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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61화 (461/1,270)

프랜차이즈 갓 461화

117장 슬기로운 청강생활(2)

"대학? 농대? 학위?"

최우석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자 하수영이 대답했다.

"네,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학위 따놓는 게 미래를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원래 배움도 다 때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지금 입학 철은 지나지 않았나?"

"지났죠. 그래서 청강 신청했어요. 2학기 후기 입학 준비하고 있거든요. 오늘 첫 등교입니다."

"아, 그렇군."

이미 1학기 입학은 지났으니 청강으로 때우고, 2학기에 정식으로 입학을 한다는 것이다.

원래 후기 입학은 외국인전형 등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됐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국인을 대상으로도 후기 입학의 문이 개방되는 추세다.

졸업을 앞둔 고3은 후기 입학에 해당하지 않지만, 하수영은 요건 제한이 없다.

"근데 학생이 아니어도 청강이 되나?"

"일반인 청강은 요새 많이 받아주더라고요. 거의 제한은 없던데요? 대신 돈은 냅니다. 수업 하나당 몇만 원 정도요."

"그 정도면 뭐 거저군."

"과제와 시험도 할 수 있는데 그건 또 추가금이 있더라고요. 전 시험만 했습니다."

"여름 지나고 후기 입학할 거면 굳이 미리 청강을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학교 분위기 미리 봐두려고요. 기왕이면 괜찮은 학교를 골라야지요. 어차피 학위가 중요하지, 학벌은 별로 안 중요하거든요."

학사냐, 석사, 박사냐. 그것만 중요하지, 학교가 어딘지는 하수영에게 중요하지 않다.

너무 급이 낮은 대학(예를 들면 폐교 가능성이 높은)만 아니면 된다.

"어느 대학에서 청강하는 건가? 역시 한국대?"

"한국대도 신청했고, 거기 말고 두개 대학을 더 다니면서 분위기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차를 새로 뽑은 거구먼."

"네, 제 캠핑카는 아무래도 너무 눈에 띄어서요."

SNS에서 하수영의 캠핑카는 나름유명하다.

퍼포먼스를 타고 다니고 안 타고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다가올 가능성의 차이가 크다.

"근데 캠핑카 타고 다니다가 이런 작은 차로 안심이 되겠어? 자네 교통사고라면 아주 질색하잖은가. 화물차에 받히면 답이 없다고 말이야."

"그래서 개인 주문을 넣은 겁니다. 이래 봬도 탑승 프레임은 퍼포먼스와 똑같은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어요. 핵잠수함 선체 만드는 바로 그 금속이죠."

"오? 핵잠수함이라고?"

그 말에 최우석의 눈이 반짝 빛났다.

"캠핑카가 튼튼한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럼 이 차도 엄청 안전하겠군?"

"아무래도 퍼포먼스보다는 못하죠. 훨씬 작으니까요. 그래도 일반 승용차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죠."

충돌 시 범퍼와 엔진룸 등이 자연스럽게 찌그러지면서 충격을 흡수한다.

하지만 사람이 탄 앞뒤 좌석을 감싸는 탑승 프레임만큼은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어, 어지간한 충격에도 끄떡없다.

적어도 교통사고에 있어서만큼은, 대통령 의전차량보다 안전할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게."

***

하수영은 관악구에 있는 한국대에 들어섰다.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미묘하게 낯선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옛날에 여기 참 지겹게 들락거리던 거 생각나네. 반도체 학과 월반코스로 건너뛰던 거 참 좋았는데."

논문에 준하는 레포트를 제출하는 것으로 1년 수업을 휙휙 건너뛰던 그 편리함이 갑자기 아련해진다.

기억 속의 풍경과 그대로인 것도 있고, 달라진 것도 있다.

올해 막 입학한 것으로 보이는 신입생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광경이 보인다.

하수영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바라봤다.

"에그, 귀여운 것들."

