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87화
122장 충격은 약한 곳부터 몰린다(7)
서진파운드리라는 폭탄은 국제 반도체 업계에서 이제 딱 한 번 대폭발을 일으켰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대폭발로 인해 TSMC의 시총이 조 단위로 증발했고, 서해전자 역시 휘청거렸으며, 서해건설은 솥에 넣어 삶아질 위기에 처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앞으로 반도체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봤다.
한국 증시 개미투자자들은 서진파운드리 주식을 사기 위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장은커녕 유한회사라는 이야기에 절망해야만 했다.
"이제 반도체 시장은 크게 재편될 것이다."
"서진파운드리 본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그 날, 파운드리 패권이 다시금 달라질 거다."
"그런데 서진파운드리는 왜 인원채용을 안 하는 거지? 아직까지도 직원 수가 CEO 한 명이라는 게 말이 되나?"
"설마. 다른 직원들은 아직 회사 인사부에 이름만 안 올린 거겠지. 어떻게 자본금 10조 원짜리 회사가 대표이사 한 명만으로 굴러가냐?"
직원은 대표이사 한 명이 전부.
로봇을 통한 완전 무인화 공장 시스템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세간은 그런 사실까진 몰랐다.
공장의 자동화 시설이 남달리 잘되어 있다. 이렇게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이제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TSMC와 서진파운드리가 양분하게 되는 건가?"
"서해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완전히 발을 빼야겠는데, 공장에 벌써 90조 원 꼬라박았다는데 어떡하냐."
"백두반도체 인수비용도 포함해서 90조 원이라는 거지, 신 공장 건설에만 90조 원을 박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어쨌든. 백두반도체는 하루아침에 애물단지가 됐네. 저번에는 불까지났다던데."
"지금 백두그룹이 아마 가장 좋아하고 있을 거다. 팔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팔았는데, 안 팔고 그거 쥐고 있었으면 진짜 수십조 원짜리 쓰레기 되는 거 아니야."
실제로 서해전자에는 큰 악재였지만, 백두그룹에는 오히려 좋은 호재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수영 농민 그 사람은 정말 운도 좋네. 어떻게 손대는 것마다 죄다 대박이냐?"
"정서진 박사가 그랬다더라. '제 한 번만 믿어보시고 크게 투자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전 세계를 평정해서 회장님께 갖다 바치겠습니다!' 라고, 그 말에 하수영 회장이 감동해서 100억 달러를 내놓은 거래."
"역시 사람이 크게 성공하려면 인물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하는구나. 뭘 믿고 잘 알지도 못하는 정서진 박사한테 100억 달러나 투자를 했을까 했는데 말이야."
하수영은 그저 쩐주일 뿐, 모든 것은 정서진이 혼자서 해냈다.
이미 세간에는 그런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였다.
"아쉽지만 서해전자는 파운드리에서는 완전히 철수해야지."
"뭐, 파운드리 전용 라인으로 공장을 확대한 건 맞지만 사업을 좀 더 키워서 자기들이 직접 쓰면 되니까. 공장이 어디 도망가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도 당분간 주가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나저나 서해건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진짜 그룹에서 팽 당하는 건가?"
"그래도 두바이 공사도 크게 하고 있어서 섣불리 접지는 못할걸? 서해 전자가 공사대금 22조 원 결제하고 넘어가는 방향으로 갈 거 같아."
"쯧쯧, 서해건설은 청담동 재건축도 탈락하고 참 여러모로 악재가 크네."
"이번 반도체 대란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정작 서해건설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
옵테인 메모리 시범 생산이 끝났다.
프리덤의 보고를 들은 정서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생산단가가…… 이게 정말이야?"
-예, 대표님. 순수하게 생산에만 들어가는 비용은 이게 전부입니다.
"세상에……."
말이 나오지 않는 저렴한 금액이었다.
애초에 다른 반도체 공정 과정처럼 여러 번에 걸쳐 화학물질을 쓰지도 않는 간략한 공정이다.
