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24화
131장 족보를 풀어라(2)
남자가 멈칫해서 등을 돌렸다.
표정은 여전히 무감정해 보인다.
"무슨 의미인가?"
"아니, 묘하게 자꾸 신경을 긁어 대서."
"나는 이 항성계가 처음이다."
"알아, 아는데. 뭔가 영혼의 소울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미묘한 거슬림이 있네?"
"그대의 얼굴은 나에게 처음 보는 것이다."
-마스터! 언어 해독율을 45%까지 달성했습니다! 제가 처음 겪는 언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수영은 프리덤은 무시한 채, 팔짱을 끼고 남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뚫어보았다.
"이렇게 보니…… 어디선가 봤던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야, 너 진짜나 어디서 본 적 없냐?"
"전혀 그런 적이 없다."
"이 묘한 거슬림 말이야. 그리고 내가 원래 사람한테 반말 쉽게 함부로 안 하는데, 너한테는 나도 모르게 놔버렸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했다는 것은 거기에 그에 맞는 의미가 있다는 거야."
"타당한 추정이다. 프랜차이즈 갓 후보라면 능히 그런 특이점이 있을 테지."
"야, 족보나 한 번 까보자. 너 어느 별에서 왔어?"
"크로바뒤융 항성계에서 왔다."
"처음 듣는데. 혹시 알탈리온 왕국은 아냐? 발음을 보니까 그쪽 뿌리인 거 같아서."
"처음 듣는다."
"무기 형태 보니까 딱 호르잔 왕국스타일인데. 그건 들어봤고?"
"모른다. 그리고 이건 무기가 아니다."
"무기가 아니면 뭔데?"
아무리 봐도 대구경 라이플처럼 생겼는데, 무기가 아니라고?
"우주선이다."
"뭐? 그게 우주선이라고?"
하수영은 황당했다.
아니, 길이가 2미터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람이 탈 수 있는 크기는 아닌데?
"그거 부피가 몇십, 몇백 배 이상으로 커지고 막 그런 거냐?"
"그렇지 않다. 보여주지."
남자는 대구경 라이플(처럼 생긴 우주선) 총구를 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순간 반투명한 빛의 구체가 생겨나며 남자와 대구경 라이플을 완전히 감쌌다.
동시에 구체는 바닥에서 살짝 두둥실 떠올랐다.
하수영은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탁내리쳤다.
"오, 알튤러스 추진 방식이네. 사람 단위로 시공간을 이동하는, 근데 저거 꽤 고전 기술인데……."
"가장 최신 기술이다."
"에이, 그럼 시간대가 안 맞잖아."
"그런데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 건가?"
"옛날에 다른 별 어디에서 널 봤나 하고 족보 뒤지는 거다, 지금."
정확히는 그 많은 전생 중에서 이 남자와 얽힐 만한 게 있는지 뒤지는 것이었다.
"알튤러스 추진 방식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 전혀 상관없는 문명에서 개발한 건가? 하긴,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우주 반대편이라고 뭐 다르겠어?"
하수영은 남자를 골똘히 뜯어봤다.
'이렇게 보니 얼굴이 뭔가 눈에 익은 거 같기도 하고…….'
"너 이름이 어떻게 되냐?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말해."
"내 이름은 로한."
"로한? 성 같은 것도 없어?"
"그런 건 없다."
"성이 없는 문화라… 이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알치론, 그드만, 휘리오스, 마듈, 체인 웨일……."
하수영은 거의 20분 정도 헉헉거리면서 지명, 국가명, 대륙명, 별의 이름 등을 쏟아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짚이는 게 있냐?"
"전혀 없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그 옷은 뭐로 만들었지?"
"마수 코르바시엔의 깃털로 짠 것이다."
"그거 혹시 이마에 검은 뿔 크게 두 개 난 새 아니냐?"
"심해어 마수다."
"아니, 무슨 동네가 심해어 마수에 깃털이 달려 있어!"
그 뒤로도 하수영은 깊이는 단서는 닥치는 대로 쏟아내며 질문했다.
거의 1시간 정도 정말 닥치는 대로 물어본 것만 같다.
모른다. 처음 듣는다. 알지 못한다.
관계없다. 짚이는 게 없다. 무관하다.
그렇지 않다. 다른 존재다…….
심지어 교차검증을 통해 상대의 별이 존재하는 좌표까지 도달했다.
