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41화
111장 카르텔의 파편들(2)
축산농민, 어민들은 수영농장의 사료 산업 진출을 환영했다.
사료업체는 목숨을 걸고 반발했다.
농협, 농식품부, 해수부는 중간에 낀 채 매일같이 양쪽에 얻어터졌다.
최진국의 목장 입구에서는 진을 치고 앉아서 시위하는 사료업체 종사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며칠을 주기로 교대하면서 24시간 시위하며 자신들의 절박함을 알렸다.
그리고 최진국은 갈등이 극에 달할 때까지 유유히 그 모든 것을 구경했다.
"이번 사료 사태, 청와대까지 보고가 들어갔다던데."
"대통령도 고심하는 눈치라고 하더군."
"설마 대통령이 직접 나설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 청와대 선에서 뭔가 결정이 되더라도, 장관 선에서 책임지고 실행하겠지."
"가축사료계의 패왕 등장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지금 청와대는 갈팡질팡하는 거 같던데. '수영사료의 손을 들어주자니 기존 사료업체들의 반발이 걸리고, 그렇다고 수영 사료를 배제하자니 축산농민들과 양식장주들의 반발이 또 걸리고."
"정부는 무슨 선택을 하든 간에 무조건 욕을 먹는군."
"이런 경우가 제일 개입하기 싫은 경우지."
농협, 농식품부, 해수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료업계의 독점지배자가 탄생하는 것을.
수영농장의 사료 산업 진출을 허용하면 국내 가축사료의 명줄은 오롯이 한 업체가 쥐고 흔들게 된다.
그것이 과연 국내 식량 자급률 문제에 있어 강점이 될까, 아니면 약점이 될까?
"문제는 사료 산업 진출을 막을 근거가 없습니다. 이게 무슨 무기 사업도 아니고……."
"적법한 요건을 갖추면 사업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허가 문제 가지고 질질 끌었다가 수영농장이 분노하기라도 하면 큰일납니다."
"그분 지역구 후원회원 중에서 여당 대표 삼촌 되시는 분이 있지 않던가요?"
심지어 국방부에서도 한 발 슬쩍 끼워 넣으려고 했다.
국내에서 단일 조직으로서 가장 많은 식료품을 소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농식품부가 최진국한테 이런 견제를 날리기도 했다.
"벼 위주로 배합사료를 만들면 단백질이 부족해서 가축들의 성장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물론 최진국은 그런 공격을 가볍게 받아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공도 섞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작물도 키워서 넣을 겁니다."
"품질에서 아무 문제 없는 배합사료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할 필요도 없어요. 모든 고기를 완벽한 국산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기의 완벽한 국산화.
가축사료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 명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농협, 농식품부, 해수부는 사료업체들을 제물로 삼기로 했다.
"축산업의 완벽한 국산화, 자급자 족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식량 전쟁이 대두되는 이 시기에, 육류를 완벽하게 국산화할 수 있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강점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육류가격은 더 이상 국제 곡물 가격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수영농장은 작물의 가격 인하에 지대한 공을 기여했습니 '수영사료는 어떤 분야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닭, 오리, 거위, 돼지, 소, 동물원의 초식동물, 심지어 양식장 사료까지.
육류, 어패류 가격이 해외 곡류가 변동에 요동치는 일은 이제 없으리라.
사료업체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누구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들을 돌아봐 주지 않는다.
이대로 평생을 종사한 생업에서 강제로 쫓겨날 판이다.
그들은 마지막 행동에 나섰다.
"최진국이는 협상에 응해라! 우리는 살고 싶다!"
"협상에 응해라!"
"네놈 혼자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더냐!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불 질러 죽겠다! 그러고도 네가 잘 먹고 잘사나 보겠다!"
60세가 넘는 사료업체 사장 한 명이 휘발유와 라이터를 들고 목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현장에는 농식품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와 있었고, 출동한 경찰이 어떻게든 그를 말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분신자살을 준비한 사장은 결연하게 모든 대화를 거부했다.
그는 오로지 최진국, 한 명을 원했다.
"최진국이 나오란 말이다!"
"이제 서둘러 당근을 줘야겠습니다. 진짜 불이라도 지르면 안 되잖습니까."
"처음부터 여기까지 기획하신 겁니까?"
하수영의 질문에 최진국은 가볍게 끄덕였다.
"궁지에 몰려고 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자살 소동까지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위험하니까요."
"네, 그건 그렇죠. 이제 후딱 해결해야 합니다."
"원래 채찍 다음에 당근을 주라고 했고, 열 번 쌀쌀맞게 굴다가 한 번 잘해주라고 했고, 조삼모사라고 했습니다. 궁지에 몰아넣은 다음에 원하는 것을 제시해야지 더 이상 안깎으려고 듭니다."
"훌륭합니다. 역시 최진국 사장님을 믿은 보람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혹 마음이 변하셔서 사료시장 다 먹어치우라고 하면 저들은 어쩌나 고민했습니다. 사실 지금 상황은 수영사료가 전부 먹어치워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분위기니까요."
하수영이 슬그머니 욕심이 생길 수도 있기에, 최진국은 그 점이 불안했다.
"아닙니다. 사료업체 종사자들도 사람입니다. 그들도 보듬고 가야지 하수영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돈만 생각했으면 제가 그 쌀들 전부 시장에 다 풀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농사에만 몰두하지 않고 전방 위적으로 사업을 벌였을 겁니다."
"그럼 예정했던 대로 저들도 끌어 안겠습니다."
최진국은 흡족했다.
