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02화 (402/1,270)

프랜차이즈 갓 402화

101장 조합을 위하여(2)

"더 물어볼 것도 없을 거 같군요."

전성렬은 헛기침을 연발하는 조만식 조합장을 살피면서 가볍게 피식거렸다.

정곡을 찔린 신광룡 은행장도 연신사레가 들린 채로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전성렬은 일부러 조금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회장 당선을 위한 재료로 우리 하수영 사장을 써먹으려는 겁니까?"

조만식 조합장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신광룡 은행장도 마른 입술을 축이면서 시선을 살폈다.

"아닙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재난 때문에 쌀 재고가 바닥난 지금, 국내 쌀공급을 원활히 하고 농가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도움을 요청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조만식 조합장님이 농협회장 당선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셈이지요."

"……."

"……."

틀린 말은 아닌지라 둘은 얼른 입을 열지 못했다.

얕은 수를 쓰려다가 걸린 둘을 가만히 바라보며, 전성렬은 조소를 흘렸다.

"쌀 공급은 문제없이 할 겁니다. 그게 우리 하 사장 통장 잔고에도, 이 나라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감사합니다."

"대신 어디서도 우리 하 사장 이름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조합원이 되어달라는 요청 때문에 귀찮아하고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조만식 조합장님, 만약 농협 회장에 당선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반대급부를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당선이 된다면 어찌 되었든 하수영의 덕을 보는 셈이니, 불합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조만식 조합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입을 열었다.

"인사 추천권 두 장을 드리겠습니다."

"두 장이라. 영등포농협 조합장과 농협중앙회 위원 자리를 말하시는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조만식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지만, 진성렬과 하수영은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안색이었다.

"그건 사적 청탁이 되죠.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고요. 청담동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 그러시다면……."

"이번에 물난리 때문에 전국 농민들이 정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조만식 조합장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조만식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쌀 공급 문제를 해결해서 회장 당선의 승리 카드로 삼을 생각밖에 없었을 테니까.

"농협의 농가지원기금 중에서 최소한의 예비액만큼을 남기고, 나머지를 농가 복구 사업에 전액 퍼부어 주십시오."

"전액을요?"

"최소한의 예비액은 남기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원래 그러려고 있는 돈이잖습니까."

조만식 조합장은 머뭇거렸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농협의 자산규모는 엄청나다. 자산으로만 따지면 10대 재벌 안에 들어갈 정도다.

이번에 편성된 농가지원기금 규모도 상당한데, 그중 얼마를 투입할지를 놓고 내부에서도 말이 많아서, 정작 복구지원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다.

"애초에 농민들을 위해서 농민들이 주축이 돼서 만들어진 단체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주인들이 피를 흘리는데 제대로 나서지 않는다면, 농협의 존재 의의는 어디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것만 약속해 주신다면 우리 하사장도 킬로당 4,500원에 250만 톤을 내년 6월까지 문제없이 공급할 겁니다."

조만식은 여전히 고심하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성렬은 이제 그를 몰아붙이는 대신, 부드러운 말투로 회유를 시도했다.

"저도 수십 년간 농수산물 유통을 하면서 많은 농가와 교류했습니다.

지금은 손을 뗐지만, 농민들과의 친분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요."

"알고 있습니다."

"요즘 말을 들어보니 다들 죽으려고 합니다. 저와 친하게 지낸 어느 분은 심지어 자살 기도까지 했었습니다. 저더러 어떻게 도와주면 안되겠느냐고 하소연을 하는데, 참 마음이 답답합디다."

"……."

"그냥 본연의 소명에 충실히 주십시오. 우리 하 사장은 그거면 됩니다."

조만식은 슬쩍 시선을 돌려 보았다.

하수영은 그 말에 공감을 하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작게 끄덕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수영이 쐐기를 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쌀 250만 톤 대금은 농협에 예치하고, 3년간 이자를 받지 않겠습니다."

"……!"

11조 원이 넘는 거금이다.

그것에 대한 이자를 받지 않겠다니, 농협은행장으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그 돈은 3년간 전액 농가 지원을 위해서 활용해 주십시오."

"아니, 하 사장. 그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자네는 공인도 아니고 조합원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공인은 맞습니다. 기초의원이잖아요."

"농업 쪽 감투는 하나도 없잖나."

"원래 옛부터 흉년이 들면 나라에서 3년간 조세를 면제하곤 했습니다."

"자네가 나라님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그래도 나름 잘나가는 농민 중 한 명인데, 농가사회에 이 정도 지원은 해줘야죠. 돈을 아예 주는 것도 아니고 3년간 이자 없이 빌려주겠다는 건데요."

1년에 2%만 이자를 받아도 이자수익이 2,200억 원이 넘는다.

막말로 농협이 농가 지원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3년간 최소 6,600억 원이 넘는다는 소리다.

조만식 조합장은 조금 감동받은 표정으로 힘차게 끄덕였다.

"하수영 사장님의 고결한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 감투 욕심이나 내던 제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만약 회장에 당선이 되면 전국의 모든 농민들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니겠습니다.

농협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주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하수영은 농협과정식으로 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수영농장! 농협에 쌀 250만 톤 재배계약 체결!]

[국내 최고 거농, 드디어 벼농사에도 진출하나?]

[영세 벼농인의 생존, 심각한 위협에 놓이는가?]

은근슬쩍 영세농가의 생계 문제를 건드리는 문구도 있었지만, 의외로 농민들의 반발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수영은 어느덧 농민들 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섯농사 하나로 단숨에 재벌급 인사가 된 그는 이미 질투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했다.

