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92화
98장 닥터헬기의 기준(1)
재난본부 상황실이 다급해졌다.
최중헌 장관이 보고받은 산사태 및 열차 탈선은 당연히 본부장도 실시간으로 받아보았다.
"피해 상황은?"
"사망자는 없습니다! 탑승객 전원의 생존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탑승객 전원이 프리덤 사용자였습니다!"
현재 프리덤을 사용하는 유저는 5,000만 명 이상.
노숙자나 지명수배범이 아닌 이상은, 반드시 프리덤을 사용한다고 봐도 될 정도다.
재난 본부장은 한시름을 놓았다.
"역시 사람들이 프리덤을 들고 다니니까 피해 상황이 바로바로 파악이 돼서 좋군."
-무너진 토사가 열차의 최전 1량과 최후 1량을 제외한 8칸을 덮친 상태입니다.
"뭐?"
순간 본부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서 얼른 보고 로그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전방과 최후방, 도합 2량을 제외한 8량이 토사에 휩쓸려 탈선한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열차가 송두리째 선로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런데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맞은편의 거주구역에서 산사태를 확인하고, 열차 내부 승무원 및 승객과 그 정보를 공유해서 대피시켰습니다. 기관사는 열차제어를 위해 1칸에 남았고, 남은 인원은 전부 최후미 칸으로 이동했습니다.
프리덤은 빠르게 요점만을 설명했다.
-완전한 제동, 완전한 이탈, 어느 것도 불가능했기에 열차의 중간을 송두리째 비워둔 겁니다.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건 잘했어."
보고 로그에서 다양한 변수에 대한 자세한 확률 계산 수치를 확인한 본부장의 안색이 펴졌다.
프리덤은 그 와중에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적절한 브레이킹을 통해, 산사태가 열차의 중심만을 덮치도록 조절한것.
-산사태에 직접적으로 휩쓸린 것은 4호, 5호, 6호 칸이지만 적지 않은 충격량인지라 2칸을 제외한 8칸이 탈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현장 사진 들어옵니다.
이윽고 상황실 대형 화면에는 곧바로 산사태에 휩쓸린 열차의 모습이 나타났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내던져져 말라 비틀어진 뱀처럼 축 늘어진 열차는 거의 대부분이 토사에 파묻혀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선로 이탈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내동댕이쳐진 거나 다름없는데? 근데 이 사진은 어떻게 구한 거지?"
-최초로 산사태를 관측한 주민의 협조를 얻었습니다. 다행히 해당 주민이 망원렌즈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어 안전하고 빠르게 현장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프리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부장은 상황을 겪으면 겪을수록, 재난 상황에서 절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조대는?"
-가용 가능한 구조 인력이 현장으로 긴급 출동한 상황입니다. 다만 현재 인력과 장비로는 부족하니, 중앙정부에서의 충원이 필요합니다.
"선조치 후보고라고 장관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나?"
-선조치를 하고 싶어도 유의미한 여유 자원이 없다 보니 인력 조절이 필요합니다.
현재 수도권에 예비 구조 자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즉시 평창으로 보낼만한 이동수단이 없다.
그렇다 보니 프리덤은 그들을 무의미한 여유 자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재난 본부장은 괜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소프트웨어는 이리 훌륭한데, 하드웨어 스펙이 이리도 받쳐주질 못해서야…….'
수도권 근교에서 일어난 탈선 사고라면 즉시 충분한 구조 인력을 도입했을 것이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대형사고는, 아무리 프리덤이 적절하게 조치 배분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저번 태풍 때는 열차 탈선 사고는 없었는데.'
소방서 구조대원들이 탈선 현장에 도착했다.
-요구조자들은 최전간 1칸에 2명, 나머지는 모두 최후칸에 있습니다.
프리덤의 설명에 구조책임자는 장비를 꺼내 들며 결의를 다졌다.
"오케이, 그러니까 앞뒤만 뚫으면 된다 이거지?"
"대장님, 장애물이 문을 가리고 있어서 개폐 장치를 열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서둘러! 장애물부터 일단 대충 치운다!"
구조대원들은 장비를 꺼내 들고 서둘러 장애물을 치우기 시작했다.
토사에 완전히 파묻히다시피 한 중간 칸들을 구조하는 것이라면, 이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최전칸, 최후칸만 구조하는 것이라면 지금 인력으로 어찌어찌 가능할 것이다.
"자, 빨리빨리 치우자고!"
장애물을 치우고 문을 비상개폐하자 겁에 질려 있던 기관사 둘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열차의 탈선 당시 가해진 충격 때문에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고 있었지만,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부상은 없는 듯이 보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걸을 수 있습니까?"
"네, 걸을 수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당장 환자를 후송할 수는 없다. 지금 현장 인력은 단 한 명이라도 아쉬운 판이니까.
굵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은 두 기관사는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중식아! 여기 이분들, 일단 저기 민가까지만 보내드리고 거기서 쉴수 있게 해라! 알겠지?"
"네, 대장님!"
"망할, 날씨까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군."
"애초에 이 날씨부터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거 아닙니까?"
"그래, 그 말이 맞네."
2조는 10칸의 문을 가리고 있는 토사 장애물을 치우느라고 부지런히 삽을 움직이고 있었다.
10칸으로 몰려든 승객, 승무원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구조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을 받고 있으니, 삽을 움직이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 속도가 붙는다.
"클리어! 다 치웠습니다!"
"좋아, 이제 안에서 열라고 해!"
출입문 반대편에 있던 승무원이 서둘러 비상개폐장치를 당겼다.
하지만 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구조대원들은 당황해서 자기들끼리 보았다.
"이거 뭐야? 고장 난 건가?"
