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66화 (466/1,270)

프랜차이즈 갓 466화

117장 슬기로운 청강생활(7)

예전에 서해그룹 후계자 이현덕의 아들이 한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같은 과에서만 술렁거리는 것으로 그쳤다. 지금처럼 학교가 들썩이지 않았다.

'재벌 3세라고 해봤자 먼 나라 일인데.'

'내가 그 친구랑 친해진다고 해서 서해그룹에 취직을 시켜줄 것도 아니고.'

'우리 과도 아닌데 무슨.'

타과의 분위기는 대체로 이랬다.

가끔 교내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신기하다는 마음을 품긴 했어도,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의대생들 역시 심드렁했었다.

'이현덕 부회장 아들내미한테 잘보인다고 우리한테 뭐 교수 자리가 떡하니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간호대, 건축학과 등 대부분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재벌 총수의 손자와 직접 일가를 이룬 젊은 창업주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수영한테 잘 보이면 청담수영병원에 취직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건축학과생은 하수영의 말 한 마디면 JS건설 본사에 자리 하나가 뚝딱생겨난다.

청담수영병원, 수영레스토랑, 수영치킨, 프라임컴퍼니, JM식품, JS건설, 프라임오일 등 하수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넘쳐난다.

전부 하수영이 최종결정권을 갖기에, 말 한 마디면 얼마든지 자리를 만들어낸다.

프라임그룹은 직원들 대우를 잘해 주기로 이미 유명하다.

게다가 땅을 팔 때마다 값비싼 금이 쏟아져 나온 것은 전설적인 일화였다.

그럼 재물운이 충만한 사람 옆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사장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

"정말로 C대 농대에 가신 건가요?"

"본업인 부동산에 집중하셔야죠!"

***

한국대 최고의 로봇 전문가, 차원준 교수.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모교인 한국대에서 연구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학사생들 강의는 하지 않고 연구실을 운영하며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로봇 연구개발에 주력한다.

"요즘 의대 쪽 분위기가 시끌시끌하다던데."

"지금 캠퍼스 전체가 들떴어요. 아마 연건캠퍼스는 더할 걸요? 거기간호대, 의대는 난리라던데."

"뭐 재벌 아들이라도 입학했나? 근데 지금은 입학 시기도 아니잖아."

"청담수영병원 하수영 이사장님이 우리 대학에서 청강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교수님."

"뭐야?"

차원준의 손이 멈칫했다.

"하수영 이사장님? 수영농장주 그분 말하는 거지?"

"네, 맞습니다. 같은 분입니다."

"이럴 수가! 내가 지금 한가하게 로봇 팔 조립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차원준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연구실을 나서서 공대 학장을 찾아갔다.

"학장님! 하수영 농장주께서 우리 학교에서 청강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조용히 하게. 우리도 지금 은밀히 알아보는 중이야."

학장이 뭔가 아는 눈치로 검지를 세워서 진정시키자 차원준도 가슴을 가라앉혔다.

팔짱을 낀 학장은 노련한 눈썰미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한국대에서 청강하는 것은 확실해. 그런데 어느 학과인지는 모르겠어."

"하수영 농장주라면 당연히 공학 수업을 청강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만."

"그분이 우리 학교에서 주문하신 로봇 부품만 천억 원이 넘습니다. 그렇게 로봇산업에 관심이 깊으신 분이 간호대나 의대 따위를 가실 리가 없죠."

"간호대나 의대면 캠퍼스가 달라서 우리가 마주칠 가능성이 없어져. 차라리 경제학부 쪽이길 비는 게 낫지."

"무조건 우리 로봇공학부입니다."

한국대학교 공과대학은 하수영의 도움을 누구보다 가장 크게 받은 학부였다.

재작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봇 전시회에서 하수영은 50억 원어치에 해당하는 부품을 그 자리에서 주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차원준은 하수영이 누구인지 몰랐고, 그냥 돈 많은 로봇 매니아인가 보다 했다.

그 이후에도 하수영의 로봇 부품주문은 꾸준히 이어졌다.

심지어 이런저런 부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 제작을 넣은 적도 있었다.

대량 공정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니 당연히 단가는 비쌌다.