비용의 절감이 획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산단가가 눈 튀어나오게 비싼 옵테인 메모리에 적용하니, 그 차이가 더욱 실감이 난다.
1만 원 하던 것을 2, 3천 원으로 줄인 것과 10만 원 하던 것을 5천원으로 줄인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이 가격이면 동급 용량의 낸드플래시보다 더 저렴하게 옵테인 메모리를 출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존의 낸드플래시도 우리 공장에서 만들면 더욱 싸지긴 하잖아?"
-1만 원짜리가 2천 원이 되고, 10만 원짜리가 5천 원이 된다면, 소비자들은 후자를 택할 겁니다. 3천 원의 가격 차이가 성능 차이를 상쇄해 주진 않습니다.
겨우 3천 원을 더 내는 대신, 열배 이상의 성능 향상을 체감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옵테인 메모리처럼 성능이 뛰어나지만 제조비가 너무 비싼 반도체 제품군에 더욱 친화적입니다.
"성능의 차이 따위 보지 않고, 그냥 생산단가를 무차별로 낮춰 버리니까 그렇겠지."
정서진은 입자집합명령 장치의 무시무시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공정시스템의 진짜 무서운 점은, 모든 반도체의 생산단가를 폭락시켜버린다는 것.
이렇게 되면 시장에는 고성능 제품만 살아남는다.
저성능, 중성능, 고성능이나 가격이 비슷하다면 소비자는 당연히 고성능제품을 택할 테니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제 가격 경쟁으로 밀어붙이는 시대는 저물었구나."
지금까지는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린 쟤보다 좀 떨어지지만, 그 대신 가격은 훨씬 싸요!'
라고 어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능의 간극을 가격으로 상쇄하지 못한다면, 저성능 제품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SSD 방식 (낸드플래시)의 저장 매체는 이제 시장에서 퇴출될 수순만 남았습니다.
램과 SSD는 속도에서 월등한 차이가 난다.
램이 초당 100만큼의 데이터를 처리한다고 할 때, SSD가 초당 1밖에 데이터를 주지 않으면, 램은 거기에 맞춰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윈텔이 출시한 옵테인 메모리는 그 사이에 끼어서 속도 차이로 인한 '데이터 정체 현상'을 해소한다.
이로써 전체적인 컴퓨팅 파워 속도와 효율이 증가한다.
옵테인은 램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SSD처럼 데이터를 저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워낙 가격이 비싸서 옵테인 메모리로 SSD의 저장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 뿐이다.
"윈텔의 궁극적인 꿈이 SSD를 옵테인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거라고 했지?"
-네, 그런 미래를 내다보고 낸드플래시 공장도 전부 처분했으니까요.
"언젠가는 옵테인이 SSD를 완전히 대체할 거라고 믿은 거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오게 될 미래입니다.
정서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SSD가 보급되고, 소비자들이 얼마나 환호했던가.
느려터진 하드디스크 대신 SSD에 운영체제를 깔아 빠른 부팅 속도, 게임 및 프로그램 로딩의 획기적인 개선에 성공했다.
낸드플래시 업체들은 옵테인의 등장에 긴장했지만, 생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 안심을 박살 낼 수 있는 폭탄이 이제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걸 지금 공개해도 괜찮은 걸까?"
-충격은 결국 약한 곳부터 몰리기 마련입니다. 서해전자가 받은 피해가 정작 서해건설에 큰 타격을 준 것을 생각하십시오.
"……."
-SSD는 느려 터졌습니다. 이제 CPU-램-SSD가 아닌, CPU-램-옵테인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그 시대의 문을 열 키가 대표님의 손에 있습니다.
한참 동안 고뇌에 잠겨 있던 정서 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을 바로 박살 내진 않겠어. 가격은 점진적으로 낮춘다."
-주인님! 아니아니, 대표님!
"프리덤, 옵테인 가격을 SSD만큼 낮춰서 판다고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있냐?"