물론 하수영이 전혀 가본 적 없는 좌표였다.
-마스터! 기뻐하십시오! 낯선 언어를 완벽하게 해독했습니다! 마스터가 최대한 다양한 샘플링을 구사하며 길게 대화를 해주신 덕분입니다!
"넌 저리 가서 부활의 이순신 시즌 2 소설화 작업이나 하고 있어."
-……예.
하수영은 왠지 숨이 헉헉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1시간 동안 이것저것 열심히 떠들어서인가?
하지만 이 정도 주절거렸다고 숨이 차는 경우는 없을 텐데.
"아, 모르겠다. 어떻게 된 게 하나가 맞는 게 없냐. 이 정도로 탈탈 털었으면 그래도 하나 정도는 겹치는 게 나오기 마련인데."
이름, 가문, 역사, 지명, 항명, 설화, 기술, 문명 등등 맞는 게 전혀 없으니.
'인생 헛살았네. 그렇게 전생을 많이 거듭했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인맥이 좁을 줄이야.'
"에휴, GG 쳐야겠다. 이봐, 그럼 기력 회복되면 이 별을 떠날 거지?"
"다시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 한다."
"그래, 그럼 수고하고, 그래도 먼 별나라에서 왔는데 의붓형제 입장에서 밥은 먹이고 보내야 마음이 편할 거 같네. 밥 먹고 갈 거냐?"
"정중히 받아들이지. 나도 이곳의 음식이 궁금해졌다."
"따라와. 그거는 나한테 잠시 맡기고."
남자, 로한은 순순히 대구경 라이플(처럼 생긴 우주항해장치)을 맡겼다.
"근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이 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의 에테르가 이 건물에 새겨 있었다."
"아, 신언으로 결계 친 게 감지됐나 보네."
"조금 의아했다. 겨우 27밖에 안되는 수치라니, 10조 번째 후보자라면 뭔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 네. 그러세요."
하수영은 수치가 낮다는 말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부캐 대충 키운다고 본캐 키우던 클래스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의미인가?"
"심해어 마수로 옷까지 입은 거 보니까 생선 좋아하게 생겼다는 뜻이다. 참치 썰어주지."
하수영은 수영오세안 매장에 들어섰다.
손님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둘에게 쏟아졌다.
하수영이 안아든 대구경 라이플, 그리고 로한의 이국적이면서도 수려한 외모와 훤칠한 키.
묘한 조합 덕분에 시선이 한순간 쏠렸지만, 둘은 아무렇지 않게 이동했다.
"자, 손님, 여기 앉으십시오. 이건 제가 잠시 보관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자리를 권하자 로한은 두말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하수영이 통참치를 꺼내서 쿵 하고 올려놓자 로한이 입을 열었다.
"마수 코르바시엔 새끼와 닮았군. 고기가 맛이 없기로 유명한 마수인데."
로한이 입은 옷을 짠 깃털이 달린 마수.
하수영은 다른 손님들이 듣지 못하게 작게 속삭였다.
"걱정 마라. 여기서는 사람들이 아주 없어서 못 먹으니까."
그리고 하수영은 참치 해체 전용 칼을 꺼내왔다.
서리한, 게임의 화려한 아이템을 닮은 모양새 때문에 매장에서 유명해진 그 칼이다.
칼을 쥐고 높이 들어 올리는 순간, 로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서리한!"
"아, 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수영도 깜짝 놀라서 멈칫했다.
로한의 눈은 처음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대답하라! 그대 아우가 어떻게 서리한을 갖고 있지!"
"아니, 이거 진짜 서리한은 아니고 그냥 모양만 똑같이 만든 모조품인데. 기껏해야 티타늄 합금이라서……."
잠시 뚫어져라 서리한을 살피던 로한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 나왔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대 말대로 겉모습만 똑같구나. 서리한은 오래 전에 사라진 고대의 보물.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대는 천체 수호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천체 수호자?"
"왕을 모시는 친위대 개개인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 듣는데, 너도 천체 수호자인가 뭔가 하는 소속이었냐?"
"나는 천체 수호자의 1기 대원이자, 799,999번째 대원이었다. 1,800년 전에 은퇴했지. 이제는 천체 수호자에서도 잊혀졌을 테지만, 그래도 자긍심만은 영원히……."
"잠깐, 799,999번째? 혹시 1기 막내였냐?"
"그렇다. 그걸 어떻게……."