하지만 하수영은 두말하지 않고 사들였고, 덕분에 로봇공학부는 재정걱정 없이 다양한 샘플을 만들며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로봇공학부가 수영농장을 상대로 올린 매출이 천억 원이 넘는다.

물론 마진율은 낮은 편이다. 아무 래도 양산이 불가능한 실험실 수준에서의 제작이었으니.

그래도 200억 원 정도는 남길 수 있었고, 덕분에 로봇공학부는 재정이 빵빵해졌다.

"꼭 한 번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싶었었는데 폐가 되실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그런데 이제 우리 대학에 오셨지. 아마 입학 전에 학과 분위기를 탐색하시는 중인 듯해."

"우리 학교인 건 확실한 거겠죠?"

"확실해. 총장 그 능구렁이가 부정하지는 않더라고, 그런데 어느 학과 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단 말이야."

"학장님도 모르는 걸 보면 설마 우리 공과대학은 아니라는 겁니까?"

차원준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학장은 인상을 가볍게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모르겠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교수들한테까지 일절 말을 안 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해당 학과 교수 몇몇한테만 살짝 귀띔하고 입막음을 주지했을 수도 있지."

"그분은 꼭 우리 로봇공학부에 오셔야 합니다. 정말 천재적인 로봇 재능을 가지셨어요. 수영농장을 로봇으로 무인화 세팅해 놓은 거 보면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부품이나 모듈이야 우리가 만들어서 줬다고 그걸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수영농장 로봇들의 움직임을 보고 기절할 뻔한 적이 있다.

로봇들이 어떻게 해서 작물들을 구별하고, 다치지 않게 부드럽게 관리하고 채취하는지 경악스러웠다.

카메라나 센서, 팔 등은 전부 문제없이 달려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판별하며, 그에 대한 판단을 정교한 움직임으로 구현하는지는 한국대 로봇공학부의 손을 떠난 범위에서 이뤄졌다.

"하다못해 로봇공학을 복수전공이라도 가지시게끔 우리가 권유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이런 초대어를 다른 학부에 뺏길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

"장효주 씨 SNS 도움까지 받아도 별 소용이 없네."

하수영은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에 할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이 먼저 신원을 드러내기도 민망하다.

원래 미담이란 직접 알리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들켜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들키고 싶은데, 들켜야 하는데, 왜 이렇게 보안이 철저하지?

"농대 애들이 조금만 개인주의가 덜했어도."

다른 학생한테 철저히 관심이 없는 농대의 학과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했다.

하수영은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출결을 하고, 자기 공부를 하고, 집이나 도서관에 간다.

-마스터가 한국대에서 청강 중이라는 것은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습니다. 다만 농대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농대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줘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다들 저렇게 남에게 무관심한 개인주의자들이다 보니…….

"의원사무실 SNS에 올릴 때 농대 수업 청강 중이라는 말도 넣을 걸 그랬어."

이제 와서 '농대'를 추가하는 것도 민망하다.

꼭 사람들이 알아봐주지를 못해서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차가 너무 밋밋해서 못 알아보나? 그렇다고 캠핑카 끌고 등교하기는 좀 뭐한데."

지금까지 조용히 다니다가 갑자기 캠핑카를 끌고 등교한다는 것은 자기라고 대놓고 티를 내는 것이다.

-마스터, 한국대 종묘연구소에서 받은 벼 종자 1차 생산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래? 어떻든?"

-생산량은 기존의 벼 종자보다 확실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엘릭서 농도를 다소 높여서 생산량과 성장력을 보완했습니다.

"음, 역시 생산력은 떨어진다고 하더니 사실이구나."

-건조 작업 전에 10kg 정도 샘플을 도정했는데, 쌀알의 빛깔이나 모양은 좋아 보입니다. 맛은 제가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니, 마스터가 직접 나서주셔야 합니다.

벼 같은 식량 작물이 시장성을 가지려면 맛, 생산력, 병충해 저항력 등을 골고루 가져야 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심각하게 부족하면 안 된다.

-엘릭서 비료의 보완성 없이는 절대로 시장성을 가질 수 없는 종자입니다.

