적인 치료 시스템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말도 안 되는 회복율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럼 그게 대체 뭘까?"
"그것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합니다. 심지어 완치돼서 퇴원한 암 환자들 본인도 엘릭서드링크말고는 짐작 가는 게 없다고 합니다."
엘릭서드링크의 건강 조화 유지 능여기에 성역의 권능이 끼얹어져서 환자의 회복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외부인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우리 트리단이 혼자 잘나서 거둔 실적은 아니라는 거군."
"네, 확실합니다."
"이 부분은 본사에서 괜히 들뜨지 않도록 제대로 보고를 하는 게 좋겠어."
결국 유벤스틱 급여 약제 지정이 취소되었다.
재정 악화 우려를 이유로 들긴 했지만, 선정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제외되었다는 것은 서해바이오메디컬 입장에서는 타격이 컸다.
회사 이미지에 치명적인 악재였으니까.
이에 따라 서해보험이 출시한 종합보험패키지의 존재감은 곤두박질을 쳤고, 가입자들은 줄줄이 해지를 신청했다.
존재 의의를 상실한 보험상품은 언제 세상에 나왔냐는 듯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서해서울병원의 암센터동은 줄줄이 퇴원을 신청하는 환자들 덕분에 파리만 날리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항상 만실이었던 병실이었지만, 이제는 텅텅 비어 있는 모습만 보였다.
기조실로부터 그 사실을 보고받은 서해그룹 부회장 이현덕은 쓴웃음만 흘렸다.
"매부 상황이 참 안타깝게 됐어."
"서해병원의 영리전환을 성공으로 이끌어내서 회장님의 인정을 받아 의료재단을 막내 아가씨 명의로 완전히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만, 모두 무산됐군요. 추중원 사장 입장에서는 참 아쉽겠습니다."
병원재단은 이현덕 것이지만, 제약등 바이오 사업은 여동생의 것이다.
아버지인 회장 이창영이 그렇게 구분을 지어놓았다.
하지만 여동생의 남편, 추중원 사장은 호시탐탐 병원재단을 노려왔다.
이번에 야심 차게 행동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트리단의 눈부신 비상 때문에 모든 게 일그러졌다.
"김 실장, 실은 이번 일은 내 입장에서도 안타깝네."
"네?"
"비록 매부가 병원을 노리는 경쟁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 내심 성공하기를 바랬거든, 그래야 우리 서해그룹의 의료산업, 아니, 건강산업이 더 커질 수 있었을 테니까."
이현덕은 입맛을 다셨다.
추중원의 최종 목표는 서해병원의 영리 전환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그룹의 의료산업을 자신의 아내가 가져갈 가능성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병원의 영리화는, 이현덕의 입장에서는 스타트일 뿐이었다.
"매부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나중에는 건보공단 자체를 우리가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