"코레일이 설마 이런 비상장치에 들어갈 예산까지 빼먹은 건 아니겠지? 얘네 원래 비리가 심하잖아?"
"망할, 이거 문 자체가 충격 때문에 망가진 거 같은데?"
아무래도 문을 움직이는 기계관절장치 자체가 충격에 부서진 것으로 보였다.
"문 강제로 따야겠다. 장비 가져와!"
"지금 이런 장비로 어떻게 이런 열차 문을 땁니까? 본부 가서 중장비세팅 가져와야 합니다!"
"두 명 가서 장비 다시 가져오고, 그동안은 일단 우리끼리 문 따고 있자고."
그때 프리덤이 갑작스럽게 보고했다.
-열차 내부에 응급환자 두 명이 있습니다. 탈선의 충격으로 부상을 입어 실혈량이 위험 수준에 이른 환자들입니다. 가능한 빠른 수혈이 필요합니다.
"뭐?"
-구조를 서둘러 주십시오.
느긋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나 보다.
다급해진 구조대원들은 어떻게든 망가진 문을 열기 위해 아등바등 해보았지만, 열차문은 하필이면 쓸데없이 단단했다.
"단단할 거면 아예 망가지지도 않게 단단하던가, 이도 저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냐고!"
-청담수영병원 강릉분원 닥터헬기가 이곳을 향해 비행 중입니다.
"지금 여기 어디에 닥터헬기가 내릴 만한 곳이 보여? 그리고 헬기온다고 이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니잖아. 수혈팩하고 의료물품이나 놓고 가라고 해!"
-도착했습니다.
"뭐, 벌써? 소리도 안 들렸는데?"
구조대장은 놀라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제야 하늘에서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로터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헬기의 로터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빗줄기에 가려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안 들린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닥터헬기 파일럿과 연결하겠습니다.
-여기는 SCH-03, 여기는 SCH-Q3. 당신의 현장의 구급책임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상황은 들었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겠습니다. 모두 10미터 이상 거리를 벌리고 대피해 주십시오.
"대피라고요?"
아니, 하늘에 떠 있는 닥터헬기가 무슨 재주로 문을 열겠다고?
어이가 없는 와중에 파일럿이 다시 한번 재촉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대피해 주십시오.
"네! 네!"
구조대원들은 허둥지둥 장비를 챙겨서 열차로부터 이탈했다.
이번에는 프리덤이 지시했다.
-닥터헬기 파일럿 연락입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으십시오.
열차 탑승자들도 비슷한 지시를 받았는지, 비상문으로부터 서둘러 멀어지는 것이 보인다.
대체 뭘 하려고?
혼란에 빠진 구조대원들은 귀를 막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닥터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십자마크가 그려진 닥터헬기가 조금씩 이동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체 뭘 하려…….'
투두두두! 투두두두!
순간 사방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열차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닥터헬기가 열차문의 연결부위 자체를 아예 총탄 사격으로 박살을 내버린 것이다.
피탄 충격에 튕겨져 나온 열차문을 보고, 구조대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여기는 SCH-Q3. 문 개폐 성공. 서둘러 내부 인원들을 탈출시키십시오. 언제 또 산사태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응급환자 두 명부터 꺼내십시오. 본 기체 안에서 조치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열차 승무원들이 서둘러 응급환자 두 명을 부서진 입구까지 데려왔고, 구조대원들이 넘겨받았다.
들것에 응급환자들을 싣고 호버링중인 헬기를 향해 달려가자, 헬기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와이어를 내보냈다.
와이어에 단단히 들것을 단단히 고정시키자 헬기에서 곧바로 환자를 내부에 수용했다.
그렇게 환자 둘을 수용한 헬기는 더 이상 용무가 없다는 듯이 다시 돌아가 버렸다.
구조대장은 멀어지는 헬기의 뒷모습을 멍하니 주시하다가, 열차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른 탑승자들은 가져온 찰과상 정도뿐이었기에, 구조대원 도움 없이도 스스로 열차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장비 가지러 간 애들은?"
"아직 본부로 가는 중이랍니다."
"그냥 여기 오지 말고, 본부에 대기하라고 해."
-이미 지시를 보냈습니다.
"……잘했다."
대원들은 일단 근처의 안전한 민가로 열차 탑승자들을 데리고 이동을 시작했다.
구조대장은 저만치 나동그라진 열차문을 향해 다가가, 우뚝 선 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열차문의 외관은 놀랍도록 깔끔한 편이었다.
기관총탄은 열차문의 테두리만 깔끔하게 사격해서 문을 차체와 분리한 것이다.
"허참…… 무슨 닥터헬기가 기관총을 싣고 다녀?"
***
SCH-Q3에 탑승한 청담수영병원외과교수가 물었다.
"기관총은 그냥 장식이 아니었던 겁니까?"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최소한의 탄약은 항상 신고 다닙니다. 헬기가 자기보호는 할 수 있어야지요."
"……우리나라에서 닥터헬기가 자기보호를 위해 기관총 사격을 할 상황이 있습니까?"
"보통은 없지만, 그래도 미 해병대 운용교리라서 말입니다."
"……."
"아, 교수님 프리덤한테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퀸 스텔리온은 전후방 기관총 3정에 최소 탄약을 싣고 다니니까 필요한 상황에는 요청을 하라고요."
-업데이트했습니다. 데이터 제공에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저희도 프리덤을 쓸 수 있으면 서포트하기 훨씬 편할 텐데, 저희는 이것저것 제약이 많아서요. 보안 문제로 상부에서 금지했거든요. 애초에 미국 국적자라 프리덤구독권 구입 자체도 안 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