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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22화 (522/1,270)

프랜차이즈 갓 522화

130장 청담 스코프(5)

"카메라의 동력원은 전고체 전지입니다. 리튬이온 전지와 달리 매우 안전해서 폭발하거나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대신 상용화가 안 돼서 실험실 생산 수준이다 보니 비쌉니다."

"그래서 이 작은 안구 하나가 100만 달러나 하는 거군요."

"예, 그리고 표면이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어 더 안전합니다."

"배터리가 터지더라도 표면이 버려 주겠군요."

"애초에 터질 일도 없지만,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만큼 이중삼중 안전장치를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수영은 아랍 정통 복장을 입은 남자들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병원장 최윤석과 안과 교수 및 의료진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온도센서가 있어서 일정 이상 발열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과열이 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성능을 낮춥니다. 그럴 경우에는 HUD로 알림이 뜨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HUD 기능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사물 설명들을 더 자세히 표시하게 할 순 없나요?"

"어디까지나 시각장애인 분의 빠른 적응을 돕기 위해 넣은 기능이라서요.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하수영은 웃는 얼굴로 칼같이 거절한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희는 따로 받는 공임비 같은 것도 없습니다. 1,520억은 필요한 최소 경비만을 청구한 겁니다."

"오, 맙소사. 그럼 아무런 대가 없이 자원봉사를 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럴 수야 있나요. 사우디 왕실에서 병원 재단에 2,000억 원을 따로 기부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병원장과 의료진은 속으로 주먹을 굳게 쥐며 나이스를 외쳤다.

"이게 바로 본체인 시각중추 연결통신기, 가장 핵심이죠. 카메라는 그저 거들 뿐입니다."

"들었습니다. 그게 본체이고 1,500억 원이나 한다는 것을요."

가장 오른쪽에 앉은 중년 남자가 웃으면서 말을 거들었다.

"상용화가 안 된 기술로 만들어진 카메라도 하나에 10억이나 하는데, 본체는 1,500억 원이라니. 놀랍습니다."

"아유, 그나마 본체는 부품들이 죄다 양산이 돼서 다행이죠."

"예? 그게 무슨……."

사우디 왕실에서 왔다는 아랍인 중년 비서는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본체도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관련기술이 상용화가 안 돼서 1,500억원 하던 게 아니었습니까?"

"아뇨, 본체는 전부 양산된 장치들입니다. 상용화 안 됐으면 아마 2, 3조 원은 했을 걸요?"

"……."

"……."

도대체 어떤 첨단부품들이 들어가 있기에 이렇게 비싼 것인가.

하수영이 말했다.

"사실 본체 가격을 줄일 순 있습니다. 400억 원 정도로 맞출 수도 있겠네요."

"오, 그게 가능합니까?"

"대신에 작은 빌딩 크기가 돼버려서요."

"……."

"……."

"원래 같은 성능을 더 작게 만들려면 그만큼 돈이 들어갑니다. 소형화라는 게 다 그렇죠."

다른 건 몰라도 시각에 관련된 장치이니만큼, 그렇게 커져 버리면 의미가 없다.

"여기 PACH-1이라는 부품이 핵심이죠. 칼텍에서 개발한 것인데 칼텍에서는 실제로 이 기술을 통해서 동물의 뇌와 무선으로 감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 그런데 왜 칼텍은 이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까?"

"감응은 했는데, 전자 신호 체계 자체를 모르니 소통이 안 되는 거지요. 뇌가 인식할 수 있는 전자적 신호를 만들어서 자극을 줘야 합니다."

"아하, 서로 대화는 주고받을 수 있는데 언어가 달라서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만 주고받는 거군요."

"네, 그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정상적인 대화로 바꾸는 게 바로 우리 재단의 고유기술입니다."

하수영은 미군에서 PACH-1 부품및 기술을 '전파 실신장치'로 사용 한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지향성 전자파를 발신해서 목표의 뇌를 꺼버리는, 순식간에 기절시키는 군사장비다.

비싸기만 하고 효율이 없어 미군에서도 외면 받고 있는, 신기하지만 쓸모는 없는…….