"내가 옛날에 제로스 제국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살았을 때 반정 일으킨답시고 나까지 딱 80만 유격대 만들어서 나라 뒤집은 적이 있는 데……."
"제로스 제국? 그건 2,000년 전에 멸망한 나라인데, 나도 그 대업에 작게나마 힘을 보탰다. 천체 수호자 1기 막내로서 말이다."
"……."
"……."
"……."
"……."
하수영은 턱하고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팔짱을 낀 채 그는 로한을 노려보듯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방의 직원들은 이미 둘 사이에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채 입을 닫고 있던 로한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아우, 그대는 어떻게……."
"칠구구구구구 올빼미."
순간 로한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신경절에 융합된 훈련 같은 버릇이자, 각인이었다.
"칠구구구구구 올빼미!"
"8번 자세 실시합니다."
"8번 자세 실시!"
로한은 두말 않고 벌떡 훈련 자세를 취했다.
신경절에 깊숙이 보관된 훈련은, 수천 년이 지났어도 미세한 관절 자세 하나까지 전부 잊지 않고 있었다.
"본래 위치로."
"위치로!"
로한은 얼른 본래 자리에 앉았다.
하수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이제 완전히 경악에 휩싸여 있었다.
"칠구구구구구 올빼미."
"칠구구구구구 올빼미!"
"누가 족보를 마음대로 바꾸라고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족보를 그렇게 바꿔 버리니까 하나도 안 맞잖아. 천체 수호자? 내가 '트롤유격대'라고 지어준 멋진 이름을 누구 마음대로 바꿔?"
"저, 정말 폐하이십니까?"
"폐하? 내가 폐하였냐?"
"교교관님."
"그래, 우리 자랑스러운 '트롤유격대' 첫 번째 올빼미이자 유일한 교관이며 지휘자인 내가 어쩌다가 왕이 됐을까?"
"그, 그것은……."
"아하, 트롤유격대라는 이름이 유치했구나? 그래서 내가 죽은 다음에 니들이 멋대로 역사를 조작했구나? 건국교관이라는 내 유니크 칭호도 왕이라고 바꿔 버리고?"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관님의 업적을 널리 기리기 위해서……."
"가만, 그런데 트롤유격대는 나한테는 500만 년도 더 지난 일인데, 너한테는 2,000년 전이라고? 그럼 그 별이 여기와는 다른 우주인가?"
"……아버지를 찾아서 우주를 넘어 왔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2,000년 넘게 지금 모습으로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거군. 나 죽은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서 간택을 받은 거냐?"
"……."
"똑바로 말해라. 사실대로."
"사실은 폐, 아니, 교관님께서 반정을 일으키셨을 때 이미 엘릭서를 받았습니다."
"그래, 그때 1기 막내가 남달리 잘싸운다고 칭찬 많았던 기억이 난다. 숨은 영웅 놀이 하셔서 막 가슴 엄청 설레셨겠어?"
"죄송합니다."
언제 감정이 마모됐었느냐는 듯이, 로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까 뭐라고 했지? 그대 동생? 그대 동생?"
"제가 먼저 아버지 호적으로 입적을 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한 번 유격대는?"
"영원히 유격대다!"
"한 번 교관님은?"
"영원한 교관님이다!"
"누가 형이지?"
"교관님이 형님이십니다!"
"내가 너보다 늦게 입적했는데?"
"첫 인연에서 이미 큰형님이셨습니다! 입적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아. 족보 정리는 이걸로 끝. 아우, 촌수가 뭐가 이렇게 지저분하게 엉켰냐."
하수영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고는 물었다.
"기력 회복되면 아버지 찾아서 바로 떠난다고?"
"아닙니다. 교관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옆에 머물며 보필하겠습니다. 한 번 유격대원은 영원한 유격대원!"
"아니야, 아니야. 괜찮으니까 기력 회복되면 바로 떠나. 여기 있어 봤자 너한테 시킬 것도 없어."
"아닙니다. 정말 괜찮으니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교관님이 이 항성의 유일하고 지고한 지배자가 될 수 있도록, 그때처럼 대업을 돕겠습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이 별을 못 먹는 줄 아냐? 그냥 놔두는 거야."
"하지만 에테르 수치가 겨우 27인 것을 보면……."
"됐고, 조용히 관광이나 하다가 아버지 찾으러 떠나라. 아, 혹시 내가 부르면 바로바로 튀어오고."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