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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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468화

118장 그리운 반도체공학부(2)

사실 한국대 반도체공학부야말로 끝판왕,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최종 보스냐면, 바로 하수영의 청강 때문에 가장 큰 난리가 난 집단이라는 의미다.

간호대, 의대, 건축학과, 경제학과, 기타 등등 쩌리들을 다 합쳐봐야 차원준이 있는 로봇공학부보다 못하다.

로봇공학부는 하수영 덕분에 1,000억 넘는 매출을 올렸고, 200억이 넘는 이익을 봤으니.

하지만 그들조차도 반도체공학부에 벌어진 야단법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교수님, 소식 들으셨어요? 우리 나라에 신생 반도체파운드리 업체가 생기나 봐요.

-파운드리? 무슨 회사인데?

-서진파운드리라고 하는데, 사업자 등록부를 보니까 정서진이라는 사람이 대표이사이자 유일한 이사던데요?

-이사가 한 명뿐이야? 회사가 작은가?

-놀라지 마세요. 자본금이 100억입니다.

-정말 놀랍군. 100억이면 중고 공정설비 한두 개 정도 겨우 살 수 있으려나? 겨우 그거 가지고 반도체 파운드리를 하겠다는 정신 나간 사람이…….

-짠! 100억 달러입니다! 진짜 놀랍죠?

-……100억 달러? 그럼 10조 원? 진짜야?

-네, 심지어 유한회사입니다. 그래서 이사가 정서진 이사 이 사람 한 명뿐인가 봐요.

-어, 정서진? 교수님, 혹시 그 친구 교수님 밑에서 수학하다가 가업이으려고 JM식품 들어간 친구 아니에요?

-에이, 정서진이란 이름이 어디 한둘인가. 흔한 이름이야. 그나저나 회사 투자자는 누군가?

-프라임컴퍼니 대주주 하수영 회장이랍니다. 단독 출자라고 하네요.

-프라임컴퍼니 하수영? 황비버섯라면 만드는 그 회사?

-교수님, JM 식품이 프라임컴퍼니하고도 사업적으로 제휴하고 되게 친하게 지내지 않아요?

-…….

-JM식품 딸래미가 프라임컴퍼니 부사장도 겸직하고 있다고 들었는 데, 그럼 정서진 그 친구하고도 접점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 큰돈이 들어오면 당연히 큰 관심을 보인다.

음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다.

반도체시장에서 100억 달러라는 출자액이 들어왔는데, 반도체공학을 연구하는 이들로서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그 돈을 움직이는 인물이 동문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반도체공학부는 사방팔방으로 정보를 수집했고, 정서진이 동문 출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반도체 월드를 떠났다가, 당당하게 100억 달러를 쥐고 돌아온 동문.

이때만 해도 반도체공학부는 축제분위기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정서진한테 연락을 취해서 여러 가지 산학 제휴의 길을 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는 연결이 안 되고, 이메일은 읽지를 않는다.

폐를 무릅쓰고 경기도 공장까지 갔지만 철저히 출입을 금하고 있어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정서진이 그 친구한테 우리가 혹시 너무 박하게 대했었나?

-아뇨, 그럴 리는 없어요. 학사까지만 하고 대학원생 생활은 시작도 안 했었잖아요.

-그럼 힘들게 한 것은 없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연락을 피하는 거지?

정서진이라고 동문들 앞에서 100억 달러 흔들어 보이며 자랑하고 기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 시기 정서진은 철저히 모교와의 접촉을 삼가고 있었다.

입자집합명령 장치에 대한 기밀 유지를 위해서 불필요한 정보 누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애초에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모교 선배, 교수들은 과거 대학원 진학 권유 때 정서진에게 누가 상처를 준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다.

-박 교수, 자네가 서진이 그 친구한테 너무 크게 겁준 거 아니야?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대학원 생활은 버틸 수 없다, 뭐 이렇게 말이야.

-난 겁준 거 없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그러는 황 교수, 자네야말로 부잣집 도련님은 집에 가서 빵이나 빚는 게 나을 거라고 뭐라고 한 거 아니었나?

-난 그런 말 한 적 없네!