비록 시간축, 차원축은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저들은 자신의 후배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 한국대만 대체 몇 년을 다닌 거야. 아, 이번에 학교명이 한국대는 맞긴 한 거지?"

-예, 마스터. 한국대학교가 맞습니다.

"이름이 매번 바뀌니까 가끔 헷갈린다. 그나저나 한국대가 가장 많이 쓰이긴 하네."

-한국대학교가 경성제국대학 말고 다른 이름이었던 적도 있었습니까?

"서울대학교, 연주대학교, 관악대학교, 경성제국대학 말고 그냥 경성대 학교, 그냥 제국대학교, 신림대학교, 낙성대학교, 서림대학교, 반도대학교, 조선제국대학교…… 어이구, 많기도 많다."

-마스터?

"성웅대학교, 지웅대학교, 에릭대학교, 효주대학교, 하나대학교, 서진대 학교, 지석대학교……. 뭐 별별 이름이 다 있었지."

하수영의 눈빛이 다시 아련해졌다.

무수한 전생에서 한국대학교가 가졌었던 다양한 이름들.

그중에는 하수영이 대학을 인수해서, 혹은 설립해서 붙여준 이름도 상당수 있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인수해서 수영대학교로 한 번 이름을 바꿔볼까? 아, 근데 국립대학교니까 이거 인수하려면 한국부터 먹어야 하는데…… 에이, 귀찮으니까 이번 생은 그냥 패스, 다음 생에 수영대학교란 이름붙이지, 뭐."

바로 다음 생에 바로 지구에 환생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윤회를 반복하다 보면 또 금방 지구에 환생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검은 티타늄합금 세단은 주변의 시선을 잡아끌지 않았다.

덩치가 일반 세단보다 조금 크긴 했지만, 그리 특출하지 않은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히 봤다면 엠블럼 등 브랜드 표식이 전혀 없어, 어느 회사의 무슨 모델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특징을 집어낼 수 있었겠지만,

"……뭐야, 여기가 농대 건물이야?"

목적지인 '한국대학교 농축수산업과학대'건물에 도착한 하수영은 황당해서 올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풍경과 규모가 너무 달랐다.

"농업생명대에 축산, 수산까지 붙어서 덩치가 엄청 커진 줄 알았는데, 이거 왜 이래?"

-그 반대입니다. 밀어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농업을 포함한 마이너 전공을 한데 뭉쳐서 유배시킨 거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그래도 한국 제일 대학이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농대라서 웬만하면 여기로 다니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그래서 저번에 관악산 등산을 할 때 농대 건물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것인가?

차를 세우고 내린 하수영은 강의실을 찾아갔다.

혹시라도 교수나 다른 학생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 야심 차게 꺼내 보이려고 준비했던 청강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와 같이 세계 식량의 90%이상을 차지하는 작물의 대부분은 꿀벌에 수분 작용을 의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꿀벌의 멸종은 인류의 아사를 야기할 수 있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교수의 목소리는 강의에 조금의 열의도 없음을 팍팍 보여주고 있었다.

열 명 남짓한 대학생들은 교재를 펴놓고 각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기출문제 등 저마다 학과와는 무관한 내용의 공부였다.

-한국대학교라는 타이틀만을 노리고 입결에 겨우 맞춰서 들어온 학생들로 보입니다.

"나도 안다. 인마, 나도 눈이 있고 생각이 있어."

뭐 대단한 연구 업적을 쌓자고 농대를 다니려는 게 아니다.

그래도 고졸 농부보다는 박사 농부가 더 폼이 나고, 또 이런저런 농사활동의 재미 증진을 위해서는 학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대 농대가 이렇게 처참한 수준일 줄이야.

***

하수영은 그날 일정이 있는 강의 3개를 모두 청강했다.

강의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했다.

교수는 강의에 열의가 없고, 학생들은 농업에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는 당장 내년에 학부가 폐지 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50대 후반의 교수가 건성으로 진행한 강의를 마치고 자료를 정리했다.

