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58화
139장 협회는 즐거워 (5)
하수영 개인은 식약처와 데면데면한 사이다.
직접적으로 맺은 인연은, 참치 중 금속 함유량 0 증명서를 발급받은 게 전부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겠지만, 간접적 영역에서 상당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하수영의 주요 사업은 식품제조 및 유통이니까.
또한 수영참치, 수영레스토랑 등 프랜차이즈 외식당도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의약품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종합병원도 갖고 있으니.
"아버지는 나하고 그래도 데면데면 잘 지내고 있는데, 아들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 아버지의 속을 썩이는 것인지."
대한외식업중앙회는 식약처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단체였다.
국내에서 '식당 영업'의 위생 및 발전을 관리하는, 반쯤 공공의 성질을 띤 사단법인.
물론 식약처 입장에서는 후계자 상속순위에서 두 자릿수를 훨씬 벗어난, 얼굴도 가물가물한 소실의 아들 같은 존재지만……
"그러니까 제 아버지의 뜻도 모르고 이렇게 설쳐대는 거 아니겠냐고."
-확실한 회계 비리로 걸고넘어질 수 있는 건수는 약 160억 원입니다. 그 외는 시효가 지났거나 불법성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기관에 빌붙은 단체는 눈먼돈 빼먹기 위해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지. 그건 천 년이든 만 년이든 안변한다니까."
하수영은 원탁에 준비된 음식을 태연히 집어먹으며 행사를 구경했다.
"일반 식당 자영업자들 불러 모아서 좋은 정보도 알려주고, 앞으로 비전도 제시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냥 자기들끼리 술 파티나 하고 앉아 있네."
애초에 전국의 모든 식당 자영업자들을 위해 결성된 단체다.
작게는 시골분식점부터, 크게는 특급호텔 레스토랑까지 전부 아우르는.
하지만 파티의 진짜 주인들은 초대도 받지 못했다.
아니, 이런 행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주인들은 없는데, 파티를 준비한 머슴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군. 내가 기가 막혀서."
심지어 파티 비용도, 그들의 월급도 주인들의 금고에서 나오는데.
지원세금과 정부지원 등은 애초에 식당 자영업자들을 위한 것이니.
그때였다.
"저, 수영 씨? 맞죠?"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하수영은 고개를 들었다.
효원그룹의 딸이자, 효원식품 오너이며, 장효주의 영화배우 동료인 주효정이 상기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행사 참가하러 왔죠. 그러는 효정씨야말로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저도 행사 참가하러 왔죠. 근데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 같네요."
"무슨 뜻이죠?"
"전 식품전문가들이 잔뜩 있을 줄 알고 인맥 좀 쌓으려고 왔는데, 순전히 낙하산 책상물림들밖에 안 보여서요."
주효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효원식품을 물려받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경영은 않더라도 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배우 생활 틈틈이 이것저것 하는 모양이다.
"자영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온 건데, 초대장 달라고 해서 조금 당황했었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뭐라고 설명하셨나요?"
"그냥 작은 식품제조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니 바로 만들어 주더라고요."
아마도 하수영이 입장하고 바로 다음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여배우라서 그런지 주효정은 확실히 주변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큼지막한 색안경과 살짝 헐렁한 핏의 세미 정장도 잘빠진 비율과 작은 얼굴에서 나오는 미모를 감추진 못했다.
"속상해. 어떻게 제가 주효정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거죠? 그냥 좀 이쁘게 생겼네, 이렇게만 보는 거 같아요."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알아보더라도 내색을 못 하는 걸 수도 있는 거지요. 선임자들한테 찍히기 싫은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저기 스크린에 주요 안건들 다 뭐예요?"
"저를 저격하는 타이틀 같죠?"
"진짜 그런 줄 알았어요. 식재료공급 독과점? 이거 아무래도 황비버섯 노리는 거 같고요. 수입 육류 증가, 국내 육류 경쟁 활성화는 뭐 말할 것도 없네요."
주효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멸치 떼가 범고래를 이렇게 막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 뇌가 작아서 그런 걸까요?"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서 그런 거겠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일단은 자기들끼리 어떻게 노는지 한번 구경하렵니다. 그다음에 생각을 하려고요."
하수영과 주효정은 느긋하게 행사를 구경했다.
행사는 반은 세미나, 반은 파티처럼 흘러갔다.
저마다 감투를 쓴 이들이 강단에 올라서 국내 요식업의 미미한 점, 발전 동기, 미래 비전 등을 부르짖었다.
"별로 와닿지는 않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근데 여기 외식 식당 관련 단체잖아요? 수입 유류나 국산 육류 유통은 왜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죠?"
"식재료 유통은 식당 입장에서도 중요한 거라서 그렇게 반응하나 봅니다."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주효정이 이해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시중에 한우가 씨가 마르긴 했어요."
"그걸 수영목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봅니다."
하수영은 혀를 찼다.
"한국 식량자급자족률 증대에 열심히 기여하는 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훼방을 놓네요."
"아, 식량자급률. 그거 엄청 중요하잖아요. 우리나라는 너무 낮아서 걱정이라는데."
"쌀은 걱정이 없는데 그 나머지 것들이 문제죠. 특히 육류는 예전까지만 해도 답이 없었습니다."
"왜요? 수입산 육류 말고도 국산육류도 시장에 넘쳐났었잖아요?""
"해외 수입 사료가 없으면 그 많은 가축들을 키우질 못해요. 그럼 그게 육류 자급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아."
주효정은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흘리다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지금은 수영사료가 있잖아요? 가축 사료는 더 이상 해외에서 수입안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제 공을 무시하고 국내 육류의 경쟁성 활성화 어쩌고저쩌고하고 있으니 제가 어이가 없어서 여기 왔죠."
