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42화
111장 카르텔의 파편들(3)
"하수영 회장님, 만세!"
시위를 마친 사료업체 사장들은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다 같이 회식을 벌였다.
이 좋은 날, 어찌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다들 부어라 마셔라 먹어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사장 한 명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최진국 사장, 내가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 욕심쟁이일 줄 누가 알았겠어!"
"암! 그렇고말고!"
"최진국이 그놈이 우리를 전부 죽이려고 한 거야!"
"하수영 회장님이 뒤늦게 그걸 알고 막아주셨지. 하…… 최진국이 때문에 진짜 우리 김 사장님 내년에 제사상 받을 뻔했어."
여기저기서 울분과 함께 최진국을 향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비교적 덜 취한 사장 한 명이 당황해서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그들을 말렸다.
"쉿! 쉿! 다들 입조심해! 이러다가 최진국 사장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귀에 들어갈 테면 들어가라지! 우리가 뭐 틀린 말 했어?"
"최진국이는 욕먹어도 싸!"
"그놈 때문에 우리 모두 쫄딱 망할 뻔한 거 생각하면, 어휴 지금도 숨이 안 쉬어져!"
여전히 성토가 그치지 않는 분위기이자 만류했던 인물이 다시금 다급 외쳤다.
"다들 잊었어? 우리가 뭐라고 하든간에 최진국 사장은 수영사료 책임자야!"
딸! 딸꾹!"
"커헉!"
그제야 여기저기서 놀란 기침이 터져 나왔다.
성토가 순식간에 잦아들자 말을 꺼낸 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다들 잊지 말어. 이제부터는 수영사료가 우리 갑이고, 최진국 사장은 수영사료 책임자야."
"그, 그렇지."
"왜 그걸 깜빡 잊고 있었지?"
"이 일 때문에 최진국 사장 바짝이 갈고 있을 거야. 하수영 회장님한테 한바탕 잔소리도 들었을 테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테니까."
"그 앞에서 납작 엎드려야겠구먼."
"최진국 사장 심기 더 건드렸다가는 원료 구매가 까다로울 수도 있겠어."
"설마 하수영 회장이 한 말이 있는데 뒤에서 몰래 장난을 치지는 않겠지?"
"우리, 이제 진짜 말조심하자고, 여기서 어느 배반자가 우리끼리 이런 말을 했다고 몰래 말 흘릴지 누가 알아?"
그 말에 다들 서로를 잠재적 배신 자를 보는 눈길로 바라보며, 조용히 술잔만 들이 컸다.
사료업체들의 모든 원망은 최진국이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것을 내색하지 못할 것이다.
최진국이 사료산업의 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근데 여보, 원래 처음부터 사료원료 판매만 할 생각이었다면서 왜 이렇게 한 거예요? 쓸데없이 당신만 욕먹고 있잖아요."
어린 아내가 속상하다는 듯이 말하자 최진국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사료 원료 싸게 줄 테니까 너희도 그만큼 사료 싸게 팔아라,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순순히 듣겠어? 사업하는 양반들 다 돈귀신들인데?"
"그런가요?"
"반발도 컸을 테고, 그 자리에서 듣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뒤에서 장난을 쳤을 거야."
그냥 잘해주는 사람과, 사정없이 두들겨 팬 다음 잘해주는 사람.
보통은 후자에 더 큰 감동을 받고 열성적이게 된다.
"자기들이 쫄딱 망할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잖아. 바닥까지 내려 갔다가 겨우 올라왔고, 이런 경험이 있으니 뒤에서 장난질은 잘 못 치겠지."
물론 적절한 감시도 지속적으로 병행해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냥 잘해준다고 하면 사람 마음을 많이 못 움직여."
"그래서 당신이 연애 초기에 나한데 그렇게 나쁘게 굴었구나. 이제야 이해가 돼요."
"아니, 내가 언제 나쁘게 대했는데? 억울하다."
"그랬잖아요. 처음에는 막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잘해주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딱 차가워졌잖아요. 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속상했었는데."
"아, 덥다. 더워. 바람이라도 쐬러가야지."
최진국이 후다닥 일어서려고 하자 아내는 얼른 화제를 바꿨다.
