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39화
110장 소 사료를 만들려고 했을 뿐(4)
"프라임컴퍼니에서 도시락, 즉석밥에 제 쌀을 쓴다고 해서 줬습니다. 막걸리 회사도 하나 인수한다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또 줬습니다. 막걸리 말고 소주도 할 모양이던데요."
"그, 그렇군요."
"그리고 프라임컴퍼니, 오일, 유통, 레스토랑, 아무튼 제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 전수대상으로 신청을 받아서 또 쌀을 나눠 줬구요."
"정말 좋으신 사장님이시군요."
"그리고 제가 원래 국군 장병들한테 매달 황비버섯을 무료로 배송하는 거 아시죠?"
"물론 알지요. 그거 때문에 국군 장병 가족들이 의원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데요. 아, 그럼?"
"네, 이제부터는 국군 장병들 가정에 쌀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매달보내는 것은 서로 번거로우니 분기에 1회씩 보내는 것으로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일 년에 한 번씩 보내고 싶은데, 일 년 치 쌀을 가정집에 쌓아두는 것도 일이라서 분기에 1회로 정했습니다."
"꽤 많은 국군 장병들이 신청을 했겠군요."
"황비버섯 받는 장병들 대부분은 신청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한 없이 퍼주는 것은 아니고, 해당 가정에서 소모할 만큼 필요량을 보내기로 했어요."
"정말 손이 많이 갔겠는데요."
"프리덤한테 시켜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손이 많이 가진 않았어요."
하수영이 프리덤 오너라는 것을 모르는 양홍명 과장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750만 톤이나 되는 쌀을 한꺼번에 다 처분하기에는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750만 톤의 쌀이 어디 보통 적은가?
실물을 눈앞에서 영접하면 입이 떡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회사 식품 원재료로 나눠주고, 직원들 나눠주고, 국군 장병들 나눠준다고 해서 한 번에 다 없어질 양이 아니다.
직원, 국군 장병 가정에 1년치를 한꺼번에 준 것도 아니니, 아직은 상당량의 쌀이 남아 있을 텐데?
"의원님, 설마 쌀 나눠준 곳은 그게 전부인가요?"
"그럴 리가요. 가장 큰 건 아직 말도 안 했는데요."
역시. 그럼 그렇지.
양홍명은 과연 쌀을 가장 많이 가져갔다는 분야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양돈 농가에 나눠줬습니다."
"……양돈 농가요?"
"네, 작년 물난리 때문에 양돈 농가도 피해를 많이 봤잖아요. 사료값부담이라도 덜어드릴까 해서 신청받아서 남은 거 싹 나눠 드렸죠. 한 500만 톤 조금 안 될 거예요."
"벌써 배송까지 다 끝내신 겁니까?"
"아직 배송 중이지만, 농가당 얼마씩 나눠줄지는 이미 톡 메시지로 전부 통지했어요. 다들 쌀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겁니다."
500만 톤이라는 말에 양홍명은 잠시 암산을 해보았다.
'우리나라 전체 양돈 농가가 연간 대충 1,000만 톤 정도로 소모한다고 가정하면…….'
정확한 사료 소모량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개인의 기부로 치면 어마어마한 규모 아닌가.
500만 톤의 쌀을 사료로 기부했다니.
사료값 절약에 허덕이는 양돈 농가에서는 경사였으리라.
"그런데 왜 하필 양돈 농가입니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소고기 없이는 살아도 돼지고기 없이는 못 살잖아요. 소는 저번에 곤포 사일리지를 싸게 팔아줬으니까, 이번에는 돼지 사료에 몰아줬어요."
"그, 그렇군요. 그나저나 그러면 다음 분기 국군 장병들 가정에 보낼 쌀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도 생산 중입니다."
"흐어억!"
"앞으로 벼농사를 계속 짓기로 했습니다. 아, 국내 쌀 시장에 진출할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기껏해야 외식용 가공즉석밥 정도? 벼농사 짓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소 사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차라리 목초를 키우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는 목초가 더 좋습니다."