"또한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이 뇌의 전기적 신호 패턴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개별 세팅을 해줘야 합니다."

"본인에게만 귀속되는,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장비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시각장애인을 저희 병원으로 직접 데려오셔야 합니다."

"혹시 나중에 양도도 가능합니까?"

"전적으로 정당하고 자발적인 거래인지 당사자의 의사를 저희가 확인하고 난 뒤에는 가능합니다."

"횟수 제한은 있습니까?"

"제한은 없지만 양도는 시술비용으로 병원에서 10억 정도 받을 겁니다."

"그 정도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요."

병원장 이하 의료진은 역시 사우디왕가라서 통이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와 있는 사람들은 왕족이 아니라, 왕족을 보필하는 비서진이다.

모든 설명을 마치고, 왕실 비서진은 흔쾌히 대금을 입금했다.

"시술을 받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국왕 폐하의 숙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올해 100세가 넘으셨지요. 백내장이 너무 심해 시력을 거의 상실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해 문제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

청담 스코프 세트가 갖춰지고, 사우디 국왕의 숙부가 한국으로 넘어왔다.

극비리에 한국을 찾은 그는 그날 바로 시술을 받았다.

붕대를 떼고 청담 스코프가 제대로 작동하자, 왕의 숙부는 새롭게 보이는 풍경에 무척 기뻐했다.

"오! 정말 놀랍소! 대단해!"

"시야는 만족하십니까?"

"정말 매우 만족스럽소. 내가 어렸을 때나 이런 시력…… 아니, 어렸을 때도 이렇게 깨끗하고 선명한 시력은 갖지 못했던 거 같소."

최근 수십 년 동안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로 살아오다가 시력 상실 직전까지 몰렸다.

그런 상황에서 맑고 깨끗한 시야를 새로 얻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축복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청담수영병원은 정말이지 우리 사우디의 친구요."

"감사합니다."

하수영의 유창한 아랍어를 보면서 병원장과 의료진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영어 네이티브 수준이신 건 알았는데, 아랍어까지도 저렇게 유창하실 줄이야."

"정말 본업이 농사이신 게 맞긴 한 거죠?"

"야, 그 농사 하나로만 조 단위 수익을 내시는 분인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농사로 조 단위 수입을 내려면 역시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군요."

조용히 수군덕거리던 중 최윤석 병원장이 불현듯 미소를 보였다.

"2,000억이야, 2,000억. 자그마치 2,000억 원이라고."

사우디 왕가에서 성의로서 재단에 기부한 금액이 무려 2,000억 원.

"이번 연도에만 추가 확보 수입이 3,000억 원이나 된다고."

왕세경 회장의 VIP병실 입원료 1,000억과, 이번에 사우디에서 받은 2,000억을 합쳐서 3,000억 원의 추가 수입을 확보했다.

"이러다가 진짜 우리 병원 흑자로 전환하는 거 아니냐?"

"원래 올해 예상 적자가 얼마였죠?

조 단위이지 않았어요?"

"그거야 닥터헬기 도입비용을 자산증가로 보느냐 지출로 보느냐에 따라 조 단위인지 수천억 단위인지 갈리는 건데……."

"엄밀히 말해서 닥터헬기가 어디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예상적자를 수천억대로 보는 게 맞습니다."

"에이, 감가상각 생각하셔야죠. 굴리면 굴릴수록 돈은 돈대로 나가고, 또 결국에는 어디 재고 처분도 못하고 퇴역해서 폐기해야 할 텐데요. 소모성 자산입니다, 결국."

"그래도 3,000억의 추가 수입이 생긴 게 어디입니까?"

***

청담 스코프 시술을 요청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1,520억 원의 치료비가 아깝지 않은 이들 중에서 시각장애인은 매우 드문 편이었기 때문이다.

청담 스코프 3호기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유명한 뮤지션, 티스 애던이었다.

유아 시절 사고로 맹인이 된 그는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뼈를 깎는 노력과 찬란한 재능은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역경을 딛고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50대 뮤지션이 청담 스코프 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다.

