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06화
102장 익스의 비밀(3)
"여기 섞은 엘릭서 드링크 농축액이 마약의 중독성이나 몸을 해하는 작용을 막아주는 겁니다. 그러니 탈날 걱정 없이 깔끔하게 마약의 환각성 같은 '즐거움만'을 즐길 수 있는 거죠."
정서희는 어떻게 그걸 알아봤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마 처음부터 뭔가 정보를 입수하고 클럽 탐방을 핑계로 조사를 나온 것이리라.
거기에 동행하게 된 것이 불쾌할 리가 없다.
지금 그녀는 그저, 하수영의 설명이 야기할 결과를 상상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마약을 아무리 먹어도 탈이 안 난다고요? 그럼 정말 최악인 거 아니에요?"
"네, 올바르게 보셨네요. 맞습니다. 아주 최악이죠."
하수영은 조소를 머금은 채 싸늘하게 덧붙였다.
"환각 증세 같은 건 전부 그대로인데, 약효가 떨어지면 먹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니까요. 몸도 아주 개운하고."
"몸이 망가지지 않으니까 오히려 즐거움을 누리려고 더 마음껏 먹게 되겠네요. 아무리 먹어도 몸이 탈이 날 일이 없으니까요. 복용량과 복용주기도 훨씬 늘어날 테고요. 돈만 된다면 말이에요."
"극단적인 일탈을 추구하는 부잣집 자제들이 하루가 멀다고 먹게 되겠죠? 1회분에 150만 원이나 하는 값비싼 마약이니 말입니다."
혼자서 하루에 1정씩 매일 먹는다 쳐도, 한 달에 10회만 먹어도 이미 1,500만 원이다.
이만큼 비싼 약을 감당하려면 돈이 많은 부잣집 2세들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가격 진입벽이 너무 높다.
주소비층은 결국 돈 많은 이들, 그리고 그들한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주변인들이 될 것이다.
"돈 많고, 마약을 즐기는 중독자들이 주로 찾게 되겠네요."
"유통자 입장에서는 장사가 아주 잘 되겠죠."
"애초에 일반 중독자가 아니라, 돈많은 중독자들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마약이군요."
"네, 정말 문제입니다."
둘은 눈빛을 교환하며, 이게 문제라는 것을 공감했다.
"화이트 스카치, 말도 안 되는 고상한 이름이지만, 아무튼 이걸 먹는 놈들이 자기 몸만 버리는 거면 차라리 나은데, 먹고 남만 해치려 들 테니 문제입니다."
"얼마 전에 마약하고 환각 상태에서 질주하다가 큰 사고 낸 사람 있지 않았나요? 그 사람 정작 자기는 좋은 차 타고 있어서 멀쩡하고 다른 사람만 여럿 크게 다치거나 죽었죠."
정서희는 나름 상류층이다.
한두 다리 건너건너서 누가 사고를졌네, 사람을 상하게 했네,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어느 기업 몇째 아들은 마약을 즐긴다더라, 여자 문제가 심하다더라, 폭력성이 있다더라.
같은 부류 동성 지인들과 그런 정보를 교류하면서 미래의 혼맥 구축을 대비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상류층 2세, 3세들 중 마약을 즐기는 이들이 얼마나 심하게 사고를 치는지 알고 있었다.
단지 언론에서 거의 보도가 되지 않을 뿐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기 전에, 돈으로 묻어버리니까.
피해자와 합의를 하든, 경찰이나 검찰선에서 덮어버리든, 다른 큰 이 슈를 터뜨려서 주목을 돌리든 간에.
복용자 본인은 멀쩡하니 마약을 더 자주 즐기게 되고, 환각 상태에서 폭력이나 범죄를 휘두를 위험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2차 피해 증가를 야기한다는 면에서는, 일반 마약보다 훨씬 질이 좋지 않다.
"오늘 서울 대형 클럽은 전부 한번씩 다 돌아봅시다."
"……네."
정서희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
하수영과 정서희는 전성렬의 제니 시스 EQ 리무진 차량을 타고 클럽을 돌아다녔다.
국산차를 타고 다녀서인지 클럽 측에서 그다지 큰 환영은 받지 못했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제네시스 EQ 리무진 오너, 아니, 제가 오너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무시하다니……."