자신이 원하는 무대가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자살 소동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완벽했을 텐데. 자칫하다가는 누가 죽을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자, 회장님이 나서실 차례입니다."
"이거, 안 좋은 이미지는 혼자 뒤집어쓰셔서 제가 너무 미안한데."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오늘 안으로 확실하게 금융보상해드리겠습니다."
최진국은 자신이 준비한 무대 위로 나서는 하수영의 뒷모습을 든든하게 주시했다.
목장 시위 현장에 갑작스러운 얼굴이 나타났다.
"어? 하수영이다!"
"하수영 농민이 왔다!"
"하, 하수영 사장이야!"
"하수영 의원님이셔!"
"하수영 건물주가 오셨다!"
사료업체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정부 관계자들, 농어민들도 당황해서 하수영을 맞이했다.
하수영은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흙과 기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심지어 얼굴에는 먼지와 재투성이였다.
누가 봐도 농사 등 여러 작업에 바쁘게 시달리다가 부랴부랴 급히 달려온 사람의 복장이었다.
오죽하면 휘발유 통을 든 60대 사장도 멈칫한 채 멍하니 하수영을 바라봤다.
"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미안합니다. 연락받고 부랴부 랴 달려왔습니다."
하수영은 목청을 가다듬고 말한 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자살소동자를 바라봤다.
"그거 이리 주세요. 기름통."
"이리 주세요. 오늘 아무도 안 죽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아무도 안굶어 죽습니다."
"생업에 걱정 없이 계속 종사할 수 있게 해드릴 테니까, 그거 이리 주세요. 약속합니다."
60대 사장은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하수영이 눈짓하자 경찰들이 얼른 달려와서 휘발유 통을 들었다.
다른 한 명이 60대 사장을 일으키려 하자 하수영이 조용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눈짓으로 놔두세요'라고 말하자 경찰들은 얼른 알아듣고 휘발유 통만 챙겨서 물러났다.
"본업인 부동산 임대업 때문에 바빠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료업체 관계 자분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이제 전부 파악했습니다."
하수영이 입을 열자 모든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숨소리조차 죽이고 들었다.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모두가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게 뭡니까!"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 물었다.
진영을 보니 사료업체 종사자였다.
나이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마 한창 돈이 들어갈 자녀들을 거느린, 한 가정의 가장일 것이다.
"수영사료는 배합사료를 생산하지 않고, 원료만을 팔겠습니다. 그럼 사료업체 피해는 없을 겁니다."
"우, 우와아아아!"
순간 참았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자살 소동을 벌였던 업체 사장도 그제야 기쁨의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팔다리의 힘이 한꺼번에 빠진 것이다.
어차피 배합사료 원료는 전부 해외에서 사온다.
하수영의 말대로 하면 국내 수입처말고 손해 보는 이가 없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들도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콜럼버스의 달걀, 간단하지만 누가 먼저 하기 전까지는 떠올리기 힘든 해결책.
사료생산 진출 자체만 주목하다 보니, 생산이 아닌 원료 판매라는 중 재책은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원료 판매가는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기존 수입 가격의 50%…… 아니, 80% 이하의 가격으로 팔겠습니다. 일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국내 축산업의 발전과 고기 가격 안정을 위해서 계속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수영! 하수영!"
"그 대신."
하수영이 단서를 달자 사료업체 진영의 함성이 잦아들었다.
하수영은 불만이 담긴 축산농민, 어민들의 표정을 흘끗 보고는 다시 사료업체 사장들을 향해 말했다.
"제가 깎아드린 가격은 사료 판매가에 당연히 그대로 반영이 되어야겠지요?"
"무, 물론입니다!"
"깎아주신 가격은 전혀 에누리 없이 반영하겠습니다! 조금도 저희가 취하지 않겠습니다!"
"평생 약속 지키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감사라도 받겠습니다! 저희가 사기를 친다면 열배, 백 배 이상으로 배상하겠습니다!"
그제야 하수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축산농민, 어민들을 바라봤다.
"이분들한테 사료를 사셔도, 수영사료가 원래 팔려고 했던 가격과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요. 괜찮지 않나요?"
"정말입니까?"
"네, 원료 가격이야 정해져 있으니까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일 겁니다. 차라리 구매처가 다양한 게 편리하실 수 있어요. 사료업체가 딱 1개뿐이면 아무래도 불편하겠죠."
듣고 보니 딱히 반발할 말이 없었다.
어느 쪽이 되든 간에, 자신들이 사료를 사는 가격은 같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물론 기존에 사던 가격보다는 싼가격이다.
"좀 더 빨리 참견했어야 했는데, 요즘 건물 매입 문제 때문에 바빠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네요.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다들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입을 꾹 다물고 집중했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수영사료는 여기 있는 모든 사료업체에 공평하고 공정하게 사료원료를 저렴하게 팔고, 사료업체들은 그 단가 차이를 최종 판매가에 반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축산농민들은 예전보다 싼 값에 팔수 있으니까 이익.
사료업체들은 예전보다 싼 값에 팔아야 하지만, 대신 마진금 자체는 그대로 유지. 쫄딱 망하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이 이익.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파트월세입자가 보일러 고장 났다고 해서 급히 가봐야 하거든요."
그렇게 사료 사태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부동산 때문에 바쁘다는 사람이 복장은 왜 농장에 난 화재 바쁘게 진압하다가 온 사람 같지?'
어느 정부 관계자의 생각이었다.
'부동산 재벌인데 아파트 보일러고장을 자기가 직접 봐주는 건가?'
또 다른 정부 관계자의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든 사료 시장을 한 명이 제패했구나.'
신임 농협 회장, 김산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