하수영은 얼른 일어나서 출입문을 나서서 빠르게 교수를 따라잡았다.

"저, 교수님."

"응? 질문이 있나요?"

교수가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치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인 듯, 눈동자에는 신기하다는 감정까지 떠올라 있었다.

"저는 청강생입니다. 다음 학기 후기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인데요."

"오, 열의가 대단하군요. 일반인 청강생은 나도 처음 봅니다."

누가 들어도 칭찬에 영혼이 빠져 있는데?

"오늘 첫 청강날이고 교수님 것까지 수업 3개를 들었는데요, 제가 상상하던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지금 당황스럽네요."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교수는 그 말만을 하고 등을 돌리려고 했고, 하수영은 더욱 황당했다.

"교수님?"

"응? 더 할 말이 있나요?"

"……초면에 죄송한데 여기 학부 설마 폐부를 앞두고 있다, 뭐 그런 상황인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폐부될 일은 없을테니, 농축수산업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안심하고 지원해도 좋아요."

"분위기는 내년이라도 폐부될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래도 폐부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요. 그런데 왜 농대에 관심이 있는 건가요?"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개발한 품종이 몬산토를 능가하고 전 세계 농민들의 손에 뿌려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요."

"오, 좋은 꿈입니다. 그런 학생이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후기 입학 때 학생과 교수로서 만나면 좋겠군요."

그렇게 말을 하고, 교수는 또 등을 돌렸다.

이건 누가 봐도 학생과의 상담에 심드렁한 태도다.

"한국대 농대, 왜 이렇게 타락했어? 원래 이랬었나?"

전생에서 반도체공학 등 일반 공대는 죽어라 다녔지만 농대는 처음이라 짚이는 것도 전혀 없었다.

그 답은 학과사무실 방문에서 알수 있었다.

"10년 전에 종산묘 교수님이 총장님하고 대판 싸우고 C대로 옮기셨잖아요. 그 뒤로 농대 몰락이 시작됐죠. 타 대학에 건물도 뺏기고 여기 구석으로 유배까지 당했으니까요"

"종산묘 교수님?"

-한국에서 작물 품종 및 유전자 연구분야의 권위자입니다. 몬산토에서 종묘연구소장을 지냈었고, 하버드에서 교수직을 제안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일반인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세상에 잘 나오시지도 않고 연구만 하시는 분이라."

"……."

"아무튼 그 뒤로 농대는 서서히 몰락해서 지금의 이 모습이 됐어요."

"근데 폐부가 안 된다는 건 어떤 이유에서죠?"

"학교가 국가에서 지원금 받아먹은 게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폐부는 못 시키거든요. 교수들 철밥통이죠. 학생들도 한국대 졸업이라는 타이틀 값은 하니까 꾸역꾸역 들어오는 거구요. 매번 미달이지만요."

답을 얻은 하수영은 다음 날 C대 학교 농대를 찾았다.

이곳도 미리 청강 신청을 한 곳이었다.

C대는 한국대학교와는 전혀 달랐다.

아예 농업과학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단과대학이 별도로 있었고, 부지도 넓고 건물도 컸다.

심지어 농대에는 몬산토 등 세계적인 농업생명과학 기업이 세운 출장소도 여럿 눈에 띄었다.

임시 출장소가 아니라 아예 단과대 학 내의 사무실을 빌려서 만든 장기 출장소였다.

"……이건 이거대로 적응이 안 되네. 우리나라 대학에서 농사를 이렇게 밀어준 역사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건 거의 의대 수준의 지원이잖아?"

-정확히는 학교 측의 지원이 아니라 종산묘 교수 개인의 역량입니다. 종 교수가 몬산토에서 끌어온 투자 금이 상당합니다. C대 전체 예산을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돈 많은 단과대학이라는 거군. 그러고 보니 몇 번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나네."

-밀, 옥수수 품종 개량과 유전자 조작을 주력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서 접점이 더 적었을 겁니다.

"다 내 농장에서 마이너였던 것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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