"쌀농가 잠식은 무슨, 하수영 농민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이 기자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판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쓰는 거야? 그럼 지금 당장 나라에 먹을 쌀이 없는데, 모두 내년 추수기까지 쫄쫄 굶고 있으라고?"

"수영농장에서 쌀 재배를 안 하면 당장 베트남에서 쌀 수백만 톤을 들여오니 마니 하는 판이라고, 그럼 앞으로 우리나라 농가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어?"

"하수영 농민은 농가의 생존을 위해 자기 입장에서는 귀찮기만 한 벼농사에 나선 거라고."

농민들은 하수영이 왜 벼농사를 짓기로 했는지 이해했다.

프리덤이 차분하게 앞뒤 사정을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방 농민들은 방송국이나 언론사의 말보다는, 프리덤의 설명을 훨씬 신뢰했다.

"농식품부에서 190만 톤은 확보했고, 수영농장에서 농협에 250만 톤만 더 공급하면 우리나라 쌀 공급은 걱정 없다고."

"쌀 비축 문제만 해결되면 수영농장은 벼농사에서 다시 손을 뗀다던데, 기껏 농사 한 번 짓자고 만든 논을 다시 갈아엎어야 하니까 손만 많이 간다고."

"수영농장에서 그동안 무상으로 뿌린 기름이 얼마인데."

농기계 등 시설들을 굴리려면 당연히 기름이 필요하다.

프라임오일에서는 그동안 농가용 유류를 전국에 무상으로 뿌렸고, 거기에 수영농장의 이름을 달았다.

유류비 지출 없이 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당연히 수영농장을 신뢰했다.

여기에 쌀 250만 톤 재배계약을 추진한 조만식 조합장은 대대적인 홍보를 곁들였다.

[쌀 대금, 다시 농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수영농장, 쌀 매매대금을 3년간 농협에 무이자로 거치할 것.]

[무상거치로 인한 모든 수익은 재난 피해를 입은 농가 구호를 위해 사용될 예정!]

"허허, 정말 난 사람은 난 사람일세."

"그러게 말이야. 부족한 쌀도 부랴부랴 재배해서 채워주고, 쌀 판 돈은 또 3년간 빌려줘서 농가 지원하라 하고, 쌀 문제 해결되면 쌀농사에서 다시 빠지겠다 하고, 정말 이런 위인이 어디 있어?"

"우리나라 농가를 위해 정말 큰일을 할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 농협회장이 되어야 하는데."

프리덤은 놓치지 않고 끼어 들어서 친절히 설명했다.

-주인님, 수영농장주는 농협 조합원이 아닙니다. 심지어 준조합원도 아닙니다.

"뭬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농민 신분을 갖고 있지만 농협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접점은 농협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예금주라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말도 안 돼! 대체 농협의 임원이라는 것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청담동이면 영동농협 놈들이지?"

"아마 맞을걸. 근본 없는 것들 같으니. 보나 마나 뻔해. 하수영 농민한테 조합 권력 다 뺏길 게 겁나서 조합원 가입을 거절해 온 게 뻔해!"

진실은 하수영이 조합원 가입 신청자체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지만, 분노한 농민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농민들은 농협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수익 장사에만 열을 올리는 행태에 오랜 분노가 쌓여 왔다.

특히 서울수도권을 관할로 하는 지역농협 같은 경우, 농민을 위한 지원사업보다는 금융장사에만 열중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닌가.

물론 농협중앙회, 그리고 영동농협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비난이었다. 왜 하수영이 농협 조합원이 아니냐는 이번 일만큼은.

***

오랜만에 우형신 중개사를 부동산사무소에서 만났다.

"회장님, 요즘에 영동농협 쪽에서 이런저런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쪽에도 인맥이 있으셨군요?"

"허허, 정담에서 부동산하려면 아무래도 이래저래 발이 넓어지게 되거든요. 아무래도 회장님을 영동농협 조합원으로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합니다."

"어디 소속되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혼자가 편합니다."

"아무렴요. 어디 회장님이 누구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실 분입니까. 일신으로 우리나라 농가 전체 수입을 능가하시는 분인데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에 농민이 몇 명이고 농가가 몇 개인데요."

"아무튼 이번 농협 회장 선거, 부디 회장님께 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매도인이 조금 늦네요."

"공동명의자 4인이라서 그런 듯합니다. 자기들끼리 일단 모여서 다함께 이동하나 봅니다."

하수영이 오늘 온 것은, 새로운 빌딩 구매를 위해서였다.

우형신은 여러 장의 사진과 부동산관련 서류를 펼쳐놓으면서 설명했다.

"원래는 1인 소유 빌딩이었는데, 소유자가 사망하면서 자녀 4명에게 분할상속이 되어 지금은 명의자가 4인입니다. 자녀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아예 처분을 하고 대금을 나눠서 찢어지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지하에 있는 클럽은 임대차 기간이 얼마나 남았죠?"

"2년 정도 남았습니다. 월세 납입이나 사고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조용히 운영하면서 장사도 잘되는 알짜배기 세입자입니다."

우형신은 하수영이 3호기 빌딩을 매입하면서 텐프로 술집의 계약갱신을 거절한 걸 기억했다.

"이거 조폭 자금이 들어간 클럽은 아니죠?"

"아닙니다. 가수 아이리스라고, 유명 여가수가 창업한 클럽으로 유명하고 아주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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