"지금은 제가 볏짚에 꽂혀서요. 나중에 목초 효과가 더 좋은 게 알려지면 그때 바꿀게요."
소의 성장 과정과 고기 맛까지 확인해봐야 볏짚과 목초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을 테니까.
볏짚은 효능이 완전히 검증되었지만 목초 검증은 한 타이밍 늦게 시작했다.
"송아지 때부터 목초 먹여서 키운 소가 이제 다음 달에 출하를 하거든요. 맛을 보고 결정하려고요."
***
어쨌든 양홍명은 빈손으로 돌아와서 외교부에 현재 상황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외교부는 낙심하지 않았다.
"다음 벼도 조만간 출하된다면서요? 수영농장의 생산력을 보면 인도시기를 그때로 미뤄도 늦지 않습니다. 베트남을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빼면 되겠지요."
"저도 그 이야기를 해봤는데, 하수영 회장님이 일본에 수출할 바에는 양돈 농가에 사료로 주실 거라고 합니다. 지금 양돈 농가가 돕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아니, 사람 먹을 쌀을 어떻게 돼지 사료로 줍니까?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그것도 몇백만 톤이 넘는 쌀을 그냥 무상으로 준다니요."
"이번에는 무상으로 지급했지만, 다음부터는 돈을 받고 팔 거라고 합니다."
외교부는 아쉬웠지만, 쌀 주인 마음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본과의 협상이 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쌀을 죄지은 것처럼 수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나라 선박에 실어서 다이렉트로 일본에 수출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합의가 된 바가 아닙니까? 우리 일본으로서는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으로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입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그리고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아니,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는 몇 번 팽팽한 줄다리기 협상을 하는 듯하다가, '그럼 없던 일로 합시다' 라고 거래를 끝내 버렸다.
당황한 일본 농림수산성이 다시금 거래 재개를 위해 나섰으나 외교부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너희가 하도 엿같이 굴어서 최근에 그냥 처분했다'라고 둘러댔다.
"그러게 시간 끌지 말고 초반에 빨리 산다고 하셨으면 되었을 일입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그렇게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고, 결국 한국이 아닌 제3국 쌀 수입을 추진해야만 했다.
***
목초 사육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송아지부터 목초만을 먹여서 키운 소들을 도축해서 고기 맛을 확인한 것이다.
"목초도 괜찮은데요? 볏짚을 먹여서 키운 소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볏짚 먹여서 키운 것과 마찬가지로 마블링이 많이 생기지 않는 게 특징이긴 한데, 마블링 좋은 고기보다 오히려 더 부드럽고 고소하며 맛있습니다."
"질리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정말 최고의 소고기입니다. 이런 고기라면 나라, 인종, 문화를 가리지 않고 환영받을 겁니다."
최진국은 시식을 끝낸 뒤 결론을 냈다.
"그러니까 목초나 볏짚이나 별 차이는 없다는 거군, 회장님께 보고해야겠어."
결과 보고를 들은 하수영은 수긍했다.
"그럼 볏짚보다는 목초 위주로 키워야겠네요. 볏짚은 쌀이 필요한 만큼만 키우면 되겠어요."
남아도는 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회사와 저소득층, 국군장병 지원 사업을 시작했으니.
그 분야에 필요한 만큼의 벼만 재배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최진국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회장님, 사실은 제가 이번에 사료업체들한테서 이런저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료업체요?"
"네, 저번에 회장님께서 양돈 농가에 벼 500만 톤을 사료로 쓰라고 나눠주셨다면서요."
"아, 사료업체 매출이 떨어졌겠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양돈 농가들은 부도나기 직전이었거든요. 작년에 물난리 피해가 좀 심했잖아요."
"저라도 그걸 모르겠습니까. 사료업체들한테 뭘 챙겨주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번에 사업 구상을 하나 해서요."