"자기들 보기에는 그냥 1억 넘는 차량일 뿐이다. 이거죠. 그 돈 주고 왜 국산차 타고 다니냐고 속으로 비웃을 걸요?"
"원청업체나 거래처 눈치가 보여서 어쩔 수 없이 국산차로 타협하는 중견기업 오너들을 만나본 적이 없나 보군요."
"EQ 리무진 오너 아들이 아빠가 사준 페라리 타고 자기네 클럽 온다는 건 생각을 못 하는 거죠."
한국 기업계 비즈니스 세계에서, 재벌을 제외한 알짜배기 기업 오너들은 보통 국산차 중에서 제일 좋은 급을 탄다. 아무래도 거래처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물론 프라이빗카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기업 미팅을 가는데 하청업체 사장이 벤틀리 따위를 타고 나타나면, 상대하는 대기업 부장이나 팀장 입장에서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전성렬 사장님 벤틀리를 빌리는 건데."
"수영 씨는 근데 퍼포먼스 말고 다른 차는 안 사요? 거기 수납한 슈퍼카도 꼭 필요할 때 아니면은 안타는 거 같던데요."
"제가 신분을 숨기고 돈 많은 사장 행세를 하면서 클럽 탐방을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아무튼 하수영과 정서희는 새벽까지 부지런히 클럽을 돌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이태원이나 홍대 등 강북 쪽 클럽에서는 화이트 스카치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은 있었지만, 여기서는 수요가 적어서 구하기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런 비싼 거 구하려면 강남으로 넘어가셔야죠."
그래서 강남 외 클럽은 두어 군데, 만 돌아보고 다시 강남으로 넘어왔다.
손 큰 고객처럼 보이기 위해 화이 트 스카치를 천만 원대 단위로 구매하다 보니, 캐리어에 가득 담긴 현금도 금세 바닥을 보이곤 했다.
하수영은 그럴 때마다 트렁크에 실어둔 현금을 캐리어에 채워서 가득차게 유지했다.
우스운 것은 마약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이거저거 권하던 브로커들이, 화이트 스카치라는 이름이 나오자 다른 마약은 일절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31호기 빌딩 지하에 세 들어 있는 핀익스 클럽을 방문했다.
하수영이 화이트 스카치를 복용한 여자 손님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곳.
그녀는 편익스에서 화이트 스카치를 샀을 수도 있고, 다른 데서 샀을 수도 있다.
하수영은 핀익스에 룸을 잡고 직원을 통해 은밀하게 브로커를 찾았다.
"화이트 스카치면 다 끝이죠. 그거보다 더 좋은 마약은 없어요. 마약도 기분 좋자고 하는 건데 몸 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그래서 얼마나 가져올 수 있냐?"
"그런데 우리 젊으신 손님께서는 아까부터 왜 말끝마다 반말이실까.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지만 슬슬 기분 나쁘려고 합니다?"
브로커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반팔 셔츠 사이로 드러난 팔뚝은 적당한 근육이 잡혀 있지만, 문신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나 목덜미 등 다른 드러난 분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만난, 문신을 자랑하는 브로커들하고는 달랐다.
하수영은 조용한 미소를 머금으며, 브로커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내가 그럼 하찮은 약장수 따위한테 말을 높일까?"
"우리 고객님, 배짱이 아주 대단하셔. 차는 어디서 발렛 주차 요원이 몰래 끌고 나온 것 같은 걸 타고 다니시면서."
"푸?!"
그 말에 정서희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지만, 제네시스 차량을 처음 봤을 때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만 웃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봐. 너 심부름하는 거지, 지금?"
"심부름?"
"그게 아니고서야 왜 강남 클럽이란 클럽은 죄다 돌아다니면서 화이트 스카치를 사고 있지? 자차도 아닌 거 끌면서."
아무래도 브로커는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정서희는 웃음을 멈췄다.
조금 불안하긴 했는데, 결국 유통업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돈 모양이다.
겨우 몇 시간밖에 안 돼서 아직은 시간이 충분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누구 심부름으로 화이트 스카치 모으고 있는지는 알 바 아닌데, 처신 똑바로 해. 그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 가서 파묻힌다."
브로커는 작은 칼을 꺼내서 자기 손톱을 다듬으면서 건성으로 그리 말했다.
하수영은 팔짱을 끼고 쇼파에 몸을 깊이 묻으며 그를 빤히 주시했다.
