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47화
112장 부자는 입원하고 싶다(2)
2차종합병원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숨이 넘어가는 환자라 해도 병원 문턱을 넘기만 하면 일단 살아난다니.
그리고 결국에는 나아서 퇴원한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수치가 모든 것을 사실이라고 증명하고 있었다.
현재 수영병원 영안실에 있는 고인들은 전부 병원 외부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로 운송된 이들이니.
병원에서 운영하는 재활훈련센터의 치료 성과 또한 아주 좋다.
재활 훈련을 받은 환자들은 의료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보였으며, 재활 훈련 기간도 짧았다.
예를 들어 의료진이 1년 정도 재활해서 30% 정도의 개선 효과를 볼 거라고 예측을 한다고 치자.(이것도 후하게 잡은 것) 하지만 막상 재활 훈련을 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두 달도 안 돼서 의료진이 예측한 재활 회복도를 충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이론상으로 가능한 최대 회복치를 달성한다.
이쯤 되면 환자와 가족들이 애걸복걸한다.
재활 좀 더 받고 싶은데 안 돼요?"
"선생님, 지금 효과가 너무 좋잖아요. 좀 더 재활하면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좀 더 훈련을 받으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만, 지금도 순번을 기다리는 재활 환자들이 밀려 있어서요. 이제부터는 통원하면서 훈련하시죠. 아니면 다른 재활훈련원을 가셔도 됩니다."
"여기 병원이 기가 좋잖아요! 무조건 여기 병원에서 재활하고 싶어요!"
"그런 건 모두 미신입니다.
"미신이라니요! 정작 선생님들이 더 열심히 믿고 있다는 거 다 들었어요!"
아무튼 말도 안 되는 재활 효과를 본 재활 환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어 했지만, 결국 순번을 기다리는 이들에 밀려서 통원으로 전환해야 했다.
"우리 석현이도 청담수영병원 재활센터에서 재활을 받게 해야 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
진태호는 아들만 생각하면 애가 탔다.
문제는 지금 청담수영병원 재활센터 통원 훈련도 순번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반년은 기다려야 자리가 난 다나?
처음에는 재활센터 VIP실 입원을 통해 돌파하려고 했다.
한 달 '병실료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특실에 입원하면 얼마든지 재활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VIP실이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진태호도 그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이 나라에 재활을 받아야 하는 부자들이 그렇게나 많았나, 하고 혼란스러울 정도였으니.
'그렇다면 본동 VIP실에 입원해서 재활센터를 이용하자!'
라는 우회적 방법도 시도했지만, 본동 VIP실 역시 이미 꽉 차 있었기에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나마 입원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라테마트 청담지점을 넘기고 머리 숙여 사죄해서 겉으로나마 화해를 얻어낸 덕분이다.
만약 겉으로나마 화해하지 않았다.
면, 아들을 입원시키고 싶다는 제안조차 못 꺼냈을 것이다.
그것은 체면을 구기는 것이고, 그랬다가는 부친의 진노가 자신을 위태롭게 했을 테니까.
"사장님,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무슨 방법?"
6인실이나 8인실 입원을 노려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 석현이를 그 좁고 시끄러운 다인실에 입원시키자고?"
"VIP실, 특실, 1인실, 2인실, 3인 실, 4인실 모두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는 상황이고요. 하지만 6인실은 자리가 있을 겁니다."
보통 병원은 6~8인실이 환자한테 가장 인기가 많다.
병실료가 가장 저렴해서 장기입원을 해야 하는 환자 입장에서 재정적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앞을 다투어 다인실에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청담수영병원은 사정이 좀 다르다.
병원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사회환원정책, 환자병원비부담액 상한제덕분이다.
환자가 월 소득의 일정 퍼센티지 이상까지만 부담하게 하고, 나머지는 수영의료재단에서 대신 부담해 준다.
덕분에 환자 입장에서는 2인실, 4인실, 6인실의 입원료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때문에 가능한 쾌적한 입원치료를 위해 6~8인실보다는 4인실을, 4인 실보다는 2인실을 선호하게 된다.
