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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83화 (483/1,270)

프랜차이즈 갓 483화

122장 충격은 약한 곳부터 몰린다. (3)

재건축 할 수는 있겠냐니?

천웅철 사장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잔뜩 깐깐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 행정2부시장 앞에서 차마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서해건설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튼튼한데요."

"서해전자에서 22조 원이나 떼인 상황이라면서요?"

"떼였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서해전자가 그 돈을 왜 안 줍니까. 때 되면 다 받을 겁니다."

"글쎄요, 증권가에서 도는 소문은 그렇지 않던데요."

"잘못된 소문입니다. 받을 돈 22조원이 있긴 하지만 아직 지급기일이 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서해전자에서도 먼저 앞당겨 줄 이유가 없는 거죠."

"지금은 먼저 앞당겨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거 아닙니까? 재건축에 집중하려면 자금 여유가 필요할 텐데."

"……."

"남도 아니고, 같은 울타리 안의 식구인데 서해전자는 그 정도 배려도 안 써주나 봅니다?"

"지금 서해전자도 여러모로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말, 건설에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해 주는 겁니까?"

천웅철 사장은 말문이 턱 막혔다.

설영서 행정2부시장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현진해운 조합에서도 지금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라테건설과 함께 공동사업자로 선정하긴 했는데, 이래가지고서야 제대로 지을 수 있겠느냐고 말이죠."

"조합에서 불안해한다고요?"

천웅철은 화들짝 놀랐다.

설영서 부시장은 블러핑은 좀처럼 삼가는 편이다. 재미없고 깐깐하지만, 없는 말을 지어내서 상대를 압박하진 않는다.

'이거 조합에서 시에 대고 무슨 말을 하긴 했나 본데.'

혹시 지금 상황 때문에 라테건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함께 손을 잡았지만, 이제는 사업권을 따낸 상황이다.

라테건설 입장에서는 서해건설이 손을 뗀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땡큐다.

국내 유통업계의 최강자인 라테그룹의 현금동원력은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돈 없어서 못 짓는 일은 없다.

당장 잠실에 있는 라테월드타워만 봐도 그렇다.

"부디 재건축에 조금의 차질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시장은 끝까지 자기 할말만 하고는 돌아갔다.

깐깐하기로는 감히 따를 자가 없다고 하던데, 과연 누누이 들은 대로였다.

어찌나 독한지 차 대접도 사양하고 자기 가방에서 꺼낸 생수를 마셨다.

혹시라도 접대 등으로 문제가 될만한 여지는 일절 주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천웅철 사장은 S은행장을 만나기 위해 부랴부랴 준비했다.

집단대출을 해주기로 한 S은행과 하루빨리 도장을 찍어야 그나마 조합을 안심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

하수영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합장 및 조합 간부들을 하루가 멀다고 만나면서 온갖 채찍과 당근으로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지금 상황을 보세요. 서해전자가 반도체에 백 몇십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그게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그 돈이 날아가면, 서해전자가 서해건설에 남은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급이나 할 것 같아요?"

90조 원이 못 되는 매몰비용은 하수영의 입을 통해 한순간에 백 몇십조 원으로 둔갑했다.

"건설이 지금까지 못 받은 돈이 반오십조가량 된답니다. 반 오십조!! 와, 이게 다 얼마야 대체."

건설이 물려 있는 돈은 22조 원.

반 오십조가 25조(50조의 절반)을 뜻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같은 말이라도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듣는 입장에서 확 갈린다.

조합원 간부 한 명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같은 그룹 계열사인데……."

"근데 전자와 건설이 서로 들고 있는 주식은 한 주도 안 될걸요?"

"그, 그런가요?"

"계열사라. 결국은 별개의 독립된 법인이죠."

"하지만 서해전자가 가진 현금이 얼마인데 설마 그거 공사대금을 안주겠습니까?"