"그래서, 얼마나 가져올 수 있냐고. 자꾸 묻게 만들래?"
도발적인 반말에, 브로커의 손질이 뚝 멈췄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고 하수영을 노려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풀썩 웃었다.
"고객님, 말이 왜 자꾸 짧으시냐고요. 맞을래요? 예? 한 대 맞으실래요? 아니면 나름 반반한 여자친구 앞이라고 지금 객기 부리는 거야, 뭐야?"
"약장수면 약장수답게 행동해, 난 얼마나 가져올 수 있냐고 물었다."
"우리 고객님이 지금 눈앞에서 여자친구가 열심히 뺑이 치는 거 한번 보셔야 정신을 차리시려고?"
"야, 꺼져. 혓바닥 긴 꼬라지 보니까 약 가진 것도 없는 놈이군. 팔 약도 없는 약팔이 버러지는 필요 없다."
하수영은 귀찮다는 듯이 훠이훠이 손바닥을 저으며,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오느라 고생했으니 이걸로 기름값이나 해. 꺼져."
브로커는 화난 척 위협을 가하며, 으르렁거리면서도 침착은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수영의 권태에 젖은 표정, 그리고 허공에 흩날리는 만 원짜리 두 장은 그의 분노가 순식간에 임계점을 돌파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새끼가 진짜!"
브로커는 칼을 들고 달려들었고, 정서희는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음 순간 하수영은 번개처럼 움직이며 브로커의 오른손목을 움켜잡고 거칠게 꺾었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칼을 뺏어서 거꾸로 그의 목에 날을 들이댔다.
순식간에 형세가 역전되자 브로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남을 찌르려면 너도 찔릴 각오는 했겠지?"
"야! 야! 다 들어와! 어서!"
브로커는 칼이 목을 겨누는 와중에도 고래고래 외졌고, 곧이어 거칠게 문이 열리며 덩치 큰 남자들 여섯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하수영은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이것 봐라? 똘마니들을 이렇게 많이 대기시켜 두고 계셨어?"
"너 이 새끼. 이거 순순히 놓으면 오늘 살아서 걸어 나가게만은 해준다. 순순히 안 놓으면…… 으억!"
하수영은 곧바로 칼을 거꾸로 쥐어 테이블에 꽂았다.
그리고 브로커의 두 손을 뒤로 돌려서 결박한 후, 그의 등을 짓눌러 안면을 칼날 바로 앞에 처박았다.
시퍼런 칼날이 바로 코앞에 위치하자 브로커의 눈썹도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팔 약도 없는 약팔이 주제에 왜 이렇게 그 더러운 성격을 주제 못하냐?"
"너 이 새끼, 설마 경찰을……."
"불렀다가는 네놈들이야말로 경찰오기 전에 평생 기어 다니게 만들어 주지. 안 불렀지?"
7 대 1이지만 하수영은 태연했다.
이래 봬도 입신 과정을 위해 엘릭서를 꾸준히 복용했던(지금은 중지했지만) 신체다.
7명이 아니라 20명이 달려들어도 자신은 물론이고 정서희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반면 정서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덩치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바로 하수영의 낯선 모습 때문이었다.
언제나 서글서글하고 밝기만 하던 하수영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영혼이 그 안에 깃든 것만 같았다.
저것은 그저 박력이 아니었다.
폭력과 살기에 아주 익숙한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맹수의 위압감 그 자체였다.
덩치들도 당황하고 있었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채 태연히 던지는 협박, 상대는 적어도 폭력에 매우 익숙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같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범한 샌님이 아니었다.
덩치 중 한 명이 일부러 한껏 위압적으로 말했다.
"너 이 새끼, 여기가 어딘지 알기나 해? 오늘 멀쩡히 여기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여기는 내 31호…… 아차차."
아가야, 여기 내 건물인데?
하마터면 그렇게 대답할 뻔했다.
"여기는 핀익스 클럽이지. 아무튼, 내가 여기서 멀쩡히 못 나갈 거 같냐?"
"이 새끼가 그래도! 우리 형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 우리 형님한테 그렇게 해놓고 너 새끼, 앞으로 청담동에서 밤길 편하게 다닐 것 같아! 앙!"
"푸흐읍!"
그러면 안 되는데, 정서희는 저도 모르게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를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