"그러니 한국대에서도 종자 보관소에서 썩히고 있었던 거겠지. 맛은 아주 좋다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

-일반 벼농가에서 이 종자로 시장경쟁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50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아야 할 겁니다.

"아무튼 시장에 팔아먹을 종자는 아니라는 거군."

경기도 농장에서 출발한 자율주행무인트럭이 어느덧 청담동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앞에 선 무인트럭의 후방 개폐창이 열리고, 세 개의 다리로 걷는 로봇이 걸어 나왔다.

로봇의 몸통은 물품을 담을 수 있는 저장장치로 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쌀포대가 들어 있었다.

"시내에서는 드론을 활용 못 하니 답답하네. 상시 비행허가 같은 거라도 좀 내주면 얼마나 좋아. 땅에서 1미터 이상 날릴 것도 아닌데."

서울은 비행금지, 제한구역 투성이다 보니 농장의 드론들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농장로봇은 저택 가사로봇한테 쌀을 건네고, 다시 무인트럭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무인트럭은 실비아컴퍼니가 자율주행데이터 수집 및 테스트 명목으로 허가받아서 운영하는 것이다.

가사로봇이 쌀로 밥을 만들어서 가져왔고, 하수영은 간단한 반찬 몇 가지를 곁들여서 정원의 한옥을 찾았다.

"부의장님, 이것 좀 드셔보시죠."

"웬 밥인가?"

"이번에 우리 농장에서 신품종으로 한 번 키워본 쌀인데 맛이 어떨지 평가 좀 받으려고요. 저도 아직 맛은 안 봤습니다."

"알았네. 내가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쌀이란 쌀은 전부 다 맛본 몸이야. 엄격하게 평가를 해주지."

최우석은 먼저 밥알의 모양새를 살폈다.

"알이 굵고 색깔이 좋으며 물기가 적당한 것이, 겉보기에는 맛좋아 보이는 밥이로군. 향도 은은하니 좋아. 어디 맛은 어떨지 볼까?"

그는 밥만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맛을 음미했다.

밥을 완전히 삼킨 그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돌아봤다.

"맛이 너무 좋은데?"

"좋습니까?"

"응, 아주 고급 쌀이야. 보통 품종이 아닌 거 같은데, 무슨 품종인가?"

"ACP-32라는 품종입니다."

"무슨 이름이 그런가?"

"아직 정식 이름을 못 받아서 그냥 번호로만 불리는 녀석이죠. 한국대 농대에서 개량한 종자랍니다."

"이렇게 맛이 좋은 쌀이 이름이 없어? 개량된 지 얼마 안 된 건가?"

"옛날에 개량됐는데 시장성이 없어서 묵히고만 있었습니다. 일반 벼보다 알이 적게 달리고, 농약과 병충해에 너무 취약하거든요."

"저런, 그럼 시장성은 별로 없겠군."

"하지만 최상급 '신의 비료'를 쓰고, 병충이 날뛰지 못하는 수영농장에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죠."

최우석의 뒤를 이어 맛을 본 하수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좋아. 앞으로 벼 종자는 이걸로 써야겠다."

-차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도, 종자 특허구매를 추천합니다.

"농민이 자가생산 목적으로 종자 재활용하는 것도 불법이었던가?"

-지금은 불법이 아닙니다만, 서해 그룹 식품생명연구부서에서 로비 활동을 하고 있어 언제 법이 개정될지 모릅니다.

"그럼 속편하게 종자특허 구입하자."

어차피 수영농장 이외에서는 활용이 불가능한 종자지만, 그래도 합리적인 거래를 해두는 게 낫다.

"남상진 교수님 번호 맞으시죠? 저 청강생 하수영입니다."

-아, 하수영 학생. 무슨 일이신가?

"이번에 제공해 주신 그 벼 종자 말인데요. 제가 특허를 사고 싶습니다."

-아니, 이거는 파는 게 아닌데 …… 팔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하시는 금액의 열 배의 가격으로 사죠."

-뭐? 10억이나 주겠다고? 팔겠네, 팔지!

하수영은 잠시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겨우 1억을 생각하고 계셨다니……."

우리 농대, 많이 어렵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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