"아, 우리 박 사장님. 재벌 회장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나 냉혹한지 전혀 모르시네요."

하수영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말을 꺼낸 박씨의 불안에 찬 표정을 주시했다.

"제가 총수라면 안 되겠다 싶으면 건설을 날려 버립니다. 짬 시키는 거죠."

"짜, 짬이라니……."

다들 최소 40대 이상이다 보니, 짬시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지금 전자가 백 몇십조 원을 손해 보게 생겼는데 건설에 줘야 할 돈까지 반 오십조! 그 돈을 곧이곧대로 주면 전자고 건설이고 둘 다 망해요. 그럴 거면 하나라도 살리는 게 낫죠."

"그, 그럴 수가……."

"아니야. 일리가 있어."

조합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하수영의 말을 긍정하고 나섰다.

"내가 반도체는 잘 모르지만, 그 파운드리라는 게 남의 거 대신 생산해주고 돈 받아먹는 사업인 건 알아."

"아, 저도 이번에 들었습니다."

"역시 우리 조합장님,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발 빠르게 적응하시는군요."

하수영은 보란 듯이 엄지를 추켜세우며 조합장의 기분을 북돋워 주었다.

조합장은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서해전자가 파운드리 한 번 크게 제대로 해보려고 이번에 새 공장을 지은 거라잖아."

"그래요? 난 몰랐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아, 안 그러면 100조 원 넘게 쏟아부을 이유가 있나? 그런데 파운드리 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이 윈…… 뭐더라?"

"윈텔이요, 윈텔."

"아, 맞아요. 내가 요새 기억력이 깜빡깜빡해서."

하수영이 바로 잡아주자 조합장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열심히 '외운 대로' 말을 이었다.

"윈텔하고 헤슬라……."

"헤슬라는 자동차 회사구요, ADM입니다. 그냥 '아듬'이라고 발음하셔도 되고요."

"네, 죄송합니다."

"네? 조합장님이 죄송할 게 뭐가 있다고요?"

눈치 없이 누가 끼어들자 하수영은 재빨리 앞을 가로막았다.

"윈텔, ADM. 파운드리 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들이죠. 뭐니 뭐니 해도 전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양분해서 점유하는 쌍두마차니까요."

"……."

"그런데 그 두 회사에서 서진파운드리에 발주를 했습니다. 이 말은 뭐겠어요? 서해전자한테 발주할 일은 없을 거라는 명백한 시그널이죠."

"왜입니까?"

"사장님 같으면 나중에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서해전자에 반도체 만들어달라고 설계도 주고 싶겠어요? 그리고 서진파운드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수율과 가성비가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라도 서진파운드리에 맡기겠어요."

상황을 이해한 조합 간부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럼 서해전자는 정말로……."

"네, 앉은 자리에서 백 몇십조 원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파운드리 바라보고 지은 공장인데 가장 큰 고객 둘을 시작하기도 전에 놓쳐 버렸으니까요."

"그럼 건설대금은 정말 떼이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서해전자가 얼마나 부자 기업인데 그거 공장건설비를 떼먹겠어?"

"아, 우리 김 사장님도 남다른 부자이시면서 부자들 마음을 왜 모르세요? 999석 부자라도 남의 1석 뺏어서 천석 부자 되고 싶은 게 욕심이고 욕망입니다."

하수영의 가벼운 반박에 김씨는 얼른 수그러들었다.

"정리해 드리자면 서해그룹은 최악의 상황에는 서해건설을 짬처리해서 서해전자를 살리려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건설이 예전에 구포에서 발파 사고로 휘청거렸을 때 이창영 회장이 짬처리시켰었지. 그리고 시간 지나서 기억이 흐려지자 다시 건설을 새로 만들었고."

"맞아. 이미 전적이 있어."

"우리 간부님들, 역시 잘 아시는군여."

하수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어찌 건설 살리고 간다고 해도 그룹에서 본 손해를 벌충하려고 들 겁니다. 그걸 어디서 벌충하려고 할까요?"