"사례로 재단에 100억을 기부하겠습니다."

그 말에 큰 대가를 기대하던 의료진은 몹시 아쉬워했다.

속으로 불만도 있었다.

'아니, 개인 자산이 1조 원이 넘어가는 사람이 겨우 100억이라고?'

'아무리 시술 자체는 무상으로 해주는 거라지만 너무 짠 거 아니야?'

원칙적으로는 1,520억 원의 청담스코프 원가만 지급하면 시술을 해준다.

하지만 사우디 왕실이 2,000억 원을 사례성으로 재단에 기부한 전례가 있는데.

겨우 100억 원이라니.

"괜찮습니다. 100억도 매우 큰돈입니다."

반명 하수영은 정말 개의치 않는 듯했다.

미국의 시각장애인 뮤지션 티스 애던은 몹시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제 남은 재산은 쓸 곳이 있어서 그러니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네. 근데 어디에 쓰시려고요?"

"저와 똑같이 빛을 보지 못하는 제 어린 팬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

그 말에 내심 아쉬워하던 의료진은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저를 포함해서 6명의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 것까지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럼 100억 조금 넘게 남을 거 같더군요. 남은 것은 전부 귀 병원에 드리겠습니다."

"같은 처지의 어린 팬들을 위해 서참 훌륭한 스타로군요. 그래도 100억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리 병원도 그 돈으로 다른 환자들을 위해 이롭게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티스 애던과 6인의 어린 팬들은 그렇게 새로이 빛을 되찾았다.

그 뒤로는 청담 스코프 시술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1,500억 원을 선뜻 낼 수 있는 대부호나 가족 중에 시각장애인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하수영은 한동안 청담 스코프에서 신경을 접을 수 있었다.

그러나 SNS에서는 청담 스코프 덕분에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특히 시각장애인 가족을 둔 이들이 어떻게든 시술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너무나 비싼 가격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

국방부 장관이 하수영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장관과 훈련병으로 만난 사이였으나.

닥터헬기 도입 등 그 뒤로 이어진 관계에서 국방부 장관은 하수영 앞에서 설설 긴다.

오늘도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하수영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냈다.

"뇌 전자적 원격 동기화 기술 때문에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거 이름 한 번 거창하네요."

"오랜 검토를 해본 결과, 군사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가능성을 발견하여……."

"아아, 안 됩니다."

"예?"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시원스러운 거절부터 돌아오자 국병호 국방부 장관은 당황했다.

"지금 제가 투자자로서 기술개발자와 권리를 어떻게 나눌지 중요하게 협상 중이에요."

"그러시군요."

"권리 배분 설정을 확실하게 마치기 전까지는, '청담 스코프 프로젝트' 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그렇게 합의를 본 상황입니다."

국병호 장관은 이해했다.

"이만큼 중요한 기술이니 당연하시겠지요."

"네, 그래서 아직 특허도 신청 안하고 기술도 일절 공개하지 않은 겁니다."

"그럼 역설계 등 탈취당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전혀 없으니 안심하세요. 에릭, 그 친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철통방벽을 세워뒀습니다. 양자 컴퓨터 갖고 와도 못 뚫을 정도죠."

'에릭…… 그 개발자의 이름인가 보군. 그럼 설마 외국인인가?'

국병호 장관은 하수영이 전생에서 썼던 이름 중 하나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 두 분 사이의 권리 배분 협상이 언제쯤 완료될 것 같습니까?"

"아주 중요한 기술이니 협의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저도 느긋하게 마음먹고 이야기하는 중이라서요."

"어쨌든 간에 우리 국방부와의 이야기도 그 뒤에나 시작할 수 있겠군요."

"그렇겠죠?"

"권리 배분 협의가 끝나면 꼭 알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현재로써는 '기약이 없으니'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망한 주식 그냥 묻어둔다 생각하시고 잊어버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설득당한 국병호 장관은 흔쾌히 끄덕였다.

역경을 뚫고 가까스로 하수영을 찾은 이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듣고 물러났다.

그렇게 청담 스코프 기술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이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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