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78화
121장 청담의 아버지(2)
하수영은 큰 정치 무대에 뜻이 없다.
강남구의원에 출마한 것도 청담동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유지로서 역할 수행을 좀 더 잘하기 위해서다.
동네에서 좀 더 멋있게 놀기 위한 명예직 같은 거다.
청담동, 강남구를 벗어나서 시의회이상 진출해 봐야 소득은 없고, 피곤하기만 하다.
이번에 구의회 행정직원 박조휘한테 구의원 출마를 권유한 것에 큰 이유는 없었다.
구정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구의원직 정도는 잘 해낼 것 같은 싹이 보여서다.
"구의회 일은 농장처럼 프리덤한테 떠맡겨놓을 수가 없으니, 프리덤 역할을 대신 해줄 사람을 찾아야지."
자신을 대신해서 구의회를 잘 맡아둘대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있고.
박조휘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하수영이 진지하게 권유하자 곧 보궐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
"돈 들어가는 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100% 책임집니다. 그럴 일은 없지만 낙선해서 돌아갈 곳이 없어지게 되면 의원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드리죠."
그렇게 해서 박조휘는 안심하고 보궐선거에 매달릴 수 있었다.
다만 정치 꿈나무들에게는 그런 하수영의 태도가 다르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수영 의원,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파벌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어. 일단 강남구의회부터 장악하고 차근차근 점령지를 넓혀 나가겠지. 조만간 강남3구는 하수영 의원 손에 떨어질 게 틀림없어."
정치를 하려면 세력과 돈,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수영은 그 둘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청담을 기반으로 하수영이 강남구에서 누리는 인기는 강남구 현역 국회의원 3인을 합친 것 못지않았다.
게다가 돈, 이게 가장 크다.
"영세농가 지원한답시고 일 년에 100억 넘게 쓰시는 분인데,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서 병원 적자 수천억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특별당비 같은 거 수백억씩 팍팍내놓지 않을까? 자기 따르는 정치인 들한테도 팍팍 퍼주시고."
"하수영 이사장님,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아낌없이 퍼주시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에요. 수영치킨 만들 때도 일반 치킨점주 몇만 명을 포용하신 거 다 봤잖아요."
"그분이 이끄는 계파가 적어도 돈 문제 때문에 갈등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강남구는 물론이고 서초구, 송파구에 기반을 둔 정치 꿈나무들도 떨어지는 게 없나 기웃거렸다.
수백억 자산가 정치 꿈나무들도 하수영 앞에서는 꼬물이에 지나지 않았다.
박조휘는 무난하게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선거운동은 하수영후원회 멤버들이 나서서 대신 치러주었다.
"우리 하수영계파의 첫 계파원이 생겼는데, 당연히 우리 후원회가 이끌어줘야지!"
"자네, 이리 와서 바둑이나 한 겜 두세나."
"선거운동? 됐어, 됐어. 그냥 우리하고 같이 바둑 두고 장기 두고 술먹고 밥 먹으면 그게 선거운동이지 별건가?"
"표 매수? 아이고, 설마 우리가 자네한테 사라고 하겠나? 걱정은 접어 두게."
청담동은 박조휘의 선거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후원회 멤버는 그의 선거구에 사업, 인맥 기반을 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박조휘는 노인들을 따라서 여기저기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했다.
"장 사장, 내가 소개하지. 여기 이 친구가 이번에 구의원 보궐선거에 나오는 친구일세. 박조휘라고."
"아, 그렇습니까? 어르신이 후원하시는 분인 모양입니다."
"정확히는 우리 하수영 의원계라고 할 수 있지.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꿈나무이지만, 당선만 되면 우리 강남구를 위해 큰일을 할 친구라고 보네. 하수영 의원처럼 말이야."
"오! 하수영 의원계라고 하셨습니까!"
하수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장 사장의 표정이 대번에 바뀐다.
"제가 박조휘 후보자님이 꼭 당선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박조휘는 자신의 손을 꼭 잡는 장사장의 뜨거운 눈빛에 뭔가 묘한 기분을 맛봤다.
