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82화
122장 충격은 약한 곳부터 몰린다. (2)
서해건설 사장 천웅철은 급히 회사 상황을 체크했다.
지금 서해건설은 서해전자 신 반도체 공장을 비롯하여 굵직한 건설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의 신 반도체 공장.
부산의 초고층 주상복합타운.
그리고 두바이에서 진행하는 대형 타워 단지 공사까지.
"사장님, 청담동 해진타운 아파트재건축 사업 들어가는 것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아참, 그렇지."
아직 조합과 계약만을 한 상태이지만, 이미 낙장불입 상태가 된 사업이다. 곧 낡은 아파트들을 허물 텐데, 거기에 들어갈 돈도 당연히 염두에 둬야 한다.
"부산 주상복합타운은 이미 선분양을 마감한 상태라서 걱정이 없습니다. 당첨자 대부분이 수도권 부자들 이어서 은행 대출과 무관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은행 대출 없이 자기 돈으로 분양당첨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일단 그건 한시름 놓았고."
"두바이 타워 사업은 조금 아슬아슬합니다. 요즘 국제 유가가 좋지 않아서 두바이 정부가 공사대금 결제를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임원도 의견을 냈다.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우리가 피 뒤집어쓰고 물러날 상품은 아닙니다."
"그래도 다른 대형 악재가 생긴다면 두바이 공사도 유의미한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천웅철 사장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악재라면,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을 말하는 건가?"
"예, 현재까지 미수금 19조 원이 묶여 있습니다."
"19조 원이라……."
"그리고 받을어음 3조 원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음 3조 원에 미수금 19조 원.
다른 회사 같으면 어림도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서해전자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은행보다 튼튼한 보증이다. 돈이 없어서 대금을 미루는 게 아니라, 서해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최대한 지급을 늦춘 것이다.
서해그룹에서 서해건설의 위상은 서해전자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니까.
"서진파운드리가 전자에 너무 큰 악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이야. 윈텔, ADM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지. 마이크론 하나 만으로는 서진파운드리가 우리 그룹악재라고 볼 수는 없어."
"만약 윈텔과 ADM이 서진파운드리에 반도체 물량을 수주한다면……."
"그래도 전자에 큰 타격은 못 돼. 애초에 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마이크론이나 윈텔, ADM하고는 크게 상관없어.""
서해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을 하기는 한다.
자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와중에 틈틈이 남의 반도체도 돈 받고 생산해 주며 쌈짓돈을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저 세 회사들에서 받는 파운드리 물량은 얼마 안 된다. 무시해도 될 수준이다.
"어음, 미수금 합치면 22조 원이지만 우리가 그 돈을 떼일 일은 없어. 서해전자가 망하지 않는 한은, 근데 전자가 망하는 날에 대한민국도 망할걸?"
외부 회사도 아니고, 같은 그룹 계열사다.
심지어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을 가장 중심적으로 담당하는 게 건설이다.
돈을 떼인다면 서해전자가 망하는 경우밖에 없는데, 손에 쥔 순수 현금만 90조 원이 넘는 서해전자가 그럴 일은 없다.
"돈 떼일 일이야 없겠죠. 근데 현실을 보십시오. 전자에 물린 22조원 때문에 우리 건설 주가가 바닥을 칩니다. 정작 반도체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개미들이 원래 그렇지. 이 또한 지나갈 테니,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맏형한테서 공사대금 22조 원을 떼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룹 임원들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보지만, 외부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또 다르다.
이것이 바로 현재 건설 주가가 폭락을 한 이유다.
"억지로 주가방어에 나서려 하지 말고, 각자 자기 할 일들만 해. 어차피 우리 건설 경영권 방어는 안전하니까, 주가가 좀 떨어져도 괜찮아."
"그래도 서해전자에 미리 돈 좀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하러 굳이."
"해진타운 재건축 들어가려면 회사 재정이 문제없다는 것을 서울시에 증명해야 합니다."
"아, 서울시 태클. 그게 있었네."
"서울시가 투자자보다 더 보수적이고 엄중하다는 건 잘 아시잖습니까. 이대로는 우리 건설, 서울시에서 재건축 승인 못 받습니다."
"그런데 재건축 승인도 나왔고, 이미 조합과 계약을 했는데 서울시가 이제 와서 우리를 배척할 수 있을까?"
"사업자를 교체할 순 있겠죠. 아니면 라테건설에만 몰아주던가요."
"……."
"……."
임원들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서울시 행정2부 시장이 과연 지금의 서해건설 상태를 보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 줄까?
만약 이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서울시는 서해건설을 사업자에서 제외하려고 나올 수도 있었다.
건축물 설계 승인만 통과되면 되는 시점에서, 사업이 백지화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서해전자 반도체, 두바이 공사. 우리 입장에서야 별거 아니지만 서울 시 입장에서는 몹시 신경 쓰일 겁니다. 우리를 믿고 재건축을 맡길 수 있겠는가 하고요."
"설마, 그럴 리가."
"우리가 재정에 쪼들려서 재건축과정에서 평소보다 더 많이 이것저것 빼먹는 건 아닌가 하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
"사장님, 회사 지갑 채워 넣고 주가 방어도 어느 정도는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해진타운 재건축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서울시에서는 별다른 말 없었지?"
"네, 지금까지는 특별히……."
그때 임원 한 명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임원은 깜짝 놀라서 스마트폰을 들고 회의실 밖으로 달려갔다.
'회의 도중에 나간다고?'
천웅철 사장한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전화라는 뜻이다.
때문에 천웅철 사장도 화를 내기는 커녕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임원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후 임원은 살짝 창백해진 안색으로 돌아왔다.
"행정2부시장도 양반은 못 되나 봅니다."
"2부시장 전화였나?"