"그러시겠어요."
행사 진행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니, 딱히 하수영을 저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열심히 행사에 발표안건 구색을 갖춘 것인데.
(이런 단체들이 그러하듯이) 대부 분이 삽질이었고, 그 삽질 중 하나가 엉뚱하게 하수영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외 다른 삽질들도 저마다 착실히 이런저런 애꿎은 이들을 저격하고 있었다.
"식당 위생 수준 강화를 엄격히 추진? 저거 말은 좋은데 그럼 그 비용은 누가 댄다는 건지 왜 말이 없는 거죠?"
"업주들이 알아서 하라는 거죠. 규제만 생각하고 다른 건 생각을 안해서 저런 겁니다."
"위생 상태가 더 깨끗해지면 당연히 좋지만 그럼 뭔가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고, 지원안도 생각하고 그래야 하는데……."
주효정도 어이가 없어 했다.
"꼭 디자이너가 자기는 디자인 끝냈으니 원리는 엔지니어 네가 알아서 해보라고 떠넘기는 거 같네요."
"오, 괜찮은 비유입니다."
"답답해서 안 되겠어요. 수영 씨, 제가 올라가서 몇 마디 해도 되나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니까……."
주효성은 귀엣말로 꽤 길게 속삭였고, 하수영은 유쾌한 웃음으로 반응했다.
"좋네요.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추가합격 예비번호 1번 주시는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효주랑 헤어지면 저 바로 입후보할 수 있는 건가 해서요."
"……."
"표정 왜 그래요. 그럼 2번, 아니, 3번, 아니, 10번도 괜찮아요."
하수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주효정은 생긋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
"농담인데 그렇게 보면 민망해요."
"효주 씨와 저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임대인과 임차인……."
"그래도 추가합격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은 진짜랍니다. 그건 기억해 줘요."
주효정은 산뜻한 걸음으로 나섰다.
마침 자유발언 타임이었다.
그녀가 마이크를 요구하자 늙은 임원은 기꺼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자, 이번에는 대단히 아리따운 여성분이 발언을 하신다고 합니다. 갑자기 연회장 전체가 환해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저는 자그마한 식품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효정이라고 합니다."
홀의 시선이 단숨에 그녀에게 쏠렸다.
배 나오고, 나이 들고, 그런 밋밋하고 칙칙한 중노년 남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존재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식당을 운영하진 않는데 이 자리에 참석해도 상관은 없을까요?"
"식품제조업이라면 당연히 우리 외식업중앙회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전국의 식당들이 모든 식재료를 텃밭에서 키워서 조리하는 게 아닐 테니까요, 허허."
늙은 임원 진행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재미있었는지 진심으로 껄껄웃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도 재미있다는 듯이 폭소를 했고, 주효정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발언을 이었다.
"예시로 든 내용 중에 국물요리 필수 식재료인 황비버섯생산이 독점이라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네, 그랬습니다."
"소비자가격을 낮추고 유통을 활성화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궁금합니다."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죠. 세상에 해결책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늙은 진행자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효원식품이 동남아에 수출하는 물량을 국내 유통으로 돌리면 됩니다."
"쿨럭! 쿨럭!"
주효정은 저도 모르게 사레가 들렸다.
다행히 마이크를 얼른 떼어놓은 덕분에, 기침 소리가 퍼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황비버섯라면, 여기서 제조되는 라면의 대부분이 요리재료로 쓰기 위한 버섯 취득만을 목적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 역시 간단합니다. 그만큼의 물량을 식자재 유통으로 돌리면 됩니다."
"이, 일반 사기업의 상행위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요?"
"그걸 위해서 협회가 결성되고, 조직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옳습니다."
그 뒤에도 주효정은 예리한 질문을 던졌지만, '현문우답만 잔뜩 돌아올 뿐이었다.
현실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렇게 하면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분위기만 홀에 가득했다.
"한우 품귀 현상 때문에 일선 식당에서 한우 수급이 어려운 것은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한우 품귀는 수영목장 때문이죠. 지금도 수영목장은 미국에 상당한 소고기를 수출하고 있고, 또 늘려나갈 예정입니다."
"간단합니다. 그 물량 중 일부를 국내에 유통하라고 하면 됩니다."
"그럼요. 소고기가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해외에 내다 파니까 못먹는 거 아닙니까."
"어디 소고기뿐이겠어요? 돼지고기도 그렇고, 황비버섯도 그렇고."
주효정은 하수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지금 다 진심이에요?'
하수영도 눈빛으로 대답했다.
'진심이라는 게 진짜 문제죠.'
초능력이 없어도, 이 정도 텔레파시는 충분히 통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효원식품은 황비버섯 국내 유통을 못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늙은 진행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고, 주효정은 차분히 대답했다.
"효원식품은 황비버섯 동남아 수출유통판매권만 갖고 있어서, 한국은 물론이고 동남아 외 다른 지역에는 유통을 못 해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거, 젊은 아가씨가 세상 물정 모르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군."
"효원식품이 국내 유통을 안 하는 건 동남아에서 파는 가격만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요."
"동남아에서 킬로당 몇십 달러를 받고 팔아도 문제없는 건, 중국업체들이 우회수입을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팔았다가는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나니 안 하는 거지."
주효정은 잠시 소리 없는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유통 계약서에 도장 찍은 게 접니다. 그런데 다들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거 같네요?"
"……뭐라고?"
"지금 저 아가씨가 뭐라고 한 거야?"
"효원식품 관계자라는 소리 아니야?"
"가만, 아까 식품제조업에 종사한다고 한 거 같은데……."
"관계자가 아니라 설마 경영진?"