***
박조휘는 하수영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의회에서 그는 남달리 유능한 축에 속했고, 다른 어떤 의원들보다 구정업무를 많이, 그리고 잘하는 하수영은 자연히 그를 자주 찾게 되었으니.
돈 많고, 친절하고, 유능하고, 비싼밥도 잘 사주는 하수영을 싫어하는 구의회 직원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수영이 권했다.
"조만간 구의원에 자리 하나 날 거 같은데, 무소속으로 출마해 볼래요?"
"네? 출마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박조휘 씨는 이대로 의회행정 업무만 하기에는 좀 아까운 인물 같아서요. 우리 구의회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되네요."
"하지만 저는……."
"돈 같은 건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전부 책임집니다."
반신반의하던 박조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정치에 소질이 있어 보이십니까?"
비록 하수영이 어리긴 하지만, 박조휘는 그가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믿었다.
"구의원에 딱 적합해 보입니다. 현재로써는요."
"아……."
"구의원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면 제가 계속 도울 겁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지금 우리 구의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일꾼이 필요해요."
그 말인즉슨, 구의회를 벗어나면 더 이상 돕지 않겠다는 의미일까?
"나중에…… 만약 박조휘 씨가 구의원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면, 구청장이나 시의원 출마에도 제가 돕겠습니다. 물론 여전히 구의원 그릇인 거 같은데 그 이상을 하려고 하면 제가 더는 못도와드리죠."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박조휘도 당장 구청장이나 시의회까지는 뜻이 없다.
애초에 오늘까지만 해도 정치에 큰 뜻은 없었다.
갑자기 하수영이 출마를 권유하니까 불현듯 자신의 그릇은 어디까지 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을뿐.
하수영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박조휘는 어렵지 않게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거의 개표를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당선이 확정된 듯한 점유율을 차지했다.
개표율이 50%가 조금 넘었을 무렵, 그는 매직넘버를 달성하고 당선을 확정 지었다.
"축하합니다, 후보자님! 아니아니, 당선자님!"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우리 강남구의회를 위해 많은 힘을 써주세요!"
일개 무소속 기초의원직 당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에 모여서 개표 과정을 다 함께 지켜보고, 덕담을 건넸으며, 마침내 축하를 해주었다.
구의회 직원들은 물론이고, 현역구의원은 물론이고 구청장까지 찾아와서 축하를 해준 것이다.
누가 보면 정말 구의원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도 당선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하수영 의원님은 안 보이시네요."
"그러게요. 자기 계파가 당선이 되었으니 그래도…… 아! 저기 오십니다!"
"하수영 의원님이다!"
축하를 해주러 하수영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관심은 박조휘에서 그쪽으로 우르르 옮겨갔다.
하지만 박조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저 구의원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걷게 된 생동감을 만끽하고 있었을뿐.
하수영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제 의결할 때 말고는 구의회에 출근 안 해도 되겠어. 전자로 처리되는 업무는 프리덤 시키고, 사람 필요한 일은 박조휘 의원한테 대행을 부탁하면 되겠군."
쓸 만한 구정 업무보조인을 얻었다.
함께 축하하러 온 최우석 부의장은 마치 자신이 당선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다가, 하수영에게 넌지시 말했다.
"보이나, 여기 모인 저 많은 사람들 말일세."
"구의원 보궐 당선치고는 축하 인파가 많긴 하네요."
"저 사람들 대부분이 하 의원, 자네한테 눈도장 찍으러 온 거야. 자기들도 제2, 제3의 박조휘가 되고 싶어서 말이지."
"확실히 그런 욕망이 눈에 보이긴 합니다."
"자네가 교통정리 잘해야 할 거야. 이제 자네는 더 이상 종횡무진 독보강호하던 돈만 많은 언터쳐블 기초의원 혼자가 아니야. 엄연한 계파의 수장이라네."
"세상에서 사람 다루는 것만큼 쉬운 게 없죠."