"내가 라테그룹 부회장이야! 진철진 회장님을 친아버지로 둔 몸이라고, 그런 내가, 귀한 장남을 그 시끄럽고 정신없는 6인실에 입원시키라고?"
"세경그룹 회장이 수술받으려고 돈싸짊어지고 찾아갔는데도 매뉴얼대로 순번 받아서 대기하라고 한 곳이 수영병원입니다, 부회장님."
"세경 회장도?"
재계 10위 안에 드는 세경그룹이다.
라테그룹보다는 못하지만, 그곳의 오너라면 적어도 자신보다 아래라고는 할 수 없다.
차남인 자신은 라테그룹 회장직 승계가 불투명한 상황이니.
"네, 애초에 돈 벌려고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다 보니 돈으로 회유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400억짜리 닥터헬기를 10기나 도입하고, 이제 20기와 공중급유기까지 추가로 도입하려는 병원인데..
"세경 회장님도 자리 나길 기다려서 3인실에 간신히 겨우 입원하셔서 수술받고 회복 중입니다."
"세경 회장이 3인실……"
6인실은 그나마 자리가 있을 겁니다. 환자들 더 몰려들어서 자리 없어지기 전에 일단 입원부터 시키는 게 어떨지요? 그래도 청담수영병원이 환자들 회복과 퇴원은 빨라서 병실 순환은 잘되는 편입니다."
6인실, 6인실…"
진태호 부회장은 아직도 장남을 6인실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한참 후에야 겨우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하게. 6인실이라도 일단 입원시켜. 하루빨리 재활 받게 하는 게 낫지."
"네,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즉시 병원 재활센터 6인실 입원을 알아보러 갔다.
얼마 후 그는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부회장님, 죄송합니다."
"또 무슨 일이야?"
6인실이 꽉 찼다고 합니다."
"대, 대신 8인실은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마침 딱 한 자리만 남았어서…"
"지금 뭐해! 얼른 가서 예약하고 입원시켜야지! 설마 그것마저 놓칠 생각이야!"
"일단 그 자리는 잡아놨습니다. 오늘 바로 입원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길길이 날뛰던 진태호는 비서실장의 대답에 비로소 분노를 가라앉혔다.
일단 입원은 확정했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입맛은 쓰다.
8인실, 가장 낮은 등급의 병실 아닌가.
VIP실에 입원을 시켜도 모자랄 판에, 하루 입원료가 만 원 남짓 밖에 안 하는 병실에 입원해야 하다니.
서해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던 진석현은 곧바로 전원 준비를 했다.
처음 진석현은 청담수영병원으로 전원한다는 말에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다.
"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김 실장, 당신이라면 그 병원을 가겠냐고!"
얼굴도 한 번 못 본 하수영이란 이름은 진석현에게는 아주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그놈 때문에 자신은 하반신 불구가 되었고, 그룹은 청담동 라테마트 부지를 넘겨주었으며, 덕분에 자신은 불구인 몸에도 조부의 눈밖에 벗어났다.
수영, 진석현에게는 액운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도련님,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 부회장님 명령이십니다."
"아버지와 통화해야겠어! 난 죽어도 그 병원에 안 가! 절대 못 가!
여기 있을 거라고!"
"도련님, 부회장님이 전원 결정을 내리신 것은 모두 도련님을 위해서입니다."
"날 위해서라면 거길 보내지 마셔야지! 이건 내가 괘씸하니까 고통받으라는 채찍질하고 뭐가 달라!"
진석현은 수영병원으로 가라는 조치를 벌칙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수밖에.
김 실장은 포기하지 않고 간곡히 설명했다.
"도련님, 부회장님께서 아프신 도련님을 설마 더 아프게 하시려고 그러겠습니까. 순수한 마음에서 도련님을 위해서입니다. 청담수영병원은 아주 특별합니다."
"돈 많은 병원이라는 건 나도 알아, 안다고! 닥터헬기에만 조 단위로 돈을 썼다며!"