"혹시 사료 산업 진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흠…… 저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사료 산업에 진출하면 라면 시장과 같은 일이 벌어질 텐데요."
하수영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대기업이 점령한 시장을 먹어치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영세기업들이 노는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별로 안 내킵니다."
치킨 시장도 그래서 기존의 개인 치킨 매장주들을 대부분 품에 안는 방식으로 진출하지 않았던가.
6만 명이 넘는 치킨 사장들은 수영치킨 가맹점주가 되면서 오히려 전보다 수입이 늘고, 근무 환경 역시 대폭 개선되었다.
"수영치킨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출하면 됩니다. 회장님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을 겁니다."
"사료업체들이 회사를 팔라고 하면, 반발할 텐데요. 괜히 힘 빼고 싶지 않은데."
-마스터, 배합사료는 원료의 95%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오, 그래?"
프리덤의 설명에 하수영의 눈빛이 달라졌다.
물론 끼어든 것은 하수영의 프리덤이 아니라 최진국의 프리덤이었다.(실제로는 차이가 없지만)
"아아, 최 사장님의 구상이 뭔지 알겠습니다. 쌀을 배합사료 원료로 팔자는 거죠?"
"네, 기존 사료업체들을 보듬으면서, 동시에 축산농가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자들과의 공생이라, 좋습니다. 추진하세요."
하수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진 국을 보았다.
그저 소 잘 키우는 목장주인 줄만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진국이지 않은가.
적어도 쌀을 사료 원료로 파는 사업을 하자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에 양돈가에 나눠준 것은 '남아도는 벼'를 처분한 것이기에 누구나 납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먹는 귀한 쌀을 가지고 축산사료 사업을 하자는 발상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흠, 빨대 그릇의 자질이 있어. 이정도면 축산업 쪽은 완전히 믿고 맡길 만하겠는데.'
벼를 축산 사료로 활용하는 것.
수백만 톤이 넘는 벼를 거저 나눠주는 수영농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알겠지만 제 소들은 볏짚만 먹이셔야 합니다."
"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사료는 어디까지나 다른 축산농가에만 유통할 겁니다."
***
최진국은 곧바로 사료업체들과 접족했다.
연락을 받은 사료업체 사장들은 최진국의 얼굴을 보자마자 죽는소리를 해댔다.
"최 사장님, 우리 사료업계가 이러다가 정말 줄줄이 도산할 지경입니다."
"수영농장에서 벼 500만 톤을 돼지 먹이로 풀어버려서 타격이 컸어 가뜩이나 작년에 폐사율이 높아서 농가 사료 구입량이 줄었는데, 거기에 벼 500만 톤을 풀어버렸으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수영이 벼 500만 톤을 돼지 먹이로 나눔했으니, 당연히 그만큼의 사료 구입량이 줄어든다.
사료업체들의 죽는소리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양돈사료의 국내 평균 월 생산량은 50만 또는 60만 톤.
하수영은 국내 10개월지 생산량을 무상으로 풀어버린 셈이다.
최진국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미리 준비한 '연기'를 시작했다.
"여기 모신 여러분들은 제가 오랫동안 축산업을 하면서 인연을 쌓아 오신 분들입니다."
"맞습니다. 오랜 인연이지요."
"제가 이 바닥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최 사장님께서 소 사료를 한꺼번에 사주시고, 또 주변에도 칭찬을 돌리셔서 한시름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좋게 입을 떼자 다들 기다렸다는듯이 최진국의 인품을 칭송했다. 최진국 본인 입장에서도 낯 뜨거워질만큼 근거 없는 칭찬이었다.
'내가 그렇게 착했었나? 아닌 거 같은데.'
"하지만 죄송한 이야기를 드리게 되었어요. 그래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싶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손절하는 게 여러분들의 손해를 줄이는 일이니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료업체 사장들의 얼굴에 당황함과 절박함이 어렸다.
"본격적으로 사료 생산을 해보려고 합니다."
당근을 주기 전에는 채찍부터.
옛부터 전해지는 불변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