"네, 해진타운 재건축 문제없이 잘해달라고 덕담을 건네기는 했습니다."
"건네기는 했다? 진짜 덕담은 아니라는 거군."
"행정2부시장이 이런 덕담 전화를 걸 사람은 아닙니다. 아주 깐깐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하죠. 사업자 인정을 따내는 것도 그만큼 힘들었는데……."
서해전자 때문에 건설에 튄 불똥이 염려스러워서 경고성 전화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장님, 일단 지금까지 쌓인 건설대금 중 일부라도 미리 회수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겠어. 까딱하다가는 해진타운 재건축이 날아갈 수도 있겠어."
지금까지 들인 공이 얼마인데, 이걸 날릴 수는 없다.
천웅철 사장은 하루빨리 서울시를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부 사장 이문석한테 대금을 달라는 요청은 단칼에 거절당했다.(서해전자는 사장이 여러 명이다)
"지급 기일이 도래한 것도 아닌데 아직 못 줍니다. 지급일 되면 칼같이 챙겨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일 도래 안 한 거야 누가 모릅니까. 그런데 외부에서는 우리가 22조 원이 물려 있다고만 인지하는 탓에 주가가 난장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당겨 주시면……."
"기일 도래도 안 했는데 일찍 지급하면 우리 서해전자 주가는 무사할 거 같습니까?"
"……."
이문석 사장 앞에서 천웅철 사장은 말문이 막혔다.
같은 사장이라고 해도 급이라는 게 있다. 서해전자 반도체사업부는 그룹 내에서 최고의 입김을 내뿜는 곳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서진파운드리가 어쨌든 간에 우리 서해전자 반도체에는 영향 없습니다. 지금은 투자자들이 제대로 상황판단을 못 해서 주가가 출렁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다가 우리가 해진타운 재건축을 놓치게 생겼습니다. 조합 계약까지 마쳤는데."
"서울시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미 도장까지 찍은 사업을 철회하겠습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천웅철은 답답했다.
이문석은 서울시 도시건설 파트의 깐깐함을 전혀 모른다. 아무래도 반도체만 팠다 보니.
이 나라에서 반도체야 서해전자를 대신할 곳이 전혀 없는 제왕이지만, 건설은 그렇지 않단 말이다.
'청담동 재건축인데! 이걸 우리가 어떻게 따낸 건데!'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천웅철은 일단 돌아섰다.
아무래도 이현덕 부회장을 찾아가서 지시를 기다려야 할 듯싶었다.
그 전에 부회장님 기분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그룹 기조실장을 찾아가 슬쩍 물어보았다.
"그런 거라면 지금 부회장님 안 뵙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정도로 심기가 불편하신가?"
"반도체 공장에 90조 원 가까이 부었습니다. 건설대금이 다가 아니에요. 그 안에 들어가는 설비들, 이미 구매계약도 다 끝나서 이제 와서 물리지도 못합니다."
"이문석 사장은 문제는 없을 거라던데."
"그래도 부회장님 스트레스받으시는 건 어쩔 수 없죠. 한 자릿수 확률이라도 반도체 공장이 손해 볼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면, 얼마나 심기가 불편하시겠어요? 한두 푼도 아니고 90조 원 가까이 되는데."
"그럼 우리 해진타운 재건축은 어쩌란 말인가? 행정2부시장이 지금 태클 걸려고 워밍업 중이란 말일세."
"그건 제가 한 번 손을 써보겠습니다. 건설도 일단 최대한 자구책을 찾아보세요."
"고맙네."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천웅철 사장은 거기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재건축 사업이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서해건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윈텔, 7나노 공정 반도체 서진파운드리에 위탁하기로 결정!]
[총 외주 물량의 20%를 서진파운드리에 발주! 80%는 기존의 계획대로 TSMC로 향하다!]
[앉은 자리에서 날벼락을 맞은 TSMC! 퓨어 파운드리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서진파운드리!]
[서해전자, 내심 윈텔 7나노공정수주 기대하던 중에 기대가 완전히 틀어지다.]
[ADM! TSMC에 맡기던 그래픽램 생산량의 30%를 서진파운드리에 발주하기로 결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콧대 높고 깐깐한 윈텔과 ADM이 서진 파운드리에 그 많은 물량을 발주한다고? 수십 년 전통의 TSMC를 제껴두고?"
"완전히 제낀 건 아닙니다. 그래도 TSMC가 가져가는 물량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제 시범공장만 겨우 나온 갓난 아기 파운드리 업체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미친 도박이나 마찬가지지!"
도박이 아니라면 확실한 계산이 섰던가.
그러나 진짜 날벼락은 아직 멀었다.
언론사들이 서해전자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은밀한 루머가 증권가를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서해전자 신 공장은 사실 파운드리 사업도 고려해서 일부러 저렇게 크게 지은 거라던데. 그럼 큰 악재아닌가?"
"그게 정말이야?"
"원래 자기들 것만 생산하려고 했다면 100조 원까지는 필요 없고, 공장에 40조 원 정도만 쓰면 됐어. 근데 서해전자가 TSMC의 자리까지 욕심을 내느라고 100조 원으로 늘어난 거지."
서해전자는 종합반도체와 반도체위탁생산 모두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는 것.
"파운드리 못 따내면 공장의 절반 이상은 그냥 놀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문제는 서해건설이 눈치채고 건설대금 달라고 했는데, 서해전자가 거절했다는 거지. 줘야 할 돈도 안 주고 날짜 미루고 있대."
애초에 지급 기한이 도래하지 않아서 안 준 것인데, 줘야 할 돈까지 안준 것처럼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서해전자보다는 건설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해진타운 재건축의 키를 쥐고 있는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갑자기 건설본사를 찾은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재건축 할 수는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