"그게 아닙니다. 청담수영병원은 정말 특별한 병원입니다. 그곳에서는…"
김 실장은 침착하게 청담수영병원이 지닌 징크스에 관해서 설명했다.
병원 내에서 사망한 사람이 전혀 없으며, 아무리 위중한 환자라도 문턱을 넘으면 반드시 회복돼서 퇴원하고, 재활센터에서는 환자들이 이론상 회복 한계치까지 회복도를 보인다고.
자세한 설명을 듣자 진석현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김 실장, 그게 정말이야? 미신 아니야?"
"다른 병원보다 재활 성과가 월등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대로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노력을 해봐야지요."
"…알았어."
진석현은 결국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퇴실 준비가 다 끝나갈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돌아왔다.
"뭐요? 병실 자리가 없다고요?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다고 했잖습니까?"
- 입원 환자가 추가로 늘어서요. 그래서 지금 모든 센터의 병실이 만실입니다.
"아니, 우리가 먼저 예약을 했는데 이런 게 어디 있습니까!"
-타병원 환자 예약보다는 우리 병원을 방문하신 환자분이 더 우선권을 갖습니다. 유감입니다.
'가만,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김 실장은 불현듯 통화 상대인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들었더라?
-그러니 진석현 환자는 서해서울 병원에서 재활을 계속 받는 게 좋을 듯합니다.
느낌이 싸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고, 유감이라고 한다.
'진석현 환자분도 아니고 '진석현환자'라고 한다.
그리고 서해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예약을 할 때 현재 어디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는데?
"그럼 언제 자리가 나는 겁니까?"
-그거야 저도 모르죠. 우리 병원이 병실에 비해서 얼마나 환자가 미어 터지는데요.
청담수영병원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의료진이나 직원이 아니라, 병실이라는 말이 있다.
"혹시 다음에 자리가 나면 연락 주실 수 있습니까? VIP실이든 8인실이든 좋습니다."
- 네, 연락 꼭 드리죠. 꼬옥 드리겠습니다.
뭔가 연락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김 실장은 힘없이 전화를 끊고 상황을 설명했고, 진석현을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스마트폰을 그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일 그따위로 할래! 김 실장!"
"우리 병원에서 재활이라니, 어림도 없지."
이미 음주운전을 수차례 한 놈이다.
교통사고로 사람 및 몇을 불구로 만들었고, 이도공 건축사 일행도 사고로 죽일 뻔했다.
그때 프리덤이 재빨리 반응해서 육탄방어를 하지 않았으면, 이도공 건 축사 일행은 아마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이런 놈을 절대 내 돈으로 먹이고 입히고 치료해서 사회에 방생할 순없지. 이놈이 미래에 음주운전으로 죽일 사람들한테 못 할 짓이라고, 그리고…"
하수영은 재활센터 CCTV 영상을 확인했다.
두 명의 남녀가 서로 의지하며 의사와 재활훈련사의 지시하에 힘겹게 재활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분들한테도 못할 짓이고."
두 남녀는 다름이 아니라, 진석현 때문에 불구가 된 음주운전 교통사고 피해자들이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회복 티 안나게 도와줄까? 그래도 내 병원, 내 손 닿는 곳에 있는 사람들인데."
하수영은 철저히 자기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만 오지랖을 부린다. 이번 생은 웬만하면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리고 두 남녀는 지금 자신의 손닿는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티 안 나게 도와줄 방법을 궁리하는데, 그때 최윤 병원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 이사장님, 큰일입니다. 세경그룹회장님께서…
"그 양반이 왜요?"
- 퇴원을 거부하십니다. 죽어도 퇴원 못 하시겠답니다.
"아니, 치료가 끝났으면 퇴원을 하셔야지, 아이도 아니고 왜 떼를 쓰신데요?"
- 퇴원하고 집에서 죽으면 어떡하냐고, 절대 퇴원 못 하시겠답니다.
"그렇다고 평생 여기서 한 발짝도안 나가고 사실 작정이랍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