"우리 아파트 재건축하면서 이리저리 빼먹으면서……."

"딩, 동, 댕. 바로 맞추셨습니다."

"……."

"자, 이래도 서해건설이 과연 적합한 파트너일까요? 조합원분들에게 5억씩 따로 지급하기로 했으니, 더욱 부지런히 건설비를 빼먹어야겠네요. 건물 짓고 1년도 안 가서 여기저기 마구 균열 벌어지는 건 아닌지 몰라."

어느 조합원이 팔을 걷어붙이며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시청에 달려가야 해요!"

"맞습니다! 가서 재건축 담당자를 만나고 사정을 전부 설명해야 합니다! 서해건설은 빼달라고요!"

"우리가 계약을 물릴 순 없지만 시에서 나서주면 우리 책임 없이 서해 건설을 빼버릴 순 있어요! 나섭시다!"

"빨리 준비해요! 머뭇거릴 시간 없으니 지금 바로 움직이십시다!"

조합 간부들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자리에는 하수영과 조합장만 남았다.

조합장의 얼굴이 풀어지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이게 늙어서 그런지 자꾸 말이 헷갈려서……."

"아무리 그래도 헤슬라는 자동차 회사인데 어떻게 거기와 헷갈리실 수 있습니까?"

"미안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어요."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조합장은 하수영의 헤실헤실 웃으며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의원님, 그럼 시행사로서 들어오시는 겁니까?"

"서해건설만 잘 내쳐낸다면 말이죠."

"라테건설이 만만치 않을 텐데 어찌 될지……."

"걱정 마세요. 라테건설과는 이미 이야기 끝냈습니다."

그 말에 조합장은 반색했다.

"아, 그러십니까?"

"네, 제가 돈은 있지만 건설사는 없으니 라테건설은 일단 남겨놔야지요. 그리고 서해건설 대신 JS건설이 그 자리에 시공사로서 들어오게 될 겁니다."

"JS건설까지 들어온다면 우리야 정말 안심이지요!"

"제가 조합원분들께 약속드린 조건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겨우 5억 원에 계약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없이 설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막상 원하던 것을 갖게 되면 더 큰 욕심을 부린답시고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어서요. 그게 염려가 됩니다."

하수영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고, 조합장은 알아들었다.

하수영은 조합원들의 매물을 전부 시세의 40% 프리미엄을 얹어서 사준 후, 1억 원으로 전세를 주기로 했다.

전세기한은 최소 10년, 60세 이상의 조합원은 본인과 그 배우자가 모두 죽을 때까지.

여기에 한 달에 몇백 이상 나올 관리비까지 전액 면제.

서해전자가 약속한 5억 원의 현금따위는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40% 프리미엄만 해도 5억이 훌쩍 넘는다.)

"저는 충분히 괜찮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데 더 받아낼 게 없을까 하고 판을 깨려는 분이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All or nothing, 전부를 가지지 않으면 전혀 가지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명의 분탕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

"해진타운부지 등기부에는 오직 저의 이름만이 등재될 겁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바, 반드시 그렇게 되실 겁니다요.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조합장은 자신의 손주보다 어린 하수영의 기백에 짓눌려서 쩔쩔맸다.

***

S은행은 원래 일반 분양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대출을 해주기로 서해 건설과 합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돌아가는 서해그룹 상황을 엄중히 검토한 결과, 일단은 몸을 사리자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한 번 발을 빼는 게 좋겠습니다. 잘못하다가 건설이 또 저번처럼 팽 당하기라도 하면 우리 은행도 피해를 봅니다."

은행 수뇌부는 보신 결정에 수긍했고, 곧바로 서해건설에 통보했다.

귀사의 평안과 번창을 기원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구구절절한 공문의 내용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님들 망할 것 같으니 우린 그냥 빠질게요. 다른 은행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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