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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72화 (472/1,270)

프랜차이즈 갓 472화

119장 큰돈 줄래, 작은 돈 줄래?(3)

박종우의 아내는 청담수영병원으로 옮기고 빠른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입맛이 돌아오고, 머리카락 빠지는 양이 줄었으며, 암의 크기도 작아지고 있었다.

그간 병원비로 지출했던, 1억 넘는 돈을 회사 복지부에서 지급받은 덕분일까.

마음이 안정된 박종우의 아내는 나날이 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박종우 또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병원비 때문에 진 빚을 모두 청산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얼마가 들든 병원비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청담수영병원은 가처분 생활비의 19%를 초과하는 병원비는 깎아준다.

이것만 해도 무척이나 저렴한 수준인데, 여기서 재단 복지부에서 또 지원이 나온다.

간병인 문제로 마음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간병인 부서에서 알아서 간병인들을 배치해서 상시적으로 관리해 줬기 때문이다.

간병인들 또한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다 함께 협업해서 간병일을 하니 한결 편했고, 환자와 가족들은 자질구레한 문제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저기, 이거라도 좀 드시고 하세요."

"아이고, 안 돼요. 저희는 커피 한 잔, 물 한 잔도 환자 가족한테 못받아 마셔요."

"네?"

"규정이 그렇게 돼 있어요. 커피 한 잔이라도 받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이 좋은 직장 잘릴 수도 있어요."

전의 병원에서는 간병인을 쓸 때, 간병료를 주면서도 또 더 잘해달라고 따로 먹을 것도 꾸준하게 바쳐야 했다.

하지만 청담수영병원에서는 원칙적으로 그 모든 게 금지되어 있었다.

-환자와 가족이 병원비 이외의 부당한 부담을 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근본 조치입니다.

프리덤의 설명에 박종우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그런 디테일한 배려까지 완벽하게 살아 있는 이런 병원이 세상에 있었다니.

지난 자연재해 때 닥터헬기 등 청담수영병원의 활약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자신과는 먼일이라 여기고 바라봤다.

그저 돈 많은 병원이구나, 하고 마음에는 그리 크게 담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입원해서 온몸으로 배려를 느껴보니, 얼마나 환자와 의료진, 일반 직원을 모두 포함한 사람 중심의 병원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병원은 이렇게 해서 남는 게 있나?"

-이대로는 연간 수조 원대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헐…… 그렇게 적자가 크면 병원이 금방 문 닫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병원 재단의 모기업인 프라임오일에서 그 이상으로 수익을 내고 있으니까요. 병원 운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어느덧 아내가 일어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병상마다 개별 배치된 TV를 시청했다.(수영병원은 모든 병상마다, 1환자당 1개 TV 개별 배치) 마침 뉴스에서는 서해생명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서해생명에서는 지난 한 달간 폭증한 사망 가입자 수에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생명보험금 지급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피보험자의 가족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번 달에 서해생명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의 액수는 매년 평균치보다 1조 8,000억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렇게 한 달에 보험금 지급 청구가 몰려서 급증한 것은 보험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뭐야, 또 서해생명이야?"

"그러게. 저기는 또 보험금 준다 안 준다 가지고 가입자들 괴롭히겠네."

"진작 저기 들지 말고 다른 데 들걸 그랬어. 서해생명이 그렇게나 악명이 높더라. 암환자 가입 카페 같은 데 보면 서해생명 좋은 소리 하는 사람은 알바밖에 없어."

"우리는 저기 일은 더 생각하지 말자고, 그간 낸 보험료는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았고, 암투병도 완전히 무료로 하고 있잖아. 그러니 다 잊고 이제는 치료에만 전념합시다, 여보."

"그래요."

***

박호진 역시 서해생명의 소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은 비교적 잠잠했지만, 그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큰돈의 저주가 언제 덮칠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가 실현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 볼 마음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림은 보상받았다.

'왔다!'

뉴스에 뜬 보도를 본 순간, 박호진은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기다렸던 특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재빨리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서해생명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험 쪽으로 일하는 법조인 인맥과 연락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조 8,000억 원이 정말 확실한 건가?"

-31일 기준이야. 저번 한 달 치청구액 증가치만 그래. 서해생명도 기이한 일이라고 매우 당황하고 있네.

"기이하다니? 어떤 의미인가?"

-서해생명 연간 보험료 수입이 80조 원이야.

"그럼 월 6조 6,666억 원……."

박호진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대충 그 정도 되겠지? 아무튼 평균 청구액에 플러스 알파 된 보험금이 1.8조 원인 상황이야. 당연히 재정팀은 발칵 뒤집히겠지.

"그렇겠지. 예상에 없던 지출이 갑자기 튀어나왔으니까."

매달 통상 나가는 평균 보험금에 1.8조 원이 더 끼얹어진 셈이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 대부분이 사망보험금이야.

"1.8조 원이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나온 건가?"

- 대충 6,000명 정도로 잡으면 얼추 맞을 거 같은데.

박호진은 또 한 번 소름이 끼쳤다.

'여기서 또 6이 왜 튀어나와?'

"그럼 저번 달에는 다른 달보다 유독 사망자가 더 많았다는 건가?"

한국의 연간(작년) 사망자는 약 29만 명.

달로 환산하면 한 달에 평균 2.4만 명이 조금 넘는 수가 죽는다.

물론 계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얼추 그렇다.