"근데 당신만 나쁜 사람 돼서 나 너무 속상해요. 아무리 당신이 원했다고 해도, 이렇게 욕먹는 건 싫은데."
"원래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오래 살어.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욕만 먹은 것도 아니야. 두둑한 보너스도 받았어."
"뭐 받았어요?"
"내 이름으로 삼성동에 상가 하나 사주신대. 거기서 직영마트 하나 운영하면 어떠냐고 하시더라고."
"삼성동이면 청담동보다는 장사는 잘되겠네요. 빌딩이 아니고 상가 사무실 하나 주시는 거 맞죠?"
"당연하지. 이 정도 가지고 강남에 빌딩 사주길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지."
며칠 후,
최진국은 상가 인수를 위해서 서울을 찾았다.
증여가 아니라 보너스 급여 개념이기에, 상가 인수 비용은 법인 계좌에서 나갔다.
서울로 향하는 도중에만 해도, 최진국은 적당한 규모의 중소형 상가 사무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영한우, 수영생닭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도매점 사무소로 운영하면 되겠지.'
중개사무소는 삼성동 신축 초고층주상복합 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그곳에서 낯선 중개사, 낯이 익은 우형신 중개사, 그리고 하수영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인감은 준비하셨죠?"
"네, 회장님."
하수영은 최진국만 들을 수 있도록 낮게 말했다.
"상가가 원래 우리 우 사장님 물건은 아니고 여기 사무소 물건인데, 우 사장님이 연결해 준 겁니다. 중 개수수료는 발품비로 100만 원만 받겠다고 하시네요."
"아이고, 감사해서 어떡합니까."
100만 원이면 엄청 싸게 해주는 거구나, 하고 최진국은 생각했다.
"참, 매도인 측에는 비밀입니다. 저쪽 중개사와 매도인이 괜히 싸움 날수 있어요. 수수료가 0단위 두 개 차이 나니까요."
0단위 두 개 차이가 난다고요?"
최진국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삼성동이라지만, 상가 하나 중개수수료 억 단위라고? 빌딩도 아닌데?
"그래도 도장 찍기 전에 새 주인 될 분이 물건은 한 번 둘러봐야겠죠?"
"그럼요. 안내하겠습니다. 매도인분오기 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하수영, 최진국, 우형신, 그리고 여기 중개사.
넷은 엘리베이터에 탔고, 중개사가 지하 1층 버튼을 눌렀다.
최진국이 그걸 보고 말했다.
"사장님, 여기 주차장은 지하 2층부터 있는데요."
그 말에 하수영과 우형신이 키득거렸고, 중개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사장님. 물건이 여기 빌딩 지하 1층이라서요."
"아, 여기 지하 1층에 상가가 있는 건가요?"
"네, 뭐 그렇습니다."
최진국은 왜 우형신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지하 1층에 내려가자 넓고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넓게 트인 공간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굵직한 콘크리트 기둥뿐이었다.
장사를 하는 상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가가 어디 있는 겁니까?"
"여기 지하 1층 전체가 상가입니다."
"네?"
"여기 한 개 층이 통째로, 앞으로 사장님 소유가 되는 겁니다. 이 빌딩의 한 층을 전부 가지시는 거죠."
최진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적어도 100미터는 넘어 보인다. 이러면 매매가도 엄청날 텐데, 이게 통째로 자기 거라고?
그제야 왜 매도인 측 수수료가 억단위라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상가 가격만 수백억은 할 테니까.
"………회장님, 이건 저에게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절 띄워주시려고 대신해서 자청해서 욕받이 하셨는데, 이 정도는 받으셔야죠. 여기에 대형 마트 운영하면 적당할 거 같은데, 어떠세요?"
"원래 강남에 축산물 대형 마트 하나 내고 싶어하셨잖아요. 최우석 어르신한테서 들었습니다."
최진국은 벅차오르는 감동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락을 받은 아내는 자신보다 더 좋아했다.
-여보, 나 거기 마트에서 일하면 안 돼?
"당신이 무슨 수로 장사를 해. 평생 물 한 번 안 묻혀봤으면서. 사람 수십, 수백 명씩 다루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누가 내가 마트 사장한데? 그냥 마트에서 일하고 싶다는 거지. 관리 직 같은 거.
"그럼 애는 누가 키워?"