"뭐, 자네가 사람 다루는 실력이야 이미 '수영그룹'을 통해서 검증이 되었으니. 나도 큰 걱정은 안 한다네."
껄껄 웃던 최우석이 불현듯 물었다.
"그럼 우리 하수영당은 언제 창당하나? 그래도 내가 저 친구보다 선배인데 당연히 1순위로 받아줄 거지?"
"이 조그만 구의회에서 놀자고 창당까지 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서류상으로나마 창당을 해야지 자네가 합법적으로 저 친구를 챙겨줄 수 있지."
"시도당 5개를 어느 세월에 세우고, 당원 될 사람들을 어느 세월에 모읍니까."
"자네가 그간 도와준 농민들만 모아도 금방 모을 텐데."
"생각은 해보겠지만, 창당까지 하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같네요. 전 구의회에서 저 대신 잘 해낼 일꾼 한 명이 필요했던 것뿐이라 서요."
***
청담의 아들 하수영.
박조휘의 당선 이후 정치 꿈나무들은 은연중에 하수영을 그렇게 불렀다.
또한 하수영계파에 들어가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문턱을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하수영은 그런 일에 일체 신경을 끈 채, 구의회 업무 중 맡길 수 있는 것은 모두 박조휘에게 맡겼다.
전자적, 원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프리덤을 시키고, 반드시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하는 업무만 출근해서 돌보았다.
예를 들어 구의원으로서 의견을 피력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등의 일 같은 것은 모두 박조휘에게 넘긴 것이다.
이른바 메신저 역할이지만, 박조휘는 훌륭하게 잘 해냈다.
애초에 원래 하던 업무의 연장인데다가, 신분만 의회직원에서 의회의원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렇게 프라임컴퍼니에 이어 구의회 업무도 훌륭히 아랫사람들에게 분산 배치에 성공했다.
***
하수영은 박조휘가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정치 꿈나무들 때문에 피로해한다는 보고를 확인하고 있었다.
"쯧쯧, 난 청담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데도 이 사람들은 착각이 심하네. 내가 압구정, 역삼, 삼성동에 겨우 경계선 하나 차이로 건물 하나 안 사는 거 보면 모르나?"
-마스터, 청담수영병원은…….
"야, 거기도 행정구역 조만간 청담동으로 뺏어올 거야."
농장, 구의회, 부동산, 요식업 프랜차이즈 브랜드, 해운대 수영펜션, 수영마트 등이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중, 우형신 중개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아, 소식은 들었습니다. 박조휘 의원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조그맣게 화분이라도 하나 보냈는데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잘 봤습니다. 아우, 뭐 그렇게 비싼 걸 보내셨어요? 박조휘 의원도우 중개사님이 보냈다고 하니까 예쁘다고 아주 난리더랍니다."
-회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단 냉수 한 잔 하시죠.
하수영은 그 말에 후다닥 달려가서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뒤,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저 냉수로 목 깨끗이 씻었습니다. 사레들릴 걱정 없으니 말씀하세요."
-매물이…….
"역시 매물이 나온 거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체 뭔데 냉수부터 마시라고 하신 거죠? 아무래도 보통 큰 매물이 아닌가 봅니다?"
몇천억짜리 매물 가지고 이렇게 나올 사람이 아니다.
우형신도 이제 단위가 커져서 천억미만 매물은 반쯤 잡화떨이 대하듯이 한다.
적어도 조 단위 매물은 분명하다.
-놀라지 마십시오.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청담동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도 해봤자 몇백억도 안할 텐데요?"
- 해진타운아파트입니다.
"거기는 그렇게 비싼 아파트도 아니잖아요? 오래되고 낡아서…… 잠깐?"
-건축승인 떨어졌습니다! 재건축, 재건축입니다!
아주 잠깐, 모든 것이 정지했다.
-마스터? 동공에 잔경련이 일어나는 건 처음 확인합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재건축이라잖아, 재건축! 531세대 짜리 매물이라고!"
건물주의 상위직업, '단지주'로 가는 2차 전직 퀘스트가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