이런 상황에서 서진파운드리 단독출자자 하수영이 한국대에 청강생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쫙 퍼졌으니.

정서진이 스포츠구단 단장이라면, 하수영은 구단주다.

파운드리 산업에 100억 달러, 10조 원을 턱 하니 내놓은 사람이다.

반도체공학부로서는 평생 해바라기 해야 하는 업계의 큰손인 것이다.

언젠가 FA대박을 꿈꾸는 한국 프로야구팀에 다저스 구단주 안살린 왕자가 방문한 셈이나 마찬가지.

간호대, 의대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난리가 났다는 게 이제 가늠이 될 것이다.

반도체공학부는 황제의 사찰이라도 맞이한 최전방 군대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갔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타 학과를 정탐하며 하수영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 피 말리는 전시경계태세가 끝나지 않고 거듭 이어지기만 하던 어느 날…….

"교수님들! 하수영 회장님이 우리 반도체공학부에 왔습니다!"

"뭐! 어디, 어디에 계신가!"

"희영이랑 재석이가 지금 안내하고 있어요! 아마 학부 구경 나오신 거 같습니다!"

"음, 서진파운드리에 10조 원이나 부으셨으니 정서진 박사를 배출한 모교 공학부를 한번 보고 싶으셨겠지. 그래도 자기가 선택한 인물 아닌가?"

"그것도 10조 원이나 선뜻 내놓으실 정도로 맘에 들어 하신 인재죠. 이해가 됩니다."

"자, 좋은 모습 보여 드리자고, 절대로 아는 체를 하거나 설레발을 치거나 귀찮게 하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다른 학생들한테도 단단히 주지시켜 놓겠습니다!"

"너희들이 반도체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한평생 그늘 아래에서 의지해야 할 분이시다. 다들 단단히 주지 시켜."

"네, 교수님!"

학부가 마음에 들면 크게 후원을 해주실지도 몰라.

교수와 대학원생, 학부생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영접 준비에 나섰다.

"학부생들, 절대로 근처에도 가지 말아라. 실시간으로 위치 확인해서 공유하는 거 잊지 말고."

"혹시라도 멀리서 사진 찍겠다, 구경하겠다고 알짱거리지 말아라. 그러다가 눈치라도 채시면 그놈은 이번 학기 올 F 받을 줄 알아!"

"접촉 인원은 최소화하고, 좀 근사한 실험 같은 거 진행되는 거 없어? 최대한 멋있어 보이는 작업하는 쪽으로 안내해!"

하수영은 두 커플 대학원생의 안내를 받아 학부를 이리저리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학부는 깔끔하고, 조용 한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실험에 응하는 원생이나 교수들의 눈빛, 태도는 진지하고 열의가 넘쳤다.

"저분이 박효산 교수님이세요. 우리 반도체공학부의 에이스이시죠. 정서진 박사님의 은사이기도 하시구요."

미국에서 뒤늦은 석사 과정을 밟다가 서진파운드리 CEO가 된 정서진이 들으면 '나 아직 학사인데?'라고 황당해할 것이다.

"음, 이름과 얼굴이 모두 그대로이군요. 옛 인연이 이렇게 또 하나 이어질 줄이야."

"아, 혹시 교수님을 아세요?"

"예전에 저분한테 잠깐 강의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절 기억못 하실 겁니다."

"아아! 교수님이 예전에는 일반인 강의도 많이 나가고 그러셨죠. 그런데 그때라면 회장님은 미성년자이셨을 텐데, 그때도 반도체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미친 듯이 반도체를 파고들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과거를 향수하자 아련한 감정이 눈꺼풀을 덮는다.

실험에 열중하는 박효산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진중한 태도가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한국대 반도체공학부…… 랩 인원모두가 한 몸, 한마음이 된 것처럼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게 우리 반도체 공학부의 자랑이죠. 그 어떤 공학부 보다도 하나로 단결되어 있어요."

여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말했고, 하수영은 수긍한다는듯이 끄덕였다.

하수영은 이리저리 반도체공학부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공학부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가 스치는 사람이 있어도 하수영 일행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여기 학부 사람들은 서로 인사도안 합니까?'