-우리도 이참에 서울에 집 하나 사요. 나도 삼성동에서 살고 싶어.
응?
"끊어."
전화를 끊은 최진국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여편네가 괜히 폐에 바람만 들어가서 말이야."
최진국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미 매매거래는 다 끝났고, 법무사가 등기서류를 챙겨서 일어나고 있었다.
'종합마트로 운영하면서 수영사료관리사무소도 병행하면 괜찮겠네. 수영사료야 어차피 원료만 팔 거니까 큰 사무실이 필요한 건 아니지. 그러고 보니 수영사료에서 일할 직원들도 슬슬 구해야 하는데.'
"아, 맞다. 최진국 사장님, 이거 한번 봐주시겠어요?"
"네?"
하수영이 태블릿으로 3D 조감도를 보여주자 최진국은 얼른 집중했다.
"이건…… 방목형 목장인가요? 목장치고는 생각보다 많이 작군요."
"목장이 아니라 도축장입니다."
"네? 이게 도축장이라고요?"
최진국은 놀라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3D 조감도는 겉으로 보이는 풍경만을 그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영락없이 목장이다.
울타리 안에 가축들이 산책할 수 있는 들판이 있고, 한쪽에는 커다란 축사장도 보인다.
"설마 이게 축사장이 아니라 도축시설입니까?"
"네, 도축시설 내부도 보여드리죠."
다음 설계도로 넘어갔다.
단순한 축사장으로 보였던 도축장내부 시설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보인다.
최진국은 순간 혼란스러웠다.
가축 해체 설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기들만 즐비했던 것이다.
도축장을 많이 드나들었던 최진국이 보기에, 자신이 알던 그 어떤 도축장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꼭 무슨 군사시설 같은데?"
"이 설비들은 대체 뭐하는 것들입니까? 아무리 봐도 해체 시설은 아닌 거 같은데요."
"발골 해체 자동화 시스템은 아직 설계 중입니다. 여기 이건 형상에너지 중립화 변환 펄스를 이용한 도축시설이고요."
"형상 뭐시기 펄스… 이게 도축시설이라고요?"
"네, 원래는 대항성병… 아무튼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데 도축설비로 쓰면 좋을 거 같아서요."
최진국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군사 목적 무기를 뭐? 도축설비로 쓴다고?
관련 지식이 없는 최진국이 할 수 있는 질문은 이것뿐이었다.
"이건 어떤 식으로 도축을 한다는 건가요? 전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가상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여드리 죠."
화면에는 곧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가상 도축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트럭에서 내린 소들이 목장 안으로 들어간다.
소들은 도축장이 아니라 다른 목장으로 이사온 줄 알고 안심하며 평온하게 산책한다.
도축시설 내부의 모습은 소들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축시설 내부에 설치된 '펄스 뭐 시기 하는 놈'의 안테나 같은 부품이 갑자기 붉게 빛난다.
"실제로 저렇게 붉게 변하진 않습니다만, 알아보시기 쉽게 제가 시각적 효과를 넣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붉게 변한 안테나에서 흘러나오는 파장이 소들의 머리와 동기화하듯이 이어진다.
소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지금 소들의 두뇌와 펄스가 이어지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거나 감별을 할 수는 없어요. 이해를 돕기 위한 시각적 효과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소들은 천천히 졸음이 몰려와서, 하나둘씩 그 자리에 배를 깔고 조용히 눕는다.
완전히 잠든 상황에서 그대로 소의 숨뇌가 파괴되며, 고통 없이 조용히 숨이 끊어진다.
"중립화 변환 펄스 파장으로 소의 뇌에 수면 자극을 주어 잠들게 만든 다음, 그대로 고통 없이 생명 활동을 정지시키는 거죠. 소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축에도 응용 가능합니다."
"이거 혹시 신경가스 그런 겁니까?"
"…그냥 레이저라고 생각해 주세요."
정확히는 레이저도 아니지만, 원래는 별을 지져서 블랙홀로 만들 때 쓰던 무기의 작동원리를 살짝 출력을 낮춰서 도축에 적용해 본 것이다.
가축들의 고통 없는 죽음을 위하여.
'어차피 지금 부품 수준으로는 원래 성능을 낼 만큼의 출력은 어림도 없으니, 이런 식으로 쓰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