순간 프리덤이 멈칫했다. 정서진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정서진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SSD 시장을 모조리 박살 내고 옵테인 저장장치의 시대가 열리면, 윈텔만 좋아서 웃겠지. 윈텔만 돈을 쓸어 담을 테고,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서 공장 돌리는 마진이나 겨우 남기겠네."
겨우라고 말할 금액은 아니다.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만큼 서진파운드리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긴다.
다만 윈텔이 훨씬 더 많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긴다는 게 배가 아플뿐이지.
"윈텔 공장 생산 가격의 7, 80%정도로 공급하자. 나머지 차액은 우리가 먹는 거야."
예를 들어 생산 원가가 1,000원이라고 치자.
하지만 째째하게 1,200원, 1,300원이렇게 넘기는 게 아니라 1만 원에 턱 하기 넘기고 9,000원씩 챙긴다.
윈텔은 그래도 감지덕지다.
자사 공장에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싸게 받을 수 있으니.
"그게 억울하면 지들이 입자집합명령 기술 개발해서 직접 만들어 팔던가. 발주를 줬으면 납품가는 하청업체 마음대로 정하는 거지."
-맞습니다. 어디서 원청 따위가 감히 납품가를 정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생산 원가를 공개할 의무도 없고 말이야. 가격 맞으면 지들이 납품받는 거지, 뭐. 안 그러냐?"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낸드플래시 시장을 빠르게 박살 내봤자 윈텔만 가장 큰 이익을 본다는 것을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요즘 데이터 병목 현상이 심합니다. 아, 본체를 옵테인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데…….
"내가 나중에 실비아컴퍼니가 옵테인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특별할인판매를 주선해 보마."
-감사합니다, 대표님!
***
서진파운드리가 보낸 옵테인 메모리 품질 테스트를 해본 윈텔은 크게 놀라면서 동시에 만족했다.
"흠집 잡을 데가 전혀 없군요. 우리 자사공장보다 훨씬 낫습니다. 불량율도 없고요."
"그래픽 램과 마찬가지로 모두 최상급 품질의 제품들입니다. 서진파운드리의 공정 안정성은 가히 놀랍습니다."
옵테인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만들기가 원체 까다롭기 때문이다.
"옵테인 공정 경험도 없을 텐데, 테스트 생산에서 이런 품질을 보여줄 줄은 몰랐습니다. 적어도 처음에 여러 번은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이 정도면 나중에 CPU 파운드리 발주를 고려해도 될 거 같습니다."
CPU는 윈텔의 꽃이자 자존심이며, 근본이다.
신생업체에 벌써부터 CPU 발주를 생각할 만큼, 납품한 옵테인의 품질은 완벽했다.
"품질도 품질이지만, 생산단가가 더 놀랍습니다. 향후 서진파운드리가 수수료 포함해서 생산비용으로 우리에게 청구 예정할 금액을 확인해 보십시오."
윈텔 경영진은 숫자를 확인하고 놀라서 부르르 떨었다.
"아니, 이 정도면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가격의 70% 수준 아닙니까?"
"정말 파격적이에요! 이 정도면 우리가 서버 시장에서 옵테인을 더욱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물량! 물량 확보가 중요합니다! 지금이라도 라인 전용을 강력하게 내세워야 해요!"
"후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우리는 서진파운드리 라인의 50%를 전용했습니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왜 지금까지 몰랐죠?"
"램이든 옵테인이든 뭐든 간에 원하는 만큼 골라서 생산하면 됩니다. 아, SSD 공장은 진작 팔아치우길 잘했습니다. 마이크론이 우리 SSD 공장 샀다고 좋아했었는데 땅을 치고 후회하는 모습을 조만간 보겠군요."
"그나저나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가격 절감이 가능한지 한 번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허, 귀하신 협력업체님 심기를 괜히 거스르기라도 했다가 라인 전용 없던 걸로 하자고 나오면 어쩌려고요!"
"아니, 비용 내역을 추궁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순전히 궁금해서……."
"행여나 따질 생각은 말아요. 그저 서진파운드리가 정해준 견적서를 감사히 받아들면 그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