-아니, 저번 달 국내 사망자 수는 그 전 월하고 크게 차이가 없었어. 2.1만 명이 죽었더라고, 오히려 그 전 월보다는 더 줄어들었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국내 전체 사망자 수는 변함이 없거나 거의 그대로인데, 하필 그게 전부 서해생명에 몰려 있었던 거지.

"이게 무슨……!"

박호진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돈의 저주가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설마 저주가 이런 식으로 발동한 것이라면, 서해생명 가입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서해생명에 가입을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다는 건가? 정녕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건가?'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사망한 가입자 대부분은 전전 월 15일 이후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네.

"전전 월 15일 이후 가입자들이라고?"

-90% 이상은 그렇게 확인됐어. 나머지도 지금 자료를 확인 중인데, 내 느낌으로는 다 비슷할 거 같아. 그래서 서해생명이 발칵 난리가 난 거지.

"약 6,000명이나 되는 가입자들이 전부 보험금을 타낼 각오를 하고 15일 이후에 미친 듯이 몰려들어서 가입을 했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지. 하지만 경영진 중에는 진지하게 그걸 믿는 사람도 있어.

"그게 무슨……."

누구한테 말해도 미친 망상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뭐하러 그런 말도 안 되는 보험사기극을 벌이겠는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어차피 저번 달에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이' 단체로 조상님 꿈이라도 꿨나 보지. 난 이쪽이 그나마 더 그럴듯하다고 보는데.

"조상님 꿈이라."

-그렇지 않나? 넌 이번 달에 죽을 운명이니 가족들을 위해서 서해생명에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두거라, 이렇게 조상님이 미리 알려줬을 수도 있지 않겠어?

"가만 전전 월 15일이라……."

개인 캘린더를 훑어보던 박호진은 다시금 얼어붙었다.

전전 월 15일.

그 날은 바로 자신이 서해생명과 협상을 마친 그 다음 날이었던 것이다.

즉 서해생명으로부터 6억 원의 큰 돈 대신, 12,530,781원의 작은 돈을 받아낸 다음 달부터 그 사람들이 가입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입을 한 것이라면…….'

평균 월 사망자 수가 별 차이 없었다는 것은 설명이 된다.

큰돈의 저주가 애꿎은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니다.

오히려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마지막 선물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그 선물은 서해생명에는 정작 독이 되었다.

'진짜인가? 진짜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나? 하수영 회장님이 정말 신이었나?'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다.

박호진은 신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재물운, 권력운이라는 것만큼은 믿는 사람이었다.

하수영을 가리켜 돈의 신 운운한 것은 그가 지닌 강력한 재물운을 좀 더 실감 나게 표현한 것일 뿐.

그러나 이 오싹한 통계를 보고 나니, 정말 그가 돈의 신인가 하는 망상이 머릿속에 강하게 뿌리를 내린다.

-통계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변수 때문에 지금 보험사들은 전부 난리야. 서해생명뿐만 아니라 다른데도 발칵 뒤집혔어.

"통계적으로 있을 수 없는 변수라."

-말도 안 되는 변수지. 이건 정말 신의 장난이라고 밖에는 해석이 안돼. 있을 수 없는 우연이야. 차라리 내가 로또를 5주 연속 1등 당첨되는 게 더 현실성 있을 걸세.

'이렇게 정확하게 핀포인트로 서해 생명만 저격해서 응징한다고?'

이런 게 신의 저주가 아니면,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서해생명의 불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다음 달에는 보험금 평균 지급 액보다 1.8조 원이 아닌 3.6조 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보험가입자들은 이번에도 전부 15일 이후 가입자, 박호진이 서해생명을 방문한 다음 날부터 가입한 이들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15일 이후 가입자들 사이에서는 해약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저주받은 날 이후로 서해생명에 가입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던 거야!"

"어서 해지를 해야 해!"

하지만 보험해지와 상관없이 사신은 그들을 찾아갔다.

그렇게 총 60일 동안, 서해생명은 9조 원이 넘는 추가 보험금 청구를 떠안게 되었다.

그중에는 종신보험, 정기보험(예를 들어 60세 이전까지만 사망보험금을 보장하는 것, 그 이후에는 보험의 효력이 소멸) 외에도 상해나 암등의 다양한 보험청구내역이 있었다.

60일이 지나고 나자, 놀랍게도 보험사고 건수가 뚝 떨어지며 예전으로 돌아왔다.

또한 15일 이후에 가입을 했지만 무탈하게 별일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염라대왕이 장난을 친 거야."

서해생명 법무팀장.

박호진의 동기이자 박종우의 아내 보험금 지급 문제를 최종 타결했던 결정권자.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연거푸 술만 마셨다.

"국내 월 평균 사망자 통계는 거의 변함이 없었어! 사망 원인 통계도 마찬가지야! 근데 하필이면 그 달, 그 다음 달에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이 죽기 한두 달 전에 일제히 우리 회사에 가입을 한 거라고!"

"……."

"남들은 다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난 아무래도 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박 변, 자네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박호진은 조용히 술만 마셨다.

60일간 벌어진 신의 통계 조작은 끝났고,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서해생명 입장에선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9조 원이 넘는 추가 보험금 지출문제.

회사에 마가 씌었다는 가입자들과 시장의 불안함.

총대 메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그룹총수의 질책.

그 외 기타 등등…….

"박 변. 내가 할 말이 있네."

"뭔지 알 것 같군."

"혹시 그때… 박종우 고객한테 우리 회사가 6억 원을 지급하지 않아서 벌을 받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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