라고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통화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는 등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인사를 던지거나 인사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하수영은 구경만 실컷 했을 뿐, 알아보고 다가오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어, 너희 랩 가는 길이니? 그런데 옆의 일행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

-아, 교수님! 이분으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은근히 기대했던 이런 상황이 단 한 개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짜고 치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 될 수가 있어?'

친절한 배웅을 받으며 학부 탐사를 마쳤지만, 하수영은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저희 학부는 잘 둘러보셨나요?"

"……네, 잘 봤습니다. 학구열이 넘치고 정갈한, 아주 좋은 학부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학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한 거 같아서 어떻게 비칠까 걱정했는데, 좋게 봐주셨다니 다행이에요."

'이게 어수선한 거라니. 반도체공학부 내가 다니던 시절보다 더 재미없어졌네.'

그렇게 하수영은 반도체공학부 견학을 마치고 농대로 다시 돌아왔다.

수업 개시를 기다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같은 수업을 듣는 남학생 한 명이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저, 혹시 수영농장 하수영 농민회장님 맞으시죠?"

"아니, 그걸 어떻게?"

"사진으로 몇 번 봤는데, 긴가민가 했거든요. 근데 아무리 봐도 맞는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드디어 먼저 자신을 알아본 최초의 재학생이 나왔다.

'근데 농민회장? 무슨 칭호가 그래?'

"실은 저희 본가에서도 농사를 짓거든요."

"아아, 그래요?"

"네, 요즘 살림이 계속 어려워졌었는데 수영농장에서 기름도 주고, 농기계도 빌려주고, 비료도 주고 해서 부모님 안색이 요즘 많이 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 인사드리려고 말걸었어요."

"아닙니다. 일반 농가가 살아야 우리나라 식량자주권이 사는 거죠."

"청강을 한다면 우리 농대학부는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였어요. 제가 비밀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아니, 고맙다면 비밀을 지킬 게 아니라……."

남학생은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자격증 교재를 폈다.

하수영의 견학이 있고 얼마 후.

한국대 반도체공학부에 그리운 얼굴이 찾아왔다.

"오, 정서진 박사!"

박효산 교수는 정서진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하던 것을 내팽개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반갑게 인사하려던 정서진은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교수님, 저 박사 아닙니다. 석사도 하다가 말았어요."

"에이, 그까짓 학위가 뭐가 중요한가. 정서진 박사가 지금까지 해낸 것들을 묶어서 내면 그게 곧 박사인증 논문이지, 암!"

"박사 사칭이 됩니다. 박사 아닙니다. 저."

"껄껄, 우리끼리 있을 때만 박사라고 하세나, 그럼."

교수들은 물론이고 짬밥 좀 되는 원로 대학원생들도 정서진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정서진은 감개가 무량했다.

학부생 시절에는 그저 흔하디흔한 대학생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유명인사다.

이게 서진파운드리의 10조 원 자본금에서 나오는 권력이라는 것을, 정서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회사는 잘되어 가시나? 자네 이야기는 우리 학부에서 아주 유명하다네."

"공장 짓는 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진 않더군요. 초기 자본금의 2/3이상이 아직도 현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 그거 다행이로군."

"이미 50억 달러어치 발생한 선매출도 있고요."

"으응? 공장은 아직 짓고 있는 중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시범공정라인 테스트결과에 만족한 바이어가 50억 달러를 먼저 집어넣었습니다. 어디인지는 아직 말씀드리기 그렇고요."

공장 가동 전에 50억 달러나 매출이 발생해?

교수들은 놀라서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이 정도면 '돈만 많이 집어넣은 게' 아니라, 정말 획기적인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사실은 모교에 중요한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뭔가?"

"우리 학부에서 반도체 공정라인 수율 증진이나 최적화, 업그레이드연구도 집중적으로 하고 계시죠?"

"그렇지. 설계도 중요하지만 공정설비의 업그레이드 연구도 매우 중요하지. 이번에 서해전자와 협력해서 4나노 2세대 공정 개발도 진행을……."

"설계와 소재개발 